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Goddess RAW novel - Chapter 196
196.
초아는 누군가를 안채로 안내했다.
안채에서는 또 누군가가 초아가 안내한 이를 맞이했다.
불안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았지만 자신의 일은 여기서 끝이었다. 아는 것도 없고 토해낼 것도 없었다.
이제 빨리 돌아가야 한다.
불길이 치솟고, 아가씨가 납치당했다는 말에 무사들이 소식을 알리러 달려갔다.
그 근처에 있던 젊은 소협들까지 안채로 달려가는 것도 보았으니 자신이 의심받을 리는 없으리라.
자신은 처음엔 놀라 기절했지만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경비를 서고 있던 무사들에게 도움을 청하러 갔다. 하지만 무서워서 화재 현장으로는 돌아오지 못했다.
그걸로 충분했다.
왜냐하면, 불은 한곳에서만 나지 않을 테니까.
자신이 저지른 짓에 가슴은 불안으로 뛰었지만 괜찮을 것이다. 아무 문제도 없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초아의 기억은 거기까지였다.
* * *
“곽 공자는 대체 무슨 이유로 이곳에 오신 겁니까?”
“아직도 그걸 묻는 건가?”
이린이 제갈세원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간 후 두 사람은 묘한 대치 상태였다.
“납득이 가질 않아서요. 곽 공자 정도의 실력자가 굳이 여기까지 와 놓고 용봉지회에는 참가하지 않으니 누구든 이상하게 생각할 겁니다.”
“내가 싫은 걸 억지로 해야 하나? 그깟 용봉지회가 뭐 대수라고.”
“그래서 더 이상한 겁니다. 여긴 왜 오신 겁니까?”
“네가 혼자 이린을 만나도록 둘 순 없어서?”
“…….”
얼핏 들으면 그럴듯해 보이지만, 청휘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수가 없었다.
‘연 소저에게 호감을 품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그게 꼭 연심(戀心)으로만 보이지 않는 건 왜일까.’
남궁청휘의 탐탁지 않은 시선에 곽천영을 내심 혀를 찼다.
‘자꾸 붙어서 성가시네.’
뭐 이상한 낌새라도 눈치챈 양 감시하는데 안 그래도 거슬리는 놈이 더 거슬렸다.
덕분에 제갈세가 내부를 탐색하는 것도 지지부진했다.
‘하지만 덕분에 괜한 의심은 안 받겠군.’
이번 용봉지회는 제갈세가가 수년 만에 공식적으로 외부인을 들인 날이었다. 자신과 비슷한 목적의 놈들이 꽤 있지 않을까 생각하긴 했다만 부녀자 납치라.
“굳이 제갈세가에서 여자를 납치해 갈 이유가 있나?”
“원한 관계가 없으리라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만….”
곽천영의 의문에 남궁청휘도 말을 흐렸다.
강호에 쌓인 원한 관계가 한둘이 아니지만 굳이 문밖출입도 하지 않는 규중 여인을 납치한다니 의아한 일이었다.
“휘 형님? 곽 공자?”
“수원.”
마침 소식을 듣고 달려온 제갈수원이 제 누이의 처소 앞을 서성거리고 있는 두 사람을 발견하고 멈춰 섰다. 청휘는 놀란 기색이 역력한 동생을 안심시켰다.
“세원 누이는 무사하니 일단 진정하고 들어가.”
“저, 정말요?”
“연 소저가 안으로 모시고 들어갔어. 아까 의원도 들어갔다 나왔으니 별일 없을 거다.”
“그런데 이린은 언제….”
콰과과광!!
펑!!
“불이야!”
“폭발이다!!”
굉음과 함께 제갈세가 내부에서 또다시 불길이 치솟았다.
“!?”
“!!”
“이게 무슨,”
남궁청휘와 곽천영, 제갈수원이 당혹스러워하고 있을 때 마침 당황한 얼굴의 이린이 뛰어나왔다.
“연 소저!”
이린은 제갈수원의 얼굴이 보이자 다급하게 붙잡고 물었다.
“제갈 공자! 지금 폭발이 일어난 곳은 어디죠?”
“네? 아, 저 방향이면… 헉!”
이린의 말에 대답하던 제갈수원은 그제야 무언가 떠오른 듯 미친 듯이 달려가기 시작했다.
“수원?!”
“?”
다른 세 사람도 제갈수원의 뒤를 따라 달렸다.
“저기가 어딘데요!”
“안채! 어머님 처소요!!”
“?!”
