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96
훈수 두는 천마님 94편
태평양의 드높은 상공.
그곳엔 전례가 없을 정도로 거대한 포탈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처음 낙원이 나타났을 때보다 더한 충격이 세계를 강타했다.
일부는 지구에 드디어 종말이 찾아온 것이 아니냐고 걱정했고, 일부는 뉴 월드가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후자의 사람들도 말만 그럴 뿐 강한 불안을 떨칠 수 없었다.
모두가 낙원의 공포를 알고 있었으니까.
강한 헌터들이 줄줄이 죽어 나갔던, 그날의 기억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저번엔 가장 작은 S등급 포탈이더니, 이젠 가장 큰 S등급 포탈이냐?”
“실로 웅장하군.”
질 로드먼과 타케시가 각자의 평을 말했다.
타케시는 엄지로 코등이를 밀어내며 도를 뽑았다 집어넣기를 반복했다.
그리곤 빠르게 뽑아 허공에 일격했다.
공간이 비틀리며 참격이 포탈을 향해 쏘아졌다.
참격은 포탈에 닿기 직전 무언가에 박혀 안개처럼 흩어졌다.
“보호막이 걸려 있어.”
“뚫을 수 있겠어?”
“모르겠군.”
타케시는 도를 허공에 털고 도집에 집어넣었다.
“꽤 단단해. 전력을 다한다면, 해 봐야 알 것 같은데.”
“어째서 보호막 같은 걸 걸어 놨지?”
“우리가 공략 시도를 못 하게 할 생각일지도.”
“아예 터트릴 작정으로 여기다 뒀다면 그건 더 말이 되지 않아.”
일단 보호막을 전력으로 쳐 본 적 없어서 부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건 개인으로써일 뿐 S급 헌터가 전부 모이면 못 부술 리가 없다.
그리고 못 부순다고 쳐도 망망대해 한가운데서 터트려 봐야 큰 위협이 아니었다.
해일이나, 지진 정도로 그칠 것이다.
“공략대는 어떻게 꾸린대?”
“규모가 규모이니만큼 정예 세 부대와 최소한의 수비를 위한 S급 헌터 두 명을 제외한 전원.”
“보이는?”
“아직 연락이 닿진 않았지만, 소식을 듣는다면 곧바로 오겠지.”
박현수는 약 한 달 전부터 연락이 거의 되지 않았다.
거의 되지 않았다는 것은 간간이 소식 정도는 알 수 있었다는 뜻이었다.
그는 현재 폐관 수련에 들어가 있었다.
* * *
공략대가 빠르게 꾸려졌다.
A급 헌터 중에서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헌터들만 속해 있다는 뉴 월드의 정예 세 부대.
그리고 각 부대를 이끌 지휘관 모드 알락산더, 하유락, 야마모토 타케시.
단독 정찰대 질 로드먼.
그리고 모두를 지휘할 총사령관 칭란.
마지막으로 메인 딜러이자, 가장 큰 변수를 창출해 낼 조커 박현수까지.
거기에 B급 이상 아이템 수백여 종에 S급 아이템 다섯 종, S+급 아이템 두 종 그리고 박현수의 발견으로 개발된 ‘이계 부수기’까지 동원되었다.
그뿐 아니라, 초기를 제외하면 사용된 적 없는 핵무기 역시 이번 공략에 쓰이기로 했다.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총사령관님.”
“우리끼리 있을 땐 편하게 해.”
“하아, 군대라는 거 되게 귀찮네요.”
“어쩔 수 없지.”
하유락의 한탄에 칭란이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뉴 월드가 새로이 조직되며 예전처럼 회사 형태가 아닌 군벌의 형식을 띠게 되었다.
단일의 거대한 적 세력이 있는 이상 기존의 형식으로는 인류의 미래를 도모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고작 한 달밖에 안 된 조직이라 엉성한 부분이 많긴 했지만, 사건 해결 능력은 확실히 상승했다.
무엇보다도.
“그래도 언니는 장군 출신이잖아요.”
칭란은 중국군 중장 출신이었다.
한국군의 계급과는 꽤 다른 면이 있는 중국군이지만, 중장이라면 군인 계급 중에서 두 번째로 높은 계급이었다.
그녀가 흑룡회라는 협회마저 능가하는 중국 통합 길드를 설립할 수 있었던 이유기도 했다.
“군인이라는 거 꽤 오랜만이기는 해.”
칭란은 뉴 월드의 신식 군복 재킷을 어깨에 걸쳤다.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백색 바탕 소매에 금장이 일직선으로 그려져 있었다.
다만 계급 표는 없었다.
제대로 된 형식을 거치지 않고 만들어진 군대였기 때문이었다.
대신 총사령관과 지휘관의 제복 색깔은 구분할 수 있게끔 달리 만들었다.
“현수는 아직 연락 없어?”
“이제 출발한대요.”
하유락이 폰을 확인하며 대답했다.
