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Goddess RAW novel - Chapter 195
195.
“아, 아가씨…!”
“초아?!”
처소 앞에 쓰러져 있는 이는 제갈수원의 수발을 들던 시비, 초아였다.
아가씨를 부르던 시비가 결국 힘없이 고개를 떨구자 이린은 황급히 다가가 호흡을 확인했다. 생명에 이상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아 일단 나무 밑에 기대어 놓은 이린은 불타고 있는 건물을 향해 달려갔다. 불길이 치솟고 있는 건물 안에 누군가가 있었다.
“!”
여인을 어깨에 둘러메고 있는 흑의인은 이린을 힐끗 쳐다보고는 서둘러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 주변으로 검은 그림자가 몇 개 더 움직였다.
“사람을 불러와요! 어서!!”
당황한 이린이 뒤를 돌아보았지만 지나치게 놀란 탓인지 시비는 여전히 움직이질 못했다.
‘안에 사람의 기척은 없어. 그렇다면 방금 그자들이 정말 제갈세원을 납치해 간 건가?’
제갈세가 내에서 제갈세가의 직계의 공녀가 납치당하다니 상상도 해 본 적 없는 일이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이린은 우선 다른 생각할 틈도 없이 흑의인들을 쫓아 달렸다. 불이 난 것도 걱정이었지만 밤중에 저렇게 불이 났으니 세가 내에 있던 이들도 금방 눈치채고 불을 끄러 달려 나올 것이다. 지금은 그것보다도 정체 모를 흑의인에게 납치당한 이를 구해 내야 했다.
제갈세원이 납치당한 거라면 이대로 두고 볼 수는 없었다.
흑의인의 발은 생각보다 빨랐지만 이린이 따라잡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한 가지 이상한 점은 있었다.
“아니, 어떻게…?”
흑의인은 하나같이 제갈세가에서 만든 함정에는 단 하나도 걸리지 않고 건물과 건물 사이를 능숙하게 빠져나갔다.
‘여길 굉장히, 잘 아는 사람인데.’
용봉지회 기간 동안은 제갈세가 내부에 펼쳐 놓은 기관진식들도 상당수 해제해 두었다 들었다. 개방되어 있는 공간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제되지 않은 것들을 피해 다니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린이 얼마 전에 세원과 함께 제갈세가 내를 몰래 돌아다닐 수 있었던 것은 제갈세원이 제갈세가의 구조와 진법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만약 이린 혼자였다면 머뭇거렸을지도 모를 곳들이 여러 군데 있었는데 저자들은 너무나 거침없이 제갈세가를 누비고 있었다.
‘뭔가, 이상해.’
왜 갑자기 제갈세원이 납치당했지? 이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는 말은 듣지 못했는데. 일어나지 않은 일이 일어난 걸까, 아니면 남궁청휘가 말해 주지 않은 걸까?
아니, 여인이 납치당했다는 것은 추문이 된다. 만약 정말 제갈세원이 납치당했다면 아무리 친척이라 해도 남궁청휘에게조차 숨겼을 것이고, 만약 남궁청휘가 안다 해도 자신에게 굳이 말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이게 양동작전이라면!’
이린은 속도를 늦추지 않고 당자혜에게서 받은 은 장신구를 꺼냈다. 그 안에는 손가락 두 마디 정도 크기의 작은 비도가 들어 있었다.
당자혁은 이것을 전해 줄 때 주변의 보는 눈을 의식해 이린만 들을 수 있도록 전음으로 전했다.
-이 안에는 수면 성분이 발라져 있는 작은 비도가 들어 있답니다. 약은 안쪽에 더 들어 있으니 필요하면 비도에 발라서 쓰라고 하더군요.
뜻밖의 말에 이린이 당황해 눈만 깜빡이자 당자혁은 웃으며 말했다.
[이린은 무모한 짓을 자주 하니 뭐든 들고 있는 게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자혜가 어찌나 걱정이 많은지 꼭 전해 주라며 신신당부하더군요.]당시에는 좀 과한 선물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바로 쓸 일이 생길 줄이야!
‘자혜 언니, 고마워요!’
당자혜만큼은 아니지만 이린도 이 정도 거리라면 놓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마음속으로 감사 인사를 전하는 이린의 소매가 흔들렸다.
휙! 푹-!
이린이 던진 비도에 맞은 흑의인의 몸이 움찔 떨렸다. 자신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는 듯 휘청거리며 이린을 돌아본 사내는 몇 발짝 더 가지 못하고 지붕 위에서 무너져 내렸고, 함께 달리던 흑의인들이 놀라서 사내에게 다가왔다.
하지만 이린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한달음에 달려가 누구보다 먼저 흑의인이 놓친 여인의 몸을 붙잡아 얼굴을 확인했다.