이린과 청휘의 얼굴에도 경악이 스쳤다.
제갈세원에 이어 그 어머니까지, 제갈세가의 여인들만 노리는 건가?
“아마 지금 어머님은 처소에 안 계시겠지만….”
“!”
손님이 많은 지금 제갈세가의 안주인이 거처로 돌아갈 시간은 아니었다. 게다가 딸인 제갈세원에게 일이 생겼으니 아마 사유월 역시 제갈수원과 마찬가지로 막 연락을 받고 제갈지원의 거처로 오고 있을 터였다. 무공을 익히지 않은 몸이니 제갈수원보다 늦는 것은 당연했고, 지금 사유월의 거처는 당연히 비어 있을 터였다.
‘설마, 제갈세가의 비고는 그곳에 있는 건가?’
이미 제갈세원을 납치해 시선을 돌렸는데 그곳을 노릴 이유는 달리 없었다.
확실히 가주 직계만이 드나들 수 있는 곳이고 경계도 삼엄한 곳이었다.
제갈 자매의 처소와 멀지 않은 곳이었는데, 의외로 제갈 자매의 처소와도 크게 다른 점이 없었다. 그러니 여기가 부인의 처소라는 것은 제갈세가의 관계자가 아니라면 알아낼 수 없는 정보였다.
‘아무래도 혈교에 제갈세가에 대해 잘 아는 이가 있는 것 같은데.’
이린은 제갈세원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네, 맞아요. 그리고 더 중요한 건… 모르는 사람이 많지만 제갈세가에도 신교에 투신한 여인들이 있다는 사실이죠.]어쩌면 아직도 혈교에 남아 있을지도 몰랐다.
“이런!”
“막내 도련님!!”
제갈세가 안주인의 처소에 도착하자 그곳에는 불을 끄기 위해 모여든 하인들이 분주하게 물을 퍼 나르고 있었다. 제갈세가 사람들 역시 모여들어 폭발 현장을 확인하고 있었다.
제갈수원을 알아본 이가 다가오자 수원이 주변 상황을 살피며 물었다.
“다친 사람은?!”
“아, 그게… 여길 지키고 있던 이들과 집안사람 몇 명이….”
제갈수원에게 대답을 하면서도 사내는 무언가 언급을 피하려는 듯 머뭇거리며 시선을 돌렸다. 사내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사람들이 쓰러진 누군가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리고 쓰러져 있는 여인은 제갈수원에게 몹시 익숙한 이였다.
“초아?”
제갈수원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름을 들은 이린이 숨을 삼켰다.
확인할 것도 없었다. 초아는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다.
“아무래도 이 시비가 여기까지 길을 안내한 것 같습니다.”
“이용한 후에 후환을 없앤 건가.”
이곳은 본가의 여인들만이 주로 출입하는 곳이라 같은 제갈세가 사람들조차 대부분은 구조를 잘 알지 못했다.
‘과연, 외부인의 출입이 자연스럽게 통제되는 곳에 비고를 숨겨 뒀구나.’
안채의 출입이 까다로운 것은 당연하고 경계가 삼엄한 것 역시 여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우기면 될 일.
하지만 협력자가 내부에 있는 이상 침입은 불가능하지 않았다.
“이곳 담당이 아닌 하인 몇몇이 죽은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안내한 사람이 있다는 뜻인가.”
“하지만 이런 폭발에서 무사히 도망칠 수 있었을까요?”
이린과 청휘는 비고 쪽을 확인해 보고 싶었으나 바닥만 보아도 빽빽하게 기관이 설치되어 있는 것이 보여 함부로 접근할 수 없었다. 수습하는 데 방해가 될 것 같기도 했고.
외부인이 이곳까지 들어왔다는 사실에 불편한 얼굴을 감추지 않던 제갈세가 사람들은 곧 더 시급한 문제에 몰두했다. 비고의 기관을 해체하고 들어가 물건들을 확인하던 이들이 외쳤다.
“훼손된 것 말고도 사라진 것이 있습니다!”
“설마, 이 폭발에서도 살아나 도망친 건가!”
“이곳에 남은 시신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제갈세가의 진법을 모두 파훼해 비고를 털었지만 내부에 들어갔다는 사실에 방심했던 모양이다. 결국 안에서 뭔가를 잘못 건드려 주의를 끌었고, 침입자의 일행이 살아남아 비고에 있던 물건을 가지고 도망친 듯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비고 안에 있는 것들은 대부분 책자였다.
