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Goddess RAW novel - Chapter 180
180.
“아니, 아가씨! 어떻게 이러실 수 있어요! 저 인간이! 저를 어떻게 패 놨는데!”
“아, 미안. 완전 잊고 있었어.”
이린의 진솔한 사과에 다순이 철퍼덕 바닥에 주저앉았다.
“으흐흑. 내 팔자야.”
“이건 뭐야? 그때 그 소매치기 새끼 아냐? 왜 여기 있어?”
“우리 오빠가 데려왔거든요.”
“흠. 거 속도 좋네. 동생 가방에 손을 댄 소매치기 새끼를?”
“네가 너무 패 놔서… 곽 공자가 너무 패 놔서 그렇게 된 거니 누구를 탓하겠어요.”
이린은 저도 모르게 자꾸 짧아지는 말투를 다잡았다.
“하, 아가씨한테 대들 정도라니 참 살기 좋은 곳이긴 하네.”
“!”
천영의 목소리가 낮아지는 것을 느낀 다순이 본능적으로 어깨를 떨며 벌떡 일어났다.
“아, 아닙니다. 아가씨! 아가씨께 대들려고 한 게 아니에요!”
“음. 됐어. 이 사람은 지금도 맘에 안 들면 패는 사람 같으니 알아서 조심하고.”
“네, 네!”
“너무하네. 너한테는 다시없을 정도로 잘해 주고 있는데.”
“대신 피로감을 주고 있지.”
“저런 놈 기어오르는 거 너무 놔두면 후회한다?”
“아니 뭐, 자주 보는 것도 아니다 보니. 게다가….”
빠악!
천영과 실없는 대화를 나누는 사이 다순이 서둘러 사라진 방향에서 시원한 타격음이 울려 퍼졌다.
“이 자식이 감히 우리 아가씨한테 대들어?!”
“끌고 가! 주기적으로 패 줘야지. 정신을 못 차리네.”
“원한 있으면 장본인한테 풀지 어디 손님들 앞에서 아가씨한테 꼬장을 부려? 어?”
나름 작은 목소리였지만 이린은 군기를 잡고 있는 이가 누구인지 금방 알아챘다. 다순을 끌고 가도록 지시한 목소리의 주인은 곧 방긋 웃으며 이린 앞에 나타났다.
“아가씨, 오셨습니까!”
“마선.”
웃음이 새어 나오는 것을 겨우 참으며 이린은 마선의 손을 꼭 잡았다.
“잘 지냈어?”
“그럼요.”
수줍어하며 기뻐하는 얼굴을 본 이린이 그대로 마선을 꼭 끌어안고 토닥였다.
“고마워.”
“!”
마선이 굳어 있는 사이, 뒤에서 줄지어 아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가씨 오셨군요!”
“어머, 마선 언니 치사해.”
이젠 이린에게 건방지게 군다고 해서 이린이 직접 나설 필요도 없었다.
* * *
“의식이 돌아왔군요. 몸은 좀 어떠십니까?”
“대답해라. 넌, 누구지? 여긴, 어디냐! 크윽…!”
흥분한 듯 몸을 일으키려던 사내가 고통스러운 듯 신음하자 이현은 사내를 부축해 몸을 일으키는 것을 도왔다.
“상처가 심하니 아직 혼자 움직이긴 힘들 겁니다.”
“너….”
“일단 물을 좀 드시지요. 목소리가 긁혀서 굉장히 듣기 괴롭습니다.”
“…….”
이현이 듣기 괴로운 만큼 본인도 당연히 목이 말랐던지 사내는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 아니 내밀려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부상당한 팔은 덜덜 떨려 아까운 물을 흘리기만 했기에 결국 이현이 먹여 주어야 했다.
“왜, 이렇게… 느려! 굼벵이냐?”
“환자가 너무 급히 마시면 좋지 않습니다.”
“젠장!!”
