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Goddess RAW novel - Chapter 181
181.
“아, 왜 나한테 그래.”
“그러게 왜 그렇게 사람을 패요.”
식사 자리에서도 곽천영과 이린은 계속 아옹다옹했다.
“절도 3번이면 교형(絞刑)이야. 저놈도 목매달려 죽는 것보단 좀 처맞는 게 나을 텐데?”
“좀이 아니잖아요. 아니, 그런데 법을 알고 있었군요?!”
“아니, 사람을 뭐로 보고….”
이린의 감탄에 곽천영이 어이없어하자 함께 식사 중이던 이들이 슬쩍 시선을 피했다. 듣고 있던 남궁청휘가 한탄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다 사람 죽으면 지명수배 걸릴 겁니다.”
“안 걸려.”
이린과 청휘가 천영의 인성과 미래를 걱정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당자혜가 입을 열었다.
“소매치기범이었다면서요? 게다가 이린이 한번 풀어 주고 또 시도하다 걸렸다니, 저한테 걸렸으면 저렇게 사지가 성하진 않았을걸요.”
“봐, 역시 뭘 좀 아네.”
“물론 저라면 티 나게 처리하는 어설픈 일은 저지르지 않았겠지만요.”
“…….”
후후 웃는 당자혜를 보며 천영도, 이린도, 청휘도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연적훈은 그저 흐뭇하게 웃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친구가 많이 생겼구나.’
저 사이에 끼고 싶지 않아 식사에 집중하고 있던 제갈수원과 남궁수연은 그런 연적훈의 얼굴을 보며 소리 죽여 웃었다.
하여간 팔불출 아버지였다.
그리고 묘하게 불편해 보이던 유영은 식사가 끝나고 이린을 붙잡았다.
유영은 어리둥절해 하는 이린에게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검각에서 이린과 유영에게 감사의 뜻으로 내어준 환단이었다.
“아무래도 제가 받을 물건이 아닌 듯하니 연 소저가 가져가시는 게 옳을 듯합니다.”
뜻밖의 말에 이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보다는 곽 공자에게 줄 것 같았는데 의외네요.”
“아, 대공자께선… 제가 받은 것을 뺏어 먹을 만큼 궁하지 않다고 화를 내셔서.”
이미 넘기려다 실패했나.
“후후. 그냥 가지세요. 영물의 내단이 든 대단한 영약까지는 아니어도 도움이 될 거예요. 그날 배에서 하룻밤 내내 같이 고생을 하고 해적과 싸운 건 유영인걸요. 저 때문에 말려들었으니 오히려 제가 감사를 표하는 게 맞고요.”
“아, 아닙니다. 게다가 이건 부담스러워서….”
망설이는 듯한 유영의 모습에 이린은 킥킥 웃으며 중요한 사실을 덧붙였다. 검각의 환단이 유명한 것도 아니라 아마 별로 알려져 있지 않은 얘기이니 검후와의 식사 자리에 동석하지 않은 유영이 모를 만했다.
“검각의 환단은 여자들에게 좋다고 하니까 남자한테 주지 마시고요.”
원재료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검각은 여인들만 있는 곳이다 보니 환단이나 약도 여인들에게 맞춰져 있었다.
처음 듣는 뜻밖의 말에 유영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남자에게 먹이면 어떻게 됩니까?”
“글쎄요. 남성성?…이 떨어지려나?”
“!?”
순간 경악해서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말없이 입만 벌린 유영의 얼굴에는 ‘그냥 억지로라도 먹일 걸!’하고 후회하는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미세한 변화였지만 유영과 오랜 시간 함께한 기억이 있는 이린은 그런 유영의 표정을 알아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푸훗! 아하하하!”
“연 소저?”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유영은 문파가 머니 다시 보긴 힘들지도 모르겠네요. 아쉬워요.”
“꼭 그렇진 않을 겁니다.”
“?”
유영의 말에 이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이전에도 중원에 나온 적이 있던 걸까?
‘그랬다면 조금은 소문이 있었을 텐데.’
하긴 연가장까지 그렇게 세세한 소문이 흘러들어 올 리는 없었다. 곽천영도 이린을 만나기 전까지는 얼굴을 가리고 다녔으니 비교적 눈에 띄지 않았을 것이다.
의아해하는 이린에게 유영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런데 저… 역시 저희 대공자는 별로 마음에 안 드십니까?”
“네? 아, 음. 저는 데릴사위를 들여야 하는데 곽 공자는 아무래도 무리 아닐까요.”
