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Goddess RAW novel - Chapter 139
139.
‘나에 대해 알고 있어.’
연가장의 금지옥엽이란 분명 이린 자신을 뜻하는 말이었다.
아까 이린을 붙잡은 노부인은 이곳 도관의 도사들과 꽤 친밀해 보였으니 혈교와 관계가 있든 없든 자신이 본 이린의 용모에 대해 말했다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연가장에 대해 의심을 품으면 곤란해.’
우려가 현실이 되자 이린이 입술을 깨물었다.
아니, 아직은 괜찮았다. 그저 말 그대로 아이의 서신을 전해 주기 위해 찾아왔을 뿐이고 아무 일 없이 돌아갔으니까.
“연가장과 얽힌 경우가 많아 성가시군.”
“어찌할까요?”
여도사의 질문에 여인은 잠시 침묵한 뒤 물었다.
“유정검도 함께였나?”
“일행 하나는 사내라 밖에서 기다렸다고 합니다.”
“그럼 유정검이었을지도 모르겠구나. 그럼 차라리 놓친 게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유정검 연이현은 제법 이름이 나 있으나 그의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긴다면 의문을 품는 이들이 나올지도 모른다.”
이린과 청휘는 뜻밖의 오해에 어이없어하며 시선을 교환했다. 얼굴을 가린 덕분에 생긴 오해지만 어찌되었든 나쁜 일은 아니었다.
‘생각해 보니 오빠랑 남궁 공자랑 뒷모습이 좀 닮은 거 같아.’
요즘 얼굴을 가리고 다녀서일까? 남궁청휘가 키는 좀 더 큰 것 같은데 묘하게 비슷한 분위기가 있었다.
“보고는 해 두었지? 워낙 여기저기 오지랖 부리고 다니는 집안이니 있을 법한 일이지만…. 연가장의 소장주가 동생과 함께 여기까지 오다니. 여동생도 무인이었던가?”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만 유정검이 누이동생의 경공이 뛰어나다고 말하고 다닌 적은 있습니다.”
“유정검이 하나뿐인 동생을 그리 아낀다지? 아무리 무예를 익혔어도 아직 어린 여동생을 위험한 곳에 데려오진 않을 거다.”
“그건 그렇군요. 정말 말 그대로 서신을 전하러 온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신을 전하러 왔다면 부자가 살던 마을에도 들렀을 테니 확인해 보아라.”
“예.”
여인들의 대화에 이린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사실 지금 연이현이 전혀 다른 곳에 있다는 게 밝혀지면 또 다른 오해가 생길지도 모르지만 일단 당장의 위험은 피한 셈이었다.
‘그런데 대체 어딜 가는 거지? 이 방향이면… 아까 본 서왕모의 사당이 있는 쪽인가?’
여인들은 천천히 자리를 옮기고 있어 이린과 청휘도 조심스레 따랐다.
“어쨌든 연가장과는 그다지 얽히지 않는 것이 좋아.”
“예.”
한숨을 내쉬는 여인의 말에 묘한 어감을 느낀 이린은 의아한 듯 머리를 흔들었다.
‘얽히지 않는 것이 좋다?’
뭘까 그럼, 10년 후에는 장원에 고수가 없으니 만만해서 건드린 걸까?
“그 일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지?”
“재료는 모였으나 필요한 인원을 채우기가 어렵습니다.”
“어렵군. 안 그래도 무리해서 진행 중이거늘.”
“그자들과 함께해도 괜찮은 것일까요? 혈교와 본교가 추구하는 방향이 다르니 함께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린은 여인들의 대화에 얼마 전 이현이 빚을 인계받은 여인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떠올리며 어렵지 않은 결론을 도출했다.
‘말하는 걸 보면 여기는 일단 혈교보다는 신교에 가까운가 보네.’
여인들이 모여 있는 도관이라는 말에 어느 정도 추측하고 있던 사실이었다.
혈교로 통합된 지도 20년은 되었을 텐데 의외로 저들끼리 사이는 안 좋은 모양이었다. 하긴 어느 집단이고 시간이 지나면 계파가 나뉘며 서로 싸우게 되어 있으니 처음부터 다른 집단끼리 합쳐졌다면 사이가 안 좋은 게 당연할지도 몰랐다.
‘애초에 통합되기에는 너무 성격이 다른 집단 같았는데.’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사실도 있었다.
“입조심하게, 지금 여기엔 그 일을 알고 있는 사람들만 있지 않아. 이번에 소주(蘇州)에서 또 정파의 늙은이들이 모인다고 혈교 놈들이 지나가며 떨거지들을 남기고 가지지 않았나.”
