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Goddess RAW novel - Chapter 138
138.
“움직이지 마세요!”
날카로운 목소리가 방 안에 퍼졌다.
귓가에 들려온 서늘한 소리 덕분에 이미 제 어깨에 있는 것이 뱀이라는 것을 깨달았으나 여인은 쉬이 움직일 수 없었다.
쉬이익-
무엇보다, 대체 무슨 뱀인지 몰라도 등골이 절로 오싹해지는 것이 평범한 뱀 같지가 않았다.
탁!
짧은 고뇌의 순간 어깨가 가벼워지며 무언가 닫히는 소리와 함께 당자혜가 누르고 있는 가방 안에서 뭔가 격렬하게 움직이며 툭툭하고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뒤돌아본 여인은 안에 든 것이 버둥거리는 모양이 확연히 보이는 가방을 보고 모골이 송연해졌다.
“이 산에 독사가 있나요?”
“아, 네.”
“여기는 도관이니 저희가 마을로 들고 내려가 처리하지요.”
“네?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당자혜는 멈추지 않고 안에서 부딪히는 소리가 나는 가방을 안고 뛰어나갔다. 이린 역시 그 뒤를 따랐다.
“차 잘 마셨어요.”
아직도 안색이 창백한 여도사를 뒤로하고 두 사람은 황급히 도관을 빠져나왔다.
마침 초조하게 도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남궁청휘를 붙잡아 설명도 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도관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어지자 평범하게 뛰어가던 걸음은 경공으로 바뀌었다.
“아하하하하!”
“푸후후!”
그리고 어느 정도 내려오자 동시에 참았던 웃음을 터뜨렸다.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빠져나온 두 사람은 한동안 웃음을 참지 못하고 폭소했다. 오직 청휘만이 영문을 몰라 하고 있었다.
이린은 아직도 요란스러운 가방을 열어 죄 없는 뱀을 풀어 주었다.
끼이이- 끼이이이!!
“아이, 미안해. 청아야. 잘못했어.”
눈물이라도 뚝뚝 흘릴 기세인 청아를 달래며 이린이 저자세로 빌었다.
희생당한 건 이린의 소매에 편안하게 매달려 있던 청아였다.
여인이 나간 사이 청아에게 여인의 어깨 위로 뛰어내리도록 속삭인 이린이 서까래 위로 청아를 가볍게 던졌고, 시키는 대로 여인의 어깨로 떨어진 청아는 언제나처럼 서늘한 냉기를 뿌려 도사의 모골이 송연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달려간 당자혜가 청아를 잡아 이린의 가방에 넣고 흔들었으니, 청아가 가방 안에서 난동을 부릴 만도 했다.
끼이- 끼이이!!
“볼 때마다 신기하네요. 뱀이 소리를 내다니. 그런 기관이 있을 리가 없는데….”
그리고 청아의 반항은 당자혜의 의미심장한 중얼거림과 함께 삽시간에 잦아들었다.
“당 소저. 애가 겁먹어요.”
“사람 말도 알아듣고. 보면 볼수록 탐나는군요.”
당자혜의 장난기 섞인 날카로운 눈빛에 청아는 서둘러 이린의 소매 안으로 숨어들었다.
끼이이…
“옳지. 괜찮아. 해치지 않아.”
“후후, 농담이에요.”
그간 같이 여행하며 먹이 정도는 줄 수 있을 정도로 관계를 회복한 당자혜는 굳이 다시 뱀들에게 미움을 살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요?”
“아까 문 앞에서 독사 얘길 했잖아요? 이 산에 독사가 있다면 뱀이 도관 안으로 들어와도 이상한 일은 아니죠. 설령 뱀 얘기가 사실이 아니라도 몸 위에 뱀이 올라와 있다고 하면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테니까요.”
“흐음.”
당자혜의 눈매가 휘어졌다. 솔직히 처음에는 이린이 데리고 있는 뱀들밖에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뜻밖에도 경공은 감탄할 만큼 뛰어나고 기지(奇智)도 있었다. 거기에 행동력도.
‘맘에 들어.’
물론 자신의 생각을 눈치채고 바로 손발을 맞춘 당자혜를 보며 이린도 감탄하며 눈을 반짝이고 있었으나, 둘 다 얼굴이 가려져 있어 깨닫지 못했다.
“무사히 나와 다행이지만, 저곳은 아무래도 수상쩍어요.”
“동감이에요. 무예를 익힌 이들이 많은 건 뭐라 변명할 수 있을지 몰라도 약이 든 차라니. 내가 추연이라는 이름을 말하기 전에 준 것은 분명 멀쩡한 차였어요.”
당자혜가 마시는 척을 하는 것을 보며 똑같이 마시는 흉내만 냈던 이린이었다. 당자혜가 아니었다면 깨닫지 못했을지도 몰랐다.
자초지종을 모두 들은 청휘가 물었다.
“당 소저. 아까 그 차에는 뭐가 들어 있었습니까?”
