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Goddess RAW novel - Chapter 154
154.
“독안혈수가 죽었단 말씀이십니까?”
소식을 전해 들은 청운진인이 경악해 되물었다. 취영개를 비롯한 개방의 고수들이 심각한 얼굴로 답했다.
“목 없는 시체가 발견되었는데 남아 있는 한쪽 팔에 독안혈수의 특징이 분명히 남아 있었다고 하네.”
“아이들 말로는 누군가에게 혈교의 추적자들이 몰살당해서 그 일까지 자신들이 뒤집어썼다고 했는데, 동일인물이 한 짓인가?”
“대체 어떤 자의 소행일까요?”
남궁청운과 청운진인의 말에 취영개가 고개를 저었다.
“글쎄. 그것까진 알 수 없지.”
“거 쓸모없구먼.”
남궁청운의 시큰둥한 말투에 개방 고수들의 미간에 주름이 깊어졌다. 아무리 남궁세가의 자제라 해도 그렇지, 한참 어린놈이 건방지기가 이루 말할 데가 없었다.
“흥. 이 일로 남궁세가의 명성이 크게 올라갔으니 남궁 삼공자도 기쁘시겠소? 아직 약관도 안 된 소년이 혈교 장로의 팔을 잘랐으니.”
“독안혈수가 방심한 게지요. 게다가 독안혈수의 진면목은 그자가 조종하는 꼭두각시가 아닙니까? 젊은 시절 자신의 무위를 그대로 재현해 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보지 못했군. 늘 짊어지고 다닌다고 들었는데 왜 보이지 않았지? 혹시 그것도 남궁 사공자가?”
“글쎄… 어쩌면 독안혈수의 목을 베어 간 누군가가 그것 역시 처리한 걸지도 모르지.”
“하지만 확실한 건, 앞으로 남궁세가의 막내 공자가 주목받을 거라는 사실이군요.”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마지막 말은 생략했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이가 있을까.
개방의 고수들이 사람 들으라는 듯 저들끼리 떠들어 대자 남궁청운이 코웃음을 쳤다.
“혈교 찌꺼기들이 아무리 대단하다 한들 감히 남궁세가의 자제를 건드릴 수 있겠어?”
남궁청운의 광오한 말에 취영개를 비롯한 개방의 고수들은 걱정 반 근심 반인 속내를 숨기며 웃었다.
남궁세가 형제들이 막내 공자와 썩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을 모를 리 없는 만큼 남궁청운의 속 편한 태도를 어찌 해석해야 좋을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남궁청운이 제 형들에 비해 단순한 성정이긴 하지만 그래도 모를 일이지.’
“우리가 본 혈교의 잔당들 수 역시 적지 않았으니 조심하시는 것이 좋겠소.”
“어차피 남궁 사공자의 부상이 나을 때까지는 서호에서 움직일 수 없으니 선배님들의 배려를 받아들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아, 뭐 지켜 준다면 거절 않지.”
옆에 있던 청운진인이 웃으며 자연스럽게 권하자 남궁청운도 고개를 끄덕였다. 괜한 덤터기 쓰기 싫은 개방 고수들은 적당히 말을 얼버무렸다. 혈교는 개방의 오랜 적이지만 애들 뒤치다꺼리는 사절이었다.
“혈교가 어찌 이런 곳에서 당당하게 사람을 습격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고 보니 연 소협은 보이지 않는군요.”
“검각에서 파견된 고수들이 돌아간다고 해서 배웅하러 갔습니다. 서둘러 오신지라 오래 머무를 수 없다고 하시더군요,”
“듣던 대로 참 예의 바른 청년이로군요.”
개방도들은 남궁청운을 곁눈질하며 다들 내심 혀를 찼다. 기왕이면 그들도 남궁청운보단 연이현과 대화하길 원했지만, 검각이 재빠르게 연이현을 선점한 모양이었다.
개방도에게 객잔도 어울리는 공간이 아니라며 대화가 마무리되자 개방 고수들은 다시 찾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빠르게 사라졌다.
청운진인이 보기에는 남궁청운이랑 같이 있는 게 싫어서 저러는 거 같았다. 참으로 여러모로 쓸모가 많은 사람이었다.
“남궁 대협이 보시기에는 혈교가 다시 세 사람을 쫓을 것 같습니까?”
“바보가 아니라면 힘들겠지. 이제 셋 중 하나에게만 무슨 일이 생겨도 당연히 혈교의 일로 의심할 텐데. 당가와 남궁세가가 눈에 불을 켜고 살필 테니 지금보다 숨어 다니기 빡빡해질걸. 아직 세력 짱짱한 마교 놈들이라면 모를까. 심지어 목을 벤 놈 건 다른 놈들의 소행이잖아? 제가 했다고 나타나는 놈이 없다면 그놈들도 이상하다는 생각쯤은 하겠지. 게다가 애들 말로는 소주에서 꾸미는 일이 있다고 하니 여기에 신경을 쓰지는 못할 거다.”
