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Goddess RAW novel - Chapter 167
167.
유영이 찾아낸 흔적이 있는 방향으로 달리며 당자혜가 홍유에게 물었다.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찻집에서 다툼이 있는 것 같았는데 혹 그자가 한 짓인가요?”
“맞아요. 처음 보는 얼굴이었는데 주인장이 얼마 전 새로 고용한 점원이라고 했어요. 만약 그렇다면, 어쩌면 처음부터 우리가 목적이었던 걸지도 모르겠군요.”
홍유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곳에 검각의 제자들이 머물고 간다는 것은 딱히 비밀도 아니었다. 검각의 제자들은 검각 밖을 다닐 때 결코 혼자 다니지 않았다. 특히 장기간 검각을 떠나 있을 때는 여럿이 함께 다니며, 가능한 검각과 인연이 닿는 곳에 들렀다 가도록 권하고 있었다. 제자들을 위해 가능한 안전이 보장되는 곳에 묵도록 권한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잘 아는 이에게는 검각의 제자들이 자주 다니는 길목이 노출된 셈이었다.
만약 이것이 특정한 누군가를 목표로 한 것이 아니라 검각의 여제자들을 노린 거라면….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유영은 흔적이 보여요?”
“…일전에 추적술을 약간 배운 적이 있습니다.”
뭘 찾는 건지 몰라도 바닥을 확인하고 주변을 관찰하던 유영은 거침없이 길을 안내했다.
그리고 동시에 당자혜가 나무에 돌아갈 길을 표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낙엽이 가득한 산속에서 흔적을 찾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 시간이 지체되고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방향을 찾기가 어렵군요.”
유영의 말에 이린은 나무 위로 올라가 주변을 살폈다.
“이쪽 방향과 저쪽은 갈 수 있는 길이 없으니 일단 반대 방향으로 가 보죠.”
사라진 사람은 총 6명. 약을 먹여 납치해 제 발로 걷지는 못할 테니 험한 길로 데려가기에는 무리가 있을 터였다.
한참을 수색한 결과, 일행은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오두막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추적술은 몰라도 하나같이 눈이 좋은 이들은 주변에 다른 인기척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그대로 오두막으로 달려갔다.
* * *
비좁은 오두막에서 사내는 여인의 머리채를 잡고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 대단하신 검각의 제자들도 왜놈들의 미혼약에는 꼼짝도 못 하는군.”
나머지 5명은 모두 왜구가 데리고 가고, 지금 오두막에 남아 있는 이는 1명뿐이었다.
미혼약의 약효가 남아 아직 몸을 가누지 못하는 여인은, 온몸이 꽁꽁 묶여 옴짝달싹 못 하는 상태로 쓰러져 있었다.
본래대로라면 잡아 온 검각의 계집들을 모두 넘길 생각이었지만 감히 자신을 무시했던 계집 하나만은 남겨 놓았다. 직접 교육해서 본때를 보여 줘야 속이 풀릴 것 같았다.
주인장의 말은 틀렸다. 주인장의 말대로라면 자신이 감히 쳐다도 볼 수 없는 계집이, 지금 제 눈앞에 무릎 꿇려져 있지 않은가?
‘그 잔소리 많은 늙은이 잘 죽었지.’
칼로 베일 때 자신을 보던 당황한 얼굴이 떠오르자 웃음이 새어 나왔다. 감히 저를 무시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이 계집도 마찬가지다. 검각이니 뭐니 그렇게 잘난 척 고고한 척을 해 봐도 어차피, 이렇게 별것도 아닌 계집 아닌가? 이제 이 여자의 명줄이 제 손에 달렸다는 사실에 사내는 더없이 흥분을 느꼈다.
“내가 사업만 성공했으면 너 정도 계집들은 얼마든지 데리고 놀 수 있었어, 알아?”
제대로 의식을 차리지 못하는 몽롱한 상태에서도 나은은 제 머리채를 잡고 헛소리를 늘어놓는 사내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선은 사내를 자극했다.
“젠장, 젠장! 감히 날 무시해? 감히? 너 같은 게! 아무리 잘난 척해 봤자 팔려 가면 기껏해야 기생이나 늙은이 첩 노릇이나 해야 하는 것들이!!”
콰직! 퍽!!
제 분을 못 이긴 사내의 발이 나은을 걷어차려는 순간, 오두막의 문이 부서지며 무언가가 사내의 관자놀이를 강타했다.
“악!!”
그리고 곧이어 홍유가 오두막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사매!!”
“저런, 그대로 관자놀이를 꿰뚫어 죽어 버리기라도 하면 심문을 못 하잖아요.”
