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98
훈수 두는 천마님 96편
철태민은 사방에서 몰아쳐 오는 몬스터들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국내에서 한 손에 드는 우레 길드를 이끌었던 만큼, 숱한 위기를 경험한 그였다.
한데 이곳은 지금까지의 경험들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죽는다!’
뉴 월드의 부름을 받아 정예 2부대에 소속되었을 때만 해도 지구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놈들을 뭉개주리라 생각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지만, B등급 이상의 포탈에서나 나올 법한 몬스터들 수십 마리가 떼거리로 튀어나왔다.
“모두 전열을 유지해!”
그때, 2부대 지휘관 모드 알렉산더가 양팔을 강철로 변화시키며 선두에 섰다.
이미 1부대와 3부대는 각각 지휘관을 따라 전투에 임하고 있었다.
‘그래. 까짓거, 우리가 약한 것도 아니고.’
S급은 아니지만, 철태민은 대한민국 헌터 랭킹 6위였다.
국내에만 만 명이 넘는 헌터들이 있으니, 상위권 중에서도 0.1%에 드는 실력자인 것이다.
그런 이들이 백여 명에 달한다.
전혀 꿇릴 이유가 없다.
철태민의 몸에서 갈색 털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는 변형계 각성자로 지구상엔 없는 육식형 짐승으로 변신했다.
“크아아아아!”
모드의 움직임에 맞춰 부대 전체가 합심하여 몬스터들에게 달려들었다.
* * *
[합이 엉성하긴 하지만 움직임들이 제법이군.]‘정예들이 모였으니까요.’
박현수는 몰려오는 몬스터들과 맞서 싸우고 있는 공략대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가 나선다면 쉽게 끝날 문제지만, 공략대의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 집중적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고 확인하고 싶은 게 하나 있었다.
“모두 강하네.”
처음의 우려와 달리 정예로만 이루어진 공략대는 생각보다 선전하고 있었다.
특히 S급 헌터들이 해 줘야 할 걸 확실하게 해 주었다.
타케시는 특유의 공간 절삭으로 강력한 몬스터들을 단숨에 베어 죽였고, 하유락은 아군에게 피해가 닿지 않는 선에서 모조리 태웠다.
모드는 다이아몬드까진 아니지만, 강철 이상의 경도로 육체를 강화하고 때려 죽이는 중이었다.
A급 헌터들도 S급들에 비하면 확실히 부족했지만, 정예로만 이루어졌기 때문에 모두가 일당백을 충분히 해 내었다.
‘이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충분히 제 몫을 할 만해.]‘그럼 제가 할 일을 하면 되겠네요.’
박현수의 눈이 가라앉았다.
의념을 열고 천마신회류를 사용했다.
막대한 마나가 천마신회류의 흐름에 따라 그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몰려들던 마나가 얇은 실처럼 가닥이 나뉘어 넓게 퍼져나갔다.
끝을 모른다는 듯, 공역은 이전의 한계치를 훌쩍 넘어 공간 전체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박현수 머릿속에 이곳의 상세한 지도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전보다 상세하고, 정확한 형태의 지도였다.
박현수는 파란 눈을 빛내며 주변을 살폈다.
그의 눈은 바로 앞만을 보지 않았다.
의념은 천마신회류로 지배되는 마나와 그의 눈을 하나로 만들어주었다.
즉 퍼져 있는 모든 마나는 그의 눈이나 다름없었다.
‘서로 다른 여섯 개의 땅이 보여요.’
[겹쳐진 세계들이냐?]‘그런 것 같아요. 근데 저번과 달리 구역이 확실하게 나뉘어 있어요.’
[벽으로 가로막혀 있거나 그런 건 아니고?]‘네. 그냥 색이 달라요. 기운의 구성도 다르고.’
[각개 격파 형식으로 공략을 해야 하는 것 같구나.]‘순서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은데, 여섯 개의 구역은 확실히 공략해야 해요.’
공역을 통해 이계를 이루는 마나가 어떤 식으로 작용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폐관 수련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몰랐을 부분이었지만, 지금의 박현수는 분명 한 달 전과는 완전히 달랐다.
‘희미하지만 여섯 개의 영역에서 나오는 마나가 한 곳을 향하고 있어요. 그런데 거기엔 아무것도 없어요.’
[이놈들, 재밌는 오락을 만들었구나.]‘제 입장에선 귀찮거든요.’
군세가 뭘 준비했을지 모를 만큼 경우의 수는 낮은 게 좋다.