“그리 위협적인 수준은 아니지만, 중독성과 수면 성분이 있는 약재가 들어 있는 것 같더군요. 아마 식사까지 하고 나면 나른해져서 잠이 들었겠죠.”
심각한 독성은 아니었으나 뭔가 켕기는 게 있을 것이라는 심증은 깊어졌다.
두 사람이 잠들고 남궁청휘가 찾으려 하면 소란을 피웠다며 무력 행사를 하려 했을 것이다. 남궁청휘의 무위가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인질이 잡힌 상태여서야 제대로 저항하긴 어려울 터였다.
“약이 들어 있다는 건 어떻게 알 수 있어요?”
“가업 비밀이죠.”
“든든해라.”
당자혜를 보는 이린의 눈이 존경과 선망으로 물드는 것을 보는 청휘의 마음은 복잡했다.
본인이 잘 모르는 분야에 해박한 사람에게 존경의 눈길을 보내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지만 감탄하는 분야가 하필 독이라니.
“어쨌든 알아낸 건 없이 의문만 깊어지는군요.”
“추연이라는 이름을 꺼내자마자 태도가 바뀌었어요. 뭔가 있는 게 분명하죠.”
심증은 확고해졌지만 물증이 없었다.
“약을 탄 걸 보면 우리에 대해 뭔가 의심을 품고 있을 텐데 괜찮을까요?”
“지금이야 당황해서 우릴 그대로 보내 줬지만, 뭔가 이상하다 생각할지도 모르겠군요.”
당자혜는 그렇게 말하며 하늘을 확인했다.
여인의 태도가 수상쩍은 것과 별개로, 늦었으니 도관에서 묵고 가는 게 좋을 거란 말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 날이 슬슬 어두워지고 있었다.
처음부터 하루 이상 걸릴 거라 예상하고 떠났으니 그건 큰 문제가 아니었다.
다만 이대로라면 이 산 아래에 있는 마을 객잔에서 하룻밤을 묵거나, 잠시 쉰 후 떠나야 했다. 도관이 영 수상쩍으니 하룻밤 머무는 것도 썩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그럼 우리는 떠난 척을 하고… 잠입해 볼까요?”
“네?”
“네?”
객잔에 도착해 마음 편히 당자혜의 독 없음 인증을 받은 식사를 하고 있던 두 사람은 당자혜의 충격 발언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차피 연 소저가 이대로 돌아갈 것 같진 않고요”
“음, 네.”
그동안 조금이지만, 이린을 겪은 당자혜의 판단은 정확했다.
동정호에서도 그렇고 이번 일도 그렇고, 이린은 얼핏 얌전해 보이는 것과 대조적으로 저돌적이고 대범했다.
‘불길 속으로 혼자 뛰어들 정도로 말이지.’
아무리 경공을 익혔어도, 불길이 덜 번졌어도, 살아 있는 사람이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곳으로 망설임 없이 뛰어들 수 있는 이는 흔치 않았다.
“연 소저를 혼자 보낼 수는 없죠.”
“당 소저….”
“…….”
당자혜의 믿음직스러운 모습에 이린이 감탄하는 것을 보며 남궁청휘는 뜻밖의 위기감과 소외감을 느꼈다.
그렇다고 저 사이에 끼어들 만큼 눈치가 없지는 않았으므로 묵묵히 식사를 계속했다.
“도관 구조 기억해요? 우리가 보지 못한 부분을 위주로 확인해야 할 겁니다.”
세 사람은 자신들이 안팎에서 본 도관의 구조를 떠올리며 계획을 세웠다.
“밖에서 확인했을 때 구조가 꽤 넓었습니다. 이쪽 끝에는 2층 전각이 있더군요.”
“아아, 여긴….”
머리를 굴리는 당자혜의 시선이 눈에 띄는 두 사람에게로 향했다. 들킬 경우 둘러대는 것이 불가능한 두 사람의 외모를 보니 새삼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경공 실력을 생각하면 자신보다는 이 둘이 더 나았다.
“두 분의 경공이 뛰어나니 제가 망을 보고 두 분이 건물로 침입하는 게 낫겠군요.”
“저 혼자 들어가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아뇨, 안 돼요. 아니라면 좋겠지만, 정말 혈교와 관계가 있다면 연 소저의 증언보다는 남궁 공자의 증언이 무게가 있으니까요.”
“알겠습니다.”
“그건 그렇군요.”
당자혜 개인적으론 이린을 의심하고 싶지 않았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이 없었다.
이미 한번 관병을 불러와 달라고 남궁청휘에게 떠넘긴 적 있는 이린 역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은 지켜보는 눈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식사 후 마을을 떠났다. 그리고 날이 저물자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 도관으로 향했다.
“두 분 피곤하진 않아요?”
“당가의 교육은 호락호락하지 않답니다.”
“연습도 실전 같아야 한다며 며칠씩 안 재우며 훈련받은 적도 있으니 이 정도는 괜찮습니다.”