“폐관 수련이라. 마음먹고 들어간 것 같던데, 얼마나 강해졌으려나.”
“조커 카드값은 하겠죠.”
“조커라. 웃기긴 해. 박현수가 조커라니. 녀석은 스페이드야.”
조커라니 얼토당토않다.
박현수는 변수로 사용되는 게 아니라, 선봉장에서 최강의 검으로 사용하는 게 옳았다.
박현수는 최강의 검이다.
이변이 없는 이상 칭란은 그렇게 사용할 예정이었다.
“일단 가죠. 다들 기다리고 있어요.”
“연설이라니. 그런 건 의장이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아르망도 하겠죠.”
“그렇겠지?”
두 사람은 시시껄렁한 얘기를 나누며 공략대가 집합해 있는 곳으로 향했다.
* * *
“뉴 월드가 움직였습니다.”
“병력은?”
“서른 명으로 구성된 헌터 부대 세 개와 S급 헌터 다섯 명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룩은 민머리를 문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앞에 놓인 검은색 가죽 장갑을 손에 끼며 폰들을 불렀다.
“모두 나와라.”
“시간이 됐습니까?”
천장에서 샐든이 튀어나왔다.
그의 양옆에서 카트리나와 보르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뒤편에서 전신을 붕대로 감고 있는 남자가 걸어 나왔다.
찬이 빠지며 새롭게 추가된 폰이었다.
“그래. 시간이 됐다.”
“제약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카트리나가 앵두 같은 입술을 문지르며 질문했다.
“인과율의 시계가 부담할 것이다.”
“엥? 그거 쓴다고요? 그거 쓰면 당장은 괜찮지만, 후폭풍이 장난 아닐 텐데요?”
“너희의 제약은 오로지 내가 다 감당한다. 그리고 성공적으로 인간 놈들을 전멸시킬 수 있다면 제약의 후폭풍은 문제가 되지 않아.”
S급 헌터 다섯과 정예 부대 3개를 전멸시킨다면 나머지 헌터들을 처리하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박현수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어요.”
보르도가 큐브를 굴리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정말 건성으로 대답한 게 아니란 걸 알았다.
그는 현재 이곳으로 오고 있는 공략대를 확인하고 있었다.
일명 ‘큐브의 눈’이란 도구로 보르도만이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조작법에 따라 작게는 원하는 대상, 크게는 지역 일부를 조건 없이 지켜볼 수 있었다.
“아무래도 없는 것 같아요.”
“놈이 안 나타날 리가 없다.”
“그럼 여섯으로 생각을 해야겠네요.”
“아니.”
“네? 박현수를 포함시키면 S급 헌터는 6명인데요?”
룩이 고개를 저었다.
붕대남을 제외한 폰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놈은 S급이 아니다.”
“그럼요?”
“그 이상으로 생각해라.”
더 이상 다른 S급 헌터들과 동일 선상에 놓을 수 없다.
박현수의 강함은 진짜였으니까.
“기술부에서 말하길 총 6개의 포탈을 겹치는 데 성공했대요.”
포탈 겹치기.
한때 나이트가 진짜 낙원의 파편에 사용한 기술로 그때는 완성작이 아니었다.
아이리스의 숲이 컸다.
비록 소형화의 단점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소형화 기술 덕분에 6개의 포탈을 겹칠 수 있었다.
그 덕에 포탈 규모를 대폭 상승시키긴 했지만, 오히려 인간들에게 공포감을 심어 줄 수 있었다.
거기다 이번 포탈엔 신기술이 하나 더 들어갔다.
“라스트 포탈은?”
“가장 안쪽에 성공적으로 배치해 뒀다고 하네요.”
카트리나의 보고에 룩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박현수만을 위한 포탈.
다른 헌터들은 감히 그 포탈을 공략할 수 없다.
시도는 할 수 있어도 반드시 목숨을 잃을 것이다.
룩은 완성된 박현수의 ‘대적자’를 떠올렸다.
지금 생각해도 전율이 일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박현수는 끝이다.’
아니, 박현수로 끝날 게 아니다.
그것이 풀려난다면 지구는 종말을 맞을 것이다.
‘네놈은 우리에게 제약을 걸었지만, 더한 것이 네놈의 고향을 파괴할 것이다.’
룩은 최상호를 떠올리며 비릿하게 웃었다.
애초에 5년이나 기다려 줄 리가 없지 않은가.
제약을 우회할 방법은 찾는다면 반드시 나온다.
포탈 겹치기도 제약 때문에 나온 기술이었다.
“가라. 가서 놈들에게 절망을 안겨 주어라.”
“쉽죠.”
“다녀올게요~.”
샐든과 카트리나, 보르도가 먼저 나갔다.
붕대남은 멀뚱히 서서 룩을 보았다.
“무슨 일이지, 카돈?”
카돈이라 불린 붕대남은 고개를 젓고는 세 폰을 따라 방을 나갔다.
