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Goddess RAW novel - Chapter 155
155.
“연이현 때문에 이린 옆에도 못 가서 실망이 크겠군.”
“그렇지 않습니다.”
“이해하게. 저 녀석도 동생이랑 같이 나오는 걸 꽤 기대했거든.”
“괜찮습니다.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노악 소협 좋은 분이네.’
별로 대화해 본 적은 없지만 이현의 다른 벗들에 비해 소탈하고 까다롭지 않은 사람 같았다.
“동생 데려가 볼 곳은 자기가 먼저 가 봐야겠다고 사람을 엄청나게 끌고 다녔지….”
하지만 곧 이어지는 연이현의 만행 아닌 만행에 대한 폭로를 들으며 남궁청휘는 확신했다.
‘푸념이 하고 싶으셨구나.’
덕분에 남궁청휘는 뜻밖에 연이현이 얼마나 여동생 팔불출인가를 들으며 이린을 눈으로 좇았다.
본인은 전혀 자각하지 못하는 것 같지만 이린에게 시선을 보내는 사내는 적지 않았다.
다만 추파를 던지는 사내들마다 곁에서 다정하게 걷고 있는 연이현의 존재와 얼굴을 확인하고 빠르게 고개를 돌릴 뿐.
가끔 자기 객관화가 부족한 이들도 물론 있었으나 이현이 싱긋 웃으며 눈을 마주치면 그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돌렸다.
그 광경을 본 노악이 남궁청휘의 심경을 대변했다.
“저놈은 동생 시집보낼 마음이 없는 게 틀림없어.”
‘동감입니다.’
남궁청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회복되었다지만 부상자들이 섞여 있으므로 괜히 사람 많은 곳을 돌아다니다 부딪치지 않도록 일행은 배를 타고 호숫가를 돌기로 했다.
호수에는 관광객들을 태우기 위한 나룻배들이 여럿 있었다. 배는 제법 커서 성인 10명 정도는 너끈히 태울 수 있을 듯했고, 백리한은 편의를 위해 미리 그중 하나를 빌려 두었다.
“동정호에서 본 배랑은 비교도 안 되게 소박하네.”
“호수 규모도 비교가 안 될걸 뭐.”
“동정호와 규모로는 비할 수 없을지 몰라도 서호만큼 아름다운 풍경은 어디에서도 보기 힘드실 겁니다!”
뱃사공은 자신만만하게 소리치며 일행을 안내했다.
“저기 보이는 것이 서호 10경 중 하나인-”
노악은 뱃사공이 설명할 때마다 아이들과 똑같이 목을 길게 빼며 감탄했다. 그 모습을 보며 연이현과 백리한이 재미있다는 듯 쿡쿡 웃었다.
이린도 그런 노악을 보고 웃으며 물었다
“노악 아저씨는 전에 오빠랑 같이 안 왔어요?”
“어쩌다 보니.”
“친구와 서호에 오는 것보다 좋은 일이 있었… 알았어. 말 안 할게”
뭔가를 암시하는 이현의 말에 다들 대충 감이 잡혀서 오오, 하고 감탄이 흘렀으나 정작 노악 본인의 표정이 썩 좋질 않았기에 곧 모르는 척 고개를 돌렸다.
“넌 절대 내 혼례에 초대 안 한다.”
“누가 들으면 오해할 소리를. 그때야 내가 어려서 그 아가씨가 오해한 거지. 지금은 오해할 리가 없잖아.”
“또 안 그러리란 보장은 있고?”
“오해받은 거 알고도 따라가서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네가 나빠.”
“뭣,”
대화만으로 대충 상황 파악이 가능해지자 뱃사공조차 조용히 귀를 기울이는 가운데 뜻밖에도 백리한이 두 사람의 대화를 끊었다.
“크흠. 슬슬 배고픈데 그만 좀 쉬는 게 어때.”
“아, 그건 저도 찬성이요.”
제갈수원이 재빠르게 손을 들었다. 눈치 빠른 뱃사공 역시 얼른 입을 열었다.
“저쪽 근처에 유명한 주루와 객잔들이 모여 있습죠.”
“잘 됐네. 다들 상관없지?”
대답이 채 나오기도 전, 뱃사공은 노점과 식당이 모여 있는 쪽으로 배를 몰기 시작했다.
곧 뭍에 도착하자 이린은 당자혜를 부축했다. 백리한이 옆에 있었지만 역시 여자끼리가 편했다.
“저는 괜찮은데요.”
“잡으세요.”
처음엔 사양했지만 이린이 손을 내밀자 당자혜도 그저 웃으며 그 손을 잡고 배에서 내렸다. 이현은 그 광경에 훈훈하게 웃으며 뱃사공에게 은자를 내밀었다.
