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Return to Home RAW novel - Chapter (90)
무림맹주 좌평의 죽음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백엽과 더불어 천하제일고수 자리를 다투던 그가 아니던가.
그런 그가 허무하게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가슴에 일장을 맞은 그의 시신은 매우 처참했다.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어 심장이 파괴된 상황.
누군가의 일장을 맞은 게 분명했다.
하지만 누구의 소행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저녁 식사를 위해 음식을 들고 시비가 집무실에 들어갔을 때 그는 이미 쓰러져 있었다.
소식을 들은 만통선생과 좌약약 등 무림맹 지휘부 고수들이 달려왔지만 이미 좌평은 싸늘한 시신이 되어 버린 상황.
소문은 급속도로 퍼져나갔고 급기야 백엽과 매영설이 식사를 하고 있던 객잔까지 전해진 것이었다.
백엽과 매영설이 분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다음 날 아침이었다.
전날 밤 부랴부랴 무림맹 총단으로 갔지만 좌평의 시신을 볼 수 없었다.
갑작스러운 맹주의 죽음에 무림맹 전체가 비상 상황이라 그냥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날 밤 무림맹 지휘부 회의가 밤늦도록 열린 것은 물론이었다.
객잔으로 돌아온 백엽과 매영설은 다음 날 아침 다시 무림맹 총단으로 왔고 그제야 분향을 할 수 있었다.
출정식은 당연히 무기 연기되었고, 무림맹주장으로 결정된 장례는 사흘간으로 최종 결정되었다.
원래는 열흘 이상 장례가 치러져야 하나 급박한 무림 상황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그 결정은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수장들의 전체회의를 통해 내려졌다.
맹주 유고 시 그 권한을 임시 승계할 부맹주 자리가 공석이라 차기 맹주가 선출될 때까지 집단지도체제가 가동된 것이었다.
집단지도체제의 공식 명칭은 무림평의회(武林評議會).
회주는 만장일치로 소림방장 진공대사(眞空大師)가 맡았다.
지금은 무림맹 취의청에서 지휘부의 비상 회의가 열리고 있는 상황.
회의에 참석할 수 없는 군웅들은 분향을 마친 후 속속 연무장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마침 정오 무렵이라 음식과 물이 제공되고 있었다.
백엽과 매영설 또한 분향을 마치고 연무장 한구석에서 식사했다.
음식이라고 해봐야 간단한 떡 정도였지만, 그래도 양이 많아 허기를 면하기에는 충분했다.
“사부님. 누구 소행일까요? 혹시 신선계 반선들이 암습을 가한 게 아닐까요?”
어수선한 분위기.
군웅들이 너도나도 이번 사건의 파장을 염려하며 웅성거리고 있었다.
물론 그 내용은 무림맹주 좌평을 죽인 흉수의 정체였다.
워낙 시끄럽게 떠들어대고 있어 연무장 전체가 거대한 저잣거리를 방불케 했다.
평소라면 질서 유지를 위해 무림맹 무사들이 제한을 가했겠지만, 지금은 그런 것도 없었다.
오히려 무림 연합군에 참여하지는 않고 구경만 하러 온 무림인들이 다시 모여들어 난장판이었다.
그 때문일까.
굳이 음파를 차단할 필요 없이 백엽과 매영설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글쎄다. 나 역시 반선들의 소행이 아닐까 생각하지만, 증거가 없으니 확신할 수는 없구나. 어쩌면 칠마종에서 살수를 보냈을 수도 있겠지.”
“칠마종에 그런 무공을 지닌 살수가 있었을까요?”
“암습은 반드시 살수가 암살 대상보다 더 강한 무공을 지녀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가령 특수 독을 사용해 상대를 무력화시킨 후 일장을 가한다면 충분히 죽일 수 있지.”
좌평의 가슴에 큰 구멍이 뚫렸다는 이야기 역시 널리 퍼져 백엽과 매영설 또한 들을 수 있었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나저나 좌 소저가 불쌍해요. 여러모로 사부님을 많이 도와줬는데······.”
매영설의 말에 백엽이 안색을 굳혔다.
그녀 말대로 좌약약이 장씨세가에서부터 자신을 많이 도와준 게 사실이었다.
몇 마디 말을 해준데 불과했지만, 그녀의 영향력 덕분에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었다.
“맹주의 시신을 내가 직접 한번 봤으면 좋겠는데······ 그게 아쉽구나.”
“이미 많은 사람이 조사를 마쳤을 거예요.”
“그래도 그 상처를 보면 살수의 무공 수위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지. 한데 지금 우리 신분으로 맹주의 시신을 볼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 같구나.”
