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Goddess RAW novel - Chapter 216
216.
아이들을 연가상단에 데려가는 것은 핑계는 아니었다. 혹시나 아이들을 노릴지 모르니 연가장이 아닌 연가상단에 맡기는 게 낫겠다는 연적훈의 의견에 이린도 동의했기 때문이었다.
이상한 말이지만 연가장보다 연가상단이 훨씬 습격에 대비가 잘 되어 있었다.
‘아니 우리 집은 어쩔 건데.’
그쪽이 대비가 잘 되어 있는 이유야 당연히 마련야장 때문이었지만.
“장원 쪽도 좀 신경 써야 하는 거 아냐?”
잔소리를 늘어놓는 이린을 이현은 따스한 눈으로 지켜보며 웃었다.
“떠나기 전에 어머니한테 갔다 왔지?”
“어? 어.”
“남자 친구 소개?”
“남자는 맞지만 친구… 비슷한 건가?”
이린의 애매한 반응에 이현도 피식 웃었다.
“어머니랑 무슨 얘기 했어?”
“아버지랑 오빠 좀 아무 일 없이 무사하게 지켜 달라고.”
“왜 갑자기 그런 이상한 소릴?”
“요새 흉흉한 일이 많잖아.”
“그건 네가 아니라 내가 할 걱정 같은데.”
“…….”
걱정할 만한 일을 많이 저지른 이린은 그저 침묵했다.
‘하지만 걱정된다고.’
지현문의 일은 이번에 어느 정도 예방선이 쳐진 셈이었지만 또 어떤 일에 엮일지 모를 일이었다.
연가장에서 장사로 가는 길은 늘 그렇듯 순조로웠다.
하지만 장사에 있는 연가상단에 도착하자 이린은 뭔가 주변이 어수선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슨 일이 있었나?”
“글쎄. 하지만 확실히 분위기가 조금.”
도착하고 이상한 어수선함에 두리번거리던 이린은 뜻밖에 기대도 하지 않은 인물과 드디어 마주쳤다.
“앗, 서문제우 아저씨!”
“소장주님! 아가씨! 오랜만에 뵙습니다.”
하지만 이린과 이현은 오랜만에 만난 서문제우를 반가워하기 이전에 지금 상단의 날 선 분위기에 대해 먼저 물어봐야 했다.
“근래에 습격이 있었습니다.”
“습격?”
“근래에는 혈교의 습격도 없었던지라… 정확하지는 않지만 얼마 전 의뢰받은 표물 때문이 아닐까 하고 있습니다.”
“의뢰인은 누군데?”
“일단 도제(刀帝)라고 했습니다만….”
서문제우의 입에서 나온 뜻밖의 이름에 이현도 놀라 되물었다.
“도제 오환? 본인이었어?”
“인상착의는 일치했다고 합니다만 맡기고 금방 떠나 버려서 다들 난감해하고 있습니다.”
서문제우가 표행을 마치고 돌아오기 전에 있었던 일이라 그도 얼굴을 보지는 못했다고 한다.
갑자기 찾아와 물건을 표물로 좀 부쳐 달라고 부탁을 했다고. 마련야장과 안면이 있는 사이라 불러와 확인하려 했는데 과할 정도의 의뢰금만 남기고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어디로 보내는 물건인데요?”
“그게… 소림사입니다. 방장(方丈)이신 불성 만공대사에게 보내 달라고 했습니다.”
도황이라면 혈교와의 전쟁 때 만공대사와 안면이 있을 테니 그거야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의뢰비를 선불로 받아 버렸으니 일단 의뢰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문제는 표물을 인수하고 난 이후 이상한 습격이 상단을 향했다는 점이었다.
“의뢰인은 이미 떠났고, 돈과 물건은 남겨졌다 이건가.”
“습격 때문에 다른 곳으로 표행을 떠나는 것도 잠시 멈춘 상태입니다.”
그래서야 곤란했다. 영업에 방해가 되는 물건이라니.
“표물은 어떤 물건이지? 감출 수 없을 정도로 큰가?”
원래 표물에 대해서는 기밀을 지켜야 하지만 사안이 사안이고, 상대가 이현과 이린이었으므로 서문제우는 간단한 사항을 설명했다.
“품 안에 넣어서 이동해도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작은 물건입니다.”
“후우. 그럼, 내가 직접 가는 게 낫겠군.”
“오빠.”
“이대로 놔둘 수도, 넘겨줄 수도 없잖니. 의뢰인이 정말 도제인지는 확인하고 싶지만 어려울 것 같고.”
틀린 말은 아니라 이린도 이현의 말을 부정하지 못했다. 운반이 어려운 물건도 아니니, 어지간한 표사보다야 일행이 전하는 것이 가장 안전했다.
‘하지만 굳이 표물을 우리 상단에 맡긴 이유는 뭘까.’
이린이나 이현을 목적으로 함정을 팠다고 하기에는 아무래도 부자연스럽다.
그렇게 이린이 의아해하는 것과 달리 이현은 그 원인을 대충 알 것 같았다.
