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Goddess RAW novel - Chapter 142
142.
“남궁 공자? 무슨 일이세요?”
“제가 드릴 말씀입니다. 왜 이런 곳에 계십니까?”
“요새 애들이 밖에 나와 있을 시간이 별로 없어 답답해하는 것 같아서요.”
지붕에 앉아 있는 이린의 무릎 위에는 청아와 홍아가 엎치락뒤치락 장난을 치며 놀고 있었다.
“피곤하지 않으십니까?”
“생각보다 괜찮아요. 남궁 공자도 피곤할 텐데 어서 쉬세요.”
“저도 괜찮습니다. 저도 잠시 여기서 바람을 쐬어도 괜찮을까요?”
“그럼요.”
객잔 여비를 지불한 전주(錢主)의 소심한 청에 이린은 쾌활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하늘은 맑고, 금빛 노을이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덕분에 바람에 날리는 이린의 금빛 머리카락이 붉은빛으로 물들어 하늘에 번지는 것같이 보였다.
멍하니 쳐다보다 이린과 눈이 마주친 청휘는 멋쩍어하며 시선을 돌렸다.
“죄송합니다. 그만.”
“괜찮아요. 대부분 신기해하거든요.”
“신기해서가 아니라….”
처음 봤을 때부터 아름답다고 생각해 왔던 사람의 입장에서는 어쩐지 억울한 오해였다.
웃으며 그리 말하는 이린을 보고 있자니 울컥해진 청휘가 물었다.
“소저께선 자신의 용모가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네? 그야 여러모로, 불편하니까요. 너무 눈에 띄고요.”
“머리카락이 아니어도 연 소저는 분명 눈에 띄었을 겁니다. 유정검께서 그러하시듯 분명 다르지 않았을 테니까요.”
“에이, 오빠는 잘생겨서 눈에 띄는 거죠.”
청휘는 이린이 스스로를 미인이라고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았다.
‘어째서 이렇게 그때와 변하지 않은 걸까.’
그리고 그에 대해 자신이 길게 왈가왈부해서 좋을 게 없다는 것도. 그럼에도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저가 아름다운 분이 아니라고 누가 말하던가요? 그리고 소저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의 시선에 너무 신경 쓰실 필요는 없습니다. 연 소저를 아는 이들은 분명 연 소저가 좋아하지 않는 소저의 머리카락도 좋아할 테니까요.”
“아, 그, 아빠랑 오빠는, 그렇겠죠.”
갑작스러운 말에 이린은 당황해 횡설수설하면서도 청휘의 말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멍하니 그런 이린의 얼굴을 보던 청휘는 시선을 피하며 저도 모르게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저도, 예쁘다고 생각합니다.”
작은 목소리라 해도 눈앞에서 그리 말하는데 이린의 귀에 아니 들어갈 리가 없었다.
저녁놀에 붉어진 얼굴로, 마찬가지로 붉게 물들어 있는 청휘의 준수한 얼굴에 시선을 빼앗겼던 이린이 곧 뾰로통한 목소리로 작게 항의했다.
“…꼬시지 마세요.”
“네!? 그, 그런 게 아닙니다!”
당황하는 청휘를 보는 이린의 눈초리가 곱지 않았다.
약혼자가 있는 남자가 외간 여자에게 그런 식으로 대해 놓고! 꼬신 게 아니라니!
‘남궁 공자 생각보다 위험한 사람이었네.’
이린의 차가운 눈빛에 영문을 모르고 쩔쩔맬 수밖에 없는 청휘는 뭐라 변명을 하려다 결국 적절한 말을 찾지 못하고 얼굴만 붉혀야 했다.
“내일부터 또 강행군이니 얼른 쉬도록 하죠. 자. 청아, 홍아 이제 들어가자.”
“아, 연 소저.”
더 놀겠다고 빽빽거리는 뱀들을 얼러 주며 먼저 일어난 이린은 옷자락 스치는 소리조차 없이 순식간에 창문을 통해 방 안으로 들어갔다.
“괜한 소릴 했나.”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말걸. 축 처진 남궁청휘 역시 터덜터덜 방으로 들어갔다.
일부러 가운데 있는 침대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는 당자혜를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은 주섬주섬 잘 준비를 했다. 준비고 뭐고 그냥 언제든 튀어나갈 수 있도록 옷과 짐을 잘 챙기고 검도 머리맡에 둔 채 눕는 것이 전부였다. 이린은 가방 속에 뱀들을 넣어 두는 것까지 포함이었다.
“안녕히 주무세요.”
“편히 쉬십시오.”
청휘는 미리 가져다 놓은 병풍 너머로 들려오는 이린의 목소리에 화답하며 침상에 누웠다.
