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Goddess RAW novel - Chapter 22
22.
“민아한테는 고기만 구워 줄게. 양념 발라서 먹으면 좀 먹을 만할 거야.”
“응.”
“그런 방법이 있는데 왜 이렇게 끓이신 겁니까?”
“정말 영초도 넣었거든요. 그쪽이 영양가는 더 풍부해요. 하지만 민아 같은 아이들은 아직 비위가 약하니까요.”
이린 자신도 포함해서.
참고 먹지 못할 것은 아니지만, 아직 비위가 약해서 자극적인 음식은 좀 부담스러웠다. 오죽하면 회귀 전 즐겨 먹었던 음식도 지금 입맛에는 좀 안 맞았다.
“과연, 영물의 고기라더니 활기가 충만해지는 기분이 듭니다.”
“아저씨는 고생하셨으니 한동안 정양하셔야죠.”
딸을 치료할 수 있다는 희망과 다시 표국을 시작하겠다는 희망적인 전망까지 더해진 덕분에 서문제우의 얼굴은 많이 밝아져 있었다. 아직 연가장을 떠나진 못하고 있지만, 연적훈의 도움을 받으며 표국을 재건할 준비에 한창이었다.
‘거기에 민아에게 가르쳐야 할 심법도 스스로 익히고 있으니 바쁘겠지.’
민영이 아직 어리니 스스로 익힐 수 있을 정도로 자라려면 몇 년은 걸릴 테고.
다행히 이린이 양보한 영약 덕분인지 요즘에는 아주 건강하게 연가장을 활보하곤 했다.
무엇보다 표국에 있을 때에는 돌봐 주는 사람은 있어도 제대로 놀아 주는 사람은 없었는데, 연가장에는 돌봐 주고 놀아 주는 사람이 많아서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 * *
민영을 여운에게 떠넘긴 이린도 요즘 바빴다.
새벽같이 일어나 홀로 운기조식에 경공 수련을 하고, 아침에는 이현과 함께 체력 단련을 했다.
날이 밝은 동안에는 동굴에서 가져온 비급들 중에 쓸 만한 것을 찾아 익히고, 홀로 수련을 하는 사이사이 민영이 잘 지내나 살폈다.
저녁 식사 후에는 이현과 함께 동굴을 찾곤 했다. 뭔가 더 얻을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 했지만, 아쉽게도 그 후로 더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거대 붕어를 잡으려면 최소한 이전 수준은 회복해야 하니까.’
강해지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 너무나 많은 현실 탓에 이린의 일정은 꽤나 빡빡했다. 덕분에 이린의 시중을 드는 것이 주 업무였던 자영은 지금 반쯤은 민영의 보모가 되어 있었다. 어차피 이린에게 이제 그런 보살핌은 필요 없었다.
“실은 부탁드릴 일이 있어서요.”
“말씀하십시오, 아가씨.”
“말 좀 편하게 해 주세요. 부담스러워요.”
서문제우 일로 이린은 깨달은 바가 있었다. 이전의 혈교는 여기저기에 불화의 씨를 뿌려 두고 폭발하기를 기다렸었다. 어떻게 알아낸 건지 눈앞에 있는 서문제우도 결국 혈교에 이용당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지 않았던가.
“표국이 정상 궤도에 오른 후에라도 좋아요. 사람을 몇 명 찾아 주세요.”
“사람을요?”
당연히 의아해하는 서문제우에게 이린은 시선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만이라도 어떻게 구해 봐야지.’
아무리 과거로 돌아왔다 한들 혈교에 대한 원한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아니, 앞으로 연가장 주변에 파고들 간자들까지 생각하면 오히려 이제부터 곱씹어질 예정이었다.
“정확한 정보는 나중에 서신으로 전하도록 할게요. 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아가씨의 부탁이라면 당연히 들어 드려야지요.”
이 작은 아가씨가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충분히 알고 있었다.
또한 그와 별개로 자신과 딸의 목숨을 구한 은인. 자신의 심장을 내달라고 해도 내줄 수 있는데, 그 정도야 쉬운 일이었다.
“앞으로도 제가 뭔가 이상한 부탁을 드릴지 모르는데 아버지와 오빠에게는 비밀로 해 주실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
해경심법에 대한 것 역시 비밀이었다.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심법을 구해 온 이가 비밀이라 하면 이유가 있을 것이다.
