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99
훈수 두는 천마님 97편
검은 모래바람이 휘몰아치는 사막.
박현수는 그 위에 서서 멀리 보이는 ‘놀이동산’을 보고 있었다.
계속해서 사막만 이어지다가 나타난 곳이 놀이동산이라니.
처음엔 신기루라고 생각했는데, 신기루여도 놀이동산이 있단 사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저런 곳은 보지 못했는데. 하긴, 사물 하나하나를 상세하게 파악할 수 있는 건 아니니.”
강화된 공역은 퍼진 마나를 눈과 연결할 수 있었지만, 윤곽만 확인하는 정도였다.
이계의 형태와 구분된 영역은 파악할 수 있지만, 각 구역이 어떤 형식으로 이루어졌는지 까진 알 수 없었다.
“몇 개 있죠. 유명한 놀이공원이.”
지금은 완전히 폐쇄된 용인의 놀이동산과 일부만 운영 중인 잠실의 놀이공원이 대표적이었다.
그마저도 최근 잇따라 벌어진 사태에 운행을 중지하긴 했지만.
“빠르게 끝내죠.”
콘셉트가 놀이동산이라는 건 신기했지만, 할 게 많은 박현수에겐 약간의 흥미도 주지 못했다.
그는 곧장 사막을 벗어나 놀이동산에 진입했다.
* * *
빰빰빰빰 빠바밤- 빠라라라밤-
둥둥!
흥겨운 나팔 소리와 그에 맞춰 울리는 북소리가 놀이동산에 신나게 울려 퍼졌다.
부모님 손을 잡고 환하게 웃는 아이들의 모습과 데이트하러 온 커플들, 친구끼리 삼삼오오 모여 놀러 온 청소년들.
인형 탈을 쓴 사람들이 아이들에게 풍선을 나눠 주고, 주변에선 맛있는 음식 냄새가 솔솔 풍겨 왔다.
롤러코스터에선 비명이, 회전목마에선 꺄르륵거리는 웃음소리가.
지극히 평범한 놀이동산.
박현수는 입구에서 놀이동산을 지켜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이게 뭘까요?”
[재밌어 보이는구나.]“아니, 재밌어 보이는 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말도 못하느냐?]천경이 툴툴거리며 놀이동산을 둘러봤다.
텔레비전에서 살짝 보긴 했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건 처음이었다.
빠르게 레일을 달리는 롤러코스터는 천경이 보기에 그리 빨라 보이진 않았지만, 그 위에서 비명을 지르며 즐기는 이들을 보니 한 번쯤 타 보고는 싶었다.
높은 대관람차도 천경이 보기엔 그리 높지 않았지만, 기뻐하는 사람들을 보니 이 역시 한 번쯤 타 보고 싶었다.
회전목마는…….
패스.
그 외에도 후각을 자극하는 맛있는 냄새가 그의 침샘을 자극했고, 왠지 모르지만 인형 탈이 나눠 주고 있는 풍선도 하나쯤은 받고 싶었다.
지구에 온 지 반년이 됐지만, 천경은 아직 이 세계를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지금 지구 꼴을 보면 뭔가를 즐긴다는 건 쉽지 않았다.
“다음에 돌아가면 데려가 드릴게요.”
[그러자꾸나.]천경이 허허 웃으며 대답했다.
박현수는 괜히 스승을 힐끔 보며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다음이라.
과연 다음을 손에 넣을 수 있을까?
박현수는 이곳이야말로 천경과 이별하게 될 장소라고 확신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힘을 길렀지만, 과연 이 힘으로 ‘운명’을 막아 낼 수 있을까?
‘모르겠어. 모르겠지만, 어떻게 해서든 막아 낼 거야.’
그래서 다음이란 걸 만들 것이다.
[뭐하냐?]“그냥 조금 살펴보느라고요.”
박현수는 대충 대답하고 놀이동산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한편, 놀이동산의 주인인 보르도는 이마를 짚고 있었다.
“젠장, 하필 내 쪽으로 박현수가 오다니.”
특이점인 박현수는 본신으로 돌아간 나이트조차 생포할 정도로 강했다.
아이리스마저 그를 죽이지 못했고, 비숍은 그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심지어 그 자리에 론드벨까지 있었는데 말이다.
솔직히 론드벨이 그녀를 목숨 걸고 지켜 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보르도는 누구보다 주변 관찰에 철저했다.
그걸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을 뿐, 예전부터 론드벨이 비숍의 말에 최대한 복종하는 ‘척’ 한다는 걸 눈치채고 있었다.
그러나 그걸 떠나서, 론드벨은 룩 만큼이나 강했다.
제대로 싸우면 나이트조차 그의 상대가 안 되었고, 비숍과 합공해도 밀리진 않았을 것이다.
아리스의 ‘비밀 전사’ 론드벨은 그 정도의 무력이 있었다.
“그런 그가 박현수를 막지 못했어.”
전력을 다했건, 다하지 않았건,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다.
