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Goddess RAW novel - Chapter 193
193.
“어떻게 생각하나?”
“맹주, 이번에 온 것은 분명 지금까지 보내오던 것과 또 다릅니다.”
무림맹의 총관 제갈선유는 지금껏 무림맹으로 보내져 온 사문(蛇文)들을 펼쳐 놓고 미간을 찌푸렸다.
“한동안 오지 않는 것을 보고 그동안 보내오던 이의 신변에 이상이 생긴 것이 아닐까 추측했었습니다만….”
수년 전부터 혈교의 습격에 대해 암시해 온 뱀의 비늘 무늬가 찍혀 있는 서한.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조금씩 암시가 엇나가는 듯싶더니 결국 그 소식은 끊기고 말았다. 누군지는 알 수 없으나 혈교에 잠입해 있던 의로운 이가 계속 정보를 빼돌리다 들킨 것이 아닐까 그리 생각하며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얼마 후, 새로운 사문(蛇文)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서한에 찍혀 있는 뱀의 비늘 무늬는 전보다 조금 커 보였고 위조한 것이 분명한 필체도 이전과는 달랐기에 당시 무림맹 수뇌부들은 이것이 함정이 아닐까 의심했었다.
하지만 의심하면서도 대비하지 않을 수는 없었기에 서한에 적힌 정보대로 대비를 했고, 그 결과 혈교의 습격을 막을 수 있었다.
그리고 같은 일이 반복되자 무림맹에서는 결국 새로운 사문에 대해 신뢰하기 시작했다.
‘처음 사문을 보내던 이의 신변에 이상이 생겨 누군가가 그 뒤를 이어 대신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현 무림맹주 남궁호의 손에는 2장의 사문이 들려 있었다.
하나는 분명 처음 사문을 보내온 이가 보낸 정보.
다른 하나는 최근까지 계속 사문을 보내온 이의 정보.
처음 정보를 보내오던 이가 무사하다면 기뻐할 일이다. 하지만 2장의 내용은 일치하지 않았다.
“한쪽은 혈교가 용봉지회가 열리는 제갈세가의 비고를 노릴 것이라 했고, 다른 한쪽은 혈교가 용봉지회로 제갈세가에 시선이 쏠린 틈을 타 무림맹을 습격할 것이라 하고 있는데….”
“어느 쪽도 신뢰하기에 부족함은 없습니다. 둘 다 본인이 보낸 것이 맞다면 말입니다.”
처음 사문을 보내온 이를 의심하고 싶지 않은 마음은 있었으나 처음 보내오던 사문은 결과적으로 가면 갈수록 정보가 빗나가 무림맹을 허탕 치게 만들었다.
그리고 두 번째 사문은 지금껏 한 번도 빗나간 적이 없었다.
“둘 다 이전에 보내오던 이가 맞다고 생각하나?”
“비늘 무늬도 필치도 동일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실 처음 보내오던 사문도 서한에 찍혀 있는 비늘 무늬는 들쑥날쑥하지 않았습니까? 이 정도면 그 뱀이 자랐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요. 시간도 흘렀고요.”
“문제는 둘이 분명 다른 사람이라는 거군.”
“하지만 첫 번째 사문보다는 두 번째 사문이 아무래도 신뢰도가 높겠군요.”
물론 혈교가 어느 쪽을 습격한다고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혈교 패퇴 당시 혈교의 물건들은 무림맹에서 함께 처분했으니 그들이 그것을 찾으려 한다면 당시 참전했던 세가나 문파, 그중에서도 무림맹을 의심하는 것은 당연했다.
‘제갈세가는 당시에 관계자가 있었으니 무언가를 빼돌렸을지도 모르지.’
오히려 혈교 측에 자신들보다 더 잘 아는 이가 있을지도 몰랐다.
“어느 쪽도 가능성이 높아 제갈세가에 이 사실은 알렸습니다만….”
“대답은 뻔하지 않나. 어느 가문, 어느 문파라도 마찬가지였을 테지.”
용봉지회에 맞춰 제갈세가를 노린다는 건 혈교도 평소 제갈세가의 관문을 통과할 자신이 없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용봉지회를 취소하거나 다른 문파에 양보하면 위험은 피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제갈세가에서는 결국 용봉지회를 강행했다지.”
“어쩔 수 없을 겁니다. 혈교 대전 이후 제갈세가가 용봉지회를 여는 것은 처음인데 이런 일로 포기해서야 위신이 서지 않겠지요. 목표가 제갈세가라면 혈교는 언제든 열리기를 기다릴 테고요.”
