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Goddess RAW novel - Chapter 233
233.
아버지가 생각나서일까.
‘음… 나 지금 무사하니 걱정하지 말라고 연락을 한 번 더 해야 할까.’
하지만 여기서 신장까지 연락을 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중원에도 물론 마교의 연락책들이 있겠지만 혼자서는 밖으로 나가지도 못 하게 하는 이린에게 그런 상세한 것들을 가르쳐 줬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사람을 써서 소식을 보내자니 잘못하면 나 천마신교랑 관계있는 사람이요, 하고 대놓고 광고하는 꼴이니.’
아까 여인이 혈교에 대해서만 물어서 망정이지 마교에 대해 물었다면 거짓말을 하다 들켰을지도 몰랐다. 고수를 속이는 일이 꽤 어렵다는 건, 천마를 아버지로 둔 이린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설마 아버지만큼 강하지는 않겠지만.’
세상에서 제일 강한 이는 아버지 곽선후와 어머니 연화문일 터였다. 둘 중 누가 더 강한지는 물어보지 않았지만.
‘아, 물어볼걸. 어쨌든 엿듣는 건 관두자. 괜히 들켰다간 어찌 될지 모르고.’
지금도 사실, 모를 거라고 장담할 일은 아니었다. 남들이 들어서 좋지 않을 얘기라면 저렇게 큰 소리로 대화를 나눌 리도 없지만.
혼자 끄응 앓는 소리를 낸 이린은 할 수 없이 조용히 제 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엿듣고 있던 이가 사라지고 난 후, 연화문과 연적훈은 전음으로 긴밀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현이 무림맹을 도와 혈교가 있는 곳이라도 찾아보겠다고 제 벗들과 함께 떠난 지도 시간이 꽤 지났습니다.
―설마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았나.
―동정호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아직까지 누구 하나 돌아오지 않는 것을 보면….
게다가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장원과 상단의 아이들이 멋대로 일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왜?
―5년이나 되었으니 더는 기다릴 수 없다고요. 5년 전에는 다들 그저 힘없는 어린아이들이었기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다 자랐다고 제 손으로 복수하겠다고 난립니다.
그나마 이현이 돌아올 때까지만이라도 기다리라고 했는데 이현의 귀환이 생각보다 길어지자 다들 못 견뎌 하는 것 같더니 결국 일을 크게 만들고 있었다.
―혹시 근래에 소문으로 돌고 있는 강시를 만드는 비법인가 하는 그거, 그 애들 소행이더냐?
―저도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어디서 그런 걸 떠올린 건지. 실제로 있는 건지, 엉터리로 만들어 낸 소문인 건지. 심지어는 멋대로 뛰쳐나간 애들까지 있고.
―?
―이린인 척해서 혈교를 유인해 보겠다고 하더군요. 그쪽은 서문민영이 친분이 있는 장원 무인들과 제 아비까지 끌고 나갔으니 일단 큰일은 없을 듯합니다만.
―아니, 위험할지도 모른다.
―네??
―혈교는 정말로, 시체를 부리는 방법을 찾고 있으니까.
―네에??
―왜 그런 위험한 일을 허락했지?
―누님은 그런 거 저한테 한마디도 한 적이 없습니다만??
―그랬던가?
―적어도 이린이 혈교라는 누명이라도 벗겨 주고 싶다고 뛰쳐나갔는데 제가 무슨 수로 막겠습니까.
―막았어야지.
―누님.
연화문이 말 대신 눈빛으로 비난하자 연적훈 역시 지지 않고 제 누이를 쏘아보았다. 화를 낼 사람은 자신이었다.
초췌해진 동생과 싸울 생각이 없는 연화문이 먼저 시선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이린인 척하는 아이들을 따라오는 자들이 있다면 미리 약속한 곳까지 유인하겠다고 서신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이미 혈교로 추정되는 자들의 습격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럼 그곳으로 가야겠구나.
―본래 남궁 공자와 이현이 돌아오면 함께 움직이려 했습니다만….
남궁청휘는 돌아오는 도중 연적훈에게 서신을 보냈으니 돌아오는 중일 것이다. 하지만 이현과 그 벗들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건……
―마교에는 내가 나중에 찾아가 보마. 이번 일이 마무리되고, 이현을 찾은 후에.
―부탁드립니다.
―그럼 우선….
전음으로 대화하던 연화문은 뭔가가 떠오른 듯 작게 탄성을 질렀다.
“아.”
“왜 그러십니까?”
“한 명 더 동행해야겠다.”
“네?”
* * *
연화문은 다음 날 아침. 느긋하게 일어난 어린 여협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동행해도 괜찮을지 의사를 물었다.
