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Goddess RAW novel - Chapter 217
217.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없는데.’
소림사가 강호의 태산북두(泰山北斗)라 불리며 무예로 이름이 높다지만 그 이전에 사찰이었다. 일반 향화객들도 많이 찾는 곳이라 소림이 습격받았다면 분명 소문이 났을 텐데 이린이 처음 듣는 일이라면 그간 이린이 뒤틀어놓은 일들의 영향이라는 뜻일 터였다.
지금까지보다 맹렬한 기세에 처음에는 다들 조금 당황했지만 다행히 일행뿐 아니라 소림의 나한승(羅漢僧)들과 소림의 방장인 만공대사까지 가세해 혈교의 습격을 물리치는 데 성공했다. 묘하게도 추격자들은 마지막까지 집요하게 이린을 노리다 곽천영와 남궁청휘의 손에 쓰러졌다.
“왜 린아를 노리지?”
“모르겠는데….”
그간 이린이 혈교를 방해한 적은… 있었지만 이린을 저격해서 노릴 정도는 아니었다.
“물건을 내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게 아닐까?”
겉보기로 이 일행에서 가장 어리고 약하지만 발은 빠른 사람이 이린이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사실 이린이 가지고 있기도 했고.
‘그게 아니라면… 뭔가 들켰을지도 모르지만.’
한숨을 쉬는 이린을 감싸며 이현이 미간을 찌푸렸다.
소림의 제자들이 뒤처리를 하는 사이 나한승 하나가 다가와 두 사람을 불렀다.
“연 소협, 연 소저. 방장께서 두 분을 뵙고자 청하십니다.”
“?”
뜻밖이었지만 이런 소란까지 일어났으니 물건은 빨리 전하는 편이 홀가분했기에 순순히 따라나섰다.
“아미타불. 소승은 만공(滿空)이라 하오.”
흰 수염이 성성했지만 장년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소림의 방장(方丈), 만공대사가 두 사람을 맞았다.
“진작 두 분을 모셨으면 이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을, 소승의 불찰이니 사죄드리오.”
“늦은 시간에 찾아온 후배들을 배려해 주신 것이 어찌 불찰이라 하십니까.”
통성명을 하고 적당히 인사치레를 주고받은 후 이린은 품에서 의뢰받은 표물을 꺼냈다.
“스스로를 도제(刀帝)라 칭한 이가 방장께 전해 달라 의뢰한 물건입니다.”
이린이 건넨 작은 상자를 받아든 만공대사는 복잡한 눈으로 이린을 응시했다. 생각보다 젊어 보이지만 분명 훨씬 나이가 많을 이 노승도 이린의 머리카락과 눈동자가 신기한지 눈을 떼지 못했다.
“시주께서는 소승이 아는… 분과 많이 닮으셨소이다.”
“제가요?”
“아미타불.”
만공대사는 이린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불호만 읊조릴 뿐이었다. 마치 대답을 피하는 듯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상자를 열어 안에 있던 물건을 꺼내 들었다.
“!”
이린은 동요를 감추기 위해 이를 악물고 옷자락을 꼭 붙들었다. 면사를 거둔 것이 후회스러웠다.
‘말도 안 돼.’
만공대사의 손에 들린 것은 이린이 죽기 전 마지막으로 보았던 바로 그 금패였다.
원본은 보석이 없어진 채 자신이 호수 속에 가라앉혔고, 복제본은 동굴 안에 있을 터. 그렇다면 저 금패는 또 다른 곳에서 나온 신교의 신물이라는 뜻이었다.
콰직-
그리고 그 금패는 만공대사의 손에서 우그러들었다. 금패의 가운데 박혀 있던 보석도 깨져 버렸다.
“?!”
만공대사는 부서진 금패와 보석 조각을 그대로 바닥에 방치한 채 물건을 가져온 오누이에게 할 말이 있다며 안으로 이끌었다.
“방금 소승이 부순 것은 신교의 신물이라 불리는 물건이오. 혈교는 그 물건을 찾고 있는 듯하오.”
“신물이요?”
이린은 이미 검각에서 들은 바가 있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혈교가 그것들을 찾고 있으리란 것도.
“혈교와의 전쟁이 마무리되고 신교의 물건들은 대부분 처분되었지만 찾지 못한 것들도 있었소.”
신교의 신물은 위험한 물건들이니 혈교의 잔당이 남아 있었기에 구존(九尊) 중에 운신이 자유로운 이들이 그 흔적을 찾기로 했다고.
