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Goddess RAW novel - Chapter 115
115.
잘못 보기도 어려웠다. 마지막으로 본 지 수년이 지났지만 한 번 보면 잊기 힘든 미남자, 연이현이었다.
그리고 그 뒤쪽에는 면사를 쓴 여인이 남궁수연과 즐거운 듯 대화하며 무대를 보고 있었다.
분명 어제 자신과 만났을 때와 복장은 달랐지만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이린?!’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어안이 벙벙해 있는 청휘를 보고 형도 놀랄 줄 알았다는 듯 응응 고개를 끄덕이며 제갈수원이 설명을 이어 갔다.
“청운 형님 옆에 앉아 계신 저 어마어마한 미남자가 바로 호남제일미남자로 유명하신 유정검 연이현 공자세요. 뒤에 수연 누님 옆에 앉은 면사 쓴 분은 누이동생이신 연이린 소저고요. 이번에 연 공자께서 누이동생과 함께 강호행을 나왔대요.”
청휘는 면사로 얼굴이 가려져 있음에도 어딘지 즐거워 보이는 이린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며 제갈수원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하긴 이린의 나이를 생각하면 연이현이 누이동생을 데리고 나온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언제 만난 거야? 오늘 여기서 만난 거야?”
“어제 가신 주루에서 청운 형님이 우~연히 만나셨답니다.”
“어, 우연히.”
남궁청휘는 어제 남궁청운이 자신을 끌고 들어가려 했던 곳을 떠올리며 거기가 그래도 기루는 아니었나 보다 안도했다. 연이현이 기루에 간다는 건 어쩐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리고 미끼를 던졌는데 연 공자가 물었겠죠.”
“그 미끼란 게 혹시….”
청휘가 말을 흐리며 남궁수연을 가리키자 제갈수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연 공자 입장에선 연 소저에게 또래 친구를 만들어 주고 싶을 거 아녜요. 그래서 연 소저와 비슷한 또래인 세가자제들, 우리를 모아 온 거죠. 연 소저는 어릴 적부터 연가장에서 잘 나오질 않아 아는 사람도 별로 없는데 저랑 수연 누님과는 안면이 있거든요. 게다가 수연 누님이랑은 서로 서신도 주고받는 사이라잖아요? 그런 몇 안 되는 친구와 여행 중 우. 연. 히. 만났는데 여동생을 끔찍하게 생각하는 오빠라면 동생과 동행하길 바라지 않겠어요?”
“그럼 혹시 출입 금지당했다는 셋째 형님이 여기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도…….”
호남제일미남자라 불리는 연이현은 아름다운 용모만큼이나 올곧고 온화한 성품에, 여인에게 정중한 것으로 유명했다. 그런 이를 많은 여인들이 흠모하리라는 건 물어보지 않아도 뻔한 일이었다.
“설요 낭자는 연이현 공자께서 오셨다는 말에 옆에 청운 형님은 들어오거나 말거나 신경도 안 쓰더라고요.”
형제들 중 가장 단순한 성격으로 유명한 남궁청운이 이런 계획을 세웠을 줄이야. 놀라운 일이었다.
사랑의 힘인가? 아니, 하지만 이건 연가장 남매의 여행 일정을 알아내야 시도라도 할 수 있는, 혼자서는 실현하기 어려운 계획이었다.
“그럼 연 공자와 청운 형님이 같이 이런 계획을 세우신 건… 아닐 테고.”
짧게나마 이현과 안면이 있는 청휘는 잠깐 떠오른 가설을 바로 부정했다. 연이현이라면 평범하게 수연에게 서신으로 청해도 충분했을 것이다.
“저기, 청운 형님 옆에 앉은 사람 보이시죠?”
자기 시선이 이린에게 고정되어 있었다는 걸 깨달은 청휘가 그제야 시야를 넓히자 이린과 이현 외에도 낯선 청년들이 그 주위에 여럿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어제, 취선루에서 이린과 함께 있던 사람들이군.’
대부분 멀끔하고 준수한 청년들로 나이는 대충 이현의 또래로 보였다. 아마 연이현의 벗들인 듯했다. 그중에서도 청운의 옆자리에 앉은 청년은 연이현 정도는 아니어도 상당히 눈에 띄는 미남자였다.
“옥소공자(玉簫公子) 백리한. 연 공자의 친우이신데 청운 형님하고 친밀해 보이더라고요.”
자기가 둘이 눈빛 교환하는 걸 봤다고 소곤거리는 제갈수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청휘는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일찍 올걸. 아니, 아까 목욕하고 옷이라도 갈아입어서 다행인가.’
