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Goddess RAW novel - Chapter 163
163.
“소흥(绍兴)?”
“그래. 백리한의 고향이거든.”
“아, 백리한 아저씨네 집이 걱정돼서 가는 거구나?”
“아저씨라고 부르지 마. 꼬마 아가씨.”
백리한의 말을 무시하며 연이현이 고개를 저었다.
“원래 가 보려고 했어. 소흥(绍兴)의 수향마을이 유명하거든. 조금 더 가면 바다도 볼 수 있어서 이 기회에 바다도 보고 가면 좋겠다 싶었는데….”
이현이 왜구를 떠올리며 말을 흐리는 것과 대조적으로 아이들은 흥분해서 외쳤다.
“와, 바다! 가 보고 싶어요!”
“저도요, 저도요!”
노악과 심여준도 고개를 끄덕였지만 역시 난감한 얼굴을 했다.
“우리도 바다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하지만 시기가 좀 안 좋은걸. 물러났다고는 하지만 어디 숨어 있다 또 나타날지도 모르고.”
“이 정도 무인이 이렇게 잔뜩 모여 있으면 어지간한 건 별로 무섭지는 않을 거 같긴 하다만….”
백리한은 모여 있는 면면을 살피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남궁청운, 청운진인, 연이현, 노악, 백리한, 심여준은 이미 별호도 있는 무인이었다.
거기에 당자혜, 남궁청휘, 남궁수연, 황보산, 연이린, 제갈수원도 아직 어리고 경험이 부족한 편이지만 산적이나 왜구와 싸울 때 보면 전혀 밀리지 않았으니 크게 걱정할 일은 좀처럼 없었다.
“나도 가 보고 싶군.”
“곽 공자는 할 일 없어요?”
“지금 당장은. 그리고 살면서 바다는 한 번쯤 봐 두고 싶거든.”
이린의 지인이라며 따라온 곽천영과 그의 일행들도 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건지 하나같이 상당히 강했다.
걱정이라면 진사린과 보좌들 정도일까.
‘진사린과 그 보좌들은 거의 일반인이라 좀 걱정스럽지만 호위의 수준이 보통이 아니니.’
사린의 호위들은 호북에서 이름을 날리던 무인들로 개인의 호위라기에는 지나치게 호화스러웠다.
‘…그런데, 대체 어쩌다 이렇게 대인원이 된 거지.’
당연히 길 안내를 하게 된 현지인 백리한은 마음이 복잡했다. 이렇게 북적거리는 인원을 끌고 다닐 생각은 당연히 없었다.
소흥은 항주 서호와 바로 옆에 붙어 있었으므로 일행이 소흥으로 넘어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다만 백리한의 고향까지는 조금 거리가 있었는데, 그 지역은 수로가 복잡하게 이어져 있는 곳이라 중간중간 배를 타고 이동했다.
사람이 많다 보니 몇몇씩 나눠 타고 백리한의 뒤를 따랐다.
다들 이런 식으로 된 마을은 처음이라 신기한 듯 두리번거렸다.
“운치 있네요.”
“뭐, 보통이지.”
수로 옆에 사람들이 과일이니 음식들을 팔고 있어 활기찼다. 서호와 꽤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런가, 정말 이쪽은 아무 일도 없어 보였다.
“여긴 평화로워 보이네요.”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길 안내를 하느라 직접 삿대를 젓는 백리한을 알아보는 이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아이고, 백리 삼공자님! 언제 돌아오셨습니까?”
“오셨으니 한 병 드셔야죠?”
“역시 아저씨가 뭘 좀 안다니까!”
백리한은 익숙하게 배에서 훌쩍 뛰어내려 상인이 내민 술병을 낚아채며 은자를 던졌다. 술값을 받은 상인이 웃으며 덧붙였다.
“삼공자님, 대부인께서 기다리십니다!”
“아, 안 들려!!”
“백리 소협께서도 삼공자(三公子)셨군요.”
주변에서 남궁 삼공자 남궁청운과 백리한을 번갈아 보며 둘이 잘 맞는 이유가 또 있었다고 속닥거릴 때였다.
“어? 뭐야.”
“…….”
백리한을 발견하고 떨떠름한 목소리를 내뱉은 것은 백리한과 눈매가 꼭 닮은 젊은 여인이었다.
한눈에 봐도 백리한과 혈연임을 알 수 있는 여인은 술병을 든 백리한을 보고는 떫은 얼굴로 인사 대신 당부를 남겼다.
“엄마가 기다리시니까 집에는 좀 들러라.”
“…야.”
그리고 백리한을 보지 못했다는 듯 고개를 돌리고 제 볼일을 보러 달려갔다.
“저 돼지가….”
“누가, 돼지야!!”