‘고모님 때문이겠지.’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는 크거나 작거나 연가장을 경계하는 분위기가 조금씩 있지만 그와 별개로, 검성이나 군자검과 함께한 기억이 있는 이들은 연가장을 상당히 신뢰했다. 특히 중소문파 사람일수록, 거대 문파에 대한 불신이 강했으니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도제는 분명 1인 전승의 소문파 출신이니,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적을 터….’
그러니 중요한 물건이라면, 검성의 친인이 운영하고 있는 연가상단에게 맡기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다.
연가상단 입장에서는 민폐였지만 역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이 연가장을 신뢰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일단 의뢰인의 정체에 대해서는 내가 마저 확인해 봐야겠구나.”
“응. 나도 마련야장께 가 볼게.”
연사훈 지부장과 마련야장부터 만나고, 마선을 비롯해 본래 이곳에 있는 아이들에게 새로 데려온 아이들을 소개해 준 이린은 오랜만에 만난 서문제우를 붙잡았다. 전부터 확인하고 싶은 일이 있었지만 계속 마주치질 못했는데 이번에 표물 때문에 마침 발이 묶인 덕에 오랜만에 마주친 셈이었다.
이린은 거두절미하고 본론부터 들어갔다.
“혹시 추연이라는 사람에 대해 아세요?”
“네? 추연… 추연이요? 그, 그 사람을 아가씨께서 어떻게 아십니까?”
명백히 아는 사람의 반응이라 이린은 침음을 삼켰다. 혹시나 했던 추측이 사실이었음이 밝혀졌지만 전혀 기쁘진 않았다.
“으음. 중요한 일이니 말해 봐요. 어떻게 알게 된 사이죠?”
“그 사람은 제 부인의 친구였습니다.”
그리고 과거 표국을 세울 때, 부인을 통해 도움을 주었던 사람의 이름이라는 말에 이린은 한숨을 내쉬었다.
“혈교… 아니, 신교와 아는 사이셨군요.”
“그 여자가 신교였단 말씀이십니까?”
“그건 확실해요. 그럼 표국을 세울 때의 자금도 신교의 도움을 받았던 셈이군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원금은 갚았고 부인이 세상을 뜬 이후로는 그다지 교류가 없었습니다.”
그건 본인 생각이고, 신교 혹은 혈교 입장에서는 아마 아니었겠지.
“관계가 없다고 단언할 수 있나요?”
“그건….”
서문제우가 고향도 아니고 연고도 없는 곳에서 순조롭게 신흥 표국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았다.
‘고작 원금 회수나 하자고 표국을 도왔다, 라.’
지난번 여행 때 만났던 모녀(母女)가 떠올랐다. 신교의 교주는 무상으로 그 여인에게 돈을 보태 주었고 여인은 갚고자 했으나 방법이 요원했다고 했다. 그리고 서문제우에게 돈을 빌려준 이 역시 원금만을 받았다고 했다.
두 사람이 같은 경우라고 볼 수 있을까. 아마도 그 여인의 경우 신교가 아직 혈교와 합쳐지기 이전의 일일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서문제우가 돈을 빌린 것은 시기상 혈교와의 전쟁 이후, 혈교가 몰래 세력을 키울 때의 일이었을 것이다.
‘서문제우가 아니라, 그 부인을 보고 빌려준 돈이었겠지.’
아마 서문제우의 표국을 통해 세력을 키울 생각이었으리라. 서문제우의 부인은 글을 알았다고 하니 표국 운영에도 분명 어느 정도 관여했을 테고, 표국을 통해 정보나 물자를 이동할 수 있다면 세력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되었을 테지.
하지만 서문민영의 어머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아무것도 모르는 서문제우와 어린 서문민영만 남았으니 그들을 통해서는 관계를 이어 가기 어려웠을 것이다. 표국에는 원체 사람이 많고 경비도 삼엄한 법이니 헌오 때와는 달리 몰래 드나들기도 힘들었을 테고.
“헌오네 역시 비슷했을지도 모르겠군요.”
“네?”
“어쩌면 혈교에게 노려진 사람들은 신교와 연결고리가 있다는 공통점이 있을지도 몰라요.”
이제 와서 알아봤자 소용없는 일일지도 모르지만.
“그건….”
“헌오 아버지에게도 전해 두세요. 조심하라고요.”
“지금 먼 곳에 있어서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꼭 전하겠습니다.”
“그분은 대체 어디 계세요? 뵌 적이 없는데.”
“고향에 계신 부친을 뵈러 갔는데 언제 돌아올지는… 아, 본래 본가가 유복한 곳이라 헌오의 교육이나 생활비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랍니다.”
“그럴 거면 진작 돌아가지 않고요.”
아이가 아팠는데 너무하지 않은가?
“부친께서 부인과 혼인을 반대해서 헌오도 인정하지 않겠다고 하셨답니다. 그래도 인정받아 보겠다고 갔으니 너무 화내진 마십시오.”
“화내는 건 아닙니다만… 아이를 조금 더 신경 써 주셨으면 해요. 헌오는 아직 어린아이니까요. 물론 민아도 마찬가지예요. 설마 상단에 돌봐 주는 사람 많다고 방치하고 다니시는 건 아니겠죠?”