“젊은 후기지수들이 모이는 곳이니 수상하지 않게 젊은 무인들을 파견해 두긴 했네만 영 불안하군.”
남궁호는 성가시다는 듯 피곤한 표정으로 어깨를 두드렸다.
“혈교 교주가 죽은 지가 벌써 20년이나 되었네. 그동안 그놈들이 얼마나 힘을 키웠을지 모를 일이야. 지금도 계속해서 은밀히 혈교와의 전쟁에 관여했던 강호의 고수들을 습격하고 있네.”
“절강에서 있었던 일도 그렇고 저들의 남은 세력이 적지 않은 것은 분명합니다. 벌써 20년이란 세월이 흘렀으니 그들도 몰래 숨어 세력을 키웠다면 방심할 수 없습니다.”
“세월도 빠르지. 어느새 갓난아기가 성인이 될 정도로 시간이 흘렀군.”
제갈세가는 제갈세가의 방식으로 불청객에게 응할 것이다.
“이쪽도 대비는 됐겠지?”
“물론입니다.”
아무래도 마음이 편치 않은 맹주를 위해 제갈선유가 단호히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호는 한숨과 함께 차를 들이켰다.
“수연 그 아이는 잘 돌아갔겠지?”
“지금쯤이면 남궁세가에 도착했을 겁니다.”
이곳이 전장이 될지도 모르는데 아직 부족한 아이를 이곳에 놔둘 순 없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 모처럼 왔는데 겨우 몇 개월 만에 돌려보내야 하다니.”
“어쩔 수 없잖습니까.”
“나도 돌아가고 싶다.”
“후임 찾아 놓고 가십시오.”
“내가 넘기려고만 하면 안 된다고 핏대 올리는 인간들만 없었어도 벌써 넘겼지.”
몇 년 전 6촌 형인 검황 남궁익이 맹주 자리를 내려놓으며 자신에게 임시로 맡고 있으라고 할 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다.
안휘에 있는 무림맹의 건물이 남궁세가의 것이니 남아서 다음 맹주가 올 때까지만 임시로 돌보라기에 그러겠노라 했던 것이 큰 실수였다.
‘덕분에 하나뿐인 딸 얼굴도 자주 못 보고.’
자신도 곧 남궁세가로 돌아갈 것이라 생각해 가족들까지 호남으로 내려보냈을 뿐인데 정작 본인이 이곳에서 벗어나질 못하는 사이 어리던 딸아이는 볼 때마다 훌쩍 자라 아버지한테도 예전 같지 않게 서먹하고 냉랭한 것이 억울하고 서러웠다.
‘빨리 정해지고 인수인계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서로서로 어찌나 견제를 하는지.
남궁호가 실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실력과 인품이 부족한 인물이었다면 남궁익도 맹주 자리를 그렇게 떠넘기고 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다만 오대세가와 구파일방의 자존심이 워낙 세다 보니 백도 구존 중 한 명 정도가 아니면 말을 잘 듣지 않았다.
성격이 빡빡하기로 유명한 검황 남궁익이 맹주일 때는 불만을 말하는 이가 많지 않았지만 지금은 아닌 것만 봐도 자명한 일이었다.
‘그럼 본인들이 하든가.’
검성 연화문은 이래저래 사정이 복잡하니 이해가 갔다.
가장 배분도 좋고 명분도 적절한 소림의 불성 만공대사는 혈교의 일이 정리된 이후로 속세의 일에 끼고 싶지 않다고 피했고, 아미파의 신승 현정사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 출가하신 분들은 어쩔 수 없지.’
검선 서유화는 다른 일로 화산을 떠날 수 없고, 검후 송연하 역시 검각을 비우지 못했다.
태극문의 검제 성유언이나 도제 팽수림은 후학 양성에 바쁘다고 하고, 개방의 만영개는 다들 반대해서 후보에 오르지 못했다.
그렇다고 아무한테나 넘길 수도 없었다. 무림맹은 말 그대로 무림 강호인들의 동맹체이니 주요 문파들 간의 협의와 동의를 거치지 않으면 득달같이 반발하는 자들이 많았다.
결국 몇 년째 자신이 고생하고 있으니 이제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글렀다…….”
“혈교가 확실히 사라지지 않는 이상 무림맹이 해체될 리도 없고요. 게다가 마교도 있지 않습니까? 빨리 후임이나 찾아보시지요.”
마찬가지로 세가를 떠나온 지 20년도 넘은 제갈선유가 한탄했다. 이제는 그냥 여기가 제집 같았다.