곽천영의 성격으로 봐선 데릴사위라는 조건을 받아들일 것 같지가 않았다. 게다가 대공자라고 불리고 있었다. 아마 데릴사위로 올 만한 위치는 아닐 듯했다.
‘그런데 왜 내 남편 후보로 왔던 거람.’
그래서 튀었나.
‘부하들을 두고 간 걸 보면 그건 아니겠지만…. 혈교에게 뭔가 당했을 가능성은 의외로 높을 것 같은데.’
지금 곽천영의 주변에 있는 함께 있는 이들은 모두 이린이 죽을 때 이린을 보호한 이들이었다. 그렇다면 이린을 죽이려 했던 이들은 아직 천영의 측근이 아니고 이후에 충원된 이들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걸 내가 지금 조심하라고 해도 믿을 리가 없잖아!’
물론 앞으로 몇 년간 무사할 가능성이 높지만! 자신과 만난 일로 뭐가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니 이린은 불안했다. 그때 이들이 무엇 때문에 감숙에서 호남까지 왔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연 소저? 왜 그러십니까?”
“그냥, 다시 못 보게 될지도 모르니 아쉬워서요.”
“다시 만날 날이 있을 겁니다.”
“?”
의아해하는 이린을 향해 유영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여행 내내, 자신에게 지나칠 정도로 호의적으로 대해 준 이린이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지만 유영 역시 사람인지라 싫지는 않았다.
“정말요?”
“네.”
그렇게 말하는 유영은 저도 모르게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유영은 이린을 보내고 돌아와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눈치인 곽천영에게 보고했다.
“그렇다고 합니다. 이대로 헤어져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억지로 데려간다고 순순히 끌려갈 인물도 아니지.”
사람 구하겠다고 해적선으로 뛰어드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오라비들도 영 만만치가 않고.”
“괜한 생각 마십시오. 당가의 만리추종향은 그리 금방 사라지지 않으니 지금 강제로 데려가시면 추격해 올 겁니다.”
“쳇.”
뭔가 수상한 꿍꿍이라도 생각 중이었는지 유영의 말에 혀를 찬 곽천영이 콧방귀를 뀌었다.
“됐어. 강제로 끌고 갈 정도로 궁하진 않아.”
유영은 대공자의 눈에 섞인 낯선 초조함을 읽고 내심 혀를 찼다. 어릴 적부터 봐 왔으니 아무리 표정을 숨겨도 대충 그 속내가 보였다. 저 인간이 살면서 이렇게 마음대로 안 되는 일을 얼마나 겪어 봤을까.
‘나름 좋은 약일지도.’
안 그래도 혈교와의 분쟁으로 중원에 심어 놓은 세력들이 많이 약해진 데다, 절강은 워낙 멀고 왜구가 극심해서 본교에서 그리 신경 쓰는 곳이 아니었다. 더욱이 해적이란, 소문으로만 들어 본 미지의 존재였으니 곽천영은 난생처음 손발이 잘린 듯한 무력감을 맛보았으리라.
“이번 용봉지회에 가 볼 예정이시니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이린이 온다는 보장은 없잖아. 연가장은 호북에서 그렇게 가까운 것도 아니고.”
“그렇죠.”
이린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며 유영은 남몰래 웃었다.
[연 소저는… 용봉지회에 참가하지 않으시나요?] [참가는 좀 그렇고, 오빠 따라 구경을 가지 않을까요. 이번 용봉지회는 제갈세가라 하니.] [제갈세가요? 그렇군요.]제갈세가는 오대세가 중에서도 꽤나 폐쇄적인 편에 속했기에 용봉지회가 아니면 대부분은 가 볼 수 없는 곳이었다. 그러니 이번 용봉지회에는 많은 사람이 몰릴 것이다. 자신들을 포함해서.
괜히 들뜨게 만들 생각은 없는 유영은 명백히 기분이 가라앉아 보이는 대공자 앞에서 입을 다물었다.
“남궁세가놈이나 안 들러붙게 끌고 가야지.”
“…….”
요새 좀 사이좋아 보이더니만 역시 남자의 질투란.
“남궁 공자 외에 다른 사내들을 마음에 들어 할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아니. 세상에 그 정도 얼굴이 그렇게 흔할 리 없어. 이린의 오라비도 그렇고 내 얼굴에도 별 관심이 없는 걸 보면 어지간한 얼굴론 꿈쩍도 안 할걸.”
대체 저 자신감은 뭔지. 유영은 헛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그러니까… 남궁 공자의 얼굴은 인정한다는 거지?’
* * *
유영과 헤어진 이린은 당연히, 아빠 연적훈을 찾았다.