“그렇군요.”
“갑자기 그건 왜?”
네가 내 설명이 필요한 배분은 아니지 않으냐는 남궁청운의 의문에 청운진인이 웃으며 2층 난간을 가리켰다.
“저기, 아가씨들이 외출을 바라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어서요.”
“기운도 좋지.”
“가만히 있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좀이 쑤신단 말예요.”
“게다가 지금 축제 기간이라고 밖이 요란하더군요.”
모처럼 축제 날짜까지 맞춰 서호에 왔는데 객잔 안에 처박혀 있기엔 혈기 넘치는 나이였다.
요 며칠간은 부상자들을 생각해서 그래도 다들 얌전히 있었는데 슬슬 한계인 모양이었다.
“연가네 꼬마 아가씨는?”
“당연히 나가고 싶어 하죠.”
“청휘는?”
“안 물어봤어요.”
매정하기도 하지. 청운진인의 중얼거림에 옆에서 백리한이 키득거렸다.
“안 물어봐도 알 테니 묻지 않았을걸. 하지만 확실히 오늘은 놓치면 좀 아까울 거야.”
“오늘 뭐 있어?”
“응. 그러니까 오늘은 나가서 밤에 돌아오면 딱 괜찮을 거 같아.”
일행들 중 가장 사정에 밝은 백리한의 말에 돌아온 연이현도 딱히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정말 나가도 괜찮겠어?”
“이젠 안 비틀거리거든.”
그야말로 의원이 혀를 내두를 회복력이었다. 이제는 멀쩡해졌다고 다시 뛰어다니겠다는 동생을 보며 한숨을 쉬던 연이현이 또다시 한숨을 쉬며 당부했다.
“오빠도 같이 갈 거니까. 옆에서 떨어지면 안 된다?”
“으음. 뭐 그래.”
사고 쳤으니 한동안 얌전히 지내야지. 고개를 끄덕이는 이린의 시선이 옷을 갈아입고 있는 이현의 가슴을 향하고 있었다.
“…린아, 시선이 이상한 곳에 가 있는 것 같은데?”
“으음. 아니야.”
시선을 피한 이린은 지레 찔려 꾸물꾸물 손을 숨겼다. 얼마 전 일어났던 뜻밖의 신체 접촉의 감각이 아직 지워지질 않은 탓이었다.
‘남자 가슴은… 원래 그렇게….’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으으음. 있지, 오빠.”
“응.”
“가슴 커?”
털썩.
“……아버지, 제가 눈을 뗀 잠깐 사이 린아가 이상한 길에….”
여동생의 충격 발언에 힘없이 무너져 내린 이현이 얼굴을 감싸며 아버지를 찾았다.
“아니, 그게 그렇게 충격받을 일이야?”
“아니야….”
그야 이린도 한창때니 이성에 눈을 뜰 때였다. 호기심이 생길 수도 있지.
‘아직도 마냥 어린애 같은데!’
이린이 맞선을 봐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라는 걸 모르는 바가 아니었지만, 본인 입에서 저런 구체적이고 적나라한 신체 부위가 나오니 정신적 타격이 컸다.
오빠가 받은 정신적 충격을 알지 못하는 이린은 그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냥 남자도 근육이 발달하면 가슴이 커지는 건가 싶어서….”
“그게 갑자기 왜 궁금해졌는데?”
“…….”
“…….”
오누이 사이에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똑똑-
“이린. 아직이에요?”
“아, 나가요.”
마침 자신을 부르러 온 당자혜의 목소리에, 이린은 후다닥 이현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현은 한숨과 함께 터덜터덜 뒤를 따랐다. 예상대로 이미 두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함께 여행을 하고 위기를 넘기며 부쩍 가까워졌는지 두 사람은 요즘 자주 붙어 다녔다.
‘유력한 용의자는 역시 한 명뿐인가.’
한숨과 함께 이현은 벗들이 기다리고 있는 1층으로 향했다.
같은 시각 이린에게 뜻밖의 호기심을 심어 준 인물은, 억울하게 연이현에게 점수가 깎였다는 것도 알지 못한 채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나도 갈 거야.”
“그럴 거라 생각은 했어, 움직여도 괜찮아?”
“가끔 좀 찌릿찌릿하긴 하는데 보기보다 그렇게 깊이 베인 건 아니라서.”