“요즘 마교 쪽은 뭔가 들어온 게 있던가?”
“혈교가 찢어져 나오고 현 교주가 정점에 선 이후로는 그럭저럭 조용합니다. 혈교 일도 있고 그쪽도 내부 숙청 이후 인재 양성에 힘쓰고 있겠죠. 다만 납치나 인신매매가 아직도 빈번한데 이게 마교 쪽 소행이라고 단정할 수가 없습니다.”
“이전 교주 쪽은 꽤 심각했지.”
아이들을 납치해 수상쩍은 의식에 사용하거나 실험용으로 사용했다. 그런데 혈교가 갈라져 나오며 그런 위법 행위는 상당수 혈교 쪽으로 빠져 오히려 지금의 마교는 상당히…. 이런 말을 하긴 좀 이상하지만 건전해졌다.
“쉬쉬하고 있지만 지금의 교주도 전 교주의 실험체 출신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마교는 일단 강자의 말에 따르는 곳이니 그런 출신이 중요하진 않겠지. 상식이 좀 부족해 보이지만 일반적이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으니 우리와 비슷한 사고를 하는 것까지 바라는 건 무리일지도 모르고.”
오래전 혈교와의 전쟁 때 본 적이 있는 마교의 교주를 떠올리며 남궁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육촌 형이자 검황으로 불리는 남궁익은 마교 교주 곽선후와 사이가 안 좋았다.
물론 정파 사람이 마교 교주와 사이좋을 일이 뭐가 있겠냐마는.
‘아니, 의외로… 생각처럼 그렇게 미친 사람은 아니었어.’
그저 검성 연화문에게 한번 붙고 싶다고 시비 걸며 따라다니다가 검황에게 제지당하는 일이 잦았을 뿐.
그리고 연화문과 남궁익은….
당시 일을 떠올린 남궁호는 그저 한숨만 깊이 내쉬었다.
오랜만에 만난 딸이 웃으며 한 말이 떠오른 탓이었다.
[청휘가 이린한테 반해서 정신 못 차리던데요. 정말 눈을 못 떼는 게, 그런 거 처음 봤어요.]그래도 다행히 청휘는 그렇게 가능성이 없어 보이진 않는다만, 당시 일을 알고 있을 군자검 연적훈이 과연 청휘를 맘에 들어 할까?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십니까?”
“으음. 아니 수연이 이번에 연이현과 그 동생을 만났다고 한 게 생각나서.”
“아아. 기억납니다. 확실히 잘생겼죠. 기은대주 봉원우의 벗이라 저도 본 적이 있습니다.”
“음? 난 왜 못 봤지?”
“그때 항주에서 일이 생겨서 바쁘셨습니다.”
“아, 그땐가. 붙잡아 두지 그랬나?”
“그때는 봉원우가 대주가 아니었거든요.”
“이런.”
항렬이나 혈연이 우선시되는 문파나 세가와 달리 무림맹에서는 실력으로 사람을 배치할 수밖에 없다. 물론 자존심 싸움이 세서 말을 안 듣는 경우가 많지만.
“일 잘하는 사람이 드무니 죽겠군.”
하다못해 자신이 검황이었다면 권위가 세워졌을 것이나 그렇지도 않았다.
“못해 먹겠어….”
“아, 네에.”
저렇게 말하면서도 벌써 10년 가까이 채우고 있는 걸 보니 어찌 보면 적성에 맞는 걸지도 몰랐다. 정신적 피로가 쌓여서 그렇지.
“그러고 보니 검성에게 연락은 닿았나?”
“여기저기 연락은 넣었지만 닿을지는 미지수입니다.”
“대체 어디서 뭘 하는 거람.”
하긴 있으면 있는 대로 성가신 일뿐일 테니 유랑하는 삶도 나쁘지 않을지도 몰랐다.
“연가장에도 연락이 없다던가?”
“그런 세심한 분이 아니라는 답이 왔습니다.”
“…….”
연적훈의 잘생긴 얼굴과 검성 연화문의 무덤덤하던 얼굴이 동시에 떠올랐다.
주변과 비교하면 옅은 빛깔인 머리카락 때문에 둘 다 얼굴이 아니어도 어디서든 눈에 띄는 편이었다. 연화문이야 나중에 머리카락이 하얗게 세긴 했지만….
‘그러고 보니 연이린이라는 아이가 금발 벽안이라고 했지….’
갑자기 그렇게 돌연변이 같은 용모의 아이가 나올 수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