오랜만에 만난 부녀는 할 얘기가 많았다.
“역시 자식들이 다 떠나 있는 건 외롭더구나.”
“하하.”
과자를 입에 문 이린이 청아와 홍아에게 육포를 주는 것을 보는 연적훈의 눈에 한탄이 서렸다.
“하다못해 뱀들까지 그리울 지경이지 뭐냐.”
“와, 그렇대. 청아, 홍아. 들었어?”
끼이?
끼이이?
육포를 삼키던 두 마리 뱀이 그 말에 고개를 돌려 자신에게로 꾸물꾸물 움직이기 시작하자 연적훈이 다급하게 말을 바꿨다.
“아니, 아니야! 그냥 기분이! 기분이 그랬다고! 이쪽으로 오지 마!”
“아빠 너무하시네. 그렇지?”
끼이-
고개를 도리질 치며 이린에게 무언가 의사 표현을 하는 뱀들을 보며 연적훈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녀석들도 주인 잘못 만나 고생이구나. 한쪽은 불 지르고 한쪽은 화재 진화하고 다녔다며? 불쌍하게도.”
“진짜 잘못 만났으면 한입에 꿀꺽했을 수도 있다고요, 아빠.”
이린의 냉정한 말에 뱀들은 반발했다.
끼이-
끼이-
“봐라, 너희 주인이 저렇게 잔인하다.”
뱀들은 연적훈에게 가고 싶어 했지만 안타깝게도 연적훈은 기겁하며 피했다.
“그러니 역시 데릴사위를 들여야겠구나.”
“네?”
“참, 아까 본 남궁 막내 공자가 너 표물 잔뜩 부치게 한 사람 아니냐?”
청휘가 자꾸 이것저것 물건을 사 주니 그걸 다 들고 다니기는 어려워서 이린은 중간중간 편지와 함께 장사로 표물을 보내곤 했다. 덕분에 연적훈도 남궁청휘가 이린에게 호의를 품고 있다는 것은 금방 알았다.
하지만 정작 본인의 반응은 덤덤했다.
“벌써 무슨 결혼이에요. 아빠는.”
“그래. 그건 그렇지.”
안도하는 건지 걱정하는 건지 알 수 없는 한숨을 내쉰 연적훈은 울적하게 토로했다.
“위험한 일 좀 하지 마라. 아빠는 너 없으면 못 살아.”
“오빠랑 똑같은 말씀 하시네요.”
속 모르고 웃는 이린을 보며 연적훈은 오랜만에 딸의 반짝이는 머리를 쓰다듬다 그대로 손을 내려 딸의 양 볼을 잡아당겼다.
“아아여!(아파요!)”
“아빠랑 오빠가 얼마나 걱정을 하는지도 모르고, 요 꼬맹이가!”
“이렇게 큰 꼬맹이가 어디 있어요.”
연적훈이 얼굴에서 손을 떼자 이린은 볼을 문지르며 볼멘소리를 했다.
“흥. 20년이 지나든 30년이 지나든 아비한테는 꼬맹이야!”
“네네.”
깜짝 놀란 뱀들이 연적훈에게 다가가는 것을 재빠르게 붙잡은 이린이 소매에 뱀들을 둘둘 말았다.
“그래. 같이 온 다른 사람들은 내일 떠난다고?”
“급하게 오느라 지쳤을 것도 같은데 청운진인 영향인지 다들 빨리 가겠다고 하더라고요.”
“모처럼 만난 친구들이 모두 떠난다니 아쉽겠구나.”
“네.”
한숨과 함께 조금 식어 버린 찻잔을 든 이린은 사린과 헤어질 때를 떠올렸다.
[고마워, 린매. 린매는 내 은인이야. 절대로 잊지 않을게.] [사린 언니….]분명 자신과 만나지 않았다면 겪지 않았을 일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로 인해 사린의 미래는 이미 바뀐 건지도 몰랐다.
[기운 내요. 그리고…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만 위험한 일은 절대 하지 말고요.]그래도 혹시 몰라 마지막까지 당부를 덧붙였다.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니 사린이 죽었다고 들은 지명까지 에둘러 언급하며 사린에게 몸조심을 강조했다.
[응. 소운과 린매가 구해 준 목숨이니. 소중히 해야지.]이린의 말에 사린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예전의 사린은, 왜 그런 곳까지 간 걸까.
황룡전장의 금지옥엽도, 남궁세가의 약혼녀도 결코 가벼운 이름이 아니건만, 왜 그때까지도 두 사람은 혼인을 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