‘제갈세원!’
다행인지 불행인지, 흑의인에게 잡혀가던 이는 제갈세원이 맞았다.
이미 제갈세가의 중심부에서 거의 벗어나 있다는 걸 확인한 이린은 혀를 차며 그 자리에서 물러나 제갈세원의 상태를 살폈다.
“제갈 소저, 괜찮아요? 정신 차려 봐요!”
“…연, 소저?”
힘없이 눈을 뜬 제갈세원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어둠 속에서 제갈세원의 눈동자가 어지러이 주변을 살폈다. 자신의 처소가 아닌 낯선 풍경, 자신을 안고 있는 연 이린과 멀리서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본 적 없는 흑의인들.
영문은 모르겠지만 상황 파악을 하기에는 충분했다. 제갈세원이 이린의 옷자락을 붙들었다.
“여, 연 소저!!”
이린은 한 손으로 제갈세원을 붙잡고 검을 들었다.
흑의인 서넛이 그런 이린을 향해 점점 간격을 좁혀 왔다.
“연 소저!!”
“이린!!”
“?!”
뒤쪽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이린은 저도 모르게 입가에 호선이 그려졌다.
목소리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남궁청휘와 곽천영이었다.
“후우. 혼자선 뒷감당이 어려울 것 같았는데 다행히 도와줄 사람이 오네요.”
아마 이린이 안으로 들어서고 얼마 되지 않아 불길이 치솟았으니 막무가내로 안으로 들어왔다 이린이 달려가는 것을 발견하고 따라온 모양이었다.
“웬 놈들이냐!”
흉험한 기세의 사내 둘이 각자 제 무기를 빼 들고 달려오는 것을 본 흑의인들은 잠시 망설이는가 싶더니 다급하게 사라졌다. 이린은 그들을 붙잡고 싶었지만 품에 있는 제갈세원이 이린을 너무 꼭 붙잡고 있어 움직이기 어려웠다.
“이제 괜찮으니 안심하세요.”
“…네.”
“연 소저 괜찮으십니까?”
“어떻게 된 거야?”
덜덜 떨고 있던 제갈세원은 다가오는 사내 둘을 발견하자 이린을 붙잡고 몸을 움츠렸다.
‘곽천영은 그렇다 치고 남궁청휘는 아는 얼굴일 텐데 이렇게 떨 이유가 없지 않…. 아.’
이제 보니 제갈세원의 옷이 너무 얇았다. 이린은 자신의 겉옷을 하나 벗어 제갈세원의 몸을 감쌌다.
“몸은 괜찮아요?”
“괜, 찮아요. 저… 대체 어떻게 된 일이죠?”
“저도 모르겠어요. 일단 돌아가죠.”
제갈세원은 놀란 듯 몸을 떨며 이린의 품에 기댔다. 이린의 앞에 도착한 남궁청휘와 곽천영이 이린의 안부부터 살폈다.
“연 소저, 괜찮으십니까?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 옆에 있는 건….”
“저는 괜찮아요. 저기 있는 남자가 범인 중 하나이니 두 분이 좀 데리고 옮겨 주시겠어요?”
“…죽은 거 아냐?”
“아마도… 아닐걸요.”
수면약이라 그랬는데 독약인 건 아니겠지.
아마 그들이 저자를 두고 간 것도 당연히 죽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지만.
“아니, 우리가 하겠소.”
“…제갈주원 대협이시군요.”
무림맹에게 받은 경고도 있었기에 주변의 경계를 강화하고 있던 제갈세가의 무인 몇 명이 이상한 움직임을 발견하고 숨을 헐떡이며 다가왔다. 그중 한 명은 제갈세가에 들어올 때 보았던 제갈주원이었다.
“지금 쓰러져 있는 저 사람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다 도망쳤어요.”
“저도 그자들의 그림자는 보았습니다만 따라잡기에는 늦었더군요.”
“제갈 소저는 제가 안으로 모셔… 앗!!”
친척 간이겠지만 제갈주원에게 맡기는 것보다는 자신이 옮기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에 세원을 안아 들던 이린이 갑자기 떠오른 사실에 탄성을 질렀다.
“왜 그러십니까?”
“혹시 모르니 내부 경계를 강화해 주세요. 침입자들의 목적이 뭐였을지는 알 수 없어요.”
“무슨 말씀이신지.”
제갈주원의 말에 이린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갈 소저가 목적이었다고 하기에는 너무 순순히 포기하고 도망갔어요. 이상하지 않아요? 다른 목적이 더 있을지도 몰라요.”
“…알겠습니다.”
