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Goddess RAW novel - Chapter 204
204.
지현문은 강서에 있는 중소문파로 그리 이름이 알려진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무림맹에서는 그곳에 서신을 보내기 위해 굳이 연이현에게 부탁을 했다.
‘뭐지.’
이린은 장주이던 시절 지현문에 대해 알아보려 했지만 장 총관 아저씨는 그저 작은 문파라는 것 외에는 모른다고 했다.
‘날 속였나. 아니면 말할 수 없는 사연이라도 있나.’
장 총관 아저씨가 자신을 배신했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다만 그 아저씨가 장주인 이린을 장주로 모셨다기보다는 보호해야 할 친구 딸로 여기는 게 더 컸던 것은 사실이었으니 이린에게 뭔가 일부러 감췄을 가능성도 있었다.
“후우.”
“왜 그러십니까, 연 소저?”
“아무것도 아니에요.”
무림맹에서 있었던 작은 소란 덕분에, 남궁청휘는 전보다 더 소심하게 이린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사태의 원흉이 그인 것은 맞지만 남궁청휘의 탓은 아니었으니 이린은 청휘를 탓할 생각은 없었다.
“남궁 공자는 계속 우리와 같이 다녀도 괜찮아요?”
“집에는 서한을 보내 놨고, 오히려 연 소협과 함께하고 있다고 하면 더 안심하실 겁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남궁청휘의 얼굴은 조금 어두웠다.
떠나기 전 친척 숙부이기도 한 맹주를 만나고 왔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야 혼자 다니는 것보단 낫겠지만…. 아니, 과연 나은 걸까?’
이린과 함께하며 뜻밖에도 큰 사건 사고를 겪었는데 과연 남궁세가에서 이린과의 동행을 어찌 생각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이린은 문득 남궁청휘가 조금 부러워졌다.
‘남자애라 그런가 혼자 여행한다고 막는 사람이 없네.’
이린이 혼자 여행하겠다고 하면 아버지도 오빠도 절대 안 된다며 막을 텐데.
“후우.”
이린은 또다시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린아? 왜 그래?”
“아무것도 아냐. 그런데 지현문에는 왜 오빠가 직접 가?”
물론 이현 혼자 가는 것은 아니고 무림맹 출신인 봉원우가 동행했다. 묘하게 감시자 같은데 친분 있는 사람들끼리니 적당히 알아서 하라는 배려인지 무배려인지 알 수 없는 그런 애매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으음. 지현문은 조금 사정이 있어서 외부와 그리 교류하는 곳이 아니거든. 그래도 우리 집과는 비교적 교류가 있는 편이고.”
“교류가 있어?”
나 완전 금시초문인데?
“응.”
“왜?”
“그럴 일이 좀 있어. 으음. 설명하기 어렵네. 일단 가서 얘기하자.”
뒤에 있는 일행들 때문일까 아니면 이린에게 말해 줄 수 없는 사정이라도 있는 걸까.
이린은 오빠의 애매한 태도에 불만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걸 굳이 파헤치고 싶지는 않았다. 이현에게 이린은 아직 어린 동생이었다.
많은 문파들이 그러하듯 지현문 역시 산중에 있었다. 산 아래에 있는 마을에 도착하자 이현과 봉원우는 뜻밖의 말을 했다.
“지현문은 외부인을 잘 받지 않으니 다른 분들은 마을에서 기다리시는 게 좋겠습니다.”
“무림맹도 들어갔는데 여긴 안 된다니 의외군요.”
“사정이 있는 곳이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연 소협께서 막은 것도 아닌데 그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현의 정중한 말에 곽천영 역시 웃는 낯으로 정중하게 대답했다. 정중한 건 좋은데 이린과 청휘 앞에서 말할 때랑은 영 딴판이라 진실성이 느껴지질 않았다.
“그럼 저희는 이 마을에서 기다리지요.”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린아, 가자.”
“응. 근데 나는 가도 돼?”
“그럼.”
이린의 지당한 의문에 이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봉원우와 연이현, 연이린 세 사람이 사라지자 남은 일행은 숙소를 잡고 알아서 흩어졌다.
“이린도 없는데 꼭 같이 다닐 필요는 없지. 나갔다 온다.”
“마음대로 하시지요.”
이제는 이린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고 지적하는 것도 포기한 청휘를 놔두고, 곽천영은 수하들을 몰래 이끌었다.
“대공자?”
“몰래 따라간다.”
“존명.”
