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Goddess RAW novel - Chapter 165
165.
융숭한 대접을 받은 일행은 다음날 바로 출발했다.
백리세가의 안주인은 모처럼 찾아온 손님들이 하룻밤 만에 떠난다는 말에 아쉬워하면서도, 막내딸의 여행길에 동행한다는 사실에는 안도했다. 옆에 있는 백리설의 오라버니들은 한숨을 푹푹 쉬면서도 동생에게 막내를 부탁했다.
“눈 떼지 마라.”
“술 작작 마시고.”
“형님들도 어지간히 하시죠.”
백리세가의 첫째와 둘째의 얼굴 생김새는 별로 닮지 않았지만 동생들을 보는 눈빛만은 똑 닮아 있었다.
“이상한 데로 빠지지 말고. 모처럼 셋째 오라비와 함께 있으니 말 잘 듣고, 떨어지지 말고.”
“늘 가는 길인걸요. 제가 길 안내를 해야 한다고요. 그럼 다녀올게요, 어머니.”
걱정이 끊이질 않는 어머니를 끌어안고 강제로 말을 끊은 백리설이 희희낙락 웃으며 매정하게 집을 떠났다.
“나 저 비슷한 장면을 본 적 있는 거 같은데.”
“어, 나도.”
“어느 집이나 딸 있는 보호자들은 비슷한 거지.”
아저씨들의 감상을 뒤로하고 대규모의 일행은 길을 떠났다.
해안가로 나가 해로로 가는 방법도 있었지만 최근 왜구의 습격으로 주변이 흉흉한지라 육로를 통하기로 했다.
“수로가 이어져 있으니 육로도 아니잖아.”
“대신 빠르죠.”
“게다가 힘센 사람들밖에 없으니 뭐.”
덕분에 일행은 생각보다 금방 녕파에 도착했다.
“돌아가는 길에는 다들 이 산에 있는 암자에서 언제나 신세를 지거든요. 비구니 스님들만 모인 곳이라.”
“우리는 묵을 수 없는 곳이군.”
“그래도 검각의 제자들은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는 꼭 들르기로 되어 있으니까요. 만약을 위해.”
백리설의 말에 다들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검각의 제자들이 돌아오는 길에 무슨 일이 생기지 않았나 확인하기 위해서일 듯했다.
“그럼 우리도 오늘은 이 마을에서 하룻밤 묵도록 하죠.”
“아, 혹시 제자가 아닌 사람이 신세를 져도 되나요?”
“그럼요. 게다가 여기 비구니 스님께서 잠자리 날개 같은 천을 짜내기로 유명하니까 구경하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걸요.”
“뭐? 나도 가 볼래!”
산을 올라야 한다는 사실에 조금 주저하던 사린도 백리설의 마지막 말에 동참을 결정했다.
“오는 길 내내 비단이니 뭐니 유명하다는 생산지는 다 찾아서 유통로 확인하더니.”
“저 상인 정신은 여전하시네요.”
남궁수연과 제갈수원이 수군거리거나 말거나 사린은 호위 중에서 여성 무인 한 명만 동행하기로 하고 나머지 일행은 아래에서 대기하도록 당부했다.
“우리는 그냥 산 아래서 기다릴까.”
“젊은 남자분들이 오는 걸 좋아하진 않으실 테니. 그게 좋겠어요.”
그렇게 말하는 백리설의 시선은 연이현을 향하고 있었다.
“본인이 의도한 건 아니라도 수도에 방해가 될 수 있거든요.”
“…알겠습니다.”
일행은 내일 객잔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산길 초입에서 헤어졌다.
중간까지라도 따라가려던 연이현은 친구들에게 강제 연행되었다.
“연 소협은 여전하시네요.”
“연 소저가 걱정되시는 거겠죠.”
당자혜와 유영의 말에 이린만 고개를 푹 숙였다.
산길은 제법 가팔랐기에 체력의 개인차가 두드러졌다.
“헉, 헉. 아직, 멀었나요.”
“역시 사린에게는 조금 힘든가.”
“아니, 괜찮아, 갈 수 있어.”
“후우. 도중에 찻집이 하나 있으니 조금만 참아요.”
조금 힘들어 보이지만 그럭저럭 잘 따라가고 있는 백리설을 본 사린이 한탄했다.
“왜, 다들 그렇게, 멀쩡한 거야!”
“평소 단련해 온 것도 있지만.”
“역시 타고난 것도 무시 못 하죠.”
진사린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무가 출신. 밥 먹고 하는 일이 무공 수련인 사람들이니 진사린이 억울해할 일은 아니었다.