이린은 자신의 옆에 있는 남궁청휘를 보며 이 정보를 혼자 듣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괜히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다간 의심받을지도 모르니 확실히 당자혜의 의견이 옳았다.
여인들은 대화하며 멈추지 않고 움직였다. 이린의 예상대로, 서왕모의 사당이 있는 곳이었다.
‘정파에선 왜 또 일부러 소주까지 와서 회합을 가지는 거지?’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는지 잘 생각이 나질 않아 기억을 더듬었으나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연 소저. 뭔가 이상한 것 같… 연 소저?”
심지어는 딴생각하느라 청휘가 작은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는 것도 모르고 여인들을 따르다 뒤늦게 청휘가 없다는 것을 깨달을 정도였다.
방금 전까지 있던 건물과 사당 사이의 거리는 제법 멀었으니 이린처럼 조용히 한 번에 뛰어넘는 것은 남궁청휘에게도 어려운 일이었다.
‘이런, 지난번에도 이 정도 거리는 뛰지 않았… 아, 기와가 무너졌었지.’
동정호에서의 일을 떠올린 이린이 거리를 가늠하며 난감해했다.
하필 밑에선 순찰하는 사람이 다가오고 있어 청휘는 이린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었다.
이린은 당황하며 주위를 살피다 청휘가 자신을 불렀던 이유를 깨달았다.
‘뭔가, 순찰 다니는 사람들 외에 더 있는 것 같아.’
이 사당 근처에 오고 나서야 뭔가 이상함을 느껴졌지만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일단은 안부터 살펴볼까.’
조심스레 사당 안을 살피니 마침 여인들이 서왕모의 제단 뒤쪽에 있는 지하실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이린은 청휘를 향해 자신이 안으로 들어갈 테니 기다리라고 손짓하고 경비를 피해 안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자신이 사당 안으로 들어가기 전, 안에 있던 검은 그림자 하나가 먼저 지하로 들어갔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이린은 지하 공간이 꽤 넓고 통로가 하나뿐인 것을 확인했다. 통로는 울퉁불퉁해, 만들었다기보다는 자연적으로 생긴 공간을 이용한 것 같았다.
‘뭐 하는 곳인데 한밤중에 이런 공간을 몰래 왔다 갔다 한담.’
말할 것도 없이 수상쩍었다.
지하에는 사람의 출입이 잦은 편은 아닌지 통로에 불이 밝혀져 있지 않았다. 반대편에서 누군가 온다면 단번에 들키겠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통로에 이어져 있는 것은 절벽 중간에 세워진 작은 사당이었다. 아마도 이곳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지형 위에 세워진 듯했다.
‘이런 데는 참 잘들 찾는단 말야.’
이린은 조심스레 주위를 살피며 불빛이 새어 나오는 사당으로 다가갔다.
이린이 놓친 사이 무슨 대화가 이어졌는지 알아듣기 힘든 말들을 하고 있었다.
“몇 가지 시험을 해 봤지만 가시적인 성과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자들의 사술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니.”
이린은 사술이라는 말에 자신이 예전에 읽은 신교의 서적들 중에 사술에 대해 적혀 있던 것을 떠올리며 내심 혀를 찼다.
‘혹시 그거 찾고 있나.’
교세를 확장하기 위해서 아무래도 여러 가지 필요하겠거니 생각하고 있는데 뜻밖의 말이 들려왔다.
“혈교에서 알게 된다면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요.”
“그자들 역시 아는 바가 없을 테니 괜찮을 걸세.”
이린의 미간이 찡그려졌다.
‘혈교? 혹시 혈교의 사술을 쓰려는 건가. 혈교의 사술은 본래 마교의 것인데.’
혈교가 마교에서 빠져나오며 온갖 해괴한 사술을 다 들고 나왔다고 하지 않던가?
마교가 혈교와의 일전 이후로 내부를 정비 중인지 대체로 조용했지만 원래 정상적인 집단은 아니었다.
심지어 그런 마교에서도 가장 흉악한 사술만 들고 나왔다고 알려져 있는 혈교였다. 사람을 제물로 바친다거나, 강시로 만들어 부린다거나 하는 괴담 같은 이야기들은 혈교와의 전쟁 때 많은 이들이 겪은 사실이었다.
그런 걸 써도 괜찮을까.
‘아니, 그냥 혈교가 혈교 것을 쓴다니 내가 걱정할 게 아닌가.’
내부 파벌이 갈려 있어도 둘이 같은 집단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이린은 허술한 문 틈새로 안쪽을 엿보았다. 여인들이 손을 모아 기도하고 있는 제단 위에는 여인의 모습을 한 석상이 있었다.
“!?”
이린은 그것이 눈에 익다는 사실을 깨닫고 숨을 삼켰다.