뒤이어 들어온 당자혜가 혀를 차며 널브러져 있는 사내를 발로 툭툭 차며 오두막 내부를 확인했다. 사라진 사람은 6명이지만 안에 있던 것은 나은과 사내 둘뿐, 그렇다면 나머지 5명은 어디에 있을까.
“납치한 나머지 여인들은 어떻게 했지?”
관자놀이는 급소이니 꽤 괴로울 텐데 사내의 몸은 꽤 튼튼한지 고통스러워하면서도 킬킬거렸다. 약이라도 쓰지 않으면 어찌할 수 없는 상대가 나타나자 이미 포기한 걸지도 몰랐다.
“큭, 크크큭, 누가 가르쳐 줄 거 같아?”
사내는 행방을 알고 있지만 굳이 입을 열어 말해 줄 생각이 없다는 사실을 피력했다. 그대로 기절이라도 했으면 차라리 행복했을 것을.
사내는 아직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당자혜는 오두막이 너무 좁아 함께 들어오지 못한 이린과 유영에게 당부하며 문을 닫았다.
“이린, 안에 들어오지 말고 밖에 지키고 있어요.”
“네? 네.”
끼이익-
어두운 오두막 안이었지만 당자혜의 눈은 형형하게 빛났다.
“홍 소저, 나 소저의 상태는 나중에 봐줄 테니 조금 기다려요.”
“알겠어요.”
“못 볼 꼴을 좀 보게 될 텐데 나가 있겠어요?”
“아뇨.”
은홍과 유나, 어린 두 사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사매의 상태를 살피고 있던 홍유가 나은을 묶고 있던 끈을 풀어 당자혜의 곁에 섰다.
“도울게요. 강호에 이름 높은 사천당가의 명성을 눈으로 확인할 기회를 놓칠 순 없죠.”
홍유의 말에, 킬킬거리던 사내의 웃음이 멎었다. 제 귀를 의심하는 듯 떨리는 눈빛에 당자혜는 싱긋 웃었다.
“그대로 입 다물고 있어. 곧 무슨 말이든 하고 싶어질 테니까.”
독과 암기의 명가, 사천당가는 고문으로도 유명했다.
심문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쪽?”
당자혜의 말에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을 하고 싶지만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이런 산길 넘어서 바다까지 간다니, 게다가 태주??”
“서두르죠. 날이 저물면 찾기 힘들어요.”
이린은 그렇게 말하며 꽁꽁 묶여 옴짝달싹 못 하는 사내를 둘러멘 채 앞서 달렸다. 아마 묶지 않았어도 사내는 제 다리로 걷지 못했을 테니 빨리 이동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오두막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보지는 못했어도 들리긴 했던지라 이린도 당자혜가 무슨 짓을 했을지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야.’
해적들에게 끌려간 이들을 생각하면 입술이 바싹바싹 말랐다.
아직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나은을 외진 오두막에 두고 올 수 없어 업은 채 달리고 있던 홍유가 사내 하나를 가뿐하게 짊어지고 가는 이린의 모습에 내심 혀를 내둘렀다. 이런 상황만 아니었다면 역시 아까 제대로 싸운 게 아니었던 거 맞지 않느냐고 붙잡았겠지만, 지금은 어린 사매들의 행방이 우선이었다.
“해가 저물고 출발한다니 그 전에 찾아야 해요.”
“배는 어디 있지?”
“그, 그건 잘 모르- 아아악!!”
이린은 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음을 못 들은 척 주변을 살폈다. 난생처음 보는 바다의 풍경에 감탄할 틈도 없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
‘잠깐 눈 뗀 사이에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검각의 두 소녀도 당연히 걱정이었지만 남궁수연과 진사린, 거기에 백리설까지 납치당했다는 사실에 이린은 초조해졌다.
‘지금 찾지 못하면 영영 찾지 못할지도 몰라.’
왜구에게 납치당한 이들이 타국에 노예로 팔려 간다는 소문 정도는 이린도 들었다. 중원 땅만 해도 이리 넓은데 만약 타국에 팔려 가 노예가 되면 찾을 방도가 없었다.
“이쪽에 사람이 지나간 흔적이 있습니다.”
일행 중 가장 냉정한 상태인 유영의 말에 방황하던 시선이 한곳에 모였다.
그리고 다들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이미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언제 배가 출발할지 모를 일이었다.
“배다!!”
암석으로 이루어진 완만한 절벽 아래, 한눈에 보아도 이국의 것으로 보이는 낯선 구조의 배가 보였다.
“저거야?”
“잠깐, 떠나고 있잖아!”
절벽을 향해 달려가던 이들은 잠시 멈칫했다.
움직이기 시작한 배와 멈춰 있는 배. 두 척의 배가 눈에 들어왔다.
“왜 두 척이야?!”
그렇게 외치며 이린은 들고 왔던 사내를 집어 던졌다.