“후우, 감사해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수긍해 주는 서문제우 덕분에 이린은 걱정 하나를 덜 수 있었다.
아직 어린 이린이 연가장을 벗어나는 것은 아무래도 쉽지 않기에 행동에 제약이 많았다.
하지만 강호에 잔뼈가 굵은 서문제우가 이린의 대리인이 되어 준다면 운신이 한결 수월할 터였다.
“아직 제 혐의가 다 풀린 것도 아닌데 너무 신뢰하시는 거 아닙니까?”
“함정일지도 모르는데 딸 찾겠다고 연가장에 맨몸으로 뛰어든 분을요?”
“크흠, 이거 참 할 말이 없군요.”
“마음이 급해도 좀 더 주변을 살피셔야 해요. 아저씨는 민아를 지키셔야 하니까요.”
한동안은 연가장에서 지켜 주겠지만.
‘생각해 보니 새로 재건할 표국은 연가장의 것이니, 아저씨가 사고를 치면 우리 장원도 말려들게 되네.’
서문제우로서는 무림맹에서 주는 보상이 꼭 재건을 위한 금전이 되리라는 보장도, 당장 지급되리라는 보장도 없으니 생업을 위해선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연가장에 이로운 선택이었을지는 좀 더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닐까 싶지만.
‘이미 늦었지.’
이젠 그저 아버지의 안목을 믿는 수밖에.
그리고 얼마 후, 무림맹에서 연락이 오고 운신이 자유로워진 서문제우는 표국을 재건하기 위해 연가장 사람들 몇 명과 함께 길을 연가장을 떠났다.
아직 어린 민영을 남겨 두고.
“으아아아아아아!!!!!”
“우~운 오빠 시끄러워!”
민영을 업어 주던 그대로 머리를 뜯기고 있는 진여운의 절규를 들으며, 이린은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머리를 뜯기면서도 업고 있는 자세가 안정적인 것이, 친동생을 업고 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대체 왜 애를 남겨 두고 가신 겁니까??”
“표국 일로 힘든데 아픈 애까지 보살피긴 힘들잖아.”
표국 일로 바쁠 테니 안정될 때까지 한동안은 계속 장원에서 아이를 맡아 주기로 했다.
장원에서 즐겁게 뛰노는 딸을 보며 감동의 눈물을 흘리던 서문제우를 보고 있자니, 차마 데려가라는 말이 나오지 않기도 했고.
“대신 네가 원하는 대로 대련 한 번 해 줄게.”
“정말이십니까?”
그 말과 동시에 민영을 내려놓으려던 여운은 안타깝게도 아직 내릴 생각이 없는 민영에게 머리카락을 뜯기며 한참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싫어~ 안 내려갈 거야~!!!”
“아니 좀, 잠깐만! 야, 서문민영!”
‘으음, 둘이 참 많이 친해졌네.’
뜻밖에도 민영을 맡긴 게 정답이었는지, 여운의 까칠함도 많이 줄어든 느낌이었다. 물론 이린이 주먹으로 교육한 효과일 수도 있지만.
‘의외로 민아가 아빠한테로 돌아가면 가장 외로워하는 건 여운일지도?’
민영을 멀리 떼어 놓는 것만으로도 이미 지쳐 보여 다음으로 미루겠냐고 묻자, 여운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바쁘다고 그냥 넘어가실 거 아닙니까.”
“그럴 수도 있겠네.”
곧 자세를 잡는 여운을 향해 웃으며 손을 까딱이자, 여운은 이린을 향해 불같이 달려들었다.
‘기세 좋고, 자세도 좋고.’
요새 이린은 장원 아이들 자세를 봐 주고 있었다. 어린 시절 학습한 바가 있어, 어른들에게 괜히 충고하는 것보다 아이들을 봐 주는 게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금 장원에 있는 아이들 중 두각을 보이는 아이들이 몇몇 있었는데, 역시 그중에서도 여운이 단연 뛰어났다. 체력 조건은 물론, 싸울 때의 감각 역시 타고난 것을 무시할 수는 없으니까.
지금 이린이 여운이 뻗은 팔의 반동을 이용해 그대로 등을 밀어 버린 것처럼.
“―!!”