물을 좀 마시고 살 만해졌는지 사내의 입은 더 팔팔해졌다.
“네가 날 구한 건가?”
“쓰러져 있는 걸 데려다 상처를 치료한 걸 말씀하시는 거라면 맞습니다.”
이현의 말에 사내의 눈매가 매서워졌다.
하지만 이현은 아랑곳 않고 피고름으로 범벅인 팔을 깨끗한 물수건으로 조심스레 닦기 시작했다. 당황한 것은 사내 쪽이었다.
“어, 가, 감히 어딜 만지는 거냐!!”
“네? 상처에서 나온 피고름을 닦고 있을 뿐입니다만… 가만 놔두면 상처에도 안 좋고, 악취가 날 겁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젠장!”
어디서 그렇게 기운이 나는지 사내는 이를 으득으득 갈았다. 이현은 그렇게 몸에 힘이 들어가면 아플 텐데… 하고 중얼거리며 한층 더 사내의 속을 긁었다.
한참 뒤, 상황 파악을 하며 머리를 굴리던 사내가 입을 열었다.
“…왜 날 구했지?”
일면식도 없는 사이에.
자신을 경계하는 사내를 보고 연이현은 곤란한 얼굴을 했다.
“다친 사람을 못 본 척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닙니까.”
“하! 위선자 나리로군! 그렇게, 착한 척…하고 칭송받으면… 기분 좋은, 가 보지?”
아직 말이 매끄럽게 나오지 않으면서도 애써 자신을 비웃는 사내의 모습에 이현이 잔잔하게 웃음 지었다.
“굉장히 솔직한 분이시군요.”
“뭐?”
“충동적이고요.”
“허?”
“지금 운신이 힘들 정도로 부상을 입으셨고, 제 도움을 받아 치료받고 있으니 거짓으로라도 듣기 좋은 말을 해야 몸이 편하지 않겠습니까?”
“…….”
듣고 보니 맞는 말이어서 순간 사내의 입이 굳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미친놈.”
“친구들한테 자주 듣습니다.”
“허, 친구? 정말, 친구일까? 호구 등이나… 처먹으려는 놈들이겠지.”
내내 잔잔한 표정으로 사내의 상처를 살피던 이현이 처음으로 피식 웃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당신은 친구가 없을 것 같군요.”
“뭐, 뭐?”
이현의 잔인한 사실 폭행에 사내는 혀가 굳은 듯 입만 뻐끔거렸다. 그 모습을 확인한 이현이 더러워진 물과 수건을 들고 몸을 일으켰다.
“아직 움직이기 힘드실 테니 움직이지 마시고 필요한 게 있으면 말씀하세요.”
“너, 너…! 감히 이 몸에게…!!”
“네네, 빨리 회복하고 싶으시면 흥분하지 마시고 가만히 계시는 게 좋을 겁니다.”
“이…!”
이현은 사내가 폭발하기 전 서둘러 방을 빠져나왔다. 운신도 제대로 못하는 사내가 무서워서는 아니고, 저러다 어디 탈 날 거 같아서였다.
“너는 어디서 또 저런 쓰레기를 주워 왔냐?”
이현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문 앞에 있던 심여준이 떫은 표정으로 빈정거렸다.
“자네 처음 만났을 때도 비슷했던 거 같은데.”
“난 저렇게 싸가지 밥 말아먹지는 않았거든?”
“그런데 무슨 일인가? 이쪽에는 잘 안 오면서.”
어쩌다 보니 본채에는 무림맹의 사람들을, 하인들용 숙소에는 그 외에 다른 부상자들을 나눠 놓고 있었다.
‘그래야 무슨 일이 생겨도 피해가 덜하겠지.’
호위를 겸하고 있는 심여준은 이쪽으로 잘 오지 않는 편이었다. 그렇다고 무림맹 사람들 간병을 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본채로 향했다. 심여준이 이현을 찾아왔다는 건 본채 쪽에서 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는 뜻이었다.
