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93
훈수 두는 천마님 91편
처음 두더지가 ‘이 자식들아!’라고 했을 때는 두더지가 말한다는 사실에 놀랐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보니, 진짜 놀랄 부분은 ‘두더지가 말한다’가 아니었다.
“땅 짐승? 말 되게 서운하게 하네!”
“진짜 보이는 모양인데요?”
지금까지 천경을 직접 본 이는 엔트로피, 제례용, 할리, 그리고 낙원의 파편에서 그와 조우했던 정체 모를 초월자가 끝이었다.
그 외엔 임 도사 정도가 있었는데, 그는 박현수 뒤에 무언가 있다는 것만 느꼈을 뿐이었다.
다른 이들은 천경의 존재를 인지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일개 두더지가(일개라고 하기엔 말도 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들판에 살고 있다) 그를 보고 있었다.
“이름 같은 건 없어.”
“그럼 그냥 두더지라고 부른다?”
“땅 짐승보단 그게 낫지.”
두더지가 만족하며 고개를 끄덕였는데, 뿔이 잡혀 있어서 작은 몸이 덜렁거렸다.
“이거 놔!”
뿔이 잡혔다는 사실을 다시 깨달은 두더지가 버럭 소리쳤다.
박현수는 어깨를 으쓱이며 두더지를 내려놨다.
그리곤 쪼그려 앉아 두더지와 최대한 눈높이를 맞췄다.
“그래서, 넌 뭐야? 왜 이곳에 있는 거지? 그리고 이 들판의 정체는 대체 뭐고, 어쩌다가 이 꼴이 된 거야?”
“하나씩만 물어봐, 하나씩만!”
“그럼, 이 들판은 대체 뭐야?”
“이 들판은 말이지…… 야!”
곧바로 날아온 질문에 두더지는 대답하려다가 대뜸 박현수에게 소리쳤다.
박현수는 귀를 틀어막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네가 하나씩 물어보라며.”
“나도 대답하고 싶은 게 있고, 없는 게 있는 거야.”
“눈치가 빠르네.”
[그런데, 본좌는 알고 싶은 걸 알아낼 수 있는 수많은 방법을 알고 있다만.]천경의 살벌한 협박에 두더지가 움찔했다.
두더지는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박현수가 씩 웃고 있었는데, 왠지 소름이 끼쳤다.
“이, 이 뿔은 안 돼!”
“그러면 다 알려 주면 되겠네.”
“이 무식한 놈들.”
박현수는 궤변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상황에선 아주 훌륭한 협박이었다.
두더지가 재차 움찔했다.
그리곤 눈이 만화처럼 반달이 되더니, 뒤로 주춤주춤 물러나며 작은 손을 앞으로 뻗었다.
손가락이 세 개밖에 없는 주제에 그중 하나는 접어놓았다.
“두 개의 질문에 답을 해 주지.”
[모든 답을 받아 낼 방법이 있는데 굳이?]“자, 잠깐! 너무한 거 아니야?”
“치사하게 굴지 말자고.”
“치사하게 구는 건 너희 같은데?”
두더지가 어처구니없다는 목소리로 항의하자, 두 사제가 서로를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곤 다시 두더지를 보았다.
두더지는 두 사람의 바뀐 시선에 몸이 굳어 가는 걸 느꼈다.
포식자 앞에 선 피식자가 된 기분이었다.
“잠깐, 잠깐!”
“말할 생각이 들었어?”
“세 가지! 딱 세 가지만 대답할게. 전부는 절대 안 돼!”
다시 두 사제가 시선을 맞췄다.
두더지가 빽 소리쳤다.
“알았어, 알았어! 궁금한 게 뭔데.”
“말귀를 잘 알아듣네.”
“무서운 놈들…….”
두더지가 한탄하듯 말하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 모습이 인형 같아 귀여웠지만, 박현수에겐 지금 귀여운 게 문제가 아니었다.
