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Goddess RAW novel - Chapter 205
205.
진맥 결과 두 사람은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지극히 건강하군요!”
“그렇죠!”
그게 감탄할 일인가요.
‘으음. 외양이 특이하니까 신기해서 이러는 걸까.’
이린은 차마 왜 이러는 거냐고 추궁하지는 못하고 이현과 함께 두 사람을 따라 산을 올랐다.
연가장에서도 신수린의 묘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데 이곳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물론 멀지 않다는 건 어디까지나 이린의 기준이었지만.
잘 관리했는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는 의선의 묘 앞에서 이린은 오빠를 따라 향을 올렸다.
“그런데 오빠는 지현문을 어떻게 알아?”
“예전에 아버지께서 의선께 신세를 진 일이 있단다. 그러니까 이린도 정중하게 인사드리렴.”
“그렇구나.”
이린은 별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엄마 관련인가. 그래서 갑자기 오빠랑 내 진맥을 한 걸지도.’
그렇게 생각하니 앞뒤가 맞았다. 이린은 신수린의 딸이 아니지만 오빠가 그런 걸 말할 리도 없고, 엄마를 닮아 몸이 약하지 않을까 걱정한 모양이었다.
‘진맥 받아서 뭐 나쁠 것도 없으니.’
몸이 약한 엄마가 이곳의 도움을 받은 것이 있다면 고마운 일이었다. 그래서 아빠와 오빠가 그렇게 목숨 걸고 도우러 간 걸까.
‘일찍 돌아가시긴 했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이린과 이현의 모친이자 연적훈의 부인인 신수린은 예정보다 이른 출산 도중 사망했다. 배 속의 아이 역시 살아서 태어나지 못했기에 가족들의 슬픔은 컸다.
‘너무 어릴 때라 나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오빠는 당시 11세였으니 다 기억하고 있겠지.’
그래서 이린에게는 얘기해 주지 않은 걸까. 말해 주었다면 좋았을걸.
아니, 오빠에게는 다시 떠올리기도 힘든 기억일지도 몰랐다. 11세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에 모친의 죽음은 너무 무거운 짐이었다.
“린아, 오빠는 조금 더 있다 갈 테니 먼저 내려가 있으렴.”
“응. 이 근방을 조금 구경해도 될까요? 처음 와 본 지역이라 궁금해서요.”
두 사람이 뭔가 할 얘기가 있구나 싶어 이린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묻자 백산역은 아들에게 길 안내를 맡겼다.
“이 근방은 지현문의 토지이니 편하게 둘러보십시오. 혜안, 네가 안내해 드리거라.”
“예.”
“감사합니다. 그럼 먼저 내려가 보겠습니다.”
이린이 혜안을 따라 내려가고,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백산역은 그제야 입을 열었다.
“군자검의 품에 안겨 있던 그 작던 아이가 저렇게 건강하게 큰 모습을 보니 감개가 무량하군요.”
“모든 것이 의선 어르신 덕분입니다.”
“연 소저가 저리 건강하게 자란 모습을 보셨으니 부친께서도 분명 기뻐하고 계실 겁니다.”
“기뻐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백산역의 말에 이현은 씁쓸하게 웃음 지었다.
14년 전 그날.
군자검 연적훈이 어린 딸을 데리고 지금처럼 찾아오는 이 없이 고요하던 지현문의 문을 애타게 두드렸었다.
* * *
처음 이린은 산길이 익숙하니 혼자 다녀도 괜찮다고 했지만 백혜안은 위험해서 안 된다고 필사적으로 말렸다. 오늘 처음 만난 사람에게 굳이 본인의 경공이 뛰어나서 괜찮다고 자랑할 정도로 이린은 뻔뻔하지 못했으므로 할 수 없이 순순히 안내를 받기로 했다.
“지현문도 이 지역에서 굉장히 오래된 문파인가요?”
“아마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의술을 이어받은 지는 오래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이린은 백혜안을 따라 산을 구경하며 궁금했던 것들을 슬금슬금 물어보았다. 백혜안은 조카뻘인 이린이 이것저것 물어보는 게 귀여운지 웃으며 이린의 물음에 하나하나 답해 주었다.
“산에 약초가 많아 이곳에 정착했다고 하시더군요. 다들 번잡한 것보다는 조용히 지내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요.”
“그렇군요. 하긴 처음 보는 꽃들도 있고… 아, 저건 무슨 꽃이에요?”