“욕심이 없는 검성과 도제가 주로 일을 맡고, 검선과 검제가 돕기로 하였소. 찾는 즉시 파괴하되, 파괴에 실패하면 소림으로 가져와 소승이 직접 부수도록 했기에 설마 표물로 부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소.”
아마 알았다면 시간이 늦었다 해도 만나기를 미루지는 않았을 거란 뜻이었다.
도제가 신물을 연가상단에 맡긴 것은 아마 일신에 문제가 생겼거나 단신으로 상대하기 성가시리라 생각했기 때문인 듯했다.
문득 이린은 장주가 되고 몇 년 지나지 않았을 무렵, 검제가 지나는 길이라며 연가장을 찾아왔던 것을 떠올렸다.
‘막연하게 아버지와 교분이 있어 찾아왔던 게 아닐까 생각했지만, 실은 신물을 찾고 있었던 게 아닐까.’
이린이 장주가 되어 두 번째로 시합을 열었던 날이었기에 기억이 선명했다.
첫 번째 해에는 검황 남궁익이, 두 번째로 시합을 열었을 때는 검제 성유언이 시합을 지켜보았다. 모여들었던 어중이떠중이들이 기가 죽을 만한 거물들이었으므로 이린의 입장에서는 어떤 이유에서였건 고마운 일이었다.
[연 장주의 경공은 천하의 백대고수 중에도 따라잡을 수 있는 이는 드물 테니, 분명 원하는 혼인을 하실 수 있을 것이오.]압도적인 차이로 구혼자들을 제치고 도착한 이린을 본 검제가 안심한 듯 씁쓸한 듯 웃으며 남기고 간 말 역시 그러했다.
‘다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움직이고 있구나.’
만공대사는 이현과 이린 두 사람과 고생한 일행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편히 쉬었다 가라 권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말은 실현되지 못했다.
“무림맹에서 전갈이 왔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소. 연 소협이 이곳에 있을 거라며 함께 보낸 듯하오.”
장사에서 소림사로 출발하기 전 안휘에 있는 무림맹에 서신을 보낸 적이 있었기에 일행이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은 이상하지 않았다. 무림맹에서 온 서신을 읽은 연이현은 침음을 삼켰다.
일행이 무림맹을 떠난 후, 검성이 산서성(山西省)에 있는 혈교의 근거지를 발견해 무림맹에서 사람을 모아 함께 치기로 했다는 전갈이었다.
‘혹시 고모님은 일부러 우리가 떠난 후에 말씀하신 건가?’
연화문의 의사는 알 수 없으나 서신에서는 연이현에게 일에 동참하지 않겠느냐는 무언의 압박이 느껴졌다. 만공대사는 이현이 받은 서신의 내용이 대강 짐작 가는 듯 넌지시 권했다.
“아미타불. 연 시주가 함께할 생각이라면 소승과 함께 출발하는 게 어떨까 싶소.”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다만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이현은 공손하게 청했다.
“나 혼자 장사로 돌아가라고?”
“혼자는 아니고, 소림의 나한승들께서 돌아가는 길이 위험하지 않도록 살펴 주실 거야.”
“오빠는.”
“나는 무림맹에서 회합이 있다고 해서 참가해야 할 것 같아. 오빠가 무려 오룡에 꼽히는 몸이잖니? 게다가 이번에는 검성도 뵐 수 있고.”
“하지만….”
이린은 이현의 말에 이유 없는 불안을 느꼈다. 아니, 이유가 없는 건 아니다. 지금까지 무림맹의 회합이라는 것에 혈교가 습격을 한 게 몇 차례던가.
“그래서 청운 형님도, 남궁 공자도 함께 가야 할 것 같은데….”
“그럼 제가 연 소저와 동행하죠.”
“곽 공자.”
갑작스레 끼어든 곽천영의 말에 이현은 불안한 얼굴을 애써 감추며 고개를 저었다.
“공자께 폐를 끼칠 수는 없지요.”
지금껏 함께 여행했다고는 하나 곽천영은 의문이 많은 인물이었다. 극비로 이루어지는 이번 일에 그를 동행할 수도, 그에게 이린을 맡길 수도 없었다.
대놓고 말하지 못하는 이현 대신 이린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거절했다.
“곽 공자랑 가는 건 좀 그렇군요.”
“내가 뭐 잡아먹을까 봐?”
“사고를 잘 치잖아요.”