“남궁 공자 괜찮으세요?”
이현이 뱃삯을 치르는 사이 청휘에게 다가온 이린이 걱정스레 묻자 청휘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움직이지 않는 게 가장 좋겠지만 그 역시 방 안에 갇혀 지내는 생활이 익숙하지 않은 몸이었다.
“가만히 있는 쪽이 더 병이 날 것 같아서요.”
“무리하진 마세요.”
“연 소저야말로 이렇게 움직이셔도 괜찮으신 겁니까?”
“저는 완전히 괜찮아졌어요.”
이린은 원흉인 본인보다 다른 두 사람이 더 많이 다친 것 같아 맘이 편치가 않았다. 본인들은 이 정도 상처는 별거 아니라고 담담했지만 원인 제공자의 마음이 편할 리가.
두 사람이 소곤거리는 것을 본 당자혜가 시야를 가리듯 연이현에게 다가가 이탈을 선언했다.
“저는 식사 전에 잠시 다른 곳에 들르고 싶은데요.”
혈교와의 추격전으로 몸이 가벼워졌다고 한탄하던 당자혜였으니 어디를 가겠다는 건지 알 것 같아 이린이 손을 들었다.
“앗, 그럼 저도 같이 갈래요.”
“됐어요. 아팠던 사람한테 좋은 곳도 아닌걸.”
“…그럼 제가 동행하지요. 백리한, 노악. 먼저 영월루로 가 있어. 나중에 따라갈게.”
잠시 갈등했으나 남궁청휘와 당자혜의 부상은 이린에게도 책임이 있는 만큼 이현은 아직 부상자인 당자혜를 혼자 보낼 수 없었다. 이현 역시 당자혜가 뭘 사러 가겠다는 건지 예상하지 못할 만큼 눈치가 없지는 않았다.
이현은 자신이 곁에 없으니 걱정인지 이린의 죽립 위로 다시 면사를 덮었다.
시비 걸리기 참 좋은 용모였지만 본인을 포함해 옆에 이렇게 칼 찬 사람이 가득인데 그렇게 걱정할 필요가 있을까 의아해하며 이린은 가볍게 면사를 흔들었다.
“오빠 영월루가 어딘지 알아?”
“전에 한번 와 본 적이 있기도 하고, 워낙 유명한 곳이라 찾기 어렵지 않을 테니 걱정 마.”
청휘는 문득 예전에 고모인 제갈윤위가 가르쳐 준 주루의 이름 역시 동일하다는 걸 떠올렸다.
“영월루가 굉장히 유명한 곳인가 봅니다. 저도 추천받았는데.”
“어, 저희도요. 동파육이 맛있다나 봐요.”
“객잔 음식이랑은 또 다르겠죠? 항주 음식은 워낙 유명하기도 하고.”
연이현과 당자혜를 보내고, 일행은 왁자지껄 떠들며 백리한을 따랐다.
“백리 소협께서는 서호에 익숙하시네요.”
“이쪽 지방 태생이니까. 그럭저럭 익숙하지.”
능숙한 길 안내에 감동한 남궁수연의 말에 백리한이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아, 맞다. 절강 출신이시라고 하셨죠.”
“잊고 있었냐.”
“그러고 보니 말씨에 이쪽 억양이 있네요.”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 웃는 이린의 죽립을 손으로 툭 튕기며 백리한이 노악을 돌아봤다.
“역시 축제날이라 사람이 꽤 많은데. 미리 예약은 해 뒀지만 혹시 모르니 자리 있나 좀 보고 올게. 여기서 애들 좀 보고 있어.”
“오냐.”
백리한이 사라지고 일행은 주변을 구경하며 삼삼오오 모여 떠들어 댔다. 거리에는 노점이 많아 어딜 가나 사람이 붐비고 있어 아이들이 이리저리 힐끔대며 구경을 했다.
노악은 일단 시야에만 있으면 제지하지 않는 편이라 아이들을 적당히 풀어놓았다. 다만 한 사람만은 붙잡았다.
“자네는 아직 환자니 가능한 움직이지 않는 게 좋아.”
“네.”
이린을 뒤따르려던 남궁청휘는 노악의 걱정 어린 제지에 멈춰 섰다. 사람이 많으니 잘못 부딪히면 상처 부위를 자극할 수도 있었으므로 순순히 말을 따랐다. 괜찮다는 말이 거짓은 아니었으나 건드려서 좋을 건 없었다. 황보산도 구경에는 흥미 없는지 두 사람 곁에 남았다.
“같이 구경이라도 하지, 왜?”
