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Goddess RAW novel - Chapter 133
133.
꽤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현은 뜻밖에 바람같이 돌아와 합류했다.
“동생이 그렇게까지 걱정됐냐.”
“두 분이 한시라도 빨리 가고 싶다고 하셔서 조금 무리했습니다. 그런데,”
이현은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대체 이곳에는 언제 예약을 해 두신 겁니까?”
“진작에.”
이현이 합류한 다음 날, 남궁청운은 영문도 모르는 일행을 소요각으로 끌고 갔다.
항주의 소요각이라 하면 동정호의 시연향만큼이나 유명한 곳이었다.
“항주의 가희(歌姬), 채화가 있는 곳이라서요?”
“흠, 역시 총명하구나.”
동정호에서 자신이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는 제갈수원의 말에 남궁청운이 기특하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서 오세요, 연 공자님.”
연이현이 면사를 걷고 얼굴을 내보이자, 문 앞을 지키고 있던 이들도 심부름을 가며 종종걸음을 걷던 소녀도 밝은 얼굴로 연이현을 환영했다.
“연 공자님. 연락을 받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별채로 안내받으며 남궁청운이 부럽다는 듯 휘파람을 불었다. 심지어 채화가 직접 나올 줄이야.
“휘익-, 역시 호남제일미남자와 함께 있으니 편한데? 설요 때도 그렇고.”
“그런 말투는 그만두시지요. 실례잖습니까.”
은근슬쩍 연이현의 곁에 붙는 자신의 형을 보며 청휘가 작은 한숨과 함께 한탄했다.
“청운 형님의 목표는 설요 낭자만이 아니었군.”
“와, 저렇게 치밀한 사람일 줄은 몰랐네.”
제갈수원 역시 정말 다시 봤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역시 나이 든 남자는 능구렁이라며 어린아이 같지 않은 소릴 쑥덕거렸다.
“설요 낭자를 보고 오셨군요.”
“동정호에 들렀던지라 설 낭자를 뵈었습니다.”
“설 낭자의 미색을 보셨다니, 소녀가 부끄러워 어찌 흉한 얼굴을 들겠습니까. 무희인 그이와 달리 저는 그저 노래 부르는 재주밖에 없는 사람이지요.”
“그리 말씀하지 마십시오. 어찌 감히 두 분의 우열을 가리겠습니까. 제가 아는 것은 채 낭자께 비할 가희(歌姬)가 많지 않다는 것뿐입니다.”
“그리 말씀해 주시는 분은 연 공자님뿐이실 겁니다. 이러니 어찌 저희가 공자님을 반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현의 말에 부채로 살랑살랑 얼굴을 가렸던 채화가 뺨을 복숭앗빛으로 물들이며 웃었다.
그 옆에서 남궁청운이 애써 말을 걸었다.
“나는 안 반갑냐.”
“어머나, 미색은 설요가 최고라고 하시던 분이 여기엔 어쩐 일이신지.”
“크흠. 설요가 조비연(趙飛燕)이라면, 채화는 양귀비(楊貴妃)인데 어찌 우열을 가리겠느냐.”
“남궁 대협께선 참으로 여전하십니다.”
얼핏 들으면 이현의 말과 비슷하게 들렸지만 채화의 눈매는 차가웠다.
날렵한 미인인 설요와 풍만한 미인인 채화를 각각 황제의 총애를 받았던 미인에 비유하는 말이었으나 별로 기쁘진 않았다.
“청운 형님이 까인 이유가 혹시 저건가. 설 낭자한테 가서는 또 채 낭자 칭찬하고?”
“굳이 그 먼 거리에 있는 사람들을 비교할 것까지야.”
“형님이 잘못했네.”
수군거리는 어린 소년 소녀들을 보며 채화의 눈가가 흐뭇하게 휘어졌다.
“형제분들까지 데리고 오시다니 드문 일이군요. 성격은 별로 닮지 않으신 듯합니다.”
채화의 날카로운 눈이 당자혜와 함께 뭔가를 속닥거리는 이린과 그런 이린에게 곁눈질 중인 청휘를 향했다. 이린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기도 했지만, 설령 닮지는 않았더라도 용모만으로 충분히 누가 누구의 동생인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두 분이 함께 오신 것도 신기한데 나란히 동생분과 함께 오시다니 이런 우연도 있군요.”
“그런 일도 있는 법이지요.”
시연향의 전각들 역시 화려한 공연장이었지만 지역이 달라지면 아무래도 조금씩 특성도 달라지는 법이라 이린은 신기한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눈을 반짝이며 남궁수연과 당자혜 옆에서 즐겁게 종알거리는 동생의 모습에 이현이 흐뭇하게 웃었다.
그리고 그런 이현의 얼굴을 보며 채화가 눈이 부신 듯 눈을 깜빡였다.
“연 공자님께서 동생분을 아끼신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직접 뵈니 상상 이상이군요.”