“일단, 넌 뭐야?”
“순서가 틀렸어.”
“순서?”
“그래, 질문 순서.”
질문 순서라는 말에 박현수가 골똘히 고민하다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이 들판은 대체 뭐야? 왜 내 집이랑 포탈로 연결돼 있지?”
“너는 이곳이 어디일 것 같아?”
“들판.”
“……그렇지, 들판이지. 그런데 너는 들판이란 게 궁금한 건 아니잖아.”
“그걸 네가 말해 줘야지. 뭔가 잘못된 것 같지 않아?”
박현수가 살짝 뽑은 중지를 살살 문질렀다.
두더지는 식은땀을 흘리며 한숨을 쉬었다.
“이 들판이 언제 생겼어?”
“그야…….”
세상에 절망하던 박현수는, 자신이 엎지른 물을 밟고 미끄러지며 냉장고를 밀어 버렸고, 그렇게 벽을 뚫어 포탈이 생겼다.
그게 반년 조금 안 된 일이었다.
“그때 무슨 일이 벌어졌는데?”
“그때…… 스승님을 만났지.”
박현수가 스승을 보자, 천경이 고개를 주억였다.
두더지가 말했다.
“왜 저 노인네가 벽이 뚫리며 만들어진 포탈과 함께 나타났을까, 고민한 적 없어?”
“당연히 있지.”
없을 리가 있나.
고민을 해 봐도 답이 안 나오니까 잊고 지낸 게 아닌가.
그래도 천경과 들판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이건 모르는 게 머저리였다.
“하지만 스승님도 이곳은 모른다고 했는걸?”
“정말?”
천경은 두더지의 의미심장한 표정을 보며 얼굴을 굳혔다.
두더지가 재차 물었다.
“정말 몰라?”
천경은 들판을 바라봤다.
썩어 버린 풀과 핏빛 하늘, 검게 깔린 먹구름 등은 그 역시 난생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그 이전에 새파란 하늘과 솜사탕 같은 뭉게구름, 푸른 초원 위로 살랑이듯 지나가는 서풍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알고 있는 장소일지도 모르지만, 세상에 이런 들판은 차고 넘쳤다.
핏빛 하늘 같은 기현상은 처음이라도, 날씨 좋은 날의 들판은 대개 이곳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모를 수가 있나?”
두더지가 짧은 팔로 팔짱을 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기억이 안 난다면 내가 알려 주도록 하지.”
두더지가 말없이 천경을 응시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곳은 노인네의 심상 세계야.”
“스승님의 심상 세계?!”
박현수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그는 스승을 보았다.
천경은 가만히 두더지를 볼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그의 두 눈에 그리움이란 감정이 피어올랐을 뿐이었다.
“그래. 본인은 지금까지 인지하지 못한 모양이지만 말이야. 지금은 기억이 난 것 같지만?”
“그런데 왜 들판이 이 꼴이 된 거야?”
“그야…….”
두더지가 마저 말하려는 걸 천경이 막았다.
두더지는 좁은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박현수가 스승에게 왜 그러냐고 묻자, 스승은 다른 질문이나 하라고 명했다.
그는 갑작스러운 스승의 태도에 의구심이 들었지만, 일단 시키는 대로 남은 질문을 마저 했다.
“너는 뭐야? 왜 이곳에 있는 거지?”
“나는…….”
두더지가 다시 천경을 보았다.
천경은 눈을 감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박현수가 대답을 재촉했다.
“넌 뭐냐고.”
“일개 두더지……라고 하면 절대 안 믿겠지?”
“그럼 믿겠냐? 두더지는 코에 그딴 걸 달고 있지 않아.”
“남의 코를 그딴 거라고 하다니.”
두더지가 씩씩대며 자신의 길고, 뾰족하고, 단단한 뿔을 매만졌다.
“내 정체를 알면 깜짝 놀랄 거야. 마음의 준비는 됐어?”