“부상자가 말이 많아.”
그렇게 말하는 황보산의 시선은 남궁청휘의 부상당한 어깨를 향하고 있었다. 걱정과 호승심이 섞인 복잡한 표정을 보며 남궁청휘는 머쓱하게 웃었다.
반면에 구경 다니기 좋아하는 세 사람은 근처를 여기저기 구경했다. 그러다 문득 유난히 사람이 모여 있는 것을 본 제갈수원이 호기심에 다가갔다.
제갈수원이 먼저 사람들 사이로 끼어들고 수연과 이린도 슬쩍 뒤를 따랐다.
“무슨 일이래요?”
“누가 지나가던 무림인한테 잘못 걸렸나 봐.”
“거 시원하게도 패네.”
고개를 들이미니 어떤 공자 하나가 사내들을 무자비하게 패는 모습이 보였다.
이린은 언젠가 이런 광경을 본 적이 있는 듯한 기시감을 느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짓을 했길래 저렇게 패는 건가요?”
“잘 모르겠지만 지금 맞고 있는 저치가 패고 있는 저 공자랑 부딪쳤나 봐. 원래 그리 질이 좋은 녀석은 아니니 시비라도 걸었겠지.”
“아니 아니, 저놈이 거지 꼬맹이 하나 못살게 굴다가 저 공자랑 꼬맹이가 부딪혀서 옷이 더러워졌거든. 배상하라고 했더니 도리어 욕하고 덤벼들다가 저 꼴 난 거지.”
“저 잘났다고 패악 부리다 잘못 걸렸구먼. 평소 주먹 좀 쓴다고 으스대고 다니더니.”
친절하게 설명해 준 이가 손으로 가리킨 곳에는 일방적으로 처맞고 있는 사내와 그를 패고 있는 어느 귀공자가 보였다.
죽립에 면사로 얼굴을 가린 귀공자는 차림새와 어울리지 않는 악랄한 손속으로 사내를 패고 있었다. 사람을 패는 중이라기엔 우아해 보이는 몸놀림을 본 제갈수원은 감탄하며 사람들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와아. 아주 고루고루 제대로 패네요.”
“그런데 저거, 저대로 둬도 될까요?”
“으음.”
지금 맞는 놈도 딱히 좋은 놈들 같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백주대낮에 사람이 맞아 죽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사람들도 맞는 사내들의 상태가 점점 심각해지자 괜히 엮이고 싶지 않아 슬슬 피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앞으로 나서는 것과 비슷한 위치가 되어버렸다.
“사, 살려….”
퍼억!
“왜, 남을 팰 때는 네가 맞을 생각도 했어야지. 안 그래?”
“저기, 그쯤 하시는 게 어때요?”
“뭐?”
갑작스런 이린의 목소리에 근처에 있던 구경꾼들이 후다닥 물러났다. 덕분에 갑자기 청년과 정면으로 대치하게 된 이린은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청년 역시 이린의 허리에 걸린 검을 보고는 피식 웃으며 손에 들려있던 사내를 내던졌다.
“흐음. 그래, 이놈보단 네 쪽이 더 재밌을 거 같다.”
타악!
그리고 다짜고짜 이린에게로 달려들며 손을 뻗었다. 살의는 없어 보였으나 명백하게 시비가 섞인 공격이었다. 한숨과 함께 가볍게 쳐낸 이린은 이어지는 공격을 가볍게 피하며 어이없는 목소리로 외쳤다.
“아니, 처음 본 사람한테 다짜고짜, 당신은 정도라는 것도 몰라요?”
“나한테 그런 말을 한 여자는 네가 두 번째…가 아니네?”
사내의 공격을 피하는 이린의 면사가 살랑거리자 청년의 눈에 금발과 푸른 눈이 설핏 들어왔다.
묘한 어투에 이린이 의아해하며 다시 한 걸음 물러섰지만 청년은 즐거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그래, 이런 여자가 흔치 않다 했지.”
청년은 얼굴을 가리고 있던 죽립을 시원하게 벗어 던지고 이린에게 다가왔다. 갑작스레 드러난 얼굴에 주변에 남아 있는 구경꾼들이 하나같이 놀라 숨을 삼켰다. 사내는 20대 초반 정도의 보기 드문 미남자였다.
‘어?’
하지만 이린이 놀란 이유는 남들과는 사뭇 달랐다.
분명 잘생긴 얼굴이긴 했으나 미추(美醜)보다도, 그 얼굴이 상당히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시원스럽게 웃는 입꼬리가 묘하게 요사스러운 이런 미남자를 잘못 볼 리가 없었다.
‘곽천영!’
과거 자신의 약혼자였던 사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