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Goddess RAW novel - Chapter 119
119.
“저도 동물이 이렇게 저를 따르는 것은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연 소저가 키우시는 건가요?”
“네. 이 아이는 청아, 지금 남궁 공자가 데리고 있는 아이는 홍아라고 해요.”
청휘는 당연히 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시침 뚝 떼고 청아와 홍아를 칭찬했다. 자신이 키우는 아이들에 대해 칭찬하는데 싫어할 사람은 없으니, 덕분에 두 사람의 분위기는 조금 부드러워졌다.
“이린, 여기 있어?”
모처럼 이어지는 두 사람의 대화를 끊고 나타난 건 남궁수연과 당자혜였다.
“두 사람 다 여기 있었군요.”
“아, 당 소저.”
이린은 자신과 청휘의 손에 있는 뱀들을 후다닥 수습해 품 안에 숨기고 두 사람을 향해 몸을 돌렸다. 청휘 역시 어쩌다 보니 아직까지 제 손에 남아 있는 비녀를 다시 소매에 숨겼다.
“두 사람도 바람 쐬러 나왔어요?”
밝은 목소리로 당자혜와 수연에게 말을 걸며 돌아보는 이린의 얼굴에는 미소가 만발해 있었다. 자신을 대할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에서 청휘는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뭔가, 옛날에 나를 대할 때와 좀 비슷한 거 같은데.’
정확히 말하자면 진윤휘를 대할 때.
그러고 보면 자신이나 황보산을 대할 때와 당자혜와 남궁수연을 대할 때의 태도 차는 확연했다.
‘남자를 별로 안 좋아하나.’
뭔가 서글펐다.
“실은 아까부터 신경 쓰였는데, 연 소저가 소매에 숨기고 있는 아이들 좀 보여 주실 수 있나요?”
“네?”
당자혜가 정확히 지칭한 것은 아니지만 이린은 저도 모르게 몸을 굳혔다.
사천당가의 무인들은 독과 암기에 능통한 만큼 오감이 예민하고 관찰력이 뛰어났다. 그중에서도 직계로 자라 온 당자혜가 이린의 소매에서 슬쩍슬쩍 보이는 특이한 뱀들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배 안에서는 이린도 당자혜도 굳이 면사를 쓰고 있지 않았기에 더 눈에 띄었다.
“실례가 될까요?”
“눈썰미가 좋으시네요. 보여 드리는 건 상관없지만 수연 언니가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아서요.”
“…혹시 예전에 데리고 다니던 그거야?”
“응.”
예전에 남궁세가에서 이린을 처음 만났을 때 이린이 데리고 있던 뱀들을 본 적 있는 수연은 움찔 떠는 것 이전에, 자신이 이린의 뱀들에 대해 전혀 눈치 못 챘다는 사실에 자존심 상해했다.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싫어하는 것도 아냐. 사람한테 달려들지는 않지?”
“응.”
수연에게서 괜찮다는 대답이 나오자 이린은 방금 서둘러 품에 숨긴 청아, 홍아를 꺼냈다. 옅은 냉기와 열기를 품은 뱀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당자혜는 놀란 듯 눈을 부릅뜨고 손을 뻗었다. 그리고 이린은 당자혜의 기세에 놀라 본능적으로 뱀들을 붙잡고 당자혜의 손길을 피했다.
“!!”
당자혜는 순간 아직 어린 이린이 자신의 손길을 피했다는 사실에 놀라워했지만, 곧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다시 이린에게 달려들었다. 이린은 어찌해야 할지 잠시 당황하다가 자신의 뒤에 서 있던 청휘 뒤로 숨어 버렸다.
당자혜가 청휘에게 함부로 대해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는데 의외로 남궁청휘는 담담하게 당자혜의 손길을 쳐냈다.
“뭐 하시는 겁니까?”
“왜 이러세요?”
이린이 청휘의 옷자락을 붙들고 뒤에서 머리만 내민 채 묻자 당자혜가 격앙된 목소리로 외쳤다.
“그 아이들, 저에게 파세요!”
“안 돼요!”
물론 이린도 단칼에 거절했다. 하지만 당자혜는 포기하지 않았다.
“돈이라면 얼마든지 드릴 수 있어요! 얼마면 되죠?!”
얼마야? 얼마면 돼!
“아니, 필요 없어요!!”
당황한 이린을 뒤로 숨기고 청휘와 수연이 당장이라도 돈을 뿌릴 기세인 당자혜를 붙잡아 말렸다.
“진정하고 떨어져서 얘기해요.”
“좀 진정하십시오. 연 소저, 괜찮으십니까?”
“네에.”
안전거리를 확보한 청휘가 어이없어하며 이린의 앞을 막아섰다. 이린은 뜻밖의 사태에 당황해 입만 뻐끔거리고 있었다.
‘와, 젊어서 그런가. 성격이 좀 다른 것 같은데.’
이린이 알고 있는 당자혜는 지금으로부터 10여년이 흐른 뒤의 당자혜였다.
차분하고 냉랭하며 거침없이 독설을 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아니, 그때도 성격은 좀 불같았던 거 같기도 하고?’