“더 놀랄 것도 없을 것 같은데.”
집과 연결된 이곳이 스승의 심상 세계란 사실보다 더 놀랄 비밀이 있긴 할까?
두더지가 씩 웃으며 천경을 보았다.
“나는 저 노인네의 화신이야. 이곳에 있는 이유는 이곳이 노인네의 심상 세계이기 때문인 거고.”
“……?!”
“노인네. 내가 기억나?”
천경은 감았던 눈을 뜨고 두더지를 마주 보았다.
그리곤 땅으로 내려와 두더지 앞에서 정좌를 틀었다.
그는 두더지를 뚫어지게 보더니 갑자기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천경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이제는 얇은 가닥조차 남지 않은 아이 때의 기억을 조금씩 기억해 냈다.
당연히 모를 수밖에 없었다.
이곳은 그가 열 살도 안 되었을 때 가 보았던 곳.
그리고 처음으로 무인의 삶을 꿈꾸었던 장소였다.
그곳엔 항상 함께 다녔던 작은 친구가 있었다.
“스승님?”
[긴 얘기는 아니다. 본좌에겐 중요하지만, 남에게는 사소한 이야기일 뿐이지.]그러나 결코 좋은 기억은 아니었다.
* * *
전란의 시대였다.
전국의 군웅들이 할거하며 영토를 나누고 많은 이들을 사지로 몰아넣던 그런 시대였다.
그때의 천경은 고작해야 여덟 살밖에 되지 않은 소년이었다.
그리고 여덟 살의 천경은 살아남기 위해 사람을 죽이는 짓을 마다하지 않았다.
“허억, 허억…….”
반쯤 부러진 칼날이 거한의 심장에 꽂혀 있었다.
소년, 천경은 전신에 피칠을 한 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두 손이 파르르 떨렸다.
방금까지 붙잡고 있던 칼자루에 남은 체온도 겨울날의 찬바람으로 짜게 식어 버렸다.
그는 거한의 몸뚱이 위에서 일어났다.
이번이 세 번째 살인이었지만,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았다.
다리가 떨리고, 먹은 것도 없는데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았다.
“배고파…….”
비릿한 혈향과 끔찍한 참상은 있던 입맛도 없애 버릴 지경이었지만, 그는 벌써 닷새째 굶은 상태였다.
가뜩이나 성장기의 소년이 닷새나 굶은 것은 치명적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번엔 먹을 걸 구할 수 있었다.
“못된 놈.”
천경은 시체가 된 거한의 품을 뒤졌다.
역시 돈주머니가 있었다.
강도질하려고 거한을 죽인 게 아니었다.
거한이 먼저 그를 납치하려고 했다.
어린아이는 제법 값이 나가니까.
“운 좋은 줄 알아. 내가 컸으면 아주 고통스럽게 죽여 줬을 거야!”
천경은 ‘칵, 퉤!’ 하고 거한의 얼굴에 침을 뱉고는 돈주머니를 열었다.
“은 한 냥?!”
은 한 냥이면 닷새 동안 소면을 삼시 세끼 먹고, 가끔 만두까지 추가해서 먹을 수 있는 돈이었다.
“하루에 두 끼만 먹으면 며칠을 먹는 거지? 어디 보자.”
돈주머니를 허리춤에 걸어 놓고 모든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계산하려고 했지만, 셈을 배운 적이 없어서 이내 포기했다.
“돈 남는 대로 먹으면 되지. 히히.”
마지막으로 소면을 먹었을 때가 벌써 언젠지도 모르겠다.
귀한 분이 불쌍하다며 개밥그릇에 담아 준 적 있는데, 천상의 맛이었다.
그땐 개밥이랑 좀 섞여 맛이 좀 이상하긴 했지만, 이번엔 제대로 된 소면일 테니 생각만으로도 벌써 군침이 돌았다.
천경은 밥 먹을 생각에, 사람 죽인 걸 그새 까먹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마을로 향했다.