백리한의 작은 중얼거림을 알아들은 여인이 득달같이 달려와 발차기를 날렸다.
“흥.”
그리고 백리한은 예상했다는 듯 갑작스러운 공격을 가뿐하게 피해 냈다. 기세와는 달리 안타깝게도 여인의 무술 실력은 썩 뛰어나지 못했다.
두 사람의 용모와 짧은 대화만으로 오누이라는 사실을 알아챌 수밖에 없는 일행은 끼어들기도 뭣해 난감한 시선을 교환했다.
“봐라. 저게 평범한 남매 사이지. 너희는 좀 이상해.”
“음….”
노악의 말에 이현은 말을 흐렸다. 백리세가의 남매는 그야말로 손과 발이 오가는 정다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현과 대련은 종종 해 왔지만 저런 식으로 거칠게 놀아 본 적은 없는 이린이 노악의 말에 문화 충격받은 얼굴로 물었다.
“정말? 이상한 거야? 나도 그럼 오빠랑 저렇게 놀아야 돼?”
“아냐. 우리 린아는 이대로 좋아. 백리한이 아직 철이 덜 들어서 누이동생이랑 저러고 노는 거지.”
그렇게 말하며 이현은 세상 물정 어두운 이린의 머리 대신 면사를 덮어 놓은 죽립 위에 손을 얹어 토닥였다. 왜구에게 집중 공격을 받는 것을 본 이후 이현은 이린에게 다시 면사를 권했다. 다행히 이린은 그 일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야, 연이현!”
“연이현?”
물론 백리한은 동생과 놀아주는 와중에도 귓가에 들려온 벗의 말에 거세게 반발했고, 연이현이라는 이름을 들은 여인은 마지막까지 방심한 백리한의 머리를 가격한 후, 몸을 황급히 돌려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린과 마찬가지로 이현 역시 서호에서 떠날 때 다시 면사를 썼기에 호남제일미남자의 얼굴을 보지 못했던 여인은, 연이현이 면사를 걷어 자신에게 묵례를 하자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했다.
“어머, 역시 호남제일미남자…!!”
“으에웩….”
동시에 옆에 있던 백리한은 여동생의 수줍어하는 모습에 몸서리치며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머리를 걷어차인 것보다 이쪽의 충격이 더 컸다. 발이나 주먹은 피하기라도 하지, 정신적 타격은 피할 방도조차 없었다.
“꺼져.”
“닥쳐.”
아직 끝나지 않은 남매 싸움을 하며 저들 딴에는 작은 소리로 속닥거리는데 안타깝게도 일행 중 그 작은 소리를 듣지 못하는 이가 드물었다.
“백리한이 왜 그렇게 이현이 동생보고 얌전하다고 했는지 알 거 같군.”
“이건 그냥 가풍의 차이도 있지 않나 싶습니다만.”
심여준의 감탄에 청운진인이 애써 정정했다.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오라버니가 이렇게 손님을 잔뜩 모시고 온 것은 처음이라 당황했지 뭐예요. 미리 언질이라도 좀 해 줬으면 좋았을걸. 오라버니, 소개, 소개하라고 얼른.”
“하아. 보면 알겠지만 이쪽은 내 여동생, 백리설.”
상당히 뒤늦은 간결한 소개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너 그만 가라.”
“어머나, 셋째 오라버니도 참. 여기까지 와서 집에도 안 올 생각이었어? 손님들도 계신데 당연히 우리 집으로 모셔야지. 응?”
“인원이 많아 폐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소흥의 백리세가가 손님 대접을 못 할 정도로 작지 않으니 걱정 마세요! 뭐 해, 요. 오라버니?”
호칭은 오라버니였으나 손은 거칠게 백리한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고 있었다. 백리한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표정으로 여동생과 함께 터덜터덜 배에 올랐다.
“흐음. 저쪽이 말로만 듣던 여동생 현실 편인가.”
“저쪽이 현실이면 이쪽은 뭔데요?”
남궁청운의 중얼거림에 제갈수원이 연씨 오누이를 가리키며 물었다.
“희망 편?”
“오라버니 환상 편이겠죠.”
백리 남매와 다른 배를 탄 이들은 작은 소리로 소곤거리며 뒤를 따랐다.
“어머, 어머? 이게 누구야. 우리 탕아(蕩兒)가 어쩐 일로 벌써 집에 왔어?”
“어머니.”
백리한은 거침없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이마를 짚었다. 남매간의 우의를 다지는 시간이 너무 길었던 걸까? 어느새 소문이 퍼졌는지 백리세가에서는 이미 손님맞이 준비가 한창이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시선은 이미 아들이 아닌, 처음 보는 미남자의 얼굴을 향하고 있었다.
“세상에, 네가 정말 호남제일미남자와 친구였니? 난 농담인 줄 알았는데.”