‘저거, 동굴에 있던 것과 비슷해.’
석상을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이린은 숨을 죽인 채 정면 쪽 문가로 조심스레 이동했다.
그리고 그제야, 반대편에 누군가가 있다는 깨달았다.
“!!”
이렇게 가까이에 오도록 눈치도 채지 못했다는 사실에 경악한 이린이 뒤늦게 경계하자, 상대도 마찬가지인지 이린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안 됩니다!”
소곤소곤 작은 대화가 오가던 사당 안에서 큰 목소리가 들려온 순간, 두 사람은 움찔 떨며 동시에 움직였다. 먼저 공격을 한 건 이린이었다.
“대체 누구에게, 무슨 수로 그런 실험을 하겠습니까. 정말 허락을 받은 것입니까?”
“그래. 그러니 사람이 필요해. 도관에 있는 이들만으로는 부족하지. 태주(台州)에 연락을….”
탁-
다만 상대도 만만치 않아 이린이 휘두른 검을 팔로 막아냈다. 아무리 칼을 뽑지 않은 상태로 제대로 들어간 공격이 아니라 해도 꽤 아팠을 텐데 상대는 동요 없이 이린을 공격하기 위해 손을 뻗었다.
“사람이라뇨!! 설마, 정말…!”
“조용히, 아무리 여기에 우리밖에 없다지만 조심하는 게 좋을 것이네. 혈교 쪽 사람이 와 있으니.”
이린은 몸을 젖혀 공격을 피하는 동시에 상대의 팔을 붙잡고 무릎으로 턱을 가격했다. 아니, 하려 했다. 상대는 비어 있던 반대쪽 손으로 부드럽게 공격을 막아내고 이린의 다리를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이린이 그대로 뛰어올라 검집째로 머리를 후려치려 하자 다급하게 밀어냈다.
이린은 검집으로 상대의 어깨를 짚고 빙글 돌아 후방으로 뛰어들었다.
“쉽게 돌아다니지 못하도록 감시하고 있으니 설마 여기까지 오진 못할 테지.”
“하지만 남후영 그자가 아직 이곳에 있다는 게 영 마음이 내키지 않습니다.”
이린은 익숙한 이름이 들려오자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 떨었다.
‘그자가 여기에 있다고?’
경악한 이린의 발이 상대의 등을 가격했다.
캉-
등에 뭘 짊어지고 있었는지 금속성의 울리는 소리가 났다. 천에 감싸여 있어 둔탁한 소리였지만 무공을 익힌 사람의 귀에는 충분히 들릴 만한 소리였다.
“누구냐!!”
당황한 이린이 사당의 지붕 위로 숨자 상대도 역시 뒤따라 반대쪽 지붕으로 올라왔다.
이린은 상대가 자신과 마찬가지로 소리를 내려 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이 사람, 신교 쪽 인물이 아닌 것 같은데. 혈교? 아니면 혹사 정파 쪽 밀정?’
그리고 곧 또 다른 가설이 떠올랐다.
‘설마 이자, 남후영인가?’
정말 남후영이라면 지금 죽여서 원한을 갚아도 시원찮지만, 지금은 살기를 감춰야 할 때였다.
끼익-
“무슨 일이지?”
“무언가, 소리가 났습니다.”
“날짐승들 소리가 아닌가? 이곳은 혈교 출신자들뿐 아니라 도관의 다른 신교인들도 알지 못하는 곳일세.”
“혹시 남후영 그자가 뭔가 알아낸 건 아닐까요? 그자의 무공이 뛰어나다 들었습니다.”
“진정하게. 우리가 여기 있는 동안은 몇몇 교인들이 일부러 그에게 술을 먹이기로 했으니 그럴 리가 없어. 그자가 여기 올 수 있었는지는 확인하면 금방 알 수 있을 테고.”
“송구합니다. 요즘 어쩐지 이상하게 자꾸 불안한 기분이 들었는데, 오늘 일로 신경이 더 예민해져 있는 것 같습니다.”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지. 향은 올렸으니 오늘은 이만 돌아가는 것이 좋겠네.”
“예.”
사당의 불이 꺼지고 두 사람은 다시 지하 통로를 통해 돌아갔다.
‘이런, 통로로 뒤따라가면 들킬지도 모르는데.’
본래는 저들이 나가기 전 자신이 먼저 빠져나갔어야 했는데, 아직까지 반대편에서 대치 중인 자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만약 통로의 입구가 잠겨 있다면 부수고 나가야 할 테니 조용히 나가는 것은 포기해야 했다.
‘지하 통로 외에는 아래도 절벽, 위에도 절벽.’
여인들의 인기척이 멀어지고 지붕 위에서 주변 지형을 살피던 이린에게 상대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