곽천영이 이 일행에 합류한 이유에는 정보 수집이라는 명목이 있었고, 보기와 달리 그는 그 사실을 잊은 적이 없었다.
‘뭐 하는 데인지 직접 확인해 봐야겠어.’
외부인이 출입하지는 않지만 무림맹이 직접 서신을 보내고, 그것을 검성의 후인인 연이현이 전달해야만 하는 문파.
‘별거 아닐지도 모르지만.’
누구처럼 답답할 정도로 성실한 성품도 아니고, 확인이 어려운 일도 아닌데 혼자 답답해할 필요는 없었다.
* * *
오빠의 뒤를 따라 걷던 이린은 이현이 이곳에 와 본 적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동행한 봉원우조차 길을 모르는 눈치로 이린과 마찬가지로 이현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이곳의 숲은 울창하고 야생동물도 많은 것이, 사람이 많이 오가는 것 같지도 않았다. 아무래도 지현문은 그리 규모가 큰 문파도 아닐 듯싶었다.
딴생각을 하며 폴짝폴짝 잘도 뛰어다니는 이린을 보고 봉원우가 감탄했다.
“의외로 잘 걷는군.”
“린아는 경공이 특기고, 우리 식구들은 다들 산길이 익숙하다고.”
“아, 그랬었지.”
“비천산에 와 본 것도 한 번뿐이니 기억도 안 나겠군.”
“그 정도는 아냐.”
이린이 알기로 이현의 친구들 중 가장 말수가 적은 이가 봉원우였다. 별로 안면도 없어 가장 데면데면한 상대이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도 무림맹에 있었던가?’
그리 친밀한 이도 아니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반면에 이린을 보는 봉원우의 시선은 제법 날카로웠다.
‘팽수명을 어렵지 않게 제압했다는 걸 보면 어설픈 실력은 아닌데. 과연 연이현 동생답군.’
무림맹에 있으면 온갖 소문을 듣게 된다. 그중에는 당연 연이린에 대한 것도 있었다.
벗이 자신의 여동생을 심상치 않은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을 눈치챈 이현은 봉원우의 얼굴을 붙들어 정면으로 돌렸다.
“위험하니 산길을 오르는 중엔 한눈팔지 말고 앞을 보게. 뭘 그렇게 뚫어지게 쳐다보나?”
“아무것도 아닐세.”
이현의 서늘한 눈빛에 봉원우는 포기하고 시선을 돌렸다. 여동생이 얽히면 까칠해지는 연이현을 자극할 생각은 없었다.
“아, 저기야?”
“드디어 도착했구나.”
마침 지현문이라고 적힌 편액이 걸려 있는 문이 보였다. 마침 산길에서 나타난 사내 몇 명이 소쿠리를 들고 지현문으로 들어서다 일행을 발견한 듯 그대로 멈춰 섰다.
“어?”
“아.”
그중에서도 30대 정도로 보이는 청년 하나가 이현을 발견하고는 반가운 얼굴로 먼저 말을 걸어왔다.
“연 소협! 오랜만입니다.”
“백 대협, 오랜만에 뵙습니다.”
“??”
이현이 인사하는 것만 보면 지현문과 꽤 면식이 있는 듯했다. 이린은 영문을 몰라 하면서도 일단 인사를 하기 위해 면사를 걷었다.
“뒤에 계신 소저께선… 아!”
이린이 면사를 걷자 상대는 이린이 누구인지 눈치챈 듯 탄성을 질렀다.
“린아. 인사드리렴. 지현문의 백혜안 대협이시란다.”
“안녕하세요. 연이린이라고 합니다.”
“연 소협의 동생분이시군요. 이쪽 분은…?”
“이쪽은 봉원우, 제 벗입니다. 무림맹에서 일하고 있지요.
이린을 볼 때까지만 해도 반가움과 복잡함이 섞였지만 그래도 소탈하게 미소 짓던 백혜안은 이현이 봉원우를 소개하자 안색이 흐려졌다. 무림맹이란 이름에 불안해하는 듯했다.
“부족하지만 대주의 직책을 맡고 있습니다. 맹주께서 보내신 서찰을 가지고 왔습니다.”
“아…. 안으로 드시지요.”
“감사합니다.”
“사형, 봉 대주를 문주께 안내해 주십시오.”
“알겠네. 봉 대주, 저를 따라오시지요.”
“연 소협과 연 소저는 저를 따라오시지요. 접객당으로 모시겠습니다.”