특히 이번 공략은 어쩌면 스승과 연관되어 있는 만큼 박현수는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B등급 이상의 포탈에서 보스 몬스터를 해도 되는 놈들이 전채요리라니.
농담으로도 웃을 수 없는 말이었지만, 안타깝게도 공략대와 싸우고 있는 놈들은 그 정도로 강력했다.
“그럼 나도 한번 나서 볼까?”
아직 사상자는커녕, 중상자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굳이 나설 필요가 있나 싶지만.
‘조금이라도 시간을 단축해야지.’
검은 강기가 손에 응축되었다.
이전보다 훨씬 까맣고, 농밀한 흑빛이었다.
박현수는 강기를 씌운 손을 채찍처럼 가볍게 휘둘렀다.
수만 갈래로 나뉜 흑강기가 흡사 비처럼 몬스터들의 머리 위로 휘몰아쳤다.
* * *
몬스터들과 치열한 접전을 벌이던 공략대가 갑작스러운 현상에 멈칫했다.
몬스터들의 거체가 일제히 바닥에 쓰러졌다.
“허.”
“이게 무슨 일이야?”
헌터들은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서로를 보며 당황해했다.
그들 사이로 박현수가 뛰어내렸다.
검은 잔향이 꼬리처럼 그를 따라왔다.
그제야 몬스터들의 머리를 두부처럼 관통하던 검은 비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멀리서 뭐 하나 싶었는데.”
칭란이 웃으며 그에게 다가왔다.
뒤이어 하유락과 모드, 타케시가 도착했다.
대원들은 멀지 않은 곳에서 그들을 지켜보았다.
“할 수 있으면 좀 빨리 하지 그랬어.”
학센과의 일전을 본 그들이었기에 방금 같은 충격적인 광경에도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이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테니까.
“상황을 보느라고요.”
“상황?”
“여러분도 모이세요. 다 같이 들어야 할 얘깁니다.”
박현수는 부대원 전원에게 손짓해서 최대한 가까이 불러 모았다.
지휘관들의 허락이 떨어지자 그들은 차츰차츰 그 주변을 둘러쌌다.
모두가 모인 걸 확인하고 박현수는 자신이 보고 느낀 걸 그들에게 모두 말해 주었다.
“여섯 구역이라.”
칭란이 턱을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순서는 상관없다고 했지?”
“그런 건 없어 보이지만, 확신할 수 없어. 한 구역 이상을 직접 봐야 확신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럼 한 구역씩 부대별로 맡아서 공략하는 편이 낫겠네.”
“아무래도요.”
“너는 어쩔 테지?”
모드의 질문에 박현수는 곧바로 답했다.
“단독으로 움직일 거야.”
“그편이 효율적이겠군.”
“일단 질이 정찰을 나섰으니, 몇 가지가 확인될 거야. 사실 확인을 다 한 다음 체계적으로 움직이는 게 나을 것 같아. 현수는 네 말대로 하고.”
“네.”
그들은 질 로드먼이 돌아오기 전까지 일단 베이스캠프를 만들었다.
이곳이 안전하다는 보장은 없지만, 차라리 방금 몬스터를 정리한 여기가 다른 곳보다 안전할 가능성이 컸다.
“불은 피우지 않도록 하겠다.”
불을 보고 몬스터들이 몰려올지 모르는 일이다.
모두가 A급으로 구성된 공략대라 딱히 불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능력이 높으면 그만큼 필요한 편의가 줄어든다는 장점이 있었다.
이계의 태양이 저물고 밤이 찾아왔다.
밤은 기묘하게도 하늘이 녹색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게 있었으니.
“달이 여섯 개야.”
“여섯 개의 세계가 겹쳤다는 증거로군.”
“달의 위치가 각 구역의 위치를 나타낸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박현수가 공역으로 확인한 것과 얼추 비슷한 위치에 달들이 떠 있었다.
그들이 달을 관찰하고 있을 때였다.
“정찰대장님이 복귀하셨습니다!”
대원 하나가 질 로드먼의 복귀를 보고했다.
칭란이 지휘관급 인사들을 불러 모았다.
“보고 온 걸 얘기해.”
“일단, 이곳은 정말 기괴한 곳입니다.”
질 로드먼은 질린다는 얼굴로 직접 보고 겪은 것들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커다란 벌레와 융화된 유적과 숲인 줄 알았는데 거대한 뱀이었다던가 하는 것처럼 내용은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이 포탈엔 콘셉트 같은 게 없습니다. 굳이 콘셉트를 따지자면 혼돈. 혼돈이라는 말이 어울리겠군요.”
모든 게 뒤엉켜 있다.