아직 잠자리에 들기엔 조금 이른 시간이었지만 장시간 경공으로 혹사한 몸은 피로를 호소했다.
‘자야 하는데.’
잠이 안 와.
분명 몸은 피곤한데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았다. 운기조식은 했다지만 목욕 중에 꾸벅 졸 정도로 피곤했는데 정작 침상에 누우니 잠이 오지 않는다니.
‘원인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사실 너무 피곤해서 머리가 베개에 닿으면 그냥 다 잊고 잠들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몸뚱이가 주인의 예상을 벗어났다.
‘생각하지 말자, 생각하지 말자.’
곱게 잠이나 잤어야 했는데 굳이 이린을 찾아 지붕 위까지 기어 올라간 게 문제였다.
올라가지 말걸, 아무 말도 하지 말걸, 괜한 말을 해서 화가 났으면 어쩌지, 뭘 잘못한 거지, 머릿속에서 빙글빙글 맴도는 온갖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더니 오래전 이모인 제갈윤위에게서 들은 말까지 기억 속 깊은 곳에서 발굴되어 나왔다.
[그럼 너 이린이랑 혼인 못 하겠구나.]억지로 감고 있던 눈이 번쩍 떠지며 청휘는 몸을 일으켰다.
‘그런 생각까진 안 했어요, 이모님!!’
듣는 이 없는 고요한 항변과 동시에 남궁청휘는 다시 몸을 뉘였다. 덕분에 복잡한 생각이 더 깊어져 도무지 잠이 올 것 같지가 않았다. 창밖을 보니 이미 한밤중인 듯했고, 방 안에는 두 사람의 고른 숨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래도 두 사람은 잘 쉬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네.’
병풍 너머를 확인할 순 없지만 안온한 공기는 청휘를 안심시켰다.
차라리 잠드는 것을 포기하는 게 낫겠다 마음을 굳히고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던 청휘는 다음 순간 튕기듯 몸을 일으켜야 했다.
끼익- 끼익- 끼-이-익
문밖에서, 희미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기척을 죽인 발소리는 결코 객잔에서 일하는 자들의 소리는 아니었다.
‘설마!’
드르륵-
그리고 문이 열리는 순간, 청휘의 손이 자신의 침대 옆에서 가림막 역할을 하고 있던 병풍을 붙잡았다.
콰앙!!
“억!!”
방 안으로 들어오려던 이는 청휘가 문 쪽으로 집어 던진 병풍에 맞았는지 맞은 비명을 질렀다.
“들켰다!! 어서 잡아!”
안에 있는 이들이 잠들어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불청객들은 분주해졌다.
병풍을 집어 던진 청휘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눈을 뜨고 뛰쳐나갈 채비를 갖춘 이린과 당자혜를 보고 안도하는 동시에 전음을 보냈다.
-창문을 통해 지붕 위로 올라가요!
펑!!
그리고 세 사람이 창문의 위치를 확인함과 동시에, 당자혜의 연막탄이 방 안에서 터졌다.
방 안에서 불청객들이 허탕을 치는 사이, 세 사람은 무사히 지붕 위를 달리고 있었다.
“저놈들이 잠도 못 자게!!”
“그러게요.”
그나마 몇 시진이라도 눈을 붙인 당자혜의 말에 한숨도 못 잔 남궁청휘가 열렬히 공감했다.
잠이 안 올 거면 피곤하질 말아야지. 이게 무슨 일인지.
“이 근처는 거지들도 잘 안 보이던데 저쪽도 운신이 자유롭겠죠.”
“조심하세요, 당 소저. 이 속도로 달리면서 말하면 혀 깨물 수도 있어요.”
정작 그렇게 말하는 연이린의 걱정스런 목소리는 차를 마시며 담소라도 나누는 듯 평온했지만, 당자혜는 이린의 충고대로 조용히 이를 사리물었다.
어리다곤 하나 이린이 경공에서 독보적으로 뛰어나다는 것은 이미 충분히 인지했으니 이린의 말에 토를 다는 것은 당가 사람이 아닌 타인이 자신에게 독에 대해 토를 다는 것과 비슷한 감각이었다.
갑자기 객잔 방으로 들이닥친 불청객들 덕분에 자다 말고 뛰어나온 지도 두 시진째. 아직 밤이 짧은 덕분에 어느덧 하늘은 환하게 밝아 오기 시작했다.
중간 중간 짧게 휴식은 취하고 있었지만 계속 경공을 써 온 데다 푹 쉬지도 못한 당자혜는 짜증이 솟구치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연장자인 자신이 동생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어 그저 힘들게 숨을 몰아쉴 뿐이었다.
따라오는 이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잠시 휴식을 취하며 일행은 간신히 목을 축였다.
