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Goddess RAW novel - Chapter 189
189.
“와아. 검성 너무 멋있어요.”
“이건 당시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밖에 모르는 얘기래요.”
이린의 감탄에 제갈수원이 흐뭇하게 웃었다.
“저는 처음 듣는 이야기군요.”
“저도 처음 듣습니다.”
청운진인과 연이현의 말에 제갈지원이 씁쓸하게 웃었다.
“그야 그 자리에 있던 이들에게 함구령이 내려졌으니까요.”
연화문은 벗을 구하고, 자신이 마땅히 가져야 할 명예를 포기했다.
덕분에 누구도 다치지 않았고, 누구도 그 일에 대해 문제 삼지 않았다.
그리고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당시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은 대부분 비슷한 또래의 무림인들.
검성에게 패배한 이들은 다들 유력 가문과 문파 어른들 중 누군가의 아들이거나 제자이거나, 형제이거나 사형제이거나, 혹은 혼인으로 맺어진 혼맥이었다.
사내들은 부끄러워서 입을 다물고, 여인들은 가문, 사문 혹은 보신(保身)을 위해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밖으로 새어 나가지만 않는다면,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라면, 무인을 염원하는 여자아이에게, 딸에게, 여동생에게 몰래몰래 전해졌다.
비록 담장을 넘지는 못했을지라도.
“검성이 제갈세가 여인들과 유독 절친했던 데에는 그런 이유도 있겠군요.”
“맞아요. 유정검룡.”
제갈지원이 그렇게 부르며 싱긋 웃자, 연이현은 난감한 얼굴을 했다.
“그냥 유정검… 아니 연 소협이라고 불러 주십시오.”
“그러고 보니 오빠는 유정검이라더니 왜 여기 사람들은 유정검룡이라고 불러?”
이린의 의문에 답해 준 것은 본인이 아닌 청운진인이었다.
“오룡에 든 사람들은 보통 그런 별호가 붙는답니다. 본인은 별로 안 좋아해서 그냥 유정검이라고 불러 달라고 하고 다녀서 다들 유정검이라고 부릅니다만. 격식에 신경 쓰시는 분들은 아직 그렇게 부르시더군요.”
“그랬어요? 왜 그랬어, 오빠?”
누이동생의 의문에 이현은 머뭇거리며 답했다.
“…린아. 사실 오빠는….”
“?”
“별호에 신검이라든가, 검룡이라든가 붙는 거 좀 부끄러워….”
“아…….”
그거 좀 공감.
그 옆에서는 남 일이 아닌 청운진인이 침묵하고, 제갈지원과 제갈수원이 웃음을 애써 참고 있었다. 제갈수원을 제외하고는 다들 얼굴을 가리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다들 눈 마주칠 때마다 웃음이 터졌으리라.
“와아!!”
“싸움이다!!”
“?!”
그때 갑자기 멀리서 들려오는 요란스러운 소리에 일행의 시선이 동시에 돌아갔다.
“또 누군가가 싸우는 걸까요.”
“사람이 많이 모이니 시비도 많이 생기는 모양입니다.”
제갈세가 바로 아래에 있는 마을이다 보니 가벼운 시비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지만 워낙에 제 실력에 자신 있는 젊은이들이 모이다 보니 가끔씩 큰 싸움으로 번지는 듯했다.
“저러다 걸리면 용봉지회에 참가 못 하지 않나요?”
“아마 곧 상주하고 계신 분들이 알아서 할걸요.”
“이래서 사람을 거르나… 앗.”
싸움 구경하러 달려가던 사람들 사이에 낀 어린 소년 하나가 밀려 넘어지는 것을 본 이린이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괜찮니?”
“괜찮아?”
“??”
이린이 넘어지지 않도록 팔을 붙잡은 아이의 반대편에 청년 하나가 이린과 마찬가지로 아이의 팔을 붙잡고 있었다.
“가, 감사합니다.”
엉거주춤 몸을 일으킨 아이가 두 사람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다시 뛰어나가고, 청년의 얼굴을 확인한 이린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남궁 공자?”
“연 소저.”
조금 놀란 듯 살짝 커진 눈이 곧 기쁨으로 물들며 눈꼬리가 곱게 휘어졌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어? 청휘 형님?”
“수원.”
청휘는 이린과 수원 뒤에 있는 얼굴을 가린 세 사람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그때 또다시 아까 소란스러웠던 곳에서 “와아.” 하고 함성 소리가 들리자 움찔하며 달려갔다.
“죄송합니다. 연 소저. 저기 지금 곽 공자일지도 몰라서….”
“네에?!”
곽천영에 대해 알고 있는 이들은 청휘에 말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곽 공자가 여기 있다고요?”
“오빠, 나도 가 볼게.”
“아니. 같이 가자.”