티격태격 별 의미 없는 대화를 주고받는 두 사람을 보며 이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뜻밖에 이린과 떨어지게 된 남궁청휘 역시 묘한 얼굴이었다.
‘혈교는 이린에게도 위협이 되니 이번 기회에 소탕할 수 있다면 이린도 불안해하지 않겠지.’
지난번 강서에서 혈교로 추정되는 자들이 벌인 일에 충격을 받았는지 한동안 침울하던 이린이었다. 항주에서 있었던 일도 그렇고, 그런 흉악한 일을 벌이는 자들을 좌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차라리 함께하는 게 더 안심될 것 같기도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며 슬쩍 연이현이 얼굴을 살핀 남궁청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을 포함해 이현의 벗들 역시 이린의 동행을 권했으나 연이현의 의사는 굳건했다.
[네 동생,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약하지 않아.] [그건 맞는 말입니다. 우리가 봐 온 바로도 충분히 실력을 보여 주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네 동생이 데리고 다니는 그 뱀들, 이번에 혈교 놈들과 싸울 때 보니 살아 있는 흉기던데. 그런 걸 데리고 다니는 애가 뭐가 그렇게 걱정이야?] [그래도… 안 돼. 이린이 위험한 곳에 있으면, 내가 안심할 수가 없어.]과보호라 해도 어쩔 수 없었다. 이미 몇 번이나 여동생이 위험을 겪었다는 사실을 아는 연이현은, 이 이상 이린이 위험한 곳에 가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연가장은 손이 귀해. 나와 이린 둘 중 한 명은 안전한 곳에 있어야지. 그리고 위험성이 있다면 당연히 내가 가야하고.]4형제의 막내인 남궁청휘는 자신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그 말에 묘한 기분을 느꼈다.
‘연가는 연 소협과 이린 둘뿐이니 그럴 수밖에 없겠구나. 하지만 연 소저는 분명 함께 싸우고 싶어 할 텐데.’
남궁청휘는 그리 생각하면서도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감히 이현에게 뭐라 말할 수 있겠는가. 이린과 자신은 아직 아무 사이도 아니었다.
그날 화를 내며 울며 매달렸던 이린은 이후로 좀처럼 그때의 감정을 내보이려 하지 않았지만 남궁청휘는 자신이 착각한 게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도 이린은… 함께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니 연 소협에게 뭐라 할 처지는 아니구나.’
남궁청휘는 불퉁한 눈으로 이현과 자신을 보는 이린에게 웃는 낯으로 말을 건넸다.
“너무 심려 마십시오.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
말없이 미간만 찌푸리고 있던 이린은 이현이 동행할 소림사의 스님들과 진로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살피곤 남궁청휘를 조용히 뒤쪽으로 이끌었다.
“?”
“남궁 공자는 왜 함께 가는 거죠?”
“어, 일단 오룡에 들었으니까요?”
반면에 이린이 경공은 몰라도 무예가 뛰어나다는 걸 아는 이는 아직 많지 않았다.
“연 소저,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연 소협께서는 무탈하게 돌아오실 겁니다.”
“…이 아이를 데려가세요.”
“네?”
청휘는 눈앞에 내밀어진 붉은 기가 도는 백사를 보며 잠시 말문이 막혔다.
“얼마 전 허물을 벗어서 한동안은 위험하지 않을 테니….”
혈교가 습격했을 때와 허물을 벗을 때의 시기가 일치해 보기 드문 구경을 했던 청휘는 저도 모르게 되물었다.
“정말 괜찮은 겁니까?”
“으음. 아마 앞으로 몇 년 정도는 괜찮…을 거예요, 아마.”
조금 자신 없는 목소리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저를 따라오는 건 홍아도 원치 않을 겁니다. 게다가 소저 곁에 이 아이들이 없으면 연 소협께서 더 걱정하시지 않겠습니까?”
“저는 오빠가 더 걱정인걸요. 얼마나 떨어져 있을지 모르니 데려가라고 해도 데려가지 않을 테고.”
“걱정 마십시오. 연 소협께서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저도 곁에서 지키겠습니다.”
“…남궁 공자의 걱정도 하고 있어요.”
더 이상 실랑이하고 싶지 않은 듯 시선을 피한 이린이 홍아를 내밀자 청휘는 그대로 이린의 손을 붙잡았다.
끼이?
“?”
“소저께서 이리 걱정해 주시는데 어찌 보답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