“또 한 명 찾았거든. 생존자.”
“상태는 어때?”
“생각보다 살 만한 거 같은데 머리를 다쳐서 좀 오락가락하는 거 같아. 혈교를 마지막까지 쫓다가 왜구 때문에 실패한 모양이더군.”
“자세하게 설명해 봐.”
“이 동네는 온통 물이잖아. 수공이 능한 자들을 모아서 혈교 놈들을 수로로 몰아넣었는데 왜구 놈들이 들이닥쳐서 망한 거지. 잔챙이들은 잡았지만 간부급으로 보이던 고수들은 거의 몸 성히 고스란히 놓쳤다더군.”
“부상도 없이 도망쳤다고?”
“본인 말에 의하면. 그놈들이 왜구와 맞서 싸웠을 리도 없으니 벌써 도망쳤겠지.”
“그럼 혈교 걱정까지 해야 할 필요는 없으려나. 이걸 기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이현이 안도와 근심이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두 사람이 본채로 들어서자 백리한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이현에게 물었다.
“그 사람은 어때? 의식 돌아왔어?”
“응. 성질부리더라.”
“호오. 제법 잘생겼던데. 부상을 심하게 입긴 했지만 무공을 익힌 사람 같았고.”
“역시 왜구와 싸우다 다친 건가?”
부상의 양상이 자신들이 주워 온 무림맹의 고수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화가 제대로 될지 모르겠는데….”
“네가 데려왔다고 다 네가 돌봐야 하는 건 아니니 신경 꺼. 함께 온 개방도들도 있으니 간병까지 우리가 다 할 필요는 없다고.”
“그렇겠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백리한의 희망적인 관측은 빗나갔다.
“어디 있어! 빨리 그 자식 불러!”
첫날 이현의 사실 폭행에 불만을 품은 것인지, 사내는 이현이 오지 않으면 빽빽 소리를 지르고 시중드는 사람의 팔을 쳐내며 난동을 부렸다.
‘역시 이린이 안 와서 다행이지.’
저런 진상 꼬락서니를 보지 않아 다행이었다.
“저거 그냥 패면 안 되냐?”
“그래도 부상자니… 그냥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겠거니 하고 있다.”
“갑자기 왜 불교적 사고방식을?”
“악성 진상에 대한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려는 발버둥이지.”
이현의 말에 도가 출신인 노악이 의아해하자 백리한이 해석을 덧붙였다.
“아픈 사람의 어리광이니 험하게 대할 수도 없잖아.”
“그렇게 어리광 받아주는 게 좋으면 어서 가서 네 여동생 어리광이나 받아줄 것이지 왜 시커먼 사내놈 어리광을 받아주고 있어.”
심지어 자신들보다 연상 같았다. 열일곱 소녀도 아닌 20~30대 청년의 어리광이라니 안 죽이고 놔두는 것이 인내의 한계였다.
이현은 한숨을 쉬면서도 힘없이 웃었다.
‘생긴 거랑 달리 외로움을 타는 것 같단 말이지.’
절대 귀여운 건 아니지만 사실, 처음 만났을 무렵 심여준과 비슷했었다. 지금은 아주 딴사람인 것처럼 나 몰라라 하고 있지만 가만 놔두자니 자꾸 생각날 수밖에 없었다.
“부상도 많이 나았는데 계속 시중을 들어 달라고 하시는 걸 보니 꽤 지체 높은 분이셨나 보군요.”
“그래.”
사내의 뻔뻔한 말에 이현이 피식 웃었다.
“그럼 다른 사람이 시중들어도 좀 참아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못생긴 놈들이 만지면 소름 끼쳐.”
사내의 말에 순간 이현의 손이 굳었다.
“……설마 그쪽 취향이신 건……?”