특이하게도, 봉원우와 연씨 남매는 따로따로 안내를 받았다. 이린은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안내하는 대로 따랐다.
봉원우가 떠나고 백혜안을 비롯해 몇 명 되지 않는 지현문 사람들은 신기한 듯 이린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며 저들끼리 무언가 속삭였다. 자신을 보고 신기해하는 이를 처음 보는 것은 아니라 이린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다만 금발 벽안을 신기해한다기보다는 소문으로만 듣던 사람을 처음 봤을 때의 반응에 가까워 보여 이린은 자신에 대한 소문이 이런 곳까지 퍼져 있는 건가, 아니면 예전에 만난 적이 있는 걸까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런 이린의 기색을 느낀 듯 자리를 권한 백혜안이 먼저 웃으며 말을 걸었다.
“연 소저와 이렇게 직접 인사하는 건 처음이군요.”
“네?”
이현과 백혜안은 어리둥절해 하는 이린을 보며 하하 웃었다.
“린아, 우리가 잡아 온 영물들의 내단으로 영약을 만들어 준 곳이 바로 이곳, 지현문이란다.”
“아!”
장 총관 아저씨가 아는 곳이 여기야?!
이린이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자 아저씨들이 즐거운 듯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린아가 쉽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영약 만들 수 있는 사람이 흔하지 않단다.”
“그렇구나.”
생각해 보니 이린은 너무 환경이 좋다 보니 착각하고 있었다. 영약도 뚝딱, 무기도 뚝딱 만들어 주는 이들이 주변에 있었으니 그저 당연하다고만 여겼는데. 사실은 그렇게 쉽게 만들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그리고 의선(醫仙)의 후예이시기도 하단다,”
“!”
이어진 이현의 말에 이린이 입을 쩍 벌렸다.
의선은 혈교와의 전쟁보다 이전 대부터 이름을 날렸던 전설적인 인물로 의술을 펼쳐 많은 사람을 살린 것으로 유명했다.
“와, 의선은 전설 속의 인물인 줄 알았어요.”
“그렇지도 않단다.”
“아직 연치가 어린 연 소저에게는 그렇게 느껴지겠지요. 조부님께서 강호에 활동을 끊으신 지도 오래되셨고…. 연 소저가 어릴 적에 돌아가셨으니까요.”
“그렇군요.”
“지금 문주는 제 부친이십니다. 곧 나오실 테니 오랜만에 인사를 나누시지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백혜안의 말대로, 봉원우와 함께 60대 정도로 보이는 장년인 한 명이 나타났다.
“그럼 저는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부탁드리오.”
그리고 봉원우는 그대로, 두 사람에게는 먼저 내려간다는 인사만 남기고 혼자 떠나 버렸다.
‘차도 안 마시고 가다니 그렇게 급한 서신이었나?’
하지만 찻잔의 수를 보니 처음부터 봉원우의 몫은 없었다. 영문을 몰라 하던 이린은 우선 지현문의 문주 백산역에게 인사부터 했다.
“귀한 손님이 오셨군요. 인사가 늦었습니다, 연 소저.”
“아, 아뇨.”
백산역은 파란 눈을 깜빡이는 이린을 한동안 복잡한 눈으로 바라보더니 대뜸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었다.
“?”
“아버님, 젊은 소저에게 그러시면 실례입니다. 연 소저가 놀랐지 않습니까.”
“아, 크흠. 실례했소.”
“…괜찮아요.”
그냥 영문을 몰라서 그렇지.
이현은 이린이 의아해하는 것을 알면서도 설명 대신 문주에게 청을 했다.
“괜찮으시다면 나중에 의선께도 인사를 드리고 싶은데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얼마든지요. 부친께서도 기뻐하실 겁니다. 저희가 안내하지요.”
이린만 모르게 다들 안면이 있는 모양이었다. 이곳은 의선의 사문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연결 고리는 한 사람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으음. 혹사 엄마 때문에 연이 있는 걸까.’
이린은 몸이 약했던 신수린을 떠올리며 얌전히 차를 마셨다. 그러다 문득 자신을 보고 있는 백씨 부자와 눈이 마주쳤다.
“?”
의아해하는 이린을 보며 두 사람은 물었다.
“두 분을 한번 진맥해 봐도 되겠습니까?”
“저도 오빠도 건강한데요?”
“그럴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괜찮은 건가 싶어 오빠를 보자 이현도 찬성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뭐지 날 건강 검진시키려고 데려왔나.’
지난번에 비하면 요새는 얌전히 지낸 거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