얼마 전 찬의 후임으로 킹이 데려온 그였지만, 룩은 도대체 킹이 그를 왜 데려왔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직 보여 준 게 없는 것도 있었지만, 그에게선 꺼림칙한 불길함이 느껴졌다.
‘기분 탓이겠지.’
룩은 생각을 정리하고 킹에게 향했다.
앞으로 벌어진 일을 보고하기 위해서.
* * *
거대한 어둠이 태평양 한가운데 떨어졌다.
어둠은 순식간에 바다를 얼리듯 고체화되어 엄청난 크기의 땅을 만들어 냈다.
그 위로 백여 명의 사람이 소환되었다.
“고생했어.”
“후우! 별말씀을.”
질 로드먼은 땀을 흠뻑 흘리며 쿨한 척 손을 저었다.
백여 명을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옮기는 작업은 아무리 S급 헌터라도 쉽지 않았다.
거기다 그의 능력으로 바다 위에 땅까지 만들었으니 분명 지쳤을 것이다.
원래는 안데르센의 포탈기를 사용하려고 했는데, 모든 인원을 옮기기엔 연비가 그리 좋지 못했다.
거기다 땅 문제도 있었기 때문에 아예 질 로드먼이 한 방에 해결한 것이다.
“아직까지는 기계보다 사람이 낫죠.”
“안데르센이 있었으면 욕 한 바가지 먹을 발언이야.”
“틀린 말 한 건 아니잖아.”
그가 하유락을 향해 눈을 찡긋했다.
하유락은 괜히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박현수는 아직인가?”
“시간 맞춰 이곳으로 온다고 했는데.”
“애초에 이곳을 제대로 찾아올 수 있는 건가?”
하유락의 말에 타케시가 의문을 표했다.
“찾아오겠지. 그렇게 말했으니까. 꺄악!”
“얘 말이 맞다. 기다리면 올 거야.”
“언니!”
칭란은 웃으며 그녀의 엉덩이를 두들기곤 질 로드먼이 만든 단상으로 올라갔다.
말이 단상이지 어둠을 살짝 굳혀 놓은 정도였다.
세 지휘관과 질 로드먼이 그녀 뒤에 섰다.
“아아- 다들 들리나?”
“네!”
우렁찬 대답 소리가 들려왔다.
한 달밖에 안 됐다고 다들 군기가 꽉 잡혀 있었다.
헌터 등급제 덕분이었다.
제대로 된 능력 검증이 되지 않았다면 이런 상명하복 구조는 완성되지 않았을 것이다.
“출발 전에도 말했으니 길게는 말 안 하겠다.”
칭란은 그러면서 하늘에 떠 있는 거대한 포탈을 가리켰다.
새까만 포탈은 아이리스의 숲이 있던 포탈과 비슷했지만, 하늘을 덮어 버릴 정도로 거대했다.
“우린 저걸 공략할 것이다.”
모두가 경직된 얼굴로 포탈을 보았다.
그들만이 아니었다.
지휘관으로 나선 S급 헌터들도 하늘에 있는 포탈 앞에선 경직될 수밖에 없었다.
“이번 공략대는 정예 헌터로만 구성되어 있지만, 사상자는 분명 나올 것이다.”
사기 떨어지는 말이었지만, 칭란은 그들에게 현실을 알려 주고 싶었다.
“지휘관 중에서도 사망자가 나올 수 있고, 나 또한 저곳에서 죽을 수 있다. 중요한 건.”
두려운 눈으로 포탈을 보던 헌터들이 일제히 칭란을 쳐다봤다.
그녀는 손가락 하나를 들고 있었다.
“서로를 믿는 것이다.”
“믿음…….”
누군가 중얼거리듯 믿음이란 말을 뱉었다.
“그거다. 믿음. 전우를 믿고, 지휘관을 믿고, 사령관을 믿어라. 또한 나 역시 지휘관과 너희를 믿을 것이고, 지휘관 역시 나와 너희를 믿을 거다.”
칭란은 단상을 내려오며 말을 이어 갔다.
“하지만 믿음이 사라진다면 우리는 고독해질 것이고, 고독해진다면 그곳이 사지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칭란의 외침에 아직 두려움을 놓지 못한 이들이 움찔했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 믿자. 그리고 모두 살아남자.”
우레와 같은 함성은 터져 나오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각자가 각오를 다졌다.
어쩌면 오늘은 결전의 날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평범하게 지나갈 날일 수도 있다.
앞일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법.
그때, 짝짝-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좋은 말씀이에요.”
모두의 시선이 뒤로 향했다.
그곳엔 파란 후드를 눌러 쓰고, 양손에 하얀 붕대를 칭칭 감고 있는 익숙한 사내가 서 있었다.
문제는 그 누구도 사내의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그들은 귀신 보듯 사내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사내는 모두의 시선을 느끼며 말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박현수가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