“어머니.”
“집에 데리고 온 건 처음이잖니.”
백리한이 뭐라 말을 더하기 전에 백리한의 모친은 몇 개월 만에 보는 아들을 밀쳐내고 손님부터 맞았다.
“만나서 반가워요. 나는 백리한의 어미인 여홍려라고 해요. 먼 길 오느라 시장할 텐데 식사부터 준비하는 게 좋을까요?”
“기꺼이요. 부인!”
일행 중 가장 어린 제갈수원의 애교 섞인 반응에 부인은 기뻐하며 일행을 인도했다.
백리세가 안주인의 환대를 받고 자신들의 소개까지 마친 일행은 백리한의 어머니 이름이 어쩐지 익숙해 기억을 더듬었다.
“저기, 혹시 전에 들은 그 검성….”
“아.”
이린도 그제야 여홍려라는 이름을 어디서 들었는지 깨달았다.
항주에서 영월루에 갔을 때 들었던 검성에 관한 염문의 주인공 중 하나!
그때 백리한이 왜 그렇게 화를 냈는지 이제야 이해가 갔다. 그리고 정작 본인의 헛소문에 대해, 여홍려는 재미있다는 듯 히죽 웃었다.
“어머, 그 얘길 들었군요. 재미있는 소문이죠?”
“어처구니없는 헛소문이지.”
백리한의 말에 여홍려가 보이지 않게 아들의 옆구리를 꼬집었다. 어머니의 훈육을 무시할 수 없어 그대로 고통을 받으려니 백리한의 얼굴이 슬쩍 일그러졌다.
“하지만 젊었을 적에 검성을 만난 적이 있는 건 사실이에요. 정말 다정다감하고 배려가 넘치는, 매력적이고 멋진 분이었죠. 가수고 뭐고 때려치우고 따르고 싶었는데, 소저 같은 가녀린 아가씨가 따라와 봤자 고생만 할 테니 데려갈 수 없다며 차였답니다.”
“가수요?”
“어머나, 소문이 정말 어설펐나 보군요. 당시에 서시를 닮은 서호의 가희(歌姬), 이 여홍려를 모르는 이는 없었답니다.”
뜻밖의 과거에 다들 신기한 듯 눈을 깜빡였다. 그야 미인이었지만, 이런 세가의 안주인이 가수 출신이라니 조금 드문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검성을 따라가겠다고 한 걸 보면 그땐 아버지랑 혼인할 생각이 없으셨나 봐요? 두 분이 어릴 적부터 아는 사이셨다면서요.”
“그땐 뭐, 이것저것 있어서.”
딸의 말에 어깨를 으쓱이는 백리세가의 안주인에게 제갈수원이 물었다.
“검성은 왜 여기까지 왔어요? 역시 관광?”
“글쎄요. 저도 잘은 모르지만 친구분들과 함께 뭔가 찾는 게 있었던 것 같아요. 근방 지리 같은 것을 물어보곤 하셨거든요.”
“찾는 거요?”
“그리고 술도 좋아하셨으니 소흥을 찾은 건 확실히 나쁘지 않은 선택이죠. 자, 소흥의 특산주인 소흥주는 맛보셨나요?”
“와.”
이린이 감탄하며 술잔을 들자 이현이 심려 섞인 눈길을 보냈으나, 백리한이 괜찮다고 손을 내저었다. 이린의 주량은 약하지 않았고, 백리한도 이린보다 어릴 적부터 소흥주를 마셔 온 몸이었다.
‘과보호.’
백리한이 소리 없이 입을 벙긋거리자 이현 역시 한숨을 쉬며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참, 아버님과 형님들은요?”
“상공(相公)께선 요새 어수선하다고 해서 출타 중이시란다. 네 형들은 곧 돌아올 거고.”
그리고 여홍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백리한의 형들이 도착했다.
“어머님, 셋째가 돌아왔습니까?”
“아, 큰 오라버니. 작은 오라버니.”
“막내도 와 있었구나. 저 녀석이 너에게는 연락을 했더냐?”
“그럴 리가요.”
백리세가의 첫째는 다른 형제들과 달리 평범하고 진중한 인상의 사내로 백리한과는 제법 나이 차가 있어 보였다. 반면에 둘째는 백리설과 마찬가지로 백리한과 조금 닮은 구석이 있어 형제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백리한의 형들은 동생이 불쑥 데려온 손님들에게 정중히 인사를 한 뒤 편히 즐기시라며 어머니를 모시고 사라졌다.
남궁세가 형제가 청휘만 빼고 모두 닮았던 것을 떠올린 이린이 별생각 없이 중얼거렸다.
“첫째 형님만 빼고 다른 형제분들은 다 닮으셨네요.”
“아, 그건 큰형님만 어머니가 달라서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