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Goddess RAW novel - Chapter 211
211.
‘설마, 이 시기에도 이미…….’
혈교는 지현문 참사 이후 많은 혈겁을 일으켰다. 하지만, 알려지지 않은 혈겁이 이전부터 있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오빠, 보는 눈이 없는 곳에서 제대로 이야기를 들어 보는 게 낫겠어.
이린은 이현에게 전음을 날리고 아이들을 달랬다.
“그런 말 하지 않아도 먹을 것은 줄 테니 걱정하지 말렴. 오빠, 얘들 방으로 데려가서 먹일게. 아, 그전에 좀 씻겨야겠어.”
“저희는…!”
“그래그래.”
이린이 다른 사람들을 등지고 검지를 입가에 살짝 가져다 대자 아이들은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이린과 이현은 일단 아이들을 데리고 객실을 잡았다. 그리고 점소이에게 아이들의 목욕 준비와 식사를 방으로 가져다 달라 부탁했다.
뒤쪽에서 또 저런다고 혀를 차는 일행들의 목소리와 객잔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평소 행동이 있으니 내가 애들 데려가도 다들 이상하게 보지도 않는구나.’
이걸 웃어야 할지.
목욕물이 준비된 것을 보고 이린이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어리둥절해 하던 아이는 이현이 따라 들어오자 움찔 몸을 굳혔다.
“아.”
“왜 그래?”
“오빠는 들어오지 마.”
“어?”
아이들이 꾀죄죄한 모습이라 몰랐지만 큰 아이는 여자아이였다.
“미안, 여자아이였구나.”
“아뇨. 일부러 남자애인 척했는걸요.”
이린이 아이들을 씻겨서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점소이가 먹을 것을 가지고 도착했다.
오랜만에 먹는 따뜻한 음식에 아이들은 무아지경으로 음식을 삼켰다.
8~9세 정도 됐을까? 특히 저보다 어린 동생을 끌고 다니는 아이는 몹시 지쳐 보였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줄 수 있겠니?”
“아까 얘기 자세히 해 볼래?”
“믿어 주시는 거예요? 하지만 아까는….”
“범상한 얘기는 아니니까. 그리고 아무도 믿어 주지 않는다면, 함부로 떠들지 않는 게 나을 거야.”
“…….”
이린의 말에 아이의 안색이 굳었다.
아이들이 살던 곳은 이곳보다 더 외진 곳에 있는 마을이라고 했다.
“그래도 어른들이 시골 마을치고는 작은 편이 아니라고 했어요. 은가장이라는 작은 장원도 있고요.”
아이의 말에 이현과 이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연가장과 조금 비슷하려나.’
힘 있는 유지가 있으면 마을 전체가 은근히 그곳에 의지하게 된다.
관의 힘이 미치지 않은 외진 곳이라면 더더욱.
“어느 날부터 은가장에서 일을 도울 사람이 필요하다고 사람들을 불러 모았어요.”
낮이 아닌 밤에 할 수 있는 일이었고, 가외 수익을 마다할 이는 없어 너도나도 해가 질 무렵이 되면 은가장으로 향했다. 처음 은가장에 다녀온 이들은 다들 일은 어렵지 않고 식사도 먹어 본 적 없는 맛있는 것들이었다며 자랑을 했고, 얼마 후부터는 아예 장원에 머물기 시작한 이들도 있었다.
“저희 집처럼 아이가 있는 집들도 다들 밤에만 일하는 거니 나쁘지 않다며 아이들까지 데리고 가기 시작했어요.”
아이의 동생이 얼마 전 다리를 다쳤기에 아이들의 어머니는 한동안 은가장에 가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가 조금 낫자 주변의 권유로 은가장에서 함께 일을 했다. 그리고 그때, 이상한 것을 알게 되었다.
은가장에서 나온 본인 몫의 음식을 몰래 빼돌려 아이들에게 가져다준 것이 계기였다.
아이들은 어머니가 가져온 음식을 먹고 온종일 나른하게 휘청휘청 움직였고, 제대로 판단하지도 못했다.
은가장에서 일하는 이들 중에도 상태가 이상한 이들이 가끔 보였기에 이상하다 생각했던 여인은 그제야 깨달았다. 은가장에 맡겨 뒀다는 이웃의 아이들을, 마을에서도 은가장에서도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걸.
“아이들이 없어졌는데 다들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은 건가?”
“다들 은가장에 있다고… 우리도 장원에 맡기고 같이 일을 하면 돈도 벌고 좋지 않느냐고 했어요. 게다가 마을에 처음 보는 사람들도 늘었고요.”