“아무래도 우리가 묵은 객잔이나, 근처에 신교의 관계자가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번화하지 않은 시골 마을을 지나다 보니 남궁청휘도 당자혜도 너무 눈에 띄는 얼굴이라 계속 얼굴을 가리고 있었는데 어쩌면 신교에서 그걸 기준으로 일행을 찾았을지도 몰랐다.
“도망칠 게 아니라 그냥 그 자리에서 죽여 버릴걸!”
“객잔에 있는 다른 사람들까지 휘말리게 둘 순 없잖아요.”
강호인들끼리 치고 박고 싸우고 죽이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일반인을 끌어들이는 일은 피해야 했다.
‘객잔 주인이나 손님 중에 신교와 관계된 사람이 있을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아니라면 어떻게 이렇게 빨리 자신들을 찾았을까.
“아.”
“왜 그러십니까?”
“아뇨. 우리가 서호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을 가고 있고, 저쪽이 우릴 빨리 찾아낸 걸 보면 신교 역시 평소 같은 길목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던 게 아닌가 싶어서요. 서호와 소주는 아무래도 유명한 곳이니까요.”
“하아. 그건 그렇네요.”
“일단 서두르죠.”
이린의 말에 납득한 것과 동시에 저들이 자신들의 행로를 추측하는 것이 어렵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청휘와 자혜도 침음을 흘리며 몸을 일으켰다.
어찌되든 결국 가까이에 있는 가장 번화한 곳이 서호일 터였다. 이제 와 진로를 바꾸기도 어려우니 서두르는 것이 나았다.
하지만 지친 몸을 이끌고 죽자고 달린 것이 무색하게도, 도중에 나타난 수상한 무리가 기다렸다는 듯 세 사람의 앞을 가로막았다.
“멈춰라.”
앞으로 나선 것은 얼핏 보기에는 평범해 보이는 중년의 사내였다.
“쥐새끼들이 발이 빠르기도 하구나.”
“누구보고 쥐새끼라는 거죠?”
사내의 말에 당자혜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받아쳤다.
“아니라면 왜 슬금슬금 도망을 치지?”
“밤에 날붙이를 들고 살기를 뿌리며 방에 몰래 숨어드는 사람이 있을 때의 보편적인 반응 아닐까요?”
기왕 이렇게 된 거 차라리 시원하게 한판 붙고 싶어 하는 당자혜의 팔을 붙잡으며 이린이 물었다.
“대체 왜 우리를 쫓는 거죠?”
“묻고 싶은 게 있다.”
“그럼 속 시원하게 말씀하시죠.”
이린의 말에 사내는 등에 짊어지고 있던 도를 꺼내 들며 물었다. 이린은 순간 왕모묘에서 만난 사내를 떠올렸으나 전해지는 기세가 전혀 달라 곧 고개를 저었다.
“얼마 전 왕모묘에 들렀다는 게 너희들이냐?”
“그게 뭐가 문제죠? 사찰도 도관도 가고 싶으면 가는 거지.”
“그리고 혹 연가장과 관련이 있다든가?”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명백하게 이린을 노린 질문에 청휘가 선수 쳐 답하자 사내가 히죽 웃었다.
“그래, 아무래도 좋다. 하지만 그날 너희들이 왕모묘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는 스스로가 더 잘 알겠지?”
“그건 또 무슨 말이죠?”
“모르는 척해도 소용없다!!”
영문 모를 소리에 세 사람의 얼굴에는 불안과 의문이 가득했다. 이린의 머릿속 역시 복잡해졌다.
‘불이 난 것만이 아니라,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분명한 건 저들에게 진실을 설명한다 한들 믿어 줄 것 같지 않다는 것과 저들이 자신들을 쉽게 놓아줄 것 같지 않다는 것이었다.
‘어쩐다.’
설령 싸우지 않더라도 이린 혼자라면 떨쳐 내고 도망갈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 다 너무 지쳤어.’
아무리 대단한 세가의 자제들이라 해도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내내 달렸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피로가 쌓여 있을 터.
남궁청휘와 당자혜 역시 이린과 같은 생각을 하고 몰래 전음을 보냈다.
-연 소저, 혹시 상황이 어려워지면 먼저 도망치십시오. 연 소저의 경공이라면 저들이 따르지 못할 겁니다.
-위험하다 싶으면 먼저 도망쳐서 개방이든 어디든 도와줄 곳을 찾아요. 연 소저 혼자라면 달아나는 건 문제없겠죠?
남궁청휘도 당자혜도 무의식적으로 가장 어린 이린을 보호하려 앞으로 나서고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이린은 저도 모르게 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또, 이들에게 이런 말을 듣게 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