‘폭탄 같은 걸 설치해 놔도 괜찮은 건가.’
아니면 빼앗기느니 그냥 다 불타 없어져 버리는 게 낫다는 뜻인가.
“그런데 훼손된 건 그렇다 쳐도 없어진 것은 어떻게 알까요?”
“폭발에도 흔적은 남도록 표식을 남겨 두었으니까.”
“가주님!”
이린의 의문에 답한 것은 막 현장에 도착한 제갈원호였다.
이곳까지 들어와 있는 이린과 청휘를 탐탁지 않은 얼굴로 보던 제갈세가주는 우선 비고로 향했다.
“기관들까지 파훼하다니…….”
비고에 설치해 둔 기관들이 파훼되었다는 사실을 안 가주 제갈원호의 얼굴은 어두웠다.
“물건을 건드렸을 때 추종향이 뿌려졌으니 곧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쫓아라! 아직 멀리 가지는 못했을 거다!”
“존명!”
가주의 명에 뒤따라온 제갈세가의 고수들이 바삐 움직였다.
이린이나 남궁청휘에게는 별다른 게 느껴지지 않았지만 제갈세가의 고수들이 모두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면 확실한 듯했다.
“우리도 가 보죠.”
“제갈세가의 추종향은 세가 사람들이 아니면 알아챌 수 없어요.”
“제갈 공자는요?”
“저 제갈세가 직계입니다만?”
방금 전까지 아무 말도 안 했잖아?
이린이 말없이 눈으로 추궁하자 제갈수원이 시선을 피했다.
“쪼오금 훈련이 부족해서 먼 거리는 좀….”
“일단 가죠.”
이린은 제갈세가의 고수들이 달려간 방향으로 제갈수원의 팔을 붙들고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뒤따라온 남궁청휘와 어느새 나타난 곽천영에게 붙잡혔다.
“어떻게 데리고 갈 생각이신 겁니까?”
“네가 안고 가려고?”
“아.”
이린은 별생각 없이 예전에 당자혜에게 했던 것처럼 제갈수원의 허리를 잡으려던 손을 거뒀다.
“전 괜찮은데요. 연 소저의 품에… 악!”
“농담할 때가 아냐.”
“가자.”
능청스럽게 말하는 소년의 뒤통수를 가볍게 가격한 두 사람은 제갈수원의 팔을 한 짝씩 붙잡아 나란히 달려 나갔다.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던 거 같은데…. 의외로 둘이 맘이 잘 맞나. 좀 튀는 행동이긴 하지만 뭐 괜찮겠지.’
이린은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제갈원호의 따가운 시선을 느끼며 뒤를 따랐다.
사실 제갈세가의 무사들이 대부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으니 처음에는 안내가 필요하진 않았다.
달려가는 것을 보니 뭐 걸리는 게 있는 듯하진 않아 추격하는 속도는 빨랐다.
어디까지나 처음에는.
‘다들 너무 느려.’
물론 어디까지나, 이린의 기준이었다.
그리고 심지어 추종향은 제갈세가의 중심부를 벗어난 뒤 중간에 끊기기까지 했다.
멈춰 선 제갈세가의 고수들이 이를 갈며 흔적을 살폈다.
“무슨 짓을 한 거지?”
“처음부터 예상하고 대비해 두었다면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멀리 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흩어져서 추격하라!”
웅성거리는 제갈세가 사람들을 보며 이린이 혀를 차고 있을 때였다.
당연하다는 듯이 천영을 뒤쫓아 온 유영이 입을 열었다.
“대공자, 저쪽에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어느 쪽으로 갔는지 알 수 있어요?”
난감해하는 유영의 시선에 천영이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입니다.”
“잠깐 실례할게요!”
“네?”
“!?”
유영이 나무가 우거진 방향을 가리키자 이린은 그대로 달렸다.
한 팔에 유영을 안은 채.
“엑?”
눈앞에서 부하를 납치당한 천영이 황망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뭐가 그리 재밌는지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아하하하하하!”
“와아. 웃을 일이에요?”
“수원, 너는 나중에 와라.”
“네?”
어이없어하는 제갈수원을 뒤로하고 남궁청휘와 곽천영은 그대로 이린이 간 방향으로 사라졌다.
웃음이 터진 곽천영과 달리, 이미 겪은 바가 있는 남궁청휘는 담담히 이린의 뒤를 쫓았다.
‘연 소저는 왜 저렇게… 여인들을 안고 다니는 걸 좋아한담.’
상황에 안 맞게 엉뚱한 생각을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