제갈세가에 원한을 가진 사람도 있을 법했지만 가장 경계가 삼엄한 안채에 있는 여인을 납치한다는 건 확실히 이상한 일이었다. 이린은 혈교가 비고를 노리고 있다는 말을 애써 삼키며 제갈세원을 추슬렀다.
“제갈 소저, 일단 동생분의 처소로 모셔다드릴게요.”
“…네.”
이미 며칠 전에 한번 이린에게 신세를 진 적이 있어서인지 제갈세원은 별 거부감 없이 이린에게 매달렸다.
“뭔가 생각나는 건 없나요?”
“아뇨, 갑자기 정신을 잃었다는 것밖에는… 연 소저가 절 구해 주신 거죠?”
“글쎄요.”
과연 구한 걸까? 이린은 양옆에 남궁청휘와 곽천영을 끼고 우선 제갈지원의 거처로 향했다.
“남궁 공자는 몰라도 곽 공자는 이 이상 들어오면 안 될 것 같은데요.”
“날 혼자 둬도 믿을 수 있겠어?”
“…남궁 공자, 안에는 저 혼자 다녀올게요.”
“알겠습니다. 아마 괜찮을 거라 생각하지만… 조심하십시오.”
워낙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었지만 화재 사건이었다. 언니가 살던 건물에 불이 붙고, 모습도 보이지 않으니 불안에 떨며 근처를 서성거리고 있던 제갈지원을 포함한 제갈세가 사람들은 세원을 안고 달려오는 이린을 발견하고 눈물을 흘리며 뛰어왔다.
“어, 언니!!”
“일단 안으로 들어가서 좀 쉬게 하는 게 좋겠어요. 아, 의원도 부르고요.”
“아, 네! 저, 제 방으로!!”
“제가, 제가 다녀올게요!”
제갈지원이 당황하는 사이 시비인 주아가 얼른 달려 나갔다. 그 모습을 본 이린은 문득 아까 쓰러져 있던 제갈세원의 시비가 떠올랐다.
‘어디 갔지? 혹시 그 사람도 다친 건가?’
그저 너무 놀라고 무서워 움직이지 못하는 거라 생각했는데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싶어 덜컥 겁이 났다.
“다친 사람은 없었나요?”
“네? 아, 언니 말고는 달리 다친 사람은… 없었어요.”
제 말에 멍하니 대답하는 제갈지원은 넋이 나간 얼굴이라 이린은 내심 혀를 찼다. 이런 상황을 겪어본 일 없는 규중처녀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몰랐다.
일단 제갈세원을 자신의 침대에 뉜 지원이 언니의 안색을 살피고 연신 팔다리를 주물렀다. 놀란 탓인지 아니면 뭘 먹인 건지 세원의 몸은 얼음장같이 차가웠다.
다행히 곧 의원과 자매의 어머니가 도착해 세원의 상태를 진찰했다.
이린은 놀라서 덜덜 떨며 울고 있는 지원을 달랬다.
“의원이 왔으니 이제 괜찮을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네, 네.”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제갈지원은 연신 눈물을 뚝뚝 흘렸다. 이린은 문득 여기서 제갈세원의 처소까지 그리 멀지 않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물었다.
“별채에 붙었던 불은 언제 꺼졌죠?”
“아까, 사람들이 몰려와서 껐어요.”
만약 이린이 제갈세원의 처소에 도착했을 그때, 제갈지원 역시 건물 밖에 나와 있었다면 같은 것을 목격했을지도 몰랐다.
이린이 아니었다면 아마 불이 난 것도 가장 먼저 알아챘겠지.
“…불이 난 건 언제 알았어요?”
“아, 아까 불이 붙은 것을 보고 노, 놀라서… 언니도 보이지 않고 건물 안에 언니가 있는 줄 알고….”
벌벌 떨며 제갈지원은 눈물을 쏟았다.
“그때 주변에 아무도 없었나요?”
“어, 언니의 시비 초아가 언니는 저 안에 없다고….”
“?!”
지원의 말에 이린은 갑자기 찬물이라도 끼얹은 듯 머리가 차가워졌다.
“초아는 어디 있어요?”
“네?”
눈물을 흘리던 제갈지원은 갑자기 굳은 이린의 목소리에 당황해 기억을 더듬었다.
“어, 아, 어디에… 갔지?”
제갈지원에게 세원이 불길 속에 없다고 말한 초아는 불을 끄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온 후 사라졌다.
“…설마?”
어쩌면 그저 단순히 자신이 자리를 뜬 사이 정신을 차리고 불길 속으로 달려들려 한 제갈지원을 만류한 것일지도 몰랐다.
어쩌면 부상을 입어 의원을 찾아갔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만약 아니라면?
“초아를 찾아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