* * *
마을로 향하던 천경은 냇가 근처에서 무언가가 찍찍 우는 소리를 들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그와 비슷한 또래의 소년들이 작은 두더지를 괴롭히고 있었다.
찍찍-!
“요놈 봐라? 시끄럽게 잘도 우네!”
소년 중에서 제일 키가 큰 소년이 두더지를 발로 찼다.
찍- 소리를 내며 바닥을 몇 차례 구른 두더지는 도망치려고 발버둥 쳤지만, 뼈가 부러졌는지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키키키. 저놈 봐. 도망치려고 아등바등. 웃긴다.”
“흐흐. 근데 두더지는 무슨 맛이야?”
뚱보가 전병을 입에 넣으며 묻자, 땅딸보가 뚱보의 다리를 찼다.
“이 돼지야, 온통 먹을 거 생각뿐이냐?”
“궁금하잖아.”
“구제 불능 돼지 녀석. 대장, 이놈 계속 데리고 다닐 거야?”
‘대장’이라 불린 키 큰 소년은 피식 웃으며 두더지 쪽으로 다가갔다.
“인마, 걔 집이 부자잖아, 부자. 부자 친구는 언제나 옳은 법이야. 그렇지?”
“헤헤.”
뚱보가 좋다고 실실 웃었다.
땅딸보는 한심한 얼굴로 그를 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곤 뚱보를 데리고 대장 곁으로 다가갔다.
“팔다리를 잘라 볼까?”
“아니면 묶어 놓고 돌 던지기 하자. 저번에 개구리 잡듯이.”
“그리고 먹자.”
“또 먹잔 소리!”
땅딸보가 뚱보의 다리를 또 걷어찼다.
뚱보는 웃으며 전병을 먹을 뿐이었다.
대장이 결정을 내렸는지 잔혹하게 웃었다.
“좋아. 일단 사지를 뽑아놓고, 그다음에 돌 던지기를 하자.”
“우와 대장 잔인해.”
“키킥. 그게 더 재밌지 않겠어?”
찍…….
두더지가 애처롭게 울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삼인방은 근처에 있는 날카로운 돌을 주워 왔다.
날붙이도 아니고 뾰족한 돌로 사지를 자를 생각인 것이다.
“어디 해 볼…… 으악!”
벌벌 떨고 있는 두더지의 팔 하나를 붙잡고 돌조각으로 찍으려는 때였다.
커다란 돌멩이가 대장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대장!”
“대장!”
뚱보와 땅딸보가 앞으로 고꾸라지는 대장을 빠르게 부축했다.
그리곤 빠르게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누구야!”
“진짜 잔인한 놈들이네.”
그곳엔 돌멩이 세 개를 허공에 던졌다가 잡길 반복하고 있는 천경이 서 있었다.
처음엔 그냥 지나가려고 했는데, 하려는 짓이 애치고 너무 지독해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러는 천경도 정작 방금 사람을 죽인 주제에 할 말은 아니었지만, 사람은 원래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법.
그는 세 개의 돌멩이를 꽉 움켜쥐고 삼인방 쪽으로 걸어갔다.
“너희 하는 꼴을 보니까, 커서 진짜 끔찍한 새끼들 되겠다.”
“누, 누구세요?”
“너 이 새끼! 죽여 버린다!”
소극적인 뚱보와 달리 땅딸보가 살벌한 목소리를 내었다.
천경은 그 목소리나, 말투가 같잖았다.
사람 한 번 죽여 본 적 없는 주제에 누군가를 쉽게 죽인다고 떠벌린다.
그래 봐야 두더지나 괴롭힐 줄 아는 놈들이 말이다.
“크윽…….”
그때 대장이 뒤통수를 붙잡고 천천히 일어났다.
뒤통수를 잡고 있던 손바닥을 보니 피가 흥건했다.
그는 눈을 살벌하게 부라리며 천경을 보았다.