비숍을 살리지 못했다는 건, 진짜로 그게 어려운 일이었다는 것이다.
“내가 잡을 수 있으려나?”
이곳은 이계에서도 유일하게 보르도를 위한 장소였다.
그의 힘이 200% 발휘되는 곳이기도 했다.
그를 현혹할 수만 있다면 승산이 있겠지만, 말 그대로 승산일 뿐, 당하는 건 자신이 될 수도 있었다.
“차라리 나라서 다행인가?”
샐든 같은 머저리였다면 좋다고 달려들었다가 그대로 죽어 버렸을 것이다.
그런 모자란 놈이라도 군세의 간부였다.
대 간부 둘을 잃은 시점에서 간부 하나라도 더 잃는다면.
‘잠깐만.’
순간 보르도의 머리에 번개가 쳤다.
군세엔 간부가 하나라도 필요하다.
그런데 간부 중에선 가장 말단이라지만, 모든 폰을 이곳에 배치했다.
어째서?
나이트와 비숍이 죽은 상황에서, 아무리 룩이 그들의 제약을 감당해 준다고 해도 모두 살아남는 건 꿈 같은 일이었다.
당장 박현수만 해도, 솔직히 말해서 대적하기 버거웠다.
‘설마 싹 다 갈 생각인가?’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오싹해졌다.
그러고 보니, 나이트 사후 룩은 새로운 나이트가 정해졌다고 말한 적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나이트는 지금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에이, 설마.”
보르도는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려던 의심을 단숨에 잠재웠다.
긴 세월을 군세에 받쳤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다.
아직 보여 주지 못한 능력도 많고, 군세 또한 자신들이 가진 힘이 필요할 것이다.
버리는 패일 리가 없다.
킹께서 그렇게 매정할 리가 없으시다.
* * *
“엄마 이거 사죠!”
“한 번 먹고 안 먹을 거잖니.”
“아냐! 다 머거! 제이미는 다 머거요!”
“남기면 다음부턴 절대 안 사 줄 거야. 알겠지?”
“네!”
꼬마 숙녀가 엄마 치맛자락을 붙잡고 기뻐하는 모습이 보였다.
소녀는 추로스를 받으며 활짝 웃었다.
설탕이 잔뜩 묻은 추로스가 너무나도 예뻐 보였기 때문이다.
소녀는 추로스를 한입 베어 물려다가 엄마한테 먼저 내밀었다.
“엄마 아~”
“우리 제이미 다 컸네? 엄마도 먼저 챙길 줄 알고.”
“빨리 아~”
“그래, 그래.”
엄마가 잔머리를 귀 뒤로 쓸어넘기며 작게 한입 물었다.
“우리 제이미가 줘서 그런지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
“히히! 아아-!”
기분 좋은지 방실방실 웃는 제이미도 추로스를 먹으며 행복해했다.
이 모녀 말고도 놀이동산을 즐기고 있는 모든 사람이 행복해 보였다.
어디에도 싸우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너도나도 즐거워하며 달리는 모습이 보였다.
놀이동산이랑 행복을 주는 곳.
그런데 왜일까?
“되게 불편한데요?”
[본좌만 그런 게 아니었군.]두 사제는 행복만이 넘쳐나는 놀이동산에서 강한 이질감을 느꼈다.
그 이질감이 무엇인지 알아채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이가 없네.”
박현수는 헛웃음을 흘리며 방금 추로스를 사간 모녀를 보았다.
“엄마 이거 사죠!”
“한 번 먹고 안 먹을 거잖니.”
“아냐! 다 머거! 제이미는 다 머거요!”
“남기면 다음부턴 절대 안 사 줄 거야. 알겠지?”
“네!”
“하하.”
방금 떠난 모녀가 손에 쥔 추로스는 어디 가고, 그들은 빈손으로 다시 추로스 가게 앞에 서서 똑같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박현수는 모녀가 다시 떠나는 모습까지 확인하고 잠시 기다렸다.
모녀는 추로스를 처음 먹는다는 듯 다시 추로스 가게 앞에 선 후, 방금 들었던 대화를 그대로 나누고 다시 추로스를 하나 샀다.
“가게 사장은 돈 많이 벌겠네.”
그는 웃는 얼굴로 추로스를 건네주는 알바를 보았다.
“쟤는 무슨 인형 같네요.”
모든 행동이 일정한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추로스를 꺼내고, 튀기고, 설탕을 바르고, 포장지에 정확하게 절반 싸서 손님, 그러니까 꼬마 숙녀에게 건네준다.
그리고 잠시 대기했다가 다시 모녀가 오면 같은 행동을 약간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해낸다.
마치 로봇처럼.
“아니면 진짜 로봇?”
롤러코스터에서 시끄럽게 들려오는 비명도 일정했다.
친구끼리 장난치던 이들도, 거짓말처럼 같은 장소에서 다시 장난을 치며 지나갔다.