“다, 닥쳐! 미쳤냐! 여, 여자로 데려와!! 여긴 왜 남자들뿐인 거냐!!”
“그거야 왜구들 때문이죠. 왜구에게 잡혀가거나, 도망가거나. 소주에 있던 젊은 여인들은 대부분 둘 중 하나입니다.”
“젠장, 왜구 새끼들 때문에 이게 무슨 꼴이야.”
“역시 왜구와 싸우셨군요.”
“…그래. 멱을 따 놓으려고 했는데 방해가 들어와서.”
거지새끼들이 방해하지만 않았어도 그놈들을 죽이고 달아날 수 있었다. 그럼 이런 치욕스러운 꼴도 보지 않았을 것을. 사내는 여전히 이를 갈았다.
이젠 어느 정도 운신이 가능해진 사내를 보며 이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많이 회복하신 듯해 다행입니다. 저는 곧 떠나거든요.”
“뭐? 왜? 어딜?”
“여기에는 도와 달라는 요청을 받고 온 것이고 곧 저 대신 이곳을 수습할 이들이 도착할 테니 저는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지요. 그러고 보니 대협께서도 댁으로 연통을 넣어야 하는 게 아닙니까? 소주 출신은 아니시지요?”
“그걸 어떻게 알지?”
“말투가 이 지역 말씨는 아니시더군요.”
“…알 거 없어.”
이현은 마지막으로 사내의 이마를 짚어 열이 있나 확인하고는 웃으며 인사했다.
타인의 손이 닿는 것이 낯선지 이현이 닿을 때마다 짜증을 내던 사내는 이제 익숙해질 법도 한데 아직도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다음에 뵐 때는 건강한 모습이었으면 좋겠군요.”
“흥. 책임감 없는 놈.”
“실례. 귀여운 동생이 걱정되어서 어쩔 수 없군요.”
얼마 전 청운진인이 도착해 이린이 아버지와 무사히 만났다는 얘기를 들었다.
안도와 동시에 이현 역시 빨리 가족들에게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이미 화마가 휩쓸고 간 소주는, 아무리 사람들이 돌아와도 너무 황량했다.
“동생? 동생이 뭐가 귀여워?”
“아아. 뭐 원수 같다는 집안도 있는 모양이지만 저한테는 귀엽거든요. 혹시 동생이 있으십니까?”
“흥. 알 거 없어.”
“그렇군요.”
이현은 이름도 모르는 사내에게 끝까지 변함없는 태도를 유지했고, 사내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현에게는 벗들이 있었지만 사내는 혼자였으니 사내가 외로움을 타는 것을 이현도 모르지 않았다. 귀엽지 않은 어리광을 받아준 것도 그 탓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확실히. 친구는 없을 것 같았지.’
이현은 도착한 개방 사람들에게 환자들에 대한 것들을 넘기고 홀가분하게 소주를 떠나며 그렇게 생각했다.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역시 싸가지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이름도 안 물어봤네.”
감사 인사와 함께 통성명을 하는 상식조차 없는 사람 같았으니.
‘인연이 있으면 또 만나겠지.’
* * *
“이상한 놈이었어.”
사내가 중얼거리는 사이, 온통 검은색으로 몸을 감싼 흑의인이 나타나 사내 앞에 부복했다.
“…괜찮으십니까?”
“왜 이리 늦었지?”
“이곳을 지키는 놈들이 만만치가 않아서 잠입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쯧. 왜 이리 약한 놈들밖에 안 남았지? 그 계집 수하들은 쓸 만한 것들이 많던데.”
부복한 남자는 사내의 말에 고개를 조아리며 품에서 작은 환약(丸藥) 하나를 꺼냈다.
아직 운신이 편치 않은 사내의 회복을 위한 물건이었다.
“송구합니다. 거지들이 더 오기 전에 빠져나가시지요. 부교주님.”
수하의 말에 사내, 위지선은 내내 움직이지 못하던 몸을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