“그러하네요. 한데 이럴 게 아니라 원래 계획대로 낭인무사 계열로 무림 연합군에 들어가야 하는 게 아닌가요? 아까 보니까 무림 연합군 모집은 계속하고 있던 것 같던데,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그래. 등록을 하러 가자. 무림맹 소속이 아닌 비무림맹 무사들은 자유롭게 탈퇴도 가능하다고 하니까 큰 부담은 없을 것이다.”
“네. 어차피 장례 기간이 끝나면 예정대로 출정식이 열릴 테니까요.”
“그럴 가능성이 크지. 어서 가자.”
“네.”
* * *
“무적공자(無敵公子)라고 합니다.”
“월하공자(月下公子)라고 합니다.”
백엽과 매영설이 새롭게 만든 별호를 면접관에게 알렸다.
두 사람은 간단한 신원 확인과 함께 곧바로 면접에 들어갔다.
신원 확인은 별것 없고 이름이나 별호 등을 장부에 적는 게 다였다.
특히 두 사람이 지원한 낭인대(浪人隊)는 그 특성상 다른 부대보다 신원을 확인하기 훨씬 더 곤란해 형식적인 심사에 그쳤다.
그 때문에 가장 기대감이 적은 부대이기도 했다.
면접관은 많은 지원자 때문에 피곤한 표정이었다.
“조장급으로 들어가고 싶으면 실력을 보여주고, 그럴 게 아니라면 조원으로 들어가면 되네. 어떻게 하겠나? 두 사람은 어떤 사이인가?”
“월하공자는 저의 제자입니다.”
“제자? 하기야 낭인무사들도 제자를 들여 무공을 전수하긴 하지. 한데 나이 차가 그렇게 많아 보이지는 않는군. 그래 일반 조원으로 들어가겠나?”
“네. 일반 조원은 무공 심사를 생략합니까?”
“그렇게 되었네. 워낙 많은 사람이 무림 연합군에 참여해서 말이야. 게다가 지금 자네들도 알다시피 맹주님 시해 사건으로 맹 전체가 말이 아니네.”
면접관이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군요. 저희는 일단 일반 조원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차후 공을 세우면 승급이 되겠지요?”
“물론이네. 다른 부대는 모르겠지만 자네들이 지원한 낭인대는 철저히 실력 위주로 승급이 되네. 특히 낭인대주는 지휘부 회의에 참여할 권한도 갖게 되지.”
“낭인대주는 뽑았습니까?”
“아직일세. 원래 맹주님께서 임명하실 계획이었는데, 갑자기 이런 변고가 생기는 바람에 모든 게 엉망이 되었네. 장례 기간인 사흘 동안은 공석이 될 가능성이 크네.”
“알겠습니다. 일반 조원으로 배속시켜 주십시오.”
“그러지. 마침 마지막 조인 100조 조원 자리가 비어 있었네. 낭인대 100조라 적힌 막사로 가게. 명패를 보여주면 조장이 알아서 거처를 마련해줄 걸세.”
“따로 거처가 있습니까?”
“낭인대 전용 막사가 있네. 앞으로 거기에서 지내게 될 것이네. 이동 막사이니 화산이나 형산 두 곳 중 한 곳으로 갈 때도 막사에서 줄곧 숙식을 해결해야 할 것이네. 자세한 것은 조장과 부조장에게 물어보게.”
“알겠습니다.”
백엽과 매영설이 낭인대 100조라 적혀 있는 명패를 각각 받아들고 낭인대 막사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사부님. 왜 그냥 일반 조원으로 들어가겠다고 하셨죠?”
“못 느꼈느냐? 이미 각 조의 조장과 부조장은 정해진 상태다. 우리가 늦게 와도 한참 늦게 왔지. 일단 모든 상황이 가변적이니 눈에 띄지 않는 일반 조원으로 지내는 게 여러모로 편리할 것이다.”
“네. 한데 무림 연합군에 참여한 무사들을 무림맹과 비무림맹으로 나누는 이유가 있나요? 이참에 모두 무림맹 일원으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은데 말이죠.”
“그건 그렇지 않다. 전통적으로 무림맹 정식 무사가 되려면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고, 기본적인 무공 실력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위기 상황이라고 하나 아무나 정식 무림맹 무사로 받아들인다면 기존 무사들이 좋아할 리가 있겠느냐? 그뿐만 아니다. 대놓고 말은 안 하지만 비무림맹 무사들의 신원을 확실하게 신뢰할 수 없기에 중요한 임무를 맡기지 않을 공산이 크다.”
“일종의 화살받이인가요?”