“아, 아닙니다.”
이린은 서문제우에게 잔소리를 쏟아 놓으면서도 내심 속이 갑갑해졌다.
‘내가 온전히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너무 적어.’
서문제우를 믿지 못하는 건 아니다. 단지 경계심이 부족할 뿐.
이 일에 대해 과연 상단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말해 두어야 할까. 지난번에도 이미 당부한 바가 있었고 마련야장이 상단에 있는 한 연가상단은 혈교에 대해 기본적인 대비를 갖출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린이 더 많은 대비를 하자고 하면 다들 이유를 물을 것이다.
‘수상쩍을 정도로 많은 정보를 알려 줘도 의혹을 가지지 않고 내 말에 따라 줄 사람이라.’
떠오르는 이는 하나뿐이었다.
* * *
이린과 이현 일행은 장사를 떠나 하남의 소림사로 향했다.
이린은 남궁청휘에게 남궁세가로 돌아갈 것을 권했지만 남궁청휘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제가 돌아가지 않는 것이 더 나을 겁니다.”
남궁세가에서 남궁청휘를 찾아 보낸 서신이 상단에 있다 들었는데 무슨 소식이었는지는 몰라도 그리 낯빛이 좋아 보이진 않았다.
‘남궁세가에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걸까.’
대체로 폐쇄적인 성향이 있는 세가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개방이나 하오문을 통해서 알아보긴 어려웠다. 아마 후계자에 대한 얘기라도 나오고 있는 게 아닐까 싶지만…….
‘남궁청휘는 일부러 그런 일에 끼어들지 않았다고 했지.’
이린이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내자 청휘는 도리어 기쁜 듯 싱긋 웃었다. 근래에 남궁청휘는 대체로 이런 분위기였다.
“곽 공자도 소림사에 가는 건 기대되나 봐요?”
“글쎄, 유명세만큼 뭐 대단한 게 있겠어?”
반면에 곽천영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금 가라앉은 분위기였다.
장사에 잠시 머무르는 사이 다시 합류했는지 한동안 보이지 않던 곽천영의 수하가 얼핏 보여서 이린은 뭔가 사문에서 좋지 않은 소식이라도 온 걸까 고개를 갸웃거렸다.
‘곽천영도 그렇고 유영도 그렇고 그다지 자기 얘길 하는 편은 아니지.’
그런 주제에 곽천영은 묘한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어 이린은 조금 뒤통수가 따가웠다.
“무슨 일 있어요?”
“별로.”
그렇게 말하는 곽천영을 내버려 둘 수 있으면 참 좋겠지만….
‘밤에 피 냄새를 흘리며 돌아올 때가 있단 말이지.’
본인 피는 절대 아닌 듯해 일단 안심이었지만.
그리고 이린은 그 원인을 잘 알았다.
곽천영과 그 수하들은 종종 밤에 일행을 따라오는 자들을 몰래 처리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당황했고, 이후에는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들어 복잡했다.
물론 낮에 습격해 오는 것까지 모두 차단하는 건 아니다 보니 일행은 마을을 지나고 나면 혈교의 습격을 받을 때가 있었다.
“항주에 갔을 때 생각이 나는군요.”
“그땐 셋뿐이었으니 아무래도 여유가 없었죠.”
일당백을 처리하던 당자혜가 새삼 그리워졌다. 물론 지금 이 일행의 실력이 그때보다 못하지는 않으니 여정은 피곤할지언정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그 때문인지 혈교의 습격은 어딘지 조급함이 느껴졌다. 습격해 오는 자들의 수준이 점점 높아졌지만 일행은 의외로 무리 없이 그들을 처리했다. 덕분에 이린은 점점 더 실력을 감출 수 없게 됐다.
‘이제 숨기는 건 틀렸나.’
혈교가 바보가 아닌 이상 이린이 실력을 감추고 있었음은 눈치채고 있을 터였다.
그렇게 호북을 지나 하남에 있는 소림사에 도착했다.
“이걸 넘기고 난 후에도 습격이 계속 이어질지 어떨지가 의문이네요.”
“그건 그것대로 목적이 우리라는 뜻이 확실해지니 나쁘지 않군요.”
슬슬 습격도 지겨워져서 경공으로 달려와 버린 일행이 하남의 숭산 소림사에 도착한 것은 이미 해가 진 후였다.
이 물건이 무엇인지, 누가 보냈는지 호기심이 일었으나 이 이상 깊이 연결되는 것도 감당하기 어려울 듯해 물건만 전달하고 빠질 생각이었다. 그러나….
“날이 저물었으니 이곳에서 쉬었다 가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여러분께서 오셨다는 전갈에 만공대사께서 내일 직접 만나 뵙고 싶다고 하십니다.”
불성이라 불리는 만공대사를 직접 만날 수 있다는데 거부할 이는 없었다.
물론 다들 지쳐 있는 데다, 혈교가 설마 소림사까지 따라와 습격하지는 않을 테니 편히 쉬고 싶은 마음도 있었기에 일행은 배려를 받아들여 하룻밤 신세를 지기로 했다.
그리고 그날 밤, 소림사를 습격한 이들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