“우리는 여기서 기다리도록 하죠.”
이린과 이현이 움직이자 청운진인은 수원과 지원의 곁에 남았다. 제갈지원이 무공을 배우지 못했다면 지켜 줄 사람이 필요했다.
“곽 공자!”
“어? 이린?”
이린이 천영을 부르며 달려가자 뜻밖에도 곽천영은 싸움 당사자가 아닌 관객의 자리에서 이린을 맞았다.
“어, 어라? 곽 공자가 싸우고 있는 거 아니었어요?”
“아니. 난 구경하고 있었는데.”
그리고 정작 남궁청휘가 싸우고 있는 사내 둘을 말리고 있었다.
“심 소협, 한 소협. 이런 곳에서 싸우시면 안 됩니다.”
“흥. 남궁 소협이 끼어들 자리가 아니오! 요새 명성이 자자하던데 나를 무시하는 거요?”
“비키시오! 오늘 이자와 결판을 낼 것이니!”
그렇게 말을 하고 있지만 둘 다 남궁청휘에게 제지당해 제대로 싸우지는 못 하고 있었다. 남궁청휘와 안면이 있는 사이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대화를 듣고 싸움을 말리는 이의 정체를 알아낸 구경꾼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저 청년은 창천검룡 남궁청휘 소협 아닌가!”
“약관의 나이에 적안혈수의 팔을 베었다는 검황의 막내 자제 말인가?!”
“호북에서 산적을 토벌했다지?”
그리고 뒤이어 도착한 연이현이 대충 상황을 파악하고 다가가 여전히 살기등등한 두 사람을 말렸다.
“두 분 소협께서는 제갈세가 앞에서 어찌 소란을 피우십니까.”
“댁은 또 누구요!”
“유정검 연이현 소협이십니다.”
청휘의 말에 구경꾼들이 다시 술렁였다.
“아니, 유정검룡 연이현 소협이?!”
“호남제일미남자라는 유정검 말인가? 그렇게 잘생겼다던데!”
“천하에 유명한 미남자들이 용봉지회에 참가하기 위해 모였군!!”
구경꾼들 사이에서 들려오는 온갖 개인정보와 찬사에 싸움을 말리던 연이현과 남궁청휘, 그리고 곁에서 듣고 있던 이린은 알 수 없는 민망함에 얼굴을 붉혔다.
‘으아아. 왜 내가 부끄럽지?!’
그리고 괜히 이 일에 말려들게 만든 죄 없는 원흉 곽천영을 붙들고 서둘러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싸우던 이들도 중재자들의 유명세와 이곳에서 싸우다간 용봉지회에 참가할 수 없을 거라는 연이현의 설득에 각자 제 무기를 치우고 물러났다.
“왜 그래? 재밌는데.”
“재미없어요. 그런데 어떻게 여기 있어요?”
“구경?”
곽천영은 이린을 만난 것이 기쁜 듯 이린의 면사에 손을 데려다 철썩 손을 얻어맞았다.
“그런데 다들 저런 걸 외우고 다니나 보지?”
“원래 강호인들은 기억력 좋은 게 기본 소양이긴 하지만… 저도 좀 놀랍네요.”
어쩌면 그렇게 다들 남의 소문에 밝은지.
다행히 싸움을 금방 수습하고 돌아온 이현과 청휘는 이린과 곽천영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제갈수원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며 이린은 가장 궁금해하던 것을 물어보았다.
“그런데 어떻게 두 사람이 같이 있어요? 계속 같이 다닌 거예요?”
“아니, 우연입니다. 분명 호북에서 헤어졌는데 어째선지 사천에서 다시 만났거든요.”
“와. 두 분 인연이 깊네요.”
제갈수원의 말에 찌릿한 시선이 그를 향했다.
그사이 이린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사람을 찾았다.
‘곽천영이 있다는 건 아마… 찾았다!’
반가운 이를 발견한 이린이 저도 모르게 미소 지었지만, 이린과 눈이 마주친 유영은 흠칫 떨며 모습을 드러냈다.
‘분명 은신해 있었는데?’
유영을 비롯한 부하들은 자신들의 위치가 노출되었다는 사실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 사실을 모르는 이린이 유영을 보며 곽천영에게 물었다.
“곽 공자도 용봉지회에 참가하러 오신 건가요?”
“글쎄. 뭐 그렇다고 해 두지.”
곽천영은 귀찮은 듯 말을 흐렸다.
‘그렇다는 건지 아니라는 건지.’
그리고 당연히 곽천영을 처음 본 제갈지원은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곽천영의 얼굴을 뜯어보고 있었다.
“연 소저. 저 사람은 누군가요?”
“아. 이 사람은…….”
곽천영을 소개하려던 이린은 순간 멈칫했다.
