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Goddess RAW novel - Chapter 210
210.
‘헛소문, 아니면 누군가 일부러 퍼트린 소문이겠지.’
제갈세가 인근은 진법이 펼쳐져 있어 근처 주민이라 해도 아무나 접근할 수 없다.
약초꾼? 제갈세가는 외부와 단절되어 있는 만큼 일정 부분 자급자족을 실현하는 곳이었다. 본인들이 캐다 쓰기도 바쁠 텐데, 괜히 위험하게 진법도 모르는 약초꾼을 안으로 들일 리가 없다.
게다가 이번 일은 제갈세가의 치부.
덮으려 한다면 덮을 수 있었다. 이린과 이현을 비롯한 이들에게도 이번 일에 대해 함구해 줄 것을 청했듯이, 모여든 이들은 대부분 이름난 무가의 후기지수들이니 순순히 협력해 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런 소문이 퍼졌다? 짚이는 곳은 한 곳뿐이었다.
‘제갈세가!’
그들이 뭔가 일을 꾸미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혈교 때문에 체면에 먹칠을 했으니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 생각은 했지만 설마 이리 일을 키울 줄이야.
차를 마시고 있는데도 입술이 바싹바싹 마르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지금 그 장보도를 해독한 혈교가 곧 움직일 거라는 소문이 파다하네.”
“혈교? 갑자기 웬 혈교?”
“아이고, 내가 말을 안 했나? 그 장보도가 바로 혈교의 것이라더군? 그래서 그때 침입한 자들도 혈교의 잔당일 거라는 말이 제일 유력해.”
“어쩐지. 천하의 제갈세가에 침입한 자들이 누군가 했더니 또 혈교인가? 하긴 그자들의 수법이 오죽 교묘하고 악랄한가? 예전에도 계집들을 꼬여 내서 이용해 먹곤 했지. 이번에도 그랬다던가?”
“아무렴. 글쎄 제갈세가에서 어릴 적부터 수년간 일하던 시비가 실은 혈교의 세작이었던 모양이야. 심지어 이용하고 쓸모가 없어지자 협력자들을 그 자리에서 바로 처리하고 갔다나 봐.”
그리 말하며 사내는 몸서리쳤다.
“여전히 악랄하군! 대체 뭣 때문에 그런 놈들에게 협력하는지 모르겠어!”
“난들 알겠나. 저 죽어도 좋다는데.”
사내들의 대화에 귀 기울이고 있던 어느 노인장이 끼어들었다.
“자네들 몰랐나? 그게 다 헛바람 든 계집들 때문이네.”
“그게 무슨 소리요?”
“거 신교인가 하는 그 작자들이 여인이든 사내든 노비든 모두 동등하다며 계집들을 꼬여 내지 않았나. 거기에 낚인 철없는 계집들이 감히 제 부모도 지아비도 버리고 뛰어든단 말이지.”
“아주 몹쓸 것들이구먼그래.”
“흥, 우리 마누라는 멍청한 계집들하고 달라서 그런 꾐에 넘어가지 않는다고.”
“그럼, 그럼. 자네 같은 인사를 건사하려면 그런 꾐에 빠질 틈이나 있겠나?”
“아니, 뭐가 어째?”
사내들이 티격태격 장난 섞인 드잡이질을 하는 사이 이린은 한숨을 쉬며 남궁청휘를 걱정했다.
“혈교에서 남궁 공자를 노릴지도 모르겠어요. 절대 혼자 다니지 마세요.”
“너무 심려 마십시오. 제가 이름을 밝히고 다니는 것도 아니니 저를 찾기가 쉽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게 말하며 남궁청휘는 쓴웃음을 지었다.
‘어쩌면 나 때문에 연 소저가 위험해질지도 모르겠군.’
무림맹에서 팽수명이 이린에게 시비를 걸었던 것처럼, 자신이 이린을 따라다니고 있다는 건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얘기였다. 그렇다면 도리어, 남궁청휘 때문에 이린을 노릴 가능성도 있었다.
‘연 소저가 혈교의 세작을 잡았다는 소문이 퍼지지 않은 건 다행이지만 이건 이것대로 곤란해질지도 모르겠는데.’
각자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객잔 안은 장보도에 대한 이야기로 무르익고 있었다.
“장보도에 있는 장소에는 뭐가 있는 걸까?”
“혈교가 찾고 있는 장보도 아닌가. 당연히 죽은 혈교 교주가 숨겨 둔 보물이 있는 장소겠지!”