좀 더 신경 쓸걸. 평소에도 그저 깔끔한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서 용모에는 그리 주의를 기울이는 편이 아니었지만 지금 입고 있는 옷은 아무래도 평소 그의 차림새에 비하면 좀 수수했다.
‘…다시 나갔다 오면 안 될까.’
급하게 외양에 신경 쓰는 청휘를 이상하다는 눈으로 보며 제갈수원이 청휘의 옷자락을 잡아끌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랑 옷이 바뀌었는데 형이야말로 정말 무슨 일 있었어요? 짐은 우리가 챙겼으니 갈아입을 옷도 없었을 텐데.”
“…아무것도 아니야.”
새삼 용모에 신경 쓰고 있는 자신이 부끄러워 청휘가 고개를 저었다. 생각해 보니 어제 이미 만났는데 이제 와 신경 써서 어쩌려는 건지.
문득 고개를 돌리자 자신을 발견한 남궁수연이 이린의 옆에서 이쪽을 향해 손짓하며 뭔가 말하는 것이 보였다. 면사 때문에 얼굴도 제대로 보이지 않건만 눈이 마주친 것 같은 기분에 청휘는 당황해 시선을 피했다.
마침 음악이 끝나고 주변이 수선스러워지자 뒤쪽에 서 있던 청휘와 수원이 자리로 다가갔다.
“형님.”
“넌 대체 뭐 하느라 이제 오냐.”
남궁청운을 부르자 툭툭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일이 있어 늦었습니다. 돌아오니 객잔에 아무도 없어서 놀랐습니다만.”
“일고여덟 살 어린애도 아닌데 알아서 해야지.”
“남궁 삼공자께선 동생분에게 엄격하시군요.”
뚱한 목소리에 쌀쌀맞은 남궁청운과 대조적으로, 부드럽고 온화한 목소리의 주인은 당연히 옆에 있던 연이현이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너처럼 동생이라면 껌뻑 죽거나 하지 않거든? 열아홉이나 된 커다란 남동생이 뭐가 귀여워.”
“그럼 어릴 때는 귀여웠다는 말씀이시군요.”
“뭐, 아, 아니야!”
“…셋째 형님. 그만하시고 소개부터 해 주시지요.”
굳이 필사적으로 부정하는 남궁청운을 보며 울지도 웃지도 못할 얼굴의 청휘가 먼저 청하자 남궁청운이 흥! 하고 눈을 흘기며 연이현에게 청휘를 소개했다.
“흥. 남궁세가 넷째, 남궁청휘. 처음 보지?”
“일전에 다른 형제분들은 모두 뵈었는데 사공자(四公子)를 뵙는 건 처음이군요. 연이현이라고 합니다.”
“유정검의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 남궁청휘라 합니다.”
이현의 묘한 눈빛에 움찔한 남궁청휘가 예의 바르게 인사하자 연이현이 차례차례 자신의 일행을 소개했다.
청휘는 그가 혹 어릴 적 여장한 자신을 만났던 걸 알아보지 않을까 긴장했지만 이현은 낯빛을 바꾸지 않고 소개를 계속했다.
“그리고 이쪽이 내 누이동생, 연이린이라고 합니다. 공자보다 조금 어리답니다.”
이현의 소개에 이린이 면사를 걷고 슬쩍 얼굴을 내보이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남궁 공자.”
“아.”
오랜만에 가까이서 마주한 이린의 파란 눈에 청휘가 잠시 넋을 놓자 이린이 불편한 듯 미간을 찌푸리며 청휘를 쏘아보더니 다시 면사를 내렸다. 청휘는 놀라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청휘는 눈치가 없는 편은 아니었으므로 ‘아는 척 하지 마요’라고 쓰여 있는 듯한 이린의 얼굴을 못 알아보지는 않았다.
“실례했습니다. 연…소저.”
“휘 형님. 아무리 얼굴에 자신이 있어도 그렇지. 처음 만난 소저 얼굴을 그렇게 빤히 쳐다보면 못 써요. 연 소저가 놀란다고요.”
“호오. 평생 호남제일미남자의 얼굴을 보며 자란 그 누이를 얼굴로 꼬시려 하다니 제법이야.”
“네? 그런 게 아닙니다!”
제갈수원의 웃음기 섞인 농을 백리한이 받으며 남궁청휘를 놀리자 서둘러 부정하는 청휘의 얼굴에 붉은 기가 번졌다.
“역시 젊어서 패기가 넘치는군요.”