‘곱게 자란 규방 아가씨에 저런 불건전한 남자를 소개시켜 줘도 괜찮은 걸까?’
연이현이나 남궁청휘 같은 단정한 귀공자와 달리 위험해 보이는 남자에게 더 매력을 느끼는 여자들도 있다지 않은가?
“제 지인이에요. 으음. 사람도 너무 많고 번잡해졌으니 우린 그만 올라가죠.”
“네? 아. 그러네요.”
방금도 싸움 구경하겠다고 사람이 우르르 몰려가서 난리였는데 날이 더 어두워지면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다. 제갈지원은 꽤 털털한 성격 같았지만 역시 곱게 자란 아가씨라 이런 분위기에는 당혹스러워하는 눈치였다.
“저희는 다른 길로 갈게요. 두 분은 용봉지회 참가하실 거면 기다렸다가 예선 통과하고 오세요.”
“어?”
“네?”
“내일 낮에 제갈세가 사람이 내려와서 사람들 불러 모아 길을 안내해 줄 테니 따라가시면 돼요!”
당황해하는 두 사람을 남겨 두고 일행은 번잡한 마을을 빠져나왔다.
“수원, 아까 그 잘생긴 공자 알아?”
“아아. 그 사람이 곽천영이에요. 전에 말했잖아요.”
“아, 연 소저를 둘러싸고 남궁청휘랑 삼각관계라는 그?”
뜻밖의 말에 이린의 고개가 다급하게 두 사람을 향했지만 제갈 남매는 그런 이린의 반응을 모르는 척하며 즐겁게 대화를 이어 갔다.
“그때 헤어졌는데 여기서 다시 만난 거야? 와아.”
“아주 열렬하다니까요.”
“좋겠다아~ 우리는 집 안에 갇혀서 외간 남자 구경하기도 힘든데. 미남들의 구애라니.”
“그래도 용봉지회 정도는 볼 수 있지 않나요?”
이린이 애써 화제를 전환시키려 했지만 제갈지원과 수원이 고개를 저었다.
“부모님이 정해 주는 사람이랑 혼인해야 하는데 괜한 바람이라도 들면 안 된다고 하시거든요.”
“그건 좀 너무하시는 게….”
남의 집안일이라 함부로 입을 떼지 못하는 이린을 보며 제갈지원이 깔깔 웃었다.
“그래도 다행히 눈은 높은 분이시거든요. 연 소협을 붙여 주려 하시는 것만 봐도 알잖아요?”
“그, 그러네요.”
“차라리, 혼인해서 빨리 벗어나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이건 무슨 감옥살이도 아니고. 여염집 아가씨들도 우리처럼 밖에 못 나가는 경우는 드물걸요.”
“네….”
자체적으로 장원에서 갇혀 살았던 전적이 있는 이린은 말을 흐렸다. 당시에 답답하다고 느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았다. 장주가 된 후에는 찾아오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심리적으로 몰려있었기 때문일까.
‘원래 장원에서 갇혀 지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
오히려 장주가 된 후에 새로 만난 사람이 더 많을 정도였으니.
‘그러고 보니 둘 다 오랜만에 봤구나. 얼굴 가리고 있어서 다행이다.’
이린은 조금 열이 오르는 기분에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것을 의식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하지만 곤란한데. 둘 다 예민해서 방해될 거 같고.’
제갈세가는 남녀가 머무는 공간을 엄격하게 분리하는 편이었다. 예외를 둘 수 없을 테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연 소저, 왜 그래요?”
“아, 제갈세가는 길을 잘못 들면 큰일 나겠구나 싶어서요.”
“또 돌아다닐 생각이면 그만두렴. 남의 집인데.”
“모처럼 산인데 아쉽네.”
“연 소저 경공이 그렇게 뛰어나다면서요? 한번 보고 싶은데 아쉽네요.”
“언젠가 기회가 되면 좋겠네요.”
제갈세가에 도착하자 이린은 오라비들과 헤어져 여인들만 묵도록 따로 마련된 숙소로 돌아왔다. 제갈지원의 체력에 맞춰 움직였던지라 그다지 피곤하지는 않았다.
이린은 품 안에 넣어 둔 작은 쪽지를 확인하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 보낼까 말까.’
그리고 누군가 다가오는 인기척을 느끼고 서둘러 다시 품속에 숨겼다. 제갈세원과 제갈지원이었다.
“연 소저. 안에 계세요?”
“아, 네.”
“괜찮으면 식사 같이 하시겠어요?”
“좋아요.”
문을 열어 주자 지원이 주변을 살피는 사이 살금살금 들어온 제갈세원이 이린에게 속삭였다.
“저기. 무리한 청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녁 식사 후에 저를 밖에 데려다주시지 않겠어요?”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