이곳에선 상식이 통하지 않고, 상식을 들이밀다간 이계에 잡아먹힐 것이다.
“그리고 이상한 광경을 봤습니다.”
“이상한?”
“구역이 나뉜 것처럼 땅이 양분되어 있었어요.”
“현수 말이 맞았네.”
“무슨 말?”
하유락의 중얼거림에 그가 질문했다.
박현수는 아까 했던 얘기를 요약해서 질 로드먼에게 전해 주었다.
질 로드먼은 모자를 벗으며 허허 웃었다.
“보이가 그런 것도 할 줄 안단 말이야? 내가 정찰대인 이유가 없겠는데.”
“그건 아니야. 육안으로 직접 확인한 거랑은 약간 다르니까. 그리고 보이라고 하지 말라니까.”
마나를 통해 봤다지만, 실제로 본 게 훨씬 더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두 영역 사이에 경계 같은 건 없었나?”
“없었어. 묘하게 겹쳐져 있었거든.”
“모두 집합시켜.”
* * *
칭란의 명령에 쉬고 있던 공략대 전원이 집합했다.
그녀는 대원들에게 질 로드먼에게 들었던 얘기를 모두 전해 주었고, 앞으로의 계획을 말해 주었다.
“세 부대는 각각 나뉘어 각 영역을 하나씩 공략할 예정이다. 본 사령관은 1부대와 함께 움직일 것이고, 정찰대장은 3부대장과 함께 호흡을 맞춰 왔기 때문에 효율이 높다고 판단하여 3부대와 움직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박현수는.”
박현수는 직책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혼자 이름으로 불렸다.
“그는 단독으로 공략에 나설 예정이다.”
대원 전원이 의아하다는 얼굴을 했다.
박현수가 강하단 건 알지만, 혼자서 돌아다닐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어쩔 수 없었다.
그들은 학센과의 일전은 직접 보지 못했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는 모든 헌터 중에서 가장 강하니까.”
칭란의 발언은 상당한 여파를 일으켰다.
모두가 웅성거리며 뒤쪽에서 민망해하고 있는 박현수를 바라봤다.
“진짜인가?”
“지휘관님들이 반발하지 않아.”
“진짜인 모양이로군.”
“허, 각성한 지 고작 반년인데 S급 최강자라.”
몇몇은 그의 재능에 감탄했고, 몇몇은 또 부러워했다.
하지만 시기하거나, 질투하는 이는 없었다.
이곳은 전장.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곳이다.
처음 칭란이 했던 말처럼 서로를 믿지 못하고, 서로를 불신했다간 살 사람까지 죽일 것이다.
신입 헌터가 있었다면 또 모르겠지만, 괜히 정예들만 모인 게 아니었다.
강하다고 정예가 아니다.
경험이 많기 때문에 정예인 것이다.
그렇기 그들은 박현수에게 나쁜 감정을 가지지 않았다.
오히려.
“캬, 멋지십니다!”
“젊은데 제일 강하기까지 하다니! 힘이 다인 세상에서 너무 혼자 가진 거 아니요!”
유쾌한 반응을 내비쳤다.
물론, 군인 신분인 그들이었기에 총사령관의 호통을 피할 수는 없었다.
“뭣들 해! 이곳이 놀이동산이야?!”
“시, 시정하겠습니다!”
어린아이 모습으로 저러는 것도 웃겼지만, 곧장 차려자세로 시정하겠다는 헌터의 모습도 웃겼다.
박현수는 작게 웃으며 공략대원들을 보았다.
부디 모두 살아남기를.
그는 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 * *
날이 밝았다.
세 부대는 먼저 확인된 장소로 이동하기로 했다.
“조심해.”
“걱정하지 마요.”
“잘 마무리되면 맛있는 거 먹자.”
“쏘시는 거죠?”
하유락이 피식 웃으며 박현수를 가볍게 안았다.
“살아남자.”
“살아남아요, 우리.”
두 사람은 가볍게 포옹을 마치고 헤어졌다.
박현수는 멀어져 가는 세 부대를 보다가 이만 몸을 돌렸다.
그는 반대편부터 공략할 생각이었다.
“쉽지 않아도 해 낼 겁니다. 저는 스승님을 떠나보낼 생각이 조금도 없거든요.”
[한 달 동안 지치지도 않았구나.]“지쳐도 지칠 수 없죠.”
박현수는 지난 한 달을 돌이키며 주먹을 꽉 쥐었다.
“무조건 해 냅니다.”
무조건.
그는 다짐했고, 스승은 부디 그러길 바란다고 대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