“나도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체력은 있는 편이었군요.”
“기초 체력과 무술에 대한 재능은 조금 별개죠. 특히 자당(慈堂)께서는 뛰어난 가수셨다니 무술에는 재능이 없어도 체력은 떨어지지 않으셨을 겁니다. 폐활량도 좋으셨을 것 같고요.”
당자혜의 말에 백리설이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왕이면 아버지를 닮기를 바랐습니다만. 제 마음대로 되는 일은 아니죠.”
“백리 공자의 말씀을 들으면 노래에 재능이 출중하신 듯한데 전혀 관심 없으세요?”
“집이나 검각에서 가족들이나 사자매들과 함께 있을 때 부르는 건 좋아해요. 하지만 가수로 무대에 서게 되면 어떤 피곤한 일이 벌어질지 잘 아는걸요. 아버지가 백리세가의 가주이시니 돈을 빌미로 천박한 요구를 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이상한 사람은 얼마든지 붙을 수 있죠. 어머니는 아버지와 혼인하고도 수년간 추종자라며 따라다니는 사내들 때문에 외출도 마음 편히 못 하셨어요. 더러운 소문도 많이 붙었고요.”
“검성에 관한 소문밖에 못 들었어요.”
“같은 헛소문이라도 그건 그나마 양호하죠. 검성의 명예가 있으니까요. 안 그래도 어머니는 원래 좋은 집안 출신도 아니라서 두 분이 젊었을 적에 한 번 헤어지셨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아버지의 첫째 부인께서 일찍 돌아가신 것도 말이 많았죠.”
“으음.”
생각보다 복잡한 가족사에 다들 말을 아꼈다.
“뭐 큰오빠랑 둘째 오빠랑 나이 차가 꽤 나고, 어머니는 계속 서호에 계셨다니 찝찝한 일은 없었을 거라 생각하지만요. 주위에서 보기엔 한마디씩 하고 싶어지는 모양이에요.”
“아, 역시 나이 차가 많이 나나요?”
“큰오빠랑 셋째 오빠는 거의 연 공자와 이린 나이 차 정도 될걸요?”
그럼 백리설과는 대체 몇 살 차이람.
헐떡거리는 진사린을 호위에게 맡기고, 느긋하게 대화하며 한창 산길을 오르다 보니, 도중에 정말 백리설이 말한 노상 찻집이 보였다.
일행이 기뻐하며 다가가는데 안에서는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찰에 방문하는 길인데 술이라니, 무슨 생각이죠?”
“아니, 뭐. 누가 그런 걸 그렇게 신경을 쓴다고 그럽니까?”
“그만하렴. 사매.”
“하지만 사저! 이건 우리를 무시하는 거라고요!”
“소란 피우지 말거라.”
“어휴, 자네는 가서 물이나 좀 떠오게!”
화를 내는 소녀와 대거리하는 젊은 사내의 목소리, 그리고 소녀를 말리고 있는 젊은 여인의 목소리와 중년 사내의 목소리가 이어지더니 천막 뒤쪽으로 사내 하나가 뛰쳐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뭔가 소란스러운데?”
당자혜는 저 여인들의 목소리를 어디선가 들어 본 적이 있는 것 같아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소란스러워 보였지만 어쨌거나 진사린이 지쳐 있으니 일행은 이곳에서 쉬어 가야 했다.
“죄송합니다, 손님. 저놈이 이곳에서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뭘 좀 모릅니다.”
“저희야말로 소란스럽게 해서 죄송합니다.”
일행이 찻집으로 들어섰을 때, 주인으로 보이는 사내가 손님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아.”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던 여인이 눈을 깜빡였다.
“어?”
이린은 눈앞의 여인과 일전에 마주친 적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상대 역시 면사를 내리고 있는 이린을 알아본 듯했다.
잠시 굳어 있는 두 사람을 제쳐 두고 여인의 옆에 있던 소녀가 입을 열었다.
“아, 백리 사저?”
“어? 홍 사저, 금 사매, 나 사매, 유 사매!”
찻집에 있는 이들은 일전에 당자혜와 마찰을 빚었던 검각의 제자들이었다.
백리설과 안면이 있는지 인사를 나누는 것을 본 당자혜와 이린이 묘한 얼굴을 했다.
‘하긴 같은 검각 제자들이니 아는 사이인 게 이상하진 않지.’
“백리 사저! 사저도 검각에 돌아가는 길이예요?”
검각 일행 중 가장 어린 유나가 백리설을 만나게 되어 기쁜지 자리에서 뛰쳐나와 백리설의 품으로 달려들었다.