“힘으로 밀어붙여선 안 된다니까?”
“쳇!”
남자아이들 특유의 오기 때문에 거칠게 달려들고 있었지만 똑똑한 아이니 금방 깨닫겠지, 라고 생각하기엔 이미 몇 번이나 반복되는 실수에 이린도 조금 거친 수를 쓰기로 했다.
제 힘을 못 가누고 무리하게 달려드는 사이에 생긴 빈틈을 가격하고, 여운이 휘청거리는 사이 외쳤다.
“이 악물어!”
이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여운은 본능적으로 이를 악물었다. 그와 동시에 이린의 발이 부드럽게 여운의 머리를 걷어찼다.
“!!!!”
“힘으로 밀어붙이지 말랬지?”
이대로 바닥에 부딪히리라 생각하고 눈을 질끈 감았던 진여운은 이린의 손이 바닥에 닿기 직전인 자신의 머리를 받쳐 들고 있는 것을 깨닫고 후다닥 몸을 일으켰다.
“가, 감사……!”
“자기 힘을 못 이겨서 다치는 것만큼 꼴사나운 일도 없어. 체술도 이러니, 검을 배울 때는 좀 더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목검에 맞아도 뼈 정도는 부러지니까.”
이현이 들었다면 과연 목검으로 거대 지네의 다리를 으스러트린 사람의 말이라고 박수를 쳤겠지만, 아직 어린 여운은 목검이 그렇게 튼튼하다는 게 안 믿기는 모양이었다.
“맞다. 이는 괜찮아?”
“괜찮습니다…….”
병 주고 약 주는 것도 아니고, 걷어찬 장본인이 저렇게 걱정하는 게 웃기긴 했지만 이린은 진지했다.
“아직 어금니들은 유치라 그나마 괜찮지만 영구치 나온 후에는 망가져도 돌이킬 수 없으니 조심하라고.”
“…….”
비슷한 연배인 두 사람은 영구치도 비슷하게 날 모양인지, 지금 똑같이 송곳니가 하나씩 빠지고 새 이가 나고 있는 상태였다.
여운은 이가 빠져 있는 모습이 꼴사납다 생각했는지 말수가 더 줄었고, 이린은 이걸 또 해야 한다는 사실에 묘한 자괴감을 느끼며 제 손으로 흔들리는 유치를 뽑을 뿐이었다.
‘앞니가 빠져 있었을 때는 어땠을지 좀 궁금하네.’
웃겼을 텐데.
이린은 묘하게 침울한 여운의 어깨를 두드리며, 두 사람의 공방을 멍하니 지켜보던 민영을 향해 눈짓했다.
“그럼 계속해서 민아 좀 부탁해.”
“네에, …아가씨.”
떨떠름한 대답이었지만 이린은 만족했다. 머리가 나쁜 건 아니니 본인이 왜 맞고 쓰러졌는지 스스로 깨달았을 것이다.
그간 지켜본 바, 민아와 함께 있으면서 사회성도 길러졌는지 장원의 다른 아이들과도 나름 친밀하게 지내고 있는 것 같고.
‘나한테 얻어맞긴 했지만 뭐, 그 정도면 성취는 나쁘지 않아.’
그리고 그건 이린도 마찬가지였다.
이린은 한동안 바빴다. 체력 단련에 무공을 익히는 건 물론이고, 영물도 찾아야 했으니까.
어느 정도 신체가 안정되었을 때 새로 만든 영약까지 섭취한 지금, 이린은 꽤 높은 성취를 이루고 있었다. 아마 비슷한 또래 중 이린과 겨룰 수 있는 아이는 없지 않을까.
특히 원래 특기였던 경공을 예전 수준으로 키우는 데 주력하고 있었다. 아직 어린 이린은 장원을 몰래 빠져나가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이 워낙 짧으니, 이동 시간이라도 줄여야 했다.
‘아무래도 그 동굴, 뭐가 더 있을 거 같기도 하고.’
영초는 이현과 이린이 발견한 것으로 해 뒀지만 사실 발견자는 청아였다.
동굴에 영물 시체 부스러기라도 남지 않았나 싶어 찾으러 갔을 때, 혼자 꾸물꾸물 어딘가로 가기에 따라갔다가 괴상한 이끼가 잔뜩 나 있는 곳을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