이린에게 무례하게 대하는 사내들을 향해 거침없이 독설을 날리던 모습을 떠올린 이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실 딱히 이린을 해치려는 것 같지는 않았다. 청아와 홍아가 영물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고 흥분한 걸까.
“그럼, 어디서 얻은 건지만이라도!”
“그, 뒷산이요…?”
이린의 대답에 당자혜의 눈빛이 바뀌었다.
“가 봐야겠어요! 안내해 주세요!”
“저 집 떠나온 지 얼마 안 됐어요….”
이린의 처량한 목소리에 남궁청휘와 수연도 한 마디씩 거들었다.
“당 소저. 지금 가 본다 해도 또 발견되리란 보장도 없다는 거 잘 아시잖아요.”
“맞아요. 심지어 이린이 저 뱀들을 발견한 건 벌써 몇 년도 전의 일이라고요.”
“하지만, 영물의 새끼라니….”
뒷말은 이어지지 않았지만 이린도, 청휘도, 수연도 그 뒤에 이어질 말을 알 거 같았다.
연구해 보고 싶어! 해부해 보고 싶어! 독이 있나 보고 싶어!
일견 멀쩡해 보여도 다들 어딘가 한군데 어긋나 있다는 사천당가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이 실제 당가 사람을 만나고 난 뒤 더 깊어지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얘들은 독 같은 거 없어요. 보시다시피 어려서 내단도 없고요.”
끼이-
끼이이-
이린의 말에 동의하듯 청아와 홍아가 애처로운 소리를 내며 듣는 이들의 동정심을 자극했다.
“그야, 그래 보입니다만….”
당자혜가 눈을 가늘게 뜨며 이린의 손에 있는 뱀들을 노려보자 두 마리의 뱀은 서둘러 이린의 품속으로 숨어들었다.
“…해치지 않을 거죠?”
“……조금 아쉬운데요.”
“나중에 허물 벗으면 그건 드릴 수 있어요.”
“정말이죠? 약속하신 겁니다.”
언제 벗을지 모르는 허물은 줄 수 있지만, 당자혜에게 뱀들을 보여 줄 수 없는 이린은 청휘의 뒤에 숨어서 당자혜와 온건한 협상을 마무리했다.
“지금 보여 주실 수는 없나요? 정말로, 아무 짓도 안 하고 보기만 할게요.”
“그건 다음 기회에요. 청아랑 홍아가 많이 놀란 것 같아서 나올 것 같지가 않네요.”
“…할 수 없군요. 실례했어요, 연 소저.”
겨우 포기하고 물러난 당자혜의 입에서 쳇, 하고 아쉬움 섞인 소리가 흘러나왔지만, 자신의 말을 번복하지는 않을 듯해 당자혜를 제외한 셋은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뱀들의 안전이 확보되자 그제야 안심한 이린은 자신이 청휘의 옷자락을 계속 붙들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후다닥 떨어졌다.
“아, 죄송해요. 남궁 공자.”
“아니. 괜찮습니다.”
“그리고 도와줘서 고마워요.”
웃으며 인사를 건넨 이린은 곧이어 수연에게도 감사를 표했다.
물론 웃고 있는 것과는 반대로 속은 조금 복잡했다.
‘벽화와 친해지고 싶었는데 이래서야 갈 길이 멀잖아.’
연연벽화(連延碧花) 당자혜는 과거, 그러니까 이린이 연가장주이던 시절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린에게 호감을 보였기에 이런 반응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예전에 벽화가 나에게 무조건적으로 호의적이었던 건 내가 혼자 장원을 꾸리고 있는 장주라서 호감이 높았던 건가.’
이린에게 무례하게 구는 자들에게 가차없이 대했던 것을 생각하면 설득력 있는 가설이었다.
지금은 전혀 다른 의미로 호감을 사고 있는 듯했지만.
“모처럼 이런 곳까지 와서 엉뚱한 짓은 그만두고 경치나 보는 게 어때요. 이런 배를 타는 것도 자주 있는 일이 아닌데.”
“맞아요.”
수연과 이린의 말에 당자혜도 옳다 여겼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야경으로 눈을 돌렸다.
“저기 보이는 저 휘황찬란한 배, 아까 본 그 화려한 배 아니에요?”
“등불 덕분에 더 화려한 것 같네요.”
출항할 때도 비교적 근처에 있었는데 항로도 비슷한 모양이었다. 하긴 안전한 물길을 택했을 테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아니면 아까까지는 보이지 않았으니 길이 겹쳐진 걸지도 몰랐다.
익숙해진 야경보다도 눈에 확 들어오는 화려한 구경거리에 일행은 시선을 빼앗겼다. 꽤 먼 거리긴 했지만 이 중에 눈이 좋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새삼 굳어 있던 청휘는 난입한 두 사람 덕분에 이린에게 비녀를 건네주지 못했다는 사실에 한숨을 내쉬어야 했다.
‘또 몰래 말을 걸 기회를 찾아야 하나.’
그건 그것대로, 어쩌면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애써 스스로를 위안하며 다시 또 멀어지는 배에서 고개를 돌렸다. 그때 문득 청휘의 눈에 자신들이 타고 있는 배를 향해 다가오는 배 두 척이 보였다.
‘뭐지?’
이 배처럼 화려한 등불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유람선이 아니었다.
“저건….”
“혹시 수적(水賊)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