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Goddess RAW novel - Chapter 141
141.
“소주에서 있을 정파들의 회합을 노린다고요?”
일행은 도관에서 벗어나 안심할 수 있을 정도로 멀어진 후 겨우 멈춰 섰다. 청휘와 이린은 정보량이 적은 당자혜를 위해 자신들이 들은 것들을 이야기했다.
당자혜는 전말을 모두 들은 후 골치 아프다는 듯 미간을 찡그렸다.
“우리가 어찌할 일이 아니니 우선 무림맹에 연통을 넣도록 하죠.”
“다음에 도착할 마을에서 개방 제자를 찾는 게 좋겠습니다.”
두 사람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인 이린이 뒤늦게 생각난 듯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결국 오빠한테 들키겠네요.”
“아.”
“저런.”
당자혜가 시무룩하게 축 처진 이린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했다.
“저와 남궁 공자 이름만 넣어 전할 테니 너무 심려 마세요.”
“그건 더 수상하잖아요. 두 분이 제 대신 헌오의 편지를 전해야 할 이유도 없고.”
“…없지는 않은데.”
그리 중얼거리며 당자혜는 남궁청휘 쪽을 힐끔댔다.
청휘가 이린의 호감을 얻고 싶어 스스로 자청하고, 자신이 불안해서 동행하기로 했다면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거기에 남궁수연을 이린 대신 동행했다고 입까지 맞추면 깔끔했다. 그 사실을 연이현이 알게 되면 이린이 또래 남자애 둘과 함께 여행했다고 오해할 가능성이 생기지만.
“아뇨. 그럴 수는 없죠. 여러모로 폐를 끼쳐서 미안해요.”
“신경 쓰지 마요.”
이린을 달래던 당자혜가 화제를 돌릴 겸 이린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연 소저는 왜 그 방향에서 나온 거죠?”
“저도 궁금했습니다. 어디서 오신 겁니까?”
“아, 얘기하자면 조금 긴데….”
이린은 지하 통로가 있는 것을 보고 따라가 절벽에 다른 사당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는 얘기를 전했다.
“엿듣는 도중에 정체 모를 남자와 마주쳐서 대화를 제대로 듣진 못했는데, 그 남자도 신교와 우호적인 이는 아닌 것 같았어요.”
“괜찮으신 겁니까?”
놀라서 이린을 살폈지만 당연히 이린은 옷자락 하나 상한 곳이 없었다.
“음, 괜찮아요. 다행히 아무 일도 없었어요.”
‘살기도 없었지.’
애초에 먼저 경계하며 싸움을 건 것은 이린 자신이었고, 상대는 그냥 재미있다고 달려드는 것 같은 단순한 느낌이었다.
근거는 없었지만.
“무림맹 측의 간자일까요?”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습니다만….”
청휘는 얼굴을 흐리며 이린에게 당부했다.
“연 소저, 소저의 경공이 뛰어난 것은 알고 있습니다만, 단독행동은 피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조심할게요.”
속마음이야 어쨌든 고개를 끄덕이는 이린을 보며 청휘가 못미더운 얼굴을 했으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결국 당자혜도 한 마디 거들었다.
“잠입하자고 한 제가 할 말은 아니지만, 기다리는 쪽은 걱정되니까 혼자 행동하는 건 자제해 주세요. 어린 연 소저가 안 보이면 저도 남궁 공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고요.”
거의 잊고 있었지만, 이린은 두 사람보다 어렸다.
아무리 나이로 실력을 판단할 수 없다곤 하나 이린은 일반적 기준으로 아직 보호받아야 할 나이에 가까웠다.
‘게다가 당 소저는 나보다는 오빠 나이에 더 가깝지.’
이현이나 그 벗들이 자신을 보호하려 하는 건 당연하게 생각했지만, 어른들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사람들과 헤어지자 자신이 보호받는 위치였다는 걸 잊어버린 이린은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닫고 진심으로 사과했다.
입장 바꿔서 서문민영이 자신과 같은 행동을 했다면 이린도 속으로 비명을 지르며 쫓아갔을 것이다.
“네. 죄송해요.”
이린의 시무룩한 목소리를 들은 청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일단 말을 돌렸다.
“저희는 이 사실을 전달하고 서호로 향하죠.”
“마음 같아선 좀 늦게 전달하고 싶은데 소주에서 또 피바람이 불면 곤란하니까요.”
“우리가 왔다 가자마자 무림맹이 들이닥치면 우리한테 괜한 불똥이 튀지 않을까요.”
“하긴 전에도 혈교를 잡는 데는 실패했다고 했죠.”