남궁수연의 말에 답하며 어깨를 당겨 보는 남궁청휘를 보던 이린이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무리하지 마세요. 남궁 공자”
“정말 괜찮으니 너무 심려 마세요.”
청휘는 이린과 시선을 맞추며 다급하게 말했다. 이린이 청휘의 부상을 저 때문이라고 자책하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까닭이었다. 그런 남궁청휘에게서 이린은 슬쩍 시선을 피했다. 안 그래도 방금 전 오빠한테 이상한 소릴 한 데다, 저지른 짓이 있어 얼굴 맞대기가 민망했다.
“뭐 괜찮으면 나가자고.”
“그래요. 본인이 무리하겠다는데 뭐.”
황보산과 제갈수원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두 사람의 의미 없는 대화를 잘랐다.
남궁청휘가 몸 던진 보람이 있는지 두 사람의 분위기가 꽤 애틋하지 않은가? 하지만 그 애틋함은 여럿이 있을 때는 민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니 넓은 세상에 풀어놔야지. 눈에 안 들어오게.
하지만 두 사람의 그런 깊은 뜻은, 방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보호자의 벽에 막혀 빛을 보지 못했다.
“피곤하거나 힘들면 말해야 해.”
“응.”
멀찍이 떨어져 있음에도 혼잡한 거리에서 이린의 모습은 확 눈에 띄었다.
남궁청휘는 그것이 자신의 눈에 사심이 섞여서가 아니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
“근데 이게 벌이야?”
“그래.”
연이현과 찰싹 달라붙어 앞서 걷고 있는 이린은 지금, 면사로 얼굴을 가리지 않은 상태였으니까.
덕분에 이린의 금빛 머리카락과 푸른 눈을 본 이들이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그 원인에는 옆에 있는 연이현 역시 얼굴을 가리고 있지 않은 탓도 컸다.
‘혹시 혈교 때문인가. 그자의 시체는 발견되었다지만 만에 하나가 있으니.’
가리고 다니느니 차라리 눈에 띄는 게 낫다는 뜻일까. 혈교 같은 집단이라면 감히 이렇게 시선을 모으고 다니는 이들을 습격할 생각은 하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이미 혈교가 세 사람을 쫓다 정파의 고수들에게 쫓겨났고 그 사실을 숨길 이유가 없으니.
‘숨겨 주지 않겠지…….’
실은 그 일 때문에 남궁청휘는 요 며칠 계속 머릿속이 복잡했다.
자신이 검기를 다룰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으니 형님들이 자신을 더욱 경계할 것이다. 거기에 청운 형님과도 어쩐지 조금 거리가 느껴졌다.
‘적어도 좀 늦게 알려지길 바랐는데.’
기껏 아버님께 청해 실력을 숨긴 보람이 없어졌다.
제갈수원이야 워낙 어린 데다 전공이 조금 달라 신경 쓰지 않는 듯했지만, 황보산은 그 사실을 전해 듣고 약간 복잡한 얼굴이었다.
다른 이들과는 달리 일행들 중 황보산만이 황보세가의 적장자(嫡長子)인 소가주였다. 설령 그렇지 않다 해도, 또래인 남궁청휘가 월등히 뛰어난 것이 달가울 리는 없었다.
‘후회하지는 않지만.’
아마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같은 행동을 하겠지. 그때 독안혈수를 공격하지 않았다면 그자는 이린을 공격했을 테니까.
어째서인지 줄곧, 독안혈수의 살기는 이린을 향하고 있었다.
“이거 먹어 볼래?”
“응.”
연이현이 저자에서 산 나비 모양의 설탕 과자를 이린에게 건네주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린은 금색으로 투명하게 반짝이는 설탕 과자를 햇빛에 비춰 보며 까르르 웃었다. 어쩐지 오라버니와 함께 있을 때의 이린은 자신과 함께 있을 때보다 더 밝아 보였다.
“뭐야, 부럽나?”
“아, 아닙니다….”
남궁청휘는 자신의 옆에 붙어 있는 노악의 말에 고갤 저었다.
연이현이 이린에게만 신경 쓰고 있는 듯 보이지만 현재 남궁청휘에게는 노악이, 당자혜에게는 백리한이 각각 붙어 부상자를 보호하고 있었다.
청휘의 옆에 노악이 있는 것은 아무래도 덩치 때문인 듯했다.
‘올려다보려니 낯서네.’
남궁세가 사람들도 대부분 키가 크지만 대체로 남궁청휘와 엇비슷하거나 작았다. 노악 정도로 큰 사람은 본 적이 없어서 이 눈높이는 조금 신선했다.
자신을 보는 시선을 눈치챘는지 노악이 피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