“이리 말씀하시니 부끄럽습니다.”
“아니요. 이런 얼굴을 뵐 수 있어 도리어 기쁘답니다. 게다가 동생분을 위해 이곳을 찾으셨지 않겠습니까?”
“낭자께서 연 모의 속을 꿰뚫고 계시니 거짓을 말하진 않겠습니다.”
“연 공자께서는 너무 솔직하시니 가끔은 섭섭하답니다.”
낭창한 목소리로 웃던 채화는 비파를 뜯으며 연주를 시작했다. 연주를 들은 백리한의 눈썹이 휘어지며 작은 빈정거림이 흘러나왔다.
“아니, 이거 가인곡(佳人曲)이잖아.”
연이현을 바라보며 부르는 노래가 가인곡이라니 어쩐지 채화의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했다.
南方有佳人(남방유가인)
남방에 아름다운 이가 있으니
絶世而獨立(절세이독립)
세상에 비할 이가 없다네.
一顧傾人城(일고경인성)
한 번 돌아보면 성이 기울고
再顧傾人國(재고경인국)
다시 한 번 돌아보면 나라가 기우네.
寧不知傾城與傾國(녕불지경성여경국)
어찌 성이 기울고 나라가 기욺을 모르겠냐마는
佳人難再得(가인재난득)
아름다운 이는 다시 얻기가 어렵다네.
과연 명성이 드높은 대가의 목소리는 달라서 가무에 조예가 없는 소년들까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다만 워낙에 유명한 곡이다 보니 다들 원래 가사까지 알고 있는지라 북방(北方)이 남방(南方)으로 바뀐 것을 깨닫고 쿡쿡 웃었다. 호남(湖南)에 살고 있는 연이현을 빗댔음을 모르는 이가 없었다.
“짓궂으십니다.”
박수를 치면서도 난처한 얼굴로 웃는 연이현을 보며 채화가 심술궂게 웃었다.
가인곡은 본래 미남자로 유명했던 이연년(李延年)이 황제에게 제 여동생을 절세미인이라 천거하며 부른 노래였으니, 연씨 남매가 미인이라 칭찬하는 노래이기도 했다.
“아름다운 오누이를 뵐 일이 흔치 않답니다.”
“과연 채 소저의 말씀이 옳습니다.”
이현이 웃으며 농을 받는데 이린만이 어색하게 웃었다.
‘왜 가만있는 나한테 불똥이?!’
어차피 농담이니 이린도 깊이 마음에 두진 않았다.
채화는 즐거운 듯 편안한 얼굴로 연이현과 백리한에게 청했다.
“모처럼 오셨으니 한 곡조 맞춰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기꺼이요. 금(琴)을 빌려주시겠습니까?”
이현의 대답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는지 채화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시립하고 있던 여인들에게 자신의 금을 가져오도록 했다.
이현 앞에 금(琴)이 놓이고, 가볍게 조율하는 것을 본 백리한이 옥퉁소를 꺼냈다.
다들 잊고 있었지만 백리한의 별호가 옥소공자(玉簫公子)였다.
“백리 공자께선 귀한 옥퉁소를 놀리고 계시진 않으셨는지요.”
“어디서 건방이야. 자네나 잘하게.”
친근한 면박이 오가고 백리한이 씨익 웃었다.
곧 연이현과 백리한 두 사람의 연주에 맞춰 채화가 노래를 부르자 넋을 잃지 않는 이가 없었다.
‘어쩌나, 우리 오빠. 저렇게 잘나서.’
이린이 넋을 놓고 있는 것을 본 남궁청운의 속 역시 심란했다.
‘어쩌나, 저렇게 잘난 오라비를 둔 애를 어떻게 꼬실래?’
형의 속이 타들어 가거나 말거나 청휘 역시 순수하게 감탄하는 것이 보여 청운은 그저 복장이 터졌다.
“소녀는 아쉽지만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소녀의 후배들 역시 부족하지만 솜씨가 있으니 어여삐 여겨 주셔요.”
“감사합니다. 채 낭자.”
채화는 더 이상 시간을 빼기 어려웠는지 몇 곡을 연달아 부른 후 아쉬워하며 물러났다. 채화가 물러나며 대신 다시 잔잔한 음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채화는 어린 후배들의 시선이 손님들을 향하는 것을 보았으나 관대하게 못 본 척했다. 많은 연회석에 불려 다녔던 자신도 오늘처럼 눈이 즐거운 날은 처음이었으니 어린 소녀들은 오죽할까.
남궁청운은 평판이 갈리지만 얼굴은 몹시 잘난 이였다. 그가 데려온 그의 남동생은 눈이 번쩍 뜨이는 미소년이었으며, 또래의 젊은 소년들 역시 하나같이 준수한 얼굴들이었다.