“캑!!”
나무에 부딪혀 괴성을 지르며 쓰러진 사내를 내버려 두고 이린은 지체 없이 검을 뽑아 들며 암석 위로 뛰어내렸다.
“연 소저?”
“이린!”
다짜고짜 뛰어드는 이린의 모습에 경악하며 유영과 당자혜 역시 뒤를 따랐다.
홍유는 나은을 내려놓고 손에 검을 쥐여 주었다.
“미안, 나 사매.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전 괜찮으니 어서 가 보세요!”
“죽이지는 마!!”
당자혜의 응급 처치를 받고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뒤라, 혼자 몸을 가눌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된 나은이 고개를 끄덕이며 사저의 등을 밀었다.
절벽 아래, 배 위로 뛰어드는 이들을 초조하게 바라보던 나은의 서늘한 시선이 곧 꽁꽁 묶인 채 데굴데굴 굴러다니고 있는 사내를 향했다.
“이제 입장이 바뀌었지?”
“사, 살려 주세… 아아악!!”
사저는 죽이지만 않으면 된다고 했다.
* * *
왜구들의 배는 앞이 뾰족한 유선형의 갑판 위에, 나무로 만든 직사각형의 상자를 배의 크기에 딱 맞춰 얹어 놓은 듯한 형태로, 생각보다 크지는 않았다.
‘배 하나에 많으면 몇십 명 정도 있으려나,’
다행히 아직 움직이지 않고 있는 데다 비교적 가까이에 암석도 있었으므로 이린은 고민하지 않았다.
타앗-
가벼운 착지였으나 주위를 경계하고 있던 해적들은 금세 이린을 발견했다. 상갑판 위에 안착한 이린은 자신을 보고 있는 왜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챙챙-
“으악!”
이린에게 향해 있던 수십 쌍의 눈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해 질 녘에 나타난 금발의 소녀라니 어쩐지 현실성이 없었다.
하지만 그 손에 들린 검이 그리는 궤적에 동료들의 목이 떨어지고 있는데 한가하게 현실성을 찾을 여유가 없었다. 해적들이 뭣 때문에 잠시 굳었는지 알 수 없는 이린이었으나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그들을 빠르게 정리했다.
파도가 거세 배가 거칠게 흔들리고 있었으나 동정호에서 이미 여러 번의 전투를 겪은 이린은 능숙하게 균형을 잡았다.
그리고 그사이 유영과 당자혜, 홍유도 배 위로 올라 가세했다.
처음에는 관군이 아니라 젊은 여인들이라는 사실에 안도하며 히죽거리던 해적들은 이들이 보통 여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몸으로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유 사매! 은 사매! 어디 있어!!”
“…하어!!”
갑판 아래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작은 목소리에 홍유의 눈이 뒤집혔다.
콰앙!!!
다가오는 해적 둘을 단번에 베어 낸 홍유의 발이 나무 갑판을 구르고, 뒤로 살짝 물러나 그대로 바닥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앗, 아래에도 사람이 있을 텐데…!”
당황한 당자혜의 말에 아랑곳없이 발판을 스스로 부순 홍유가 갈라진 나무 갑판을 발로 들어 올려 다가오는 다른 해적들을 향해 걷어찬 후 그대로 하갑판으로 내려가 버렸다. 무너진 틈새로 보니 다행히 배의 후미 쪽에 묶여 있는 여인들이 보였다.
“은 사매!”
“흐, 흐으!”
“수연! 무사해요?!”
“!”
그중에는 분명 찾던 얼굴이 있었으나, 수가 맞지 않았다. 아니, 숫자는 오히려 더 많았다.
‘왜, 나머지 셋이 보이지 않지?’
갑판을 뚫고 나타난 여인의 모습에 당황한 수부(水夫)들 몇몇도 노를 내려놓고 홍유에게 달려들려 했다. 하지만 위에 공간이 뚫려 있다는 건 당자혜의 비도에 노출된다는 것과 같은 뜻이었다.
“악!”
“커헉!”
순식간에 쓰러져 버린 십수 명의 해적들을 확인하고 당자혜는 갑판 위에 남아 있는 해적들을 처리한 뒤 뒤따라 안으로 뛰어들었다.
“괜찮아요?!”
나은이 그랬듯이 온몸이 포박되어 있는 남궁수연의 모습에 당자혜가 황급히 달려가 끈을 풀었다. 두 사람의 옆에는 마찬가지로 덜덜 떨고 있는 여인들이 몇 명 보였다.
입을 막고 있던 재갈을 풀자 수연이 다급하게 외쳤다. 무공을 익힌 몸이라 확실히 회복이 빠른 모양이었다.
“백리설과 사린이 다른 배에 있어요! 유 소저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