이린도 산에서 살다 보니 어지간한 식물들은 꿰고 있는데 이곳에선 처음 보는 것들이 종종 있었다. 이린에게 벌써 몇 번인가 설명을 해 주던 백혜안은 이번에도 웃으며 이린이 가리키는 흰 꽃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하, 어떤… 헉!”
“?”
“이, 이럴 수가. 그렇게 찾았는데 이런 곳에 있었다니…!”
백혜안이 눈을 번뜩이며 손을 바르르 떠는 모습을 본 이린은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편히 다녀오세요. 저는 근처를 돌아다니고 있을게요.”
“네? 하지만….”
꽃은 그렇게 위험하진 않아도 제법 성가신 곳에 있었다. 뿌리가 상하지 않게 채취하려면 시간이 걸릴 터였다.
“연가장도 비천산에 있어서 산길은 익숙한걸요. 지현문까지는 길도 하나뿐이고. 게다가 저 경공은 뛰어난 편이니 어디서 미끄러져 다칠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절대 위험한 데로 가시면 안 됩니다.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잠시만요!”
“네에.”
순순히 대답한 이린은 백혜안의 모습이 멀어지자 옳다구나 그대로 진로를 이탈했다.
안전을 추구하는 산길만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하기에 이린은 지나치게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옛날에도 비천산은 자유롭게 돌아다녔으니.’
어릴 적에는 아빠와 오빠가 엄격하게 막았지만 조금 크고 난 이후로는 독초와 독충에 대해 주의를 주는 것 외에는 딱히 이린을 제지하지 않았다. 이린의 경공 실력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길을 외우며 걷던 이린은 조금 완만한 절벽을 발견하고 저도 모르게 가까이 다가갔다.
‘와, 여기도 비슷한 구조가 있네.’
이린이 늘 가는 동굴도 이런 절벽에 숨겨져 있었다. 심지어 절벽 중간중간 풀이 무성한 것까지 똑같았다. 덕분에 동굴의 위치는 더 잘 가려진 셈이지만.
“어라.”
문득 내려다본 곳에는 아까 본 것과 비슷하게 생긴 꽃이 있었다.
‘잘은 모르지만 귀한 거랬지?’
손님까지 두고 달려갈 정도면 꽤 구하기 힘든 약초일 것이다.
비교적 완만한 절벽. 꽃이 피어 있는 곳까지는 마침 발을 디딜 곳도 있었고 이린의 경공으로 위험할 만한 곳도 아니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이린은 덩굴 하나를 보험으로 붙잡고 누가 보기 전에 아래로 내려갔다.
‘확실히 좀 특이하게 생겼네.’
이린은 조심스레 뿌리가 상하지 않도록 꽃을 채취했다. 그리고 이상하게 서늘한 기운에 고개를 돌렸다.
순간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이런 것까지 같을 필요는 없잖아….’
그곳에는 어쩐지 이린에게 익숙한 그 동굴과 비슷해 보이는 동굴이 있었다.
물론 동굴이 거기서 거기지 뭐가 달라 보일까 싶지만.
툭, 툭.
덩굴을 붙잡고 몇 번 절벽을 박차 동굴 안에 들어선 이린은 짧은 고민을 끝냈다.
‘남의 집이라 좀 그렇지만….’
여기까지 와서 들어가 보지 않는다면 강호인이 아니었다.
“일단 이것 좀 넣어 두고.”
이린은 허리춤에 고정시켜 놓은 작은 가방을 열었다.
끼이?
끼이이?
남의 집이라 혹시 몰라 가방에 넣어 둔 청아와 홍아가 고개를 들었다.
“나올래?”
가방 속에서 뱀들이 나오고, 그 밑에 늘 함께 들고 다니는 야명주를 꺼낸 이린은 그 자리에 아까 채취한 꽃을 넣었다.
‘나가면 백 대협한테 줘야지.’
백 대협은 이린이 희귀한 약초를 뽑아 오는 것보다는 빨리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을 가능성이 더 높았으나 이린은 그저 처음 보는 동굴을 탐험하기 위해 만반의 태세를 갖출 뿐이었다.
옛 경험을 떠올리고 검까지 뽑아 든 이린은 그대로 동굴 안으로 들어섰다.
‘갈림길이 나오기 전에 돌아가자.’
동굴 안의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을지, 혹은 그때처럼 이상한 생물이 있을지 모르기에 이린은 주의를 기울이며 앞으로 나아갔다.