아이들의 어머니는 원래 외지에서 온 이로 사람들과 교류가 많은 편은 아니었다. 남편은 산에서 잡은 동물 가죽을 다른 마을로 가서 팔고 오곤 했기에 아이들과 셋만 지내는 날이 더 많았던 부인은 아이의 다리가 낫고, 남편이 돌아오길 기다리며 매일 밤 두려움에 떨었다.
[엄마. 옆집 아주머니가 이상해졌어.]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모르는 척해야 해. 알았지?]은가장에 가되 음식은 먹지 않고 돌아오던 아이들의 어머니는 남편이 돌아오자 바로 아이들을 데리고 몰래 도망쳤다.
그리고 마치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누군가가 그들을 추격했다. 도망칠 수 없을 거라 직감한 부모는 아이들을 나무둥치에 숨기고 다른 방향으로 달려갔다. 소리 죽여 울던 아이들은 부모가 시킨 대로 주변이 조용해진 후 살금살금 도망칠 수 있었다.
“여기 도착해서 사람을 불렀는데….”
주인장의 말대로 아이의 말을 들은 사람들이 마을로 향했다. 그러나 돌아온 사람들은 아이들의 부모가 그곳에 살지 않는다고 했다. 흉수들의 소굴인 줄 알았던 은가장 사람들은 주변의 평판도 좋았고, 겸손하고 예의 바르게 사람들을 대했다. 심지어는 아이들이 주리고 갈 곳이 없어 그런 말을 지어냈을지 모르니 관대하게 용서해달라 청하기까지 했다.
호의로 아이들을 돌봐 주던 이들은 아이들이 동정을 사려 거짓말로 사람들을 고생시켰다며 외면했다. 그래도 먹을 것을 주는 이들은 고마울 정도였다.
하루아침에 부모를 잃고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게 된 아이들은 거리에 미아로 남게 됐다.
“마을 사람들이 이상해졌다고?”
“어딘지 멍해져서 부딪혀도 아픈 걸 모르고… 우리도 음식을 먹고 나서 한동안 그랬다고 했어요.”
“…….”
사실이라면 보통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어쩌면… 이게 지현문 일과 관계되어 있을지도 몰라.’
연적훈은 물론이고 이현과 이현의 벗들은 그렇게 쉽게 당할 사람들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번에 직접 본 지현문의 사람들 역시 결코 약하지 않았다.
최근 혈교와 맞부딪쳐 본 경험이 있는 이린은 그들이 허무하게 살해당했다는 사실이 납득이 가지 않았다.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은데.”
“게다가 그 말이 정말이라면 곧 이 아이들을 노릴 거야.”
지금이야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많으니 바로 없애지는 않겠지만 화근을 그냥 놔둘 리가 없었다.
“저희 엄마 아빠는 무사할까요?”
“너무 걱정하지 말렴.”
일단 아이들을 안심시켰으나 다들 표정이 좋지 않았다. 정말이라면, 무척 성가신 일이 될 듯했다.
“린아, 네가 아이들을 데리고 왔던 길을 돌아가서 개방에 이 일을 알리고 아이들을 맡기는 게 좋겠다.”
“하지만 오빠.”
“네가 가장 빠르잖니.”
이대로 오빠를 보내기 불안한 이린이 싫다고 소매를 잡아당겼지만 이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린의 경공이 뛰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분명 이린을 떼어 놓기 위한 말이었다.
“…금방 따라갈 거야.”
“연 소저.”
“이린.”
이린은 자신을 부르는 청휘와 천영을 쏘아보며 말했다.
“방해만 되니까 따라오지 말아요.”
“…….”
“…….”
“위험한 일도 하지 말고요.”
그건 우리가 할 말이 아닐지.
청휘와 천영은 이린의 말에 침묵으로 답했다.
아이에게 마을로 향하는 길과 아이들이 기억하고 있는 마을의 구조, 그리고 살던 집과 은가장의 위치 등을 확인한 이린과 일행은 객잔에서 쉬지도 않고 그대로 다시 길을 떠났다.
‘나를 떼어 놓을 수 있을 줄 알고?’
시키는 대로 눈을 꼭 감은 아이들을 양옆에 하나씩 안아 든 이린은 예전 혈교에게 쫓기던 때를 생각하며 속도를 올렸다. 물론 혼자 달릴 때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때처럼 속도를 맞춰 함께 달려야 할 사람도 없었고, 아이들은 옷 속에 정체불명의 물건들을 가득 달고 다니는 당자혜와 비교할 수 없이 가벼웠다.
덕분에, 개방도들이 보이는 지역까지 도착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냥 애들이 거짓말한 거 아니요?”