“하긴 제갈세가가 혈교 토벌에 앞장선 가문이긴 하지. 그때 빼돌려 둔 장보도 아니겠어?”
“혈교 교주라면 검성 연화문과 호각으로 싸웠다는 화경의 고수 아닌가!”
“화경이 아니고 탈마(脫魔)였나 극마(克魔)였나 그거 아닌가? 혈교니까.”
“아, 아무튼 그 혈교 교주가 고수였다는 걸 누가 부정하겠나? 그 검황조차 혈교 교주에게 무릎 꿇었다고 하지 않나.”
“혹시 교주의 비급이라도 있지 않을까?”
또다시 끌려 나온 검황의 이름에 찻잔을 잡고 있던 남궁청휘의 손이 움찔 떨렸다.
부자지간의 정이 다소 희박한 편이라 생각했지만 그래도 이런 이야기를 듣는 것은 아무래도 편치 않았다. 게다가….
‘혈교 교주와 검성은 대체 얼마나 강한 걸까.’
검황의 검을 맞댈 때마다 그가 얼마나 강한지 온몸으로 느끼며 자라 온 남궁청휘는 과거 고수들의 이야기가 너무나 현실성 없이 들렸다.
문득 청휘는 제 옷자락을 당기는 감각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비록 면사로 얼굴이 가려져 있어도 자신을 들여다보는 이린의 얼굴에 걱정의 기색이 가득하다는 것은 똑똑히 알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불효자식은 이린의 걱정 어린 시선과 아비의 가치를 얼마든 맞바꿔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찮다는 말 대신 이린에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이린도 조심스럽게 붙잡고 있던 청휘의 소매를 놓아주었다. 다른 사람이 공연히 말을 얹기에는 조금 섬세한 문제라 굳이 반응하지 않던 일행들도 사랑에 빠진 소년의 단순한 표정 변화에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장보도의 일이 언제부터 이렇게 퍼진 건지 개방에게 물어보는 게 좋겠어요.”
“별로 의미는 없지 않을까? 이렇게 금방 퍼졌다는 건, 퍼트리고 싶은 놈이 있다는 거고. 퍼트린 놈은 목적이 있을 테니까.”
이린의 말에 곽천영이 찻잔을 빙글빙글 돌리며 답했다.
“목적이요….”
제갈세가의 목적이야 뻔하지 않은가.
감히 제갈세가의 자존심을 건드린 놈들을 이번 기회에 일망타진하고 싶을 테지.
“…곧 소문이 커지겠군요.”
“그리고 혈교 놈들은 가지 않고는 못 배길걸?”
왜냐하면, 소문이 사실일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는 함정을 판 장본인들 외에는 누구도 확신하지 못할 테니까.
“앗!”
장보도에 대한 소문 때문에 요란해진 객잔 안에서 묻힌 듯한 작은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객잔에 어린 점소이는 없었는데?’
하지만 분명 어린아이의 목소리였다.
이린이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꼬질꼬질한 차림의 아이가 자신보다 작은 아이의 손을 잡고 바닥에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도,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또 그 소리냐? 어휴, 애가 뭘 잘못 먹었나.”
객잔 주인은 짐짓 화가 난 체를 하고 있었지만 아이에게 해코지를 하지는 않았다. 대신 주방에 가서 찬밥 한 덩이를 가져다 아이들 손에 쥐여 주었다.
“자, 이거 줄 테니 그만 가라.”
“제발 도와주세요…!”
아이는 눈물을 뚝뚝 떨구며 매달렸지만 아이를 신경 쓰는 이는 없었다. 이미 익숙하다는 듯 외부에서 온 손님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귀찮다는 듯 아이를 지나쳐 갔다.
아이가 가엾어 보였던지 어떤 손님 하나가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무슨 일이니. 꼬마야?”
“아유, 손님. 신경 쓰지 마세요! 헛소리만 늘어놓을 테니까!”
“헛소리 아니에요! 정말이에요!!”
손님이 아이에게 관심을 보이자 주인장이 부리나케 달려와 그럴 필요 없다고 손을 내저었다.
“헛소리로 동정을 사서 동냥 한 푼이라도 더 받으려고 이러는 겁니다. 저 어린것이 어찌나 영악하고 연기를 잘하는지. 저도 깜빡 속았지 뭡니까.”
“뭐라고 속였기에 그러시오?”