‘뭐 괜찮은 거라도 나오려나… 산에 적당히 숨겨 놓으면 알아서 찾든가 하겠지.’
약초를 캐러 자주 산을 돌아다니는 듯하니 적당히 바위 밑에만 숨겨 놔도 금방 찾지 않을까.
동굴에 들어온 것은 반은 호기심 때문이지 이곳에서 뭔가를 더 얻어야겠다는 생각은 딱히 없었다. 단순한 자연 동굴이라면 그저 자연의 신비로운 풍경을 구경하는 시간일 뿐이고.
“!”
하지만 동굴 속으로 그리 깊이 들어가기도 전에 이린은 인위적인 흔적을 발견했다.
그것은 이린이 예상치 못했던, 그러나 눈에 익은 물건이었다.
이린은 야명주를 더 가까이 비춰 보며 확인했다.
“여인의 석상…….”
분명 이린이 비천산에 있는 동굴에서, 항주의 왕모묘에서 본 것과 같은 석상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이린이 본 것들 중에서 가장 크다는 것 정도? 생각해 보니 항주의 왕모묘에 있던 석상은 비교적 작았던 것 같다.
“왜 이런 것이 여기에?”
동굴 안의 찬 기운이 갑자기 온몸을 엄습하듯 서늘한 한기가 느껴졌다.
괜한 일을 했다고 후회하면서도, 이린은 그 주변을 더 샅샅이 살폈다. 마치 사당처럼 등잔불과 간단한 제기(祭器)들이 갖춰져 있었다.
‘그 동굴에도 이런 게 있었으면 갇혔을 때 접시로 쓸 수 있었을 텐데. 왜 거기엔 없었담?’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하며 이린은 조심조심 석상에 손을 댔다.
어쩐지 나쁜 짓을 하는 기분이 들어 찜찜했지만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혹시 몰라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이린은 자신이 비천산 동굴의 두 번째 석상에서 금패를 발견했던 것을 떠올리며 석상을 조사했다.
움직이지 않기를 바랐지만 안타깝게도, 석상의 윗부분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드륵― 드르륵― 파스스―
돌가루가 떨어지며 석상이 반으로 분리되었다. 이린은 자신의 심장이 뛰는 소리 때문에 머리가 어지러운 기분이 들어 몇 번이나 주위를 살피며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석상을 열었다.
“?!”
그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이린은 이 사실을 안도해야 할지 불안해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 했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안에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조금은 가슴이 가벼워졌다.
‘안에 뭐가 들어 있던 걸까. 누군가가 이미 꺼내 간 것 같은데.’
이린은 서둘러 석상을 원래대로 되돌려 놓았다. 힘이 좋아서 다행이지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이걸 열어 보는 건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처음 발견했을 때 모습 그대로 세심하게 석상을 돌려놓은 이린은 이어서 주변에 다른 물건들은 없나 살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이번에는 책자나 영약이 담긴 상자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으음. 만약 저 안에 정말 신물이 있었다면 누군가 그걸 꺼내 갔을 테고, 다른 물건도 함께 챙겼겠지.’
하지만 이 산은 사유지다. 비천산과 마찬가지로 지현문 사람들이 관리하고 있으니 지현문의 제자가 발견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언제 발견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이린은 문득 이 석상이 모셔져 있는 제단이 어딘지 이질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세히 보니 마치 누군가가 와서 향을 피운 것 같은 흔적도 보였다. 누군가가 이곳에 드나들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었다.
‘설마, 여기에도 혈교가 있는 걸까.’
그리고 이린은 곧 새로운 가능성을 떠올렸다.
혈교가 아닌, 신교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 제단은 왜 이렇게 긴 거야. 석상 옆에는 제기 외에 아무것도 없는데.’
이린은 문득 예전에 거대 붕어를 잡아 마련야장에게 부속물들을 보낼 때의 일을 떠올렸다. 거대한 붕어 뼈를 나무 상자에 넣어 보내다 보니 인부들이 수상쩍어했었다.
그리고 어쩐지 이 제단의 크기도 좀… 비슷해 보였다.
‘이 정도면… 제단 아래쪽에 관도 들어갈 것 같은…데?’
자신이 떠올린 생각이 너무나 터무니없어 이린은 애써 웃으려 했지만 동굴 속의 한기 때문일까. 좀처럼 입꼬리가 올라가지 않았다.
‘어, 어쩌지? 확인해 봐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