남궁청휘의 대답에 이린은 물론 당자혜도 놀라운 듯 감탄했다.
“오대세가의 교육은 과연 대단하군요.”
“남궁세가주께선 과연 혈교와 전쟁을 벌였던 세대라 실전주의시군요.”
그저 곱게 자란 이린은 살벌한 세가의 교육법에 혀를 내둘렀다.
‘그냥 돈도 많은 집이니 어련히 좋은 거 먹으며 컸으려니 했는데 생각보다 무섭다.’
하긴 어린 남궁청휘를 폐관 수련하라고 처박아 두지 않았던가.
이린은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 두 세가가 유독 지독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니 나머지 오대세가에서 알았다면 억울해했을 일이었다. 그리고 정작 이린이 무섭다고 혀를 내두른 세가 출신 두 사람은 이린을 보며 의아해하고 있었다.
‘경공이 뛰어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내내 경공으로 달리고 돌아다녔는데 지친 기색이라곤 없이 남 걱정할 여유까지 있고.’
‘줄곧 장원에서만 살았다니 이런 일은 처음일 텐데 이렇게 침착하다니. 아까 대처한 것도 그렇고 정말 범상치가 않아.’
게다가 지금 경공으로 산길을 올라가고 있으려니 이린의 경공이 더욱 돋보였다.
안 그래도 산길에 익숙한 이린의 발끝에선 작은 소리조차 나질 않았다.
덕분에 가장 먼저 망을 보고 도관으로 두 사람을 이끄는 것도 이린이었다. 꼼꼼하게 머리카락과 얼굴을 가린 이린이 익숙하게 보초를 살피고 돌아오자 당자혜가 의아한 듯 물었다.
“왜 그렇게 익숙해요?”
“……글쎄요.”
가끔 한밤중에 장원을 몰래 빠져나와 산길을 노닐었노라 말하기에는 조금 부끄러워 이린은 대답을 회피했다. 여동생의 잦은 탈주, 아니 외유를 알고 있는 이현은 묵인하면서도 경비 강도를 높이고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이린이 잡힌 적은 없었다.
“안쪽에 남자들이 드나들고 있는 걸 보면 정말 여인들만을 위한 도관은 아닌 모양이에요.”
“반대쪽에 일꾼들만 있는 숙소 쪽은 벌써 대부분 불이 꺼져 있더군요.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어느 정도 동태를 파악하자 논의했던 대로 시야가 넓은 당자혜가 남고, 경공이 빠른 청휘와 이린이 건물 안을 살피기도 했다.
‘의외로 낮에 출입 금지였던 곳의 경계는 심하지 않네?’
도사들이 수련하는 곳이라 하여 접근 불가로 되어 있는 곳에서는 뜻밖에 웃음소리가 새어 나오는 것이 진지한 분위기는 아닌 듯했다.
‘저건 오히려, 술자리 같은 느낌인데.’
도사들이 술 안 마시리란 법이 없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저렇게까지 요란하게 놀다니, 게다가 목소리로 추정하기에 남녀가 섞여 있는 듯 했다.
이린과 청휘는 어이없는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다른 곳으로 움직였다.
밤이라 대부분의 건물은 비어 있었다. 청휘와 이린은 몇 번 허탕을 치다 아까 자신들을 응대했던 여도사가 다른 중년의 여인과 함께 있는 것을 발견하고 조용히 그 뒤를 쫓았다.
“오늘 온 손님 중에 수상한 자가 있었다고?”
“예, 추연을 찾아온 손님이 있었습니다.”
“이미 여기엔 없으니 그냥 돌려보내면 될 것을. 괜한 짓을 한 건 아니겠지?”
“약을 먹여 정보를 빼낼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뱀이 나와 차도 마시다 말고 서둘러 돌아가는 바람에 실패했습니다.”
“약을 먹었는데 그대로 돌아가도 괜찮겠느냐. 길에서 쓰러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많은 양을 마신 것도 아니고 일행이 있었다니 괜찮을 겁니다.”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그런데 뱀이 또 나왔느냐?? 백반 가루를 좀 뿌려야지 안 되겠다.”
아무래도 뱀이 나온 일이 전에도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린에게 있어선 다행이었다.
여인들이 백반 가루 대량 구매에 대한 얘기를 나누기 시작하자 이린은 내심 조금 찔렸다. 아까 자초지종을 들은 청휘가 옆에서 웃고 있는 듯했다.
‘음, 뭐. 덕분에 뱀이 안 들어오면 좋은 거지.’
뱀에 대한 대화가 한동안 이어지는 듯하더니 화제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연가장과 관계가 있다고?”
“확실하지는 않습니다만 추연이 드나들던 집의 부자(父子)를 연가상단에서 거두었으니 가능성이 있습니다. 게다가,”
“게다가?”
“찾아왔던 이들 중 하나가 금발에 파란 눈을 한 소녀였다고 합니다.”
“…연가장의 금지옥엽과 인상착의가 같구나.”
여인들의 대화에 이린은 등골이 오싹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