“그럼 셈이지. 하지만 전투 중 공을 세우게 되면 신원을 확인한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 그 사람은 정식 무림맹 무사로 영입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비무림맹 무사들 대부분이 정식 무림맹 무사가 되기 위해 들어온 사람이라 할 수 있지. 하지만 사기 진작 면에서 비무림맹 무사들 또한 임시 무림맹 무사 자격을 부여하기 때문에, 무림 연합군 전체를 무림맹 무사로 불러도 큰 상관은 없을 것이다. 실제 대외적으로는 무림맹 무사와 비무림맹 무사를 구별하지 않는 게 대부분이니까.”
“복잡하군요. 하기야 결국 따지고 보면 총단 정식무사에 속하는가 아닌가의 문제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그런 셈이지. 하지만 신생 문파의 경우 무림맹에 가입하는 절차 역시 만만치가 않으니, 반드시 개별 무사가 총단 무사가 되어야만 의미 있는 것은 아니지.”
“듣고 보니 그러하네요. 이번 기회에 문파 전체가 무림맹 소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으니까요. 아, 저기 막사가 있어요. 연무장 옆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매영설이 놀란 표정으로 수많은 막사를 쳐다봤다.
한꺼번에 백 명 이상도 거뜬히 수용할 수 있는 대형막사들이 수천 개나 있었다.
무림 연합군 병력이 삼십만 이상이라는 소문이 막사 수로 증명이 되고 있었다.
그 막사들 중 낭인대 막사들은 가장 구석진 곳에 있었으며, 그 수는 백여 개나 되었다.
“막사 하나에 백 명씩 수용한다고 하면 백여 개가 되니 낭인대 무사만 만여 명이 된다는 말이군요.”
“그 정도 될 것이다. 다만 무림에 명성이 있고 무공이 뛰어난 낭인무사들은 이미 정식 무림맹 무사로 들어갔을 테니, 이번에 새롭게 배속된 낭인대 무사들은 대부분 거칠고 예의도 없을 것이다. 이제 내가 남장을 하라고 한 이유를 알겠지?”
“네. 제가 한 미모 하는데 잘못했으면 정말 번거로울 뻔했네요. 낭인무사들이라고는 하지만 건달 비슷한 놈들도 엄청 많을 것 아니겠어요? 그런 놈들은 미인만 보면 환장을 하니······.”
“설아. 지금 내게 무슨 이야기를 듣고 싶은 것이냐?”
“호호. 아니에요. 제가 사부님 눈에 미인으로 보이는지 궁금해서요.”
“그야 당연히 미인이지. 하지만 지금 그런 한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아닌 것 같구나. 도착했으니 들어가자.”
“네.”
낭인대 제100조 막사.
백엽과 매영설이 들어가자, 그곳에는 백여 명의 낭인무사들이 기다란 나무 침상 위에 앉아 있거나 누워 있었다.
양쪽에 있는 나무 침상 사이에는 지나가는 길이 있었다.
생각보다 매우 단순한 구조였으나, 그나마 아직 출정 전으로 나무 침상이 구비되어 있는 것 같았다.
실제 이동 중에는 짚이나 풀 같은 것을 깔고 자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었다.
“뭐냐? 또 신입이야? 안 그래도 비좁은데······.”
조장으로 보이는 텁석부리 사내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조장님입니까?”
백엽이 공손하게 묻자, 텁석부리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름 말하고 저기 구석으로 가 있어.”
“네. 무적공자라고 합니다.”
“월하공자입니다.”
백엽과 매영설이 자기소개를 하자 곳곳에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났다.
“무적공자? 요새 아무나 무적이래? 아무래도 안 되겠다. 조장. 안 그래도 심심한데 막내들 신고식이나 합시다.”
“후후! 그럴까? 여봐. 너희 둘. 장기가 있으면 해봐라. 노래도 좋고 춤도 좋다.”
조장의 말에 매영설이 발끈했다.
“흥! 못하겠다면?”
“어라? 못해? 그러면 무공을 시험해봐야겠군. 둘 중 누구라도 우리 부조장을 이기면 신고식을 면하게 해주겠다. 왕웅(王雄)! 저 건방진 놈부터 손 좀 봐줘라. 군기가 바짝 들도록 다리 몽둥이를 부러뜨려도 좋다.”
“네. 조장님.”
덩치가 보통 사람 두 배 정도 되는 왕웅이 몸을 일으킨 후 매영설에게 다가왔다.
매영설이 백엽을 쳐다봤다.
백엽은 아무 말도 없었다.
매영설이 미소를 지었다.
“좋다. 한번 겨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