미남자로 이름 높은 연이현은 말할 것도 없고, 그의 벗들인 백리한과 청운진인 역시 이름 높은 미남자들이니 어찌 눈이 기쁘지 않을까.
채화 역시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아쉬운 걸음을 재촉할 수밖에 없었다.
“오빠, 멋있었어.”
“정말?”
집에서 본 적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밖에서 보니 더 잘나 보이는 것은 왜인지.
이린은 한동안 떨어져 있었던 오라비 옆에서 종알종알 말을 걸었다.
“부인은 몸이 안 좋아 보였는데 괜찮았어?”
“응. 속에 맺힌 걸 한번 쏟아 낸 덕분인지 생각보다 상태가 나쁘지 않은 것 같아.”
이현은 일부러 모녀의 고향을 벗어나 의원에게 보였는데 부인의 병증은 들었던 것만큼 심하지 않았기에 한결 마음이 놓였다.
“무슨 일을 시킬지는 나중에 판단하겠지만 두 사람 다 의욕이 넘치니 너무 걱정하진 마.”
“응. 하지만….”
이린이 머뭇거리며 뭔가 말하려는데 밖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오려고 해! 빌어먹고 싶으면 뒤쪽으로 가! 손님 떨어지게, 퉤퉤.”
안쪽까지 들릴 소리는 아니었으나 이린도 이현도 작은 소리를 알아듣고 한숨을 내쉬었다.
“계속 따라다녔어?”
“응. 아예 감시할 생각인가 봐.”
이현이 쓴웃음을 짓는 것을 보며 이린도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눈치를 보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저도 모르게 목소리에 응석이 섞였다.
“저기, 오빠. 실은 나 부탁이 있는데.”
“뭔데?”
“나 항주에서 친구들이랑 다녀 보면 안 될까? 며칠만이라도 좋으니까.”
“…오빠가 있으면 불편해?”
“그런 건 아니고, 너무 과보호받는 거 같아서. 응? 오빠. 오빠도 몇 년간은 친구들이랑만 돌아다녔잖아?”
그리고 이린이 전음으로 슬쩍 말했다.
– 거지 아저씨들이 쫓아오는 것도 좀 불편하고.
아무래도 그날 일로 찍혔는지 거지들은 질리지도 않고 일행을 따라다녔다. 지은 죄가 없어도 누군가가 감시하는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이현이 모녀를 데리고 떠나 있을 때는 없었던 것을 보면 목표는 이현인 것이 분명했다.
아무리 목적이 연이현 자신이라도 확실히, 거지들이 쫓아다닌다는 건 어린 소녀들이 아니더라도 꽤나 떨떠름한 상황이었다. 거의 20년간 감시당했다는 모녀가 얼마나 소름 끼치는 기분이었을지 알게 된 기분이라 개방 거지들을 보는 눈길이 더욱 사나워질 수밖에 없었다.
“후우. 알았어.”
“정말?”
“당 소저도 함께 가는 거지?”
“그건 걱정 마세요. 연 소협.”
그렇게 말하며 당자혜의 시선이 남궁청운을 향했다. 일단 명목상 보호자는 남궁청운이었으므로 그의 용인도 필요했다.
물론 남궁청운 입장에서야 가부를 따질 것도 없었다.
“뭐, 알아서들 해. 수원은 잘 챙기고.”
이현과 달리 애들을 적당히 방치하며 강하게 키우는 청운이었다. 아직 어린 제갈수원에 대해서만 주의를 줄 뿐 별다른 참견은 하지 않았다.
“대신 조심해야 한다. 이상한 사람 따라가지 말고, 누가 주는 거 함부로 먹지 말고. 길조심하고.”
“응.”
“누가 뭐 사 준다고 따라가지 말고, 뭐 사 준다 그래도 괜히 신경 쓰지 말고. 남자는 돈 많고 잘생겼다고 다가 아니니 여러모로 살펴봐야 해. 재물은 우리 집에도 많은 거 알지?”
“응? 응.”
뭔가 이상한 거 같지만 이린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돈이든 시간이든 정성이든 노력이든 너한테 쓰는 걸 아끼는 남자는 절대 쳐다보지도 말고. 없어도, 있어도 너에게 정성을 다하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거 명심하렴. 그래, 오빠보다 못해 줄 것 같으면 미달이라고 생각해.”
“???”
“그리고 가정사가 복잡한 남자는 피하는 게 좋고….”
이린에게 복합적인 당부를 하는 이현을 심여준이 어이없다는 눈으로 쳐다보며 술을 들이켰다. 먼저 떠난 일행을 따라잡느라 모녀를 바래다준 후로는 강행군을 해야 했던 노악은 청운진인과 함께 허허 웃으며 술잔을 들었다.
듣고 있는 이들 모두 입가에 미소가 걸려 있었는데, 저격당한 남궁청휘만이 자기 얘기라는 사실을 깨닫고 얼굴이 붉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