“유 사매도 지금 돌아가는 길이야? 꽤 늦었네요?”
“중간에 일이 있어서.”
그렇게 말하는 홍유의 시선은 이린에게 꽂혀 있었다. 그 사실을 눈치챈 일행의 시선이 자연스레 두 사람에게 집중되었다. 이린의 뒤에 있는 당자혜의 존재를 깨달은 금홍이 눈을 크게 치켜뜨더니 또다시 사나운 목소리가 일행의 귓가를 울렸다.
“아, 당신! 그때 그 말 도둑이지!”
“용케 알아보네요.”
당자혜가 한숨을 내쉬었다. 면사로 가리고 있어도 특유의 분위기는 남는 모양이었다.
“백리 사저, 이분들도 검각에 가시는 길인가요?”
“네. 그런데 아시는 사이신가요?”
금홍의 불같은 기질을 잘 아는 백리설은 슬쩍 눈치를 보며 일행을 끌고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길어질 것 같은 이야기를 적당히 쳐내고, 홍유는 이린과 당자혜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 후의 일은 저희도 전해 들었습니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검각의 고수들의 도움을 받았으니 인사를 드리러 가는 길입니다.”
“절강, 심지어 항주에서 일어난 일이니 남의 일이 아닌걸요.”
사저인 홍유의 온유한 태도와 대조적으로 당자혜에게 속아 수면제를 먹고 무방비로 잠들었던 경험이 있는 금홍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백리 사저, 저 말 도둑들과 무슨 사이인지는 몰라도 가까이하지 않는 게 좋지 않겠어요?”
“금홍. 어지간히 하렴.”
“당시에 상황이 급해 무례한 행동을 한 건 제 쪽인걸요.”
자리에 앉은 당자혜가 예의 바르게 말하자 홍유가 한숨을 내쉬었다.
“내문제자로 출가하겠다는 아이가 이리 성정이 거치니 걱정입니다.”
검각은 사천의 아미파와 마찬가지로 비구니 승려들로 시작된 곳이었다. 반드시 출가해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내문제자들은 출가하는 경우가 많았다.
홍유는 사매들을 소개하고 백리설에게 일행을 정식으로 소개받았다.
“그때는 분명 세 분밖에 없었는데 원래는 일행분이 훨씬 많았군요.”
“실제로는 원래 일행보다 배는 늘어난 셈이죠.”
“연 소저를 따라온 호위만 다섯 분이잖아요.”
“아,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당자혜의 말에 남궁수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지는 범상치 않은 소개에 검각의 제자들도 눈빛이 살짝 달라졌다. 들어 본 적 없는 문파의 제자인 유영의 평범한 소개에 오히려 안도할 정도였다.
특히 이린에 대해 홍유는 유독 깊은 관심을 보였다.
“역시, 호남 연가장의 분이셨군요.”
“?”
의아해하는 이린과 달리 홍유는 눈을 반짝였다.
“그럼 유정검 연이현 소협의 누이동생이 되시겠군요. 아직 약관도 되지 않은 것으로 아는데 그때 본 검술은 정말 훌륭했지요.”
“아, 감사합니다.”
이린은 슬쩍 눈치를 보다 홍유에게 전음을 날렸다.
– 제 실력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말아 주세요.
차를 마시던 홍유는 이린의 말에 슬쩍, 눈썹을 치켜세웠다.
– 그럼 부탁 하나만 들어주세요.
– 네?
어린 사매 때문에 천천히 산을 오르고 있던 홍유가 사매들에게 웃으며 당부했다.
“금 사매, 나 사매, 유 사매. 나는 잠시 다른 곳에 들렀다 갈 테니 너희는 백리 사매와 함께 먼저 암자에 가 있겠니?”
“네?”
뜬금없이 지목당한 백리설이 눈을 깜빡였다.
“급한 볼일이 생겼는데 힘들겠니?”
“아니, 전 괜찮은데요.”
그렇게 말하며 백리설이 일행을 둘러보았다.
“아, 저도 잠시 볼일이 생겨서요.”
이린이 어색하게 말을 꺼내자 옆에서 뭔가 이상한 분위기를 눈치챈 당자혜와 유영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그럼 저는 이린과 함께 가죠.”
“저도 연 소저와 함께 가겠습니다.”
보호자 두 명의 말에 이린이 난감한 듯 홍유를 응시했지만 홍유는 상관없다는 듯 싱긋 웃었다. 어린 소저에게 보호자가 붙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 비무를 청하고 싶은데 실례가 될까요? 그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제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