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Goddess RAW novel - Chapter 108
108.
“알겠냐?!”
“아, 네에…….”
하지만 억지로 대답한 소년들은 곧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반론을 제기했다. 떠나기 전 집안에서 약혼이 진행 중이니 품행에 주의하라는 말을 듣고 나왔던 황보산이었다.
“하지만 어차피 저희는 거의 비슷한 가문이나 문파의 사람과 혼인할 텐데 그렇게까지 돈을 많이 쓸 일이 별로 없지 않아요?
“그러게요. 저희야 청운 형님처럼 가희(歌姬)니 무희(舞姬)한테 돈 쓸 것도 아니고. 어차피 피차 비슷한 집안이랑 혼인할 거 아녜요.”
“그리고 여인에게 그렇게까지 돈을 많이 쓸 일이 뭐 얼마나 있겠어요.”
그리고 제갈수원과 남궁청휘까지, 어릴 적부터 집 안에 감금당해 무공 수련과 공부만 하며 자라 온 세가의 도련님들다운 매우 단순한 대답이었다. 아직 멋모르는 순진한 소년들의 의견에 남궁청운이 핏대를 세웠다.
“니들이! 사랑에 대해 뭘 알아! 설요의 춤이 얼마나 환상적인데!”
“취하셨다는 건 알겠네요.”
남궁청운은 정략결혼에 별 거부감 없는 어린애들을 보며 혀를 찼다
“사랑도 모르는 애송이들 같으니! 그래, 어차피 정략결혼할 거면 암 것도 모르고 하는 게 낫지! 근데 놀 수 있을 때 안 놀면 나중에 후회한다, 어?! 알았어?! 이 형님이,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을 해주고 있으니 새겨들어!”
“아, 네네.”
“그럼 형님은 모처럼 동정호에 오셨는데도 말씀하신 설요 낭자를 만나진 못하시겠군요.”
황보산과 제갈수원이 포기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남궁청휘가 형의 술잔에 술을 채워 주며 의아한 듯 물었다. 못 만나게 되어서 아쉬울 텐데 의외로 표정에는 그런 기색이 보이질 않았다.
“아니, 만날 거다. 만나러 왔으니까!”
“와, 저 솔직함. 존경합니다, 청운 형님.”
출입 금지당해 놓고 당당하게 만나러 가겠다는 남궁청운의 뻔뻔한 말에 제갈수원이 감탄하며 박수를 쳤다. 그 옆에선 황보산이 이놈이 진심인가 비꼬는 건가 모르겠다는 얼굴로 제갈수원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야 강제로 들어가면 만날 수야 있겠지만 상대가 싫어하지 않겠습니까?”
“어허, 강제로라니. 내가 여인에게 그렇게 무도(無道)한 놈 같으냐?”
그래서 출입 금지당한 거 아닌가, 잠시 멈칫한 남궁청휘는 굳이 티를 내진 않았다.
“그럼 어찌하시게요?”
“훗. 다 방법이 있지.”
“?”
동생이 채워 준 술잔의 술을 단번에 들이켜며 남궁청운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 * *
목적했던 취선루가 만석이라 들어가지 못한 일행은 다른 가게를 찾아 걷기 시작했다.
만약 이린이 취선루에서 꼭 먹고 싶다고 고집 부렸다면 다들 배고픈 걸 참아 줄 정도의 어른이었지만 다른 데 가서 밥부터 먹자는데 반대할 사람은 없었다.
‘아쉬운데 어쩐지 좀 마음이 편하네.’
이린은 자리가 없다는 말에 안심한 자신을 깨닫고 씁쓸하게 웃었다.
꼭 가 보고 싶었는데, 이상하게 내심 가고 싶지 않은 마음 역시 있었다.
“어떡할까? 그럼 시연향으로 갈까?”
“시연향이요?”
백리한의 말에 이린만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뭐야. 동생한테 말 안 해 줬어? 항주에는 채화, 동정호에는 설요! 화중(華中: 하남, 호북, 호남) 지방에서 가장 유명한 무희(舞姬)가 있는 곳이지. 음식 맛도 보증할 수 있어.”
“거기가 밥집인 줄 아나. 예약도 없이 갑자기.”
“어허, 우리에게는 자유이용권이 있잖아!”
노악의 타박에 백리한은 당당하게 연이현을 가리켰다.
“자유이용권!”
“그래, 이현 이 친구가 예전에 설 낭자를 구해 준 적이 있는데 그 이후로 설 낭자가 아주 푹 빠져서…….”
“백리한.”
이현이 차분한 목소리로 백리한의 어깨에 손을 얹자 주절주절 이어지던 백리한의 목소리가 뚝 끊겼다.
“왜, 재밌는데.”
“맞아, 어차피 지금쯤 자네를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을 텐데.”
이현이 절대로 못 이길 든든한 지원군의 뒤로 잽싸게 숨은 백리한의 말에 이현이 반문했다.
“어떻게 알고?”
“그야 내가 서신을 보냈거든.”
“백리한 자네…….”
“나에게 신신당부했단 말일세. 연 공자가 동정호에 오시게 되면 꼭 미리 연통해 달라고.”
자신을 잡으려는 이현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이린의 어깨를 붙잡고 뒷걸음질로 빙글빙글 돌며 도망 다니기 시작했다. 그런 백리한과 연이현이 우스워 이린은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둘이 뭐 하는 거야.”