커플은 벤치에 앉아 키스를 하곤 자리를 떠났다가, 다시 벤치로 돌아와 부끄럽다는 듯 키스를 하고 있다.
“부수면 뭐라도 나오겠죠.”
-부숴?
박현수가 추로스 알바에게 다가가는 도중, 오랜만에 할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할리 오랜만이네?”
-아직 잠 다 못 잤어.
할리는 최근 한 달 동안 계속해서 잠만 잤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본인에게 물어봐도 ‘그냥 졸리다’라는 답변만 왔다.
“그럼 더 자도 돼.”
-나 없어도 돼?
“아직은 괜찮아.”
-그럼 조금만 더 잘게.
할리의 목소리가 사라졌다.
다시 잠자리에 든 것이다.
“성장기요?”
[왜, 아이들은 자면서 큰다고 하잖냐.]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할리는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쭉 같은 모습이었다.
무엇보다 ‘에고’이지 않은가.
‘에고도 성장을 하나?’
지켜보면 알겠지.
지금은 당장 할 일을 할 뿐이다.
“실례합니다.”
콰직-
주먹이 알바의 얼굴에 제대로 꽂혔다.
얼굴은 유리 조각처럼 박살 났다.
박현수는 피식 웃었다.
“이봐라.”
[본좌한테 한 말이냐?]“……여기 보세요.”
[보고 있다.]“이거 진짜 로봇이었네요.”
알바의 피부 조각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 안에 매끈한 강철로 이루어진 또 다른 얼굴이 숨어 있었다.
마치 어릴 적에 본 터미네이터를 같았다.
박현수는 손날로 목을 쳤다.
아무리 강철이라 한들, 그 앞에선 종이와 강철이 큰 차이를 가지지 못했다.
“그대로 움직이네.”
머리가 날아갔는데도 알바는 계속 추로스를 만들어 소녀에게 주었다.
“그럼 팔을.”
추로스를 아예 만들지 못하도록 팔을 뽑아 버렸다.
팔이 움직이지 않으니 추로스를 만들지는 못했지만, 모녀는 마치 추로스를 받은 것처럼 행동했다.
“다 부수면 뭐라도 나오겠죠?”
[해 보면 알겠지.]박현수는 고민하지 않고 양손을 모았다.
내력이 폭발하듯 솟구치며, 흑강기가 소용돌이 형태로 모은 손에 모이기 시작했다.
바닥이 갈라지고, 추로스 좌판과 알바, 모녀 할 것 없이 먼지가 되었다.
그의 눈이 형형한 검은빛을 내뿜었다.
검은빛이 정확한 원을 그리며 서서히 거대해져 갔다.
그대로 바닥에 내려찍자, 새까만 바퀴가 세상을 짓밟듯 하늘까지 거대해졌다.
콰가가각-!!
바퀴가 내달리듯 놀이동산을 거칠게 헤집었다.
모든 놀이기구가 반파되고, 연속으로 재생되듯 움직이던 사람들도 흑륜에 휘말려 한 줌 먼지가 되었다.
그리고 흑륜이 사라지자 그곳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게 아닌가?”
놀이동산은 사라졌지만, 변한 건 없었다.
박현수는 공역을 펼쳤다.
의념까지 덧씌웠다.
“분명히 느껴지는데.”
그때였다.
시간을 역행하듯 먼지가 되었던 것들이 거짓말처럼 원상태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들려오는 목소리.
“누구냐.”
“그런 것치고는 앳된 목소린데?”
못 할 것도 없긴 하다.
박현수는 시간을 끌 겸 목소리를 향해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그리고 동시에 내력을 일으켜 놈의 위치를 추적했다.
“그보다, 이런 곳에 놀이동산은 왜 만든 거야?”
기운을 흘린 걸 눈치챈 모양이었다.
S급 헌터들은 박현수 자신의 기운을 눈치채지 못했다.
스승의 말에 따르면 반박귀진의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S급 헌터보다 강한가?’
그건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있었다.
그걸 스승이 말해 주었다.
그러니까 꼭꼭 숨어 있는 것이다.
다른 목적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박현수는 스승의 말이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도발했다.
“너 개쫄았구나?”
“나한테 쫄았어. 그래서 못 나오는 거야.”
“당연히 못 나오지.”
박현수가 입꼬리를 올렸다.
“그랬다가는 죽을 테니까.”
목소리가 단호하게 말했다.
아이 같은 목소리라서 이런 저급한 도발이 통할까 싶었는데, 어림도 없었다.
‘한 번 더 흑륜을.’
뭐라도 해 보자는 심정으로 다시 흑륜을 사용하려는데.
“승부?”
“어떤 게임이지?”
박현수 앞에 리스트가 떠올랐다.
-롤러코스터에서 지켜라!
-대관람차에서 살아남기!
-서커스!
박현수가 눈을 감았다 뜬 순간.
“미친.”
눈 부신 빛과 함께, 롤러코스터가 박현수를 향해 무서운 속도로 돌진해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