“이 개새끼……!”
“거참, 같은 짐승 새끼끼리 서로 그러지 말자고.”
“저 새끼 붙잡아서 내 앞에 무릎 꿇려.”
“알았…… 컥!”
땅딸보가 바로 달려나가려는 순간, 돌멩이 하나가 그의 이마에 직격했다.
이마가 제대로 깨지며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천경이 돌멩이 하나를 더 던졌다.
땅딸보는 피할 생각도 못 하고 머리에 한 발을 더 처맞았다.
“악!”
천경은 돌멩이 몇 개를 더 주우며 콧노래를 불렀다.
뚱보는 언제부터인지 바지에 오줌을 지리고 덜덜 떨고 있었다.
대장은 천경의 실력이 예사롭지 않다는 걸 느꼈다.
그렇다고 그냥 물러나기에는 쪽팔렸다.
키도 자신이 훨씬 크고, 돌만 안 맞으면 저런 놈은 쉽게 패 버릴 수 있었다.
‘움직이면 못 맞출 거야.’
“야, 뚱보.”
“으응……?”
“달려.”
“뭐, 뭐?”
“뒤지고 싶지 않으면 달리라고!”
대장이 뚱보의 등을 떠밀었다.
뚱보는 울음보를 터트리며 천경에게 달려들었다.
천경은 쯧 혀를 차며 대장에게 돌을 던지려고 했지만, 뚱보가 너무 커서 잘 보이지 않았다.
“하하하!”
대장의 웃음소리가 뚱보의 뒤에서 들려왔다.
“웃기는 놈이네.”
천경은 뚱보의 위를 보았다.
그러자, 뚱보의 어깨를 붙잡고 그 위를 뛰어넘는 대장이 보였다.
나름 머리를 쓴 모양인데, 그의 입장에선 정말 가소로운 움직임이었다.
사람을 세 번 죽였고, 그 세 번의 살인 모두 자신보다 한참은 큰 성인이었다.
심지어 그들은 모두 날붙이를 가지고 다녔다.
이런 꼬마들과는 질적으로 차이가 나는 상대.
그런 경험이 있는 천경이 애들 장난에 당황할 리 없었다.
뚱보를 완전히 뛰어넘은 대장이 위에서부터 주먹을 휘둘렀다.
천경은 그를 지켜보다가 돌을 던졌다.
빡-!!
“커헉!”
대장이 허공에서 뒤로 회전하며 그대로 머리부터 돌바닥에 찧었다.
걸음을 멈춘 뚱보는 천경 앞에서 주저앉았다.
바짓가랑이에서 물이 줄줄 새는 걸 보니 또 오줌을 싼 모양이다.
천경은 어깨를 으쓱이곤 뚱보를 지나쳐 두더지 앞에 섰다.
두더지는 두려운 눈빛으로 몸을 덜덜 떨며 천경을 보았다.
“불쌍한 놈.”
사람도 그렇고, 짐승도 그렇고.
모두 장난감 같은 게 아니다.
조심스럽게 두더지를 안고 마을로 향했다.
“치료해 줄게.”
마의(馬醫)한테 데려가면 부러진 팔을 다시 붙여 줄 것이다.
얼마나 요구할지 모르겠지만, 은 한 냥이면 그래도 치료는 해 줄 터.
아니, 두더지를 치료하는 거니 동냥 몇 전이면 충분할 것이다.
설마 은 한 냥을 다 꿀꺽하면 그건 양아치다, 양아치.
천경이 그런 생각을 하며 마을에 도착했을 때였다.
“도망쳐!”
“사, 살려 주시오!”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죽어, 죽어!”
“약탈 허가가 떨어졌다!”
“다 챙겨!”
마을이 불타고, 사람 하나 죽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혈향이 그의 코끝을 자극했다.
“시발.”
전란의 불씨가 이런 외딴 마을에까지 번지고 말았다.
천경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그는 아직 죽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