이미 이린에게서 무림맹의 실패담을 전해 들은 두 사람의 목소리에는 불신이 가득했다.
“왕모묘에서 오갈 데 없는 여인들을 받아 주었다던데 그 사람은 어떻게 하죠? 신교와 관계가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전혀 상관없는 사람도 있을 수 있어요.”
“무고하다는 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겠어요. 갈 데도 없는 사람들이니 자신들을 돌봐 준 혈교, 혹은 신교를 위해 일할지도 모르잖아요?”
“그 사실을 무엇으로 가리겠어요. 신교의 사람들이 그 사람들과는 관계없다고 부정한다 해도 믿어 주지 않을 걸요.”
“얼마 전 본 개방의 감시도 지나치게 집요했죠. 무림맹도 그렇고 다들 그리 섬세한 일처리를 하는 곳이 아니라 확실히 걱정되는군요.”
그렇게 본의 아니게 무림맹의 일 처리를 한창 까던 도중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던 이린은 자신들이 달려 나온 방향에서 뭔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저기 왜 연기가 피어오르죠?”
“산불? 아니, 아까 우리가 갔던 왕모묘 쪽 아닌가요?”
당황한 이린과 남궁청휘의 얼굴을 본 당자혜가 서둘러 두 사람을 이끌었다.
“어느 쪽이든 우린 여길 빨리 벗어나는 게 좋겠어요.”
이린은 왕모묘에서 마주쳤던 사내를 떠올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설마, 그자가?’
만약 그 사내가 한 일이라면 그자의 정체는 뭘까. 무림맹 쪽 사람이라면 한밤중에 저런 일을 벌일 이유가 없었다.
“우리가 저쪽을 걱정할 때가 아니에요. 만약 저들이 소식을 전할 틈이 있었다면 우리가 의심받을지도 몰라요.”
당자혜의 말에 이린과 청휘의 안색이 흐려졌다. 아까 잠입했을 때 엿들은 바로는 이미 왕모묘를 방문한 것이 이린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럼 제 정체는 다 알려졌겠네요.”
이린의 한숨에 당자혜와 청휘가 안쓰러워하며 달랬다.
“알려졌으리란 법은 없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한밤중이라 아무도 없어 시원하게 얼굴을 내놓고 걷고 있던 이린이 밤바람에 날리는 제 머리카락을 유감스러운 눈으로 보며 한탄했다. 달빛 한 줌이 전부인 한밤중임에도 이린의 머리색이 옆에 있는 두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알아채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정말이지, 가리고 다녀도 결국에는 눈에 띄고, 도움이 안 돼요.”
“그렇게 타고난 걸 어쩌겠어요?”
“그러게요. 차라리 먹물로 적시면 티가 안 나려나.”
“아하하하!!”
이린이 한탄하자 당자혜는 웃음을 터트렸고 청휘는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이 상황에서 아름다운 머리카락이라고 말하면 정말 위로가 안 되는 말이겠지.’
낮에 당자혜가 말한 것처럼 가볍게 칭찬할 수 있다면 좋았을걸. 그렇게 후회하며 청휘는 쓸데없는 소리를 하지 않도록 입을 다물었다.
중간 중간 쉬긴 했지만 결국 날이 새도록 지칠 때까지 달린 보람이 있어 그럭저럭 규모가 있는 객잔을 발견한 세 사람은 만장일치로 그곳에서 쉬었다 가기로 했다.
“살면서 이렇게 달려 본 건 처음이에요. 연 소저는 왜 그렇게 여유 있어요?”
“평소 산을 달리던 게 버릇이라 그런가 익숙하네요.”
“저어, 그런데 방을 정말 이렇게 잡아도 괜찮겠습니까?”
느긋한 여인들과 대조적으로 남궁청휘만 난감한 듯 시선을 두지 못했다.
“혹시 모르니까 가능한 따로 행동하는 건 피하도록 하죠.”
“아니, 그래도.”
“왜요. 여인들과 같은 방에 있으니 불순한 생각이라도?”
“…제발 살려 주세요.”
태평하게 웃는 두 사람과는 달리 남궁청휘는 지금 두 사람과 한 방에 묵어야 한다는 사실을 달가워할 수가 없었다.
3인실을 내어 준 객잔 주인은 남궁청휘가 남자냐고도 묻지 않았다. 방으로 음식을 가져다준 점소이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셋 다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지만 보통 이런가?
“남매라고 생각하지 않았겠어요?”
“아니면 자매라거나.”
“그만 가지고 노세요.”