“글쎄, 자기들은 이 근방에 있는 산속 마을에 살고 있었는데 제 가족들이 납치를 당했다고 하질 않습니까. 그래서 근방 청년들에 관병들까지 끌고 저 아이가 살고 있다는 마을까지 가서 확인해 봤는데 새빨간 거짓말이지 뭡니까. 거기 사람들한테 확인해 보니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 이는 있어도 사라진 사람은 없다고요. 어떻게 사람 없어진 걸 모르겠습니까?”
“그것참….”
아이를 동정해 말을 걸었던 손님은 주인장의 말에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주인장은 아이들끼리 그 마을에서 여기까지 어떻게 찾아왔겠느냐고, 걸식하는 아이들이 거짓말을 지어냈을 거라며 아이들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자, 먹을 것 받았으니 그만 가 보거라. 설마 더 달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
“하, 하지만…!”
“먹을 걸 주면 가는 거 다 안다. 어린 동생 데리고 동냥하려고 그런 거짓말이라도 지어내는 모양인데, 그게 언제까지 통할 것 같으냐? 자자, 장사 방해하지 말고 얼른 나가!”
주인장은 탁탁 먼지를 털어 내듯 아이들을 쫓아냈다.
하지만 아이들은 포기하지 않고 객잔 안으로 뛰어들었다.
“아니, 저놈들이!!”
“도와, 도와주세요!”
주인장이 쫓아올 것을 알고 있던 아이는 필사적으로 마을에서 본 적이 없는 얼굴들을 찾아 매달렸다. 하지만 다들 아이들을 외면했고 아이들은 필사적으로 달렸다.
그리고 아이들이 마지막으로 매달린 이들 앞에서 주인장은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아이가 찾아낸 이들은 다들 허리에 검을 차고 있는 강호인들이었고, 심지어 아이들이 매달리고 있는 사내는 면사로 얼굴을 가린 청년으로 얼핏 보아도 귀하신 분이라는 인상을 풍겼다.
그 일행들 역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틀림없었다.
그리고 뜻밖에도, 아이의 팔에 다리를 잡힌 곽천영은 이 어이없는 상황에 침묵 중이었다.
“…….”
“…….”
“…….”
“괜, 찮으십니까. 대공자?”
잠시간에 침묵이 감돌고, 먼저 입을 연 것은 유영이었다.
다른 이들은 그저 곽천영이 어떻게 나올지 상상이 가질 않아 입을 다물고 있을 뿐.
창백해진 안색의 주인장이 벌벌 떨며 다가왔다.
“송구합니다. 손님. 저, 제가 얼른 이 아이를 치우겠습니다.”
“됐다. 가서 아이들이 먹을 죽이라도 가져오게.”
“예? 아, 알겠습니다!”
걸인 꼬맹이들이 호구를 잡는 데 성공해서 추가 수익을 올린다면 객잔에도 나쁠 것이 없었다. 주인장은 얼른 주방으로 달려갔다.
“…….”
“왜 그렇게 봐? 너라면 이렇게 했을 거 아냐. 내가 대신해 줬는데 불만이야?”
“그건 아니지만요.”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이린의 시선에 곽천영이 불퉁하게 대꾸하자 이린도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이, 꼬맹이들. 남의 다리 붙잡고 있지 말고 일어나.”
“…감사합니다.”
슬금슬금 일어난 아이들은 눈치를 살피며 열심히 고개를 조아렸다.
“됐어, 일단은 먹고 얘기해. 여기에는 오지랖 넓은 협객들도 계시니.”
뭔가 포기한 듯한 곽천영의 말에 다들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괜찮니?”
다정한 목소리에 아이는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겁 없이 매달리기는 했는데 고개를 들고 보니 다들 허리에 검을 찬 사람들뿐이라 겁을 집어먹고 굳었다. 어쩐지 주인장이 금방 물러나더라니 이유가 있었다.
“저, 저는 괜찮습니다.”
며칠간 거리에서 걸식을 했는지 꼬질꼬질한 아이의 얼굴은 눈물로 젖어 있었다.
이린은 한숨을 쉬며 손수건을 꺼내 아이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
‘구걸하고 다닌 지 오래된 것 같지는 않은데.’
옷은 어디에서 긁혔는지 해졌지만 이린이 보아 온 다른 걸인들에 비하면 낡은 편은 아니었다.
“아까 주인장이 한 얘기 사실이니?”
“…사실이에요. 하지만 거짓말하지 않았어요. 정말로 엄마 아빠가… 사람들이 끌려갔어요!”
다시 울먹이기 시작한 아이들을 보며 이린은 한숨이 나오는 것을 애써 참았다.
가슴이 불안으로 뛰기 시작했다.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