보다 못 한 노악과 심여준이 백리한을 붙잡고 이린에게서 떼어 냈다.
“설요의 춤이 얼마나 예술인데, 여동생에게도 좀 보여 주자고.”
“그렇다고 말없이 찾아가는 것도 예는 아니지 않나. 자부심이 강한 사람이니 갑작스레 어설픈 준비로 객을 맞진 않을걸.”
“어, 음, 하긴. 그렇게 급하게 갈 것도 없지.”
백리한은 또 무슨 꿍꿍이인지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그냥 객잔에서 식사하고 일찍 쉴까? 관광은 내일부터 해도 충분하고.”
“쉬다니! 밤은 이제부턴데! 아니, 아직 해가 저물려면 멀었다고!”
“어지간히 하지그래. 린아 피곤하지? 들어가서 쉬자.”
“어, 나는 괜찮은데. 으음.”
체력에는 자신이 있는 이린이었지만 굳이 오빠 말에 거부할 생각도 없어서 살짝 고민됐다.
‘오늘은 그냥 느긋하게 쉬는 것도 나쁘지 않으려나.’
그렇게 일행의 일정이 결정되려는 순간, 낭랑한 목소리가 백리한을 불렀다.
“어머, 백리 공자! 오랜만에 오셨군요!”
“오? 환환. 오랜만이군.”
어깨를 훤히 드러낸 시원해 보이는 화려한 복장에, 공들여 틀어 올린 머리카락과 화려한 화장. 교태 섞인 목소리와 몸짓.
‘아, 기녀(妓女)인가.’
이린은 난생처음 본 실물 기녀들을 신기한 듯 응시했다. 장사에서는 우연히 기루 언저리만 가도 호위들이 기겁을 하며 튀어나왔고, 이린도 아이들을 데리고 다닐 때가 많다 보니 기녀를 본 적이 없었다.
이린은 산적을 봤을 때처럼 탄성이 나오지 않도록 슬쩍 제 입을 막았다.
환환이라 불린 여인은 일행과 한 명, 한 명 눈을 맞추며 인사를 건넸다.
“상환루의 유환환이라고 합니다. 백리 공자님의 일행분들이신가요? 여전히 미모 기준선이 높으신 분이시네요.”
“미모 기준선…….”
듣도 보도 못한 단어에 아연한 이린의 중얼거림에 옆에 있던 이현이 웃음을 삼켰다. 일행에게 인사를 하던 환환은 그런 이현과 이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다 면사로 얼굴을 가린 이현을 보고 잠시 멈칫하더니 손으로 입가를 가렸다.
“설마, 이분은 혹시.”
“오랜만에 뵙습니다. 유 낭자.”
“아! 연 공자님……!!”
이현과도 구면인지 면사를 걷어 인사하자 환환이 탄성을 지르며 황급히 옷매무새와 머리 모양을 살폈다.
“공자님과 마주칠 줄 알았다면 좀 더 단장을 하고 나왔을 텐데.”
“어이, 나랑 취급이 너무 다른데?”
“얼굴이 기준 이하인 사람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으신다는 백리 공자와 연 공자님을 어찌 같이 취급하겠어요.”
다들 잘 알고 있는 사실인지 환환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금시초문인 이린만이 백리한을 돌아보며 물었다.
“백리한 아저씨 진짜예요?”
“애들 얼굴은 안 본다만……. 그 뭔가 슬픈 호칭은 그만둬 줄래?”
그래도 그동안은 아저씨라고 부르지 않았는데 결국 아저씨로 격하된 충격에 파르르 떠는 백리한을 외면한 환환의 시선은 이현 옆에 딱 붙어 있는 이린을 향했다.
“그런데 실례지만 이분은 혹시…….”
“제 누이동생이랍니다. 이번에 세상 구경 좀 시켜 주려고 데리고 나왔죠.”
“아, 그렇군요. 만나 뵙게 되어 반가워요. 유환환이라고 합니다.”
환환은 이현의 여동생이라는 말에 흔들리던 동공을 반짝이며 한층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연이린이라고 해요.”
이린은 계속 얼굴을 가리는 건 실례일까 싶어 이현이 했듯이 인사와 함께 살짝 면사를 걷었다. 환환은 이린의 외양을 보고도 동요 없이 고개를 숙였다.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 이현의 옆에 붙어 있는 이린을 보며 환환이 싱긋 웃었다.
“혹 괜찮으시다면 저희 주루에 와 주시지 않으시겠어요? 연 공자님께는 일전에 은혜를 입었는데도 제대로 인사를 드리지 못해 계속 마음에 걸렸답니다.”
“아니, 신경 쓰실 것 없습니다.”
“무슨 말씀이세요! 사람이 은혜를 입었으면 갚는 것이 도리죠!”
열변을 토하는 환환의 옆에서 백리한이 거들었다.
“맞아. 안 그래도 마침 저녁 식사하러 가려던 참이고.”
“아니, 하지만 동생도 피곤해하고…….”
“어? 난 괜찮은데. 밥만 맛있으면.”
동생을 핑계로 빠져나가려던 이현은 믿었던 동생의 배신에 원망스러운 눈빛을 보냈지만, 이린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런 오누이의 모습에 환환이 주먹을 불끈 쥐며 외쳤다.
“최고의 요리로 모실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