다만 개방도들이 말을 잘 안 들어서 문제지.
이린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미는 것을 느끼며 검을 뽑았다.
스릉―
“히익?!”
“지금 이게 무슨…!”
그리고 개방도들이 기겁하거나 말거나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
스스스― 쿵! 쿵! 쿵!!
무언가 마찰하며 나뭇가지가 스치는 소리와 묵직한 무언가가 넘어가는 소리.
덜덜 떨며 고개를 돌리자, 뒤에 있는 나무 몇 그루가 깔끔한 단면을 남기고 잘려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지금 그 말 책임질 수 있는 거겠죠? 만약 혈교가 얽힌 일이라면 많은 사람의 목숨이 걸린 일. 하지만 당신들 목을 걸고 그저 아이들이 잘못 안 것일 뿐, 아무 일도 아니라고 단언하고 있는 거죠?”
“그, 그건….”
이현의 뒤에서 조용히 따르던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이린의 모습에 딴청을 피우던 개방도들은 몸을 굳혔다. 등에서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그저 유정검의 뒤꽁무니를 따르는 어린애라고 생각했는데…!’
이린이 혈교와 싸웠던 사실은 개방도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 퍼져 있었으나 어리고 얌전한 이린의 모습을 본 이들은 다들 그 일이 과장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서 사람 허리보다 굵은 나무 몇 그루를 가볍게 베어 버리는 소녀를 마주한 개방도들은 자신들의 생각이 오만했음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이린은 멀미로 괴로워하던 아이들이 놀라 기절이라도 할까 봐 화를 애써 참으며 대신 은자를 꺼냈다.
“윗선에 소식을 전해요. 값은 치러 줄 테니, 어서, 빨리!”
“아, 알겠…습니다!”
“만약, 연락이 늦어져서 이 일이 잘못되면 당신들에게 책임을 물을 겁니다. 오라버니는 어떨지 몰라도, 나는 웃으며 넘어갈 생각이 없으니까요.”
“네, 네!!”
강약약강이라고 얌전히 있으니 우습게 보다가 거칠게 나가니 굽실거리기 시작한 개방도들을 보는 이린의 눈은 차가웠다.
‘오빠는 그래도 늘 예의 바르게 대했겠지.’
아마 이현이 강호행을 하는 동안 우습게 보며 함부로 대하는 이가 많았을 것이다. 강호는 힘이 없으면 무시당하는 곳이고 이현은 겉으로 그리 강해 보이는 이가 아닌 데다 아버지의 위명을 빌릴 성격도 아니었으니.
이현이 굳이 용봉의 이름이 필요하다 느낀 것은 어쩌면 바뀐 이린 때문이었을까.
‘예전의 나는 연가장 밖으로 나갈 생각도 안 했지만, 이번에는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는 것이 눈에 보였을 테니 더 걱정이 되었겠지.’
힘도 필요하지만, 그 힘을 과시해야만 주변의 태도가 바뀐다.
그렇기에 다들 이미 힘을 가지고 있고 주변에 인정과 선망을 받는 거대 문파와 세가에 연을 만들어 기대고 싶어 하는 것이다.
새삼 아버지도 오라비도 없이 무력한 연가장을 남궁세가의 힘에 기대어 지킬 수밖에 없었던 옛 과거를 떠올린 이린은 조용히 검을 갈무리하며 고개를 저었다.
‘힘이 없어 보호받아 왔지만 이제는 아니야.’
눈앞에서 번뜩이는 검 날이 사라지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개방도들을 본 이린은 한심한 표정을 애써 숨기고 뒤를 돌아보며 당부했다.
“그리고 이 아이들을 보호해 주… 이런, 많이 놀랐니?”
입을 쩍 벌리고 굳어 있는 아이들을 본 이린이 민망해하며 몸을 낮췄다. 아이들이 있으니 좀 더 신경 썼어야 했는데 참지 못하고 그 앞에서 화를 냈으니 조금 민망했다.
“괘, 괜찮아요.”
굳어 있는 누나 쪽에 비해 동생은 눈을 반짝이며 이린에게 매달렸다.
“저기, 엄마 아빠 구하러 간 아저씨들은 누나보다 세죠? 우리 엄마 아빠 구해 줄 수 있죠?”
“으음, 그래. 그러니까 여기서 저 아저씨들이랑 얌전히 기다리고 있으렴.”
“네!!”
이린의 말에 아이는 밝아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린의 얼굴은 그리 밝지 않았다. 아이들이 마을을 떠나고 벌써 며칠의 시간이 지났다. 과연 이 아이들의 부모가 무사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