“한창 혈기왕성한 나이 아닙니까.”
청휘 일행만 있을 때와는 달리 아저씨 비율이 대폭 높아지자 어린애 놀리는 재미에 빠진 나쁜 어른들이 한마디씩 툭툭 던져 댔다. 덕분에 무대에서 연주가 다시 시작되기 전까지 안 그래도 혼란에 빠져 있는 남궁청휘의 얼굴은 제 색으로 돌아오질 못했다.
남궁청휘는 무대에 있는 무희들 중 누가 그 유명한 설요 낭자였는지도 기억하지 못한 채 자신보다 앞쪽에 있는 이린만 곁눈질하다 시연향을 나서야 했다.
‘설마 이대로 헤어지는 건가?’
어떻게든 이린에게 말을 붙여 보려 기회를 살폈지만 연이현의 벗들에게 가려진 이린에겐 다가갈 틈도 보이질 않았다.
그사이 가슴 졸이고 있는 동생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남궁청운이 연이현에게 치근치근 달라붙었다. 절대 그럴 리는 없었지만.
“…그러니까 어차피 너희도 서호까지 갈 거면 동행해도 상관없잖아?”
“너무 폐를 끼치는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괜찮아. 괜찮아.”
남궁청운과 정중하게 거리를 둔 이현의 시선이 옆에 있는 이린을 향했다. 이린은 남궁수연과 당자혜 쪽을 한번 보고 이현의 친구들 얼굴을 한번 살피더니 이현을 보며 옷자락을 슬쩍 잡아당겼다.
이현의 벗들은 대체로 아무래도 좋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 잘 생각했어. 나도 혼자 애들 데리고 다니려니 피곤하던 참인데 잘 됐지. 내가 이미 배도 수배해 놨어.”
“배요?”
“그래!”
남궁청운은 이 자리에 있는 누구보다 많이 놀러 다녀 본 가락이 있던 만큼 거침없이 일행을 인도했다.
“배를 타고 주연(酒宴)을 즐기면서 동정호의 풍경을 보는 거지! 밤새 배로 이동할 테니 편하고!”
“잘됐군요. 풍류를 아시는 분과 동행하게 되어 기쁘지 뭡니까.”
미리 계획이라도 세워 놓은 듯한 남궁청운과 옆에서 맞장구치며 쿵짝이 잘 맞는 백리한을 보는 이현의 시선은 묘했다. 하지만 기쁜 듯 남궁수연과 당자혜의 옆으로 다가가 뭔가를 재잘대며 웃고 있는 이린을 보니 딱히 따져 볼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남궁청운의 피보호자들은 동행을 찬성하는 것과 별개로 분개했다.
“아니, 그런 건 그렇게 잘 알면서 오는 길은 왜 그렇게 고생시키셨대요?!”
“그러게 말이지. 나는 배 타는 건 처음인데 다들 어때요?”
열변을 토하려 하는 제갈수원의 의견에 공감하며 수연이 묻자 이린도 당자혜도 큰 배를 타 본 적은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나룻배 정도는 타 봤지만 이런 호수는 처음이라.”
“놀아 보신 분이 아무래도 잘 아실 듯하니 그건 마음이 놓이네요.”
대부분 배를 타 보는 것은 처음이라 불안 반 호기심 반인 아이들과 대조적으로 연장자 무리는 평온한 얼굴이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덕분에 편하게 가겠는데.”
“애들은 애들끼리 놀게 두면 되고.”
하나같이 세가의 자제들이라 신원이 확실한 데다 연소자 무리 중 가장 연장자가 당자혜에, 남녀 비율이 3 대 3. 그나마도 제갈수원이 평균보다 많이 어린 편이고 남궁청휘와 황보산은 그리 나서는 성격이 아닌지 분위기는 남궁수연과 당자혜가 주도하는 듯 보였다.
덕분에 이린도 무리 없이 어울리고 있는 듯해 이현도 마음 놓고 한 발짝 뒤에서 친구들과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남궁청휘만이 이 무리에서 가장 정신을 못 차리고 얼떨떨해하고 있었다.
‘정말,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어제 그렇게 죽기 살기로 이린을 뒤쫓지 않았어도 이렇게 자연스럽게 동행하게 됐을 거라 생각하니 뭔가 억울하기도 하고. 반대로 덕분에 사람을 구했으니 좋은 일인가 싶기도 한, 복잡한 심경이었다.
그렇지만 솔직히 말하면, 뜻밖의 행운에 입꼬리가 올라갈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