까르르르 웃으며 당자혜와 연이린이 남궁청휘를 놀렸다.
그런 두 사람의 놀림은 사람이 한 명씩 빠져도 변하질 않았다.
“혹시 모르니까 조심해야죠. 밤에 혼자 있다가 습격이라도 당하면 곤란하잖아요? 침상을 같이 쓸 것도 아닌데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잘 때는 병풍도 쳐 놓을 거고.”
“같은 방에 묵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두 분의 오라버니와 아버님께서 저를 살려 두지 않을 것 같은 오싹한 예감이 듭니다만.”
“에이. 설마요. 하지만 당가는 저도 모르겠네요.”
손을 내저으며 웃는 이린의 옆에서 기계적으로 창밖을 보는 청휘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2층 객실이라 창문을 열고 바람을 맞고 있는 이린의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땀도 별로 안 흘린 것 같으니 이린이 먼저 씻는 게 낫겠다는 당자혜의 권유로 이린은 이미 목욕을 마친 상태였다.
허튼짓할 생각 말라는 당자혜에게 중독(中毒)의 위협과 놀림을 동시에 받아야 했던 청휘는 당자혜에 비해 부드러운 이린의 태도에 안도했다. 실상은 독침 대신 서슬 퍼런 뱀들이 대신 그를 위협하고 있어야 했으나 이린의 애완 뱀들은 청휘에게 살가웠다.
“너희 왜 이렇게 남궁 공자를 좋아해?”
끼이-
청휘가 주는 고기를 받아먹는 홍아를 보며 이린이 손을 내밀자 홍아는 애교 부리듯 이린의 손에 머리를 기댔다.
“왜, 맛있어 보여? 먹을 거 아니야.”
자신의 머리카락을 성의 없이 한 줌 쥐곤 청아의 눈앞에서 흔들자 강아지풀을 본 고양이처럼 뱀들이 달려들어 장난을 쳤다.
“실수로 물지는 않습니까?”
“하하. 그러다 혼난 적은 있죠.”
어린 뱀들이 아무리 빨라 봤자 이린의 손놀림을 따를 수 있을 리가. 장난으로라도 이린을 공격하려는 순간 매서운 손길로 혼나야 했다.
‘나야 얘들이 뭔 짓을 해도 피할 수 있지만 다른 애들한테 뭔가 공격을 하면 곤란하지.’
하지만 험난한 강호에 나와 생각하니 무슨 일이 생겼을 때의 반사 신경이 늦어지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당소저가 생각보다 조금 늦네요.”
끼익-
뱀들을 데리고 놀던 이린의 중얼거림과 동시에 문이 열렸다. 당자혜였다.
“말을 사죠.”
“네? 네.”
거두절미하고 핵심만 내뱉는 당자혜의 말에 두 사람은 그저 순순히 고개만 끄덕였다. 당자혜는 말 잘 듣는 동생들을 보는 흐뭇한 눈으로 두 사람을 보며 웃었다.
“어제 새벽부터 출발해서 밤새 달리느라 한숨도 못 잤으니 오늘은 일찍 쉬고 내일부턴 좀 서두르는 게 좋겠어요.”
시간적으로는 그럭저럭 여유가 있었지만 어쨌든 본래 일정에서 벗어나 있는 세 사람에게는 거리상으로 돌아서 가는 길이었다.
“아무래도 경공은 빨리 지치니까요. 여기서 말을 구할 수 있을까요?”
“어지간한 상태면 일단 타 보고 상태가 아니다 싶으면 도중에 바꾸죠.”
“서호에 도착하기 전에 팔아 버리면 되니까 그것도 나쁘지 않겠군요.”
누군가 의견을 내면 반대하는 이가 없으니 진로 결정은 순식간이었다.
당자혜의 말에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일 뿐인 논의가 끝난 후, 마지막으로 목욕을 하고 돌아온 청휘는 방에 이린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침대에만 사람이 있었는데 그 주변의 공기가 불온한 것이 확인하지 않아도 당자혜가 쉬고 있음을 알 수 있었기에 청휘는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 방 안을 두리번거렸다.
‘무슨 일이 있었다면 당 소저가 저렇게 태평하게 자고 있을 리 없고. 이제 해가 저물 시간인데 어딜 갔지?’
이린이 새벽마다 뛰어다닌다는 걸 그간 함께 여행하며 얼추 알고 있었지만 이 시간에, 그것도 당자혜를 혼자 두고 멀리 갈 것 같지는 않았다. 1층에도 보이지 않았으니 남은 건….
잠깐 고민한 청휘는 창문을 열고 지붕 위로 뛰어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