“저는 좋아요. 말씀드렸다시피 혈교랑은 그리 좋은 관계도 아니고요. 하지만 중요한 일 같은데 이렇게 정체 모르는 외부인을 끌어들여도 괜찮나요?”
“본인은 모르는 모양이지만 이미 인근에선 벌써 염화검(炎華劍)라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산채마다 불태웠다며?”
“네? 아, 그건, 빈 산채가 있으면 산적 떼가 새로 들어오기도 좋아 보이기도 하고, 불이 나면 관리들이 들여다보기라도 하겠거니 싶어서…. 산불을 낸 적은 없었어요!”
“아니, 나한테 굳이 변명할 필요는 없다.”
연화문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딸이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제대로 만나 본 적도 없는 딸을 떠올리자 괜히 머리를 쓰다듬고 싶어졌지만 참았다.
“내 일행은 새벽에 먼저 출발했고 나는 나중에 뒤따르기로 했다.”
“아, 그럼 너무 늦은 거 아닌가요?”
“경공에는 자신이 없나?”
“그럴 리가요.”
연화문의 질문에 여인은 가슴을 펴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두 사람은 식사 후 출발해 오래 지나지 않아 장원의 무인들을 이끌고 먼저 출발한 연적훈과 조우했다. 장원 무인들에게 연화문의 존재에 대해 설명하기를 피하고 있던지라 두 사람에 대한 소개는 따로 하지 않고 그저 연적훈과 짧게 인사를 나눴다.
“최근 동정호에서 소문이 자자한 염화검이야.”
“아니 그 호칭은 좀…. 어쩌다 보니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연가장의 장주인 연적훈입니다. 이쪽이야말로 도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공손하게 인사를 주고받은 두 사람은 눈이 마주치자 순간 고개를 갸웃거리곤 조용히 거리를 벌렸다.
“왜 그러지?”
“아니, 어쩐지… 누군가와 닮은 것 같아서요.”
“?”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상하게 친숙한 느낌이 들어 휘휘 고개를 젓던 연적훈이 일단 궁금해하던 것을 물었다.
“그래서 대체 어디서 만나신 사이입니까?”
“산적 잡다가.”
“…….”
이린은 뒤에서 들려오는 다소 얼빠진 대화를 들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혈교라….’
여전히 이름도 가르쳐 주지 않는 여인은 이린에게 혈교를 잡는 데 힘을 보태 줄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혈교와 싸운 적이 있는 사이지.’
천마 곽선후와 검성 연화문이 혈교와의 전쟁 때 눈부신 활약을 보였다는 걸 모르는 이가 없는 사실이었다. 검성은 그때 부상도 입었다고 했다. 그러니 혈교는 두 사람의 딸인 이린이 호의를 품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상대였다.
‘검성과 만나는 걸 도와줄 수 있다고 한 걸 보면 저 사람도 역시 유명한 고수일 거 같은데 누굴까.’
게다가 혈교와 싸우겠다고 호기롭게 말하는 걸 보면 역시 보통 사람은 아니었다.
그런 이린의 속을 알 리 없는 연화문이 새삼스럽게 염려의 말을 건넸다.
“갑작스럽게 동행하게 되었는데 괜찮겠나?”
“뭐, 괜찮아요. 혈교 안 좋아하기도 하고.”
그런 간단한 문제가 아닐 텐데.
이름도 모르는 여인인데 어째서 연화문이 저리 신용하는 건지. 다들 조금 조마조마한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걸 모르는지 아직 새파랗게 젊은 소저의 얼굴은 태평했다. 검성과 마찬가지로.
그리고 그런 두 여인을 바라보는 연적훈과 청운진인은 뭐라 말할 수 없는 뭔가 이상한 기분을 느끼며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뒷모습, 어쩐지….’
연적훈은 아까부터 이상하게 익숙한 느낌에 창피를 당하더라도 뭐라 말을 걸어 보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스릉― 스르릉―
일행이 모두 동시에 검을 뽑는 것과 동시에, 그 역시도 한숨과 함께 검을 뽑을 수밖에 없었으니까.
쾅!!!
무언가 요란하게 터지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 * *
“너희 같은 놈들에게 당할까 보냐!”
그렇게 외치며 거침없이 도를 휘두르고 있었지만, 면사로 얼굴을 가린 서문민영의 안색은 썩 좋지 않았다.
생각보다 혈교의 추격은 집요했다.
덕분에 이린인 척 들고 있던 검 대신 아버지에게 배운 도를 꺼내 들어야 했다.
비무라면 몰라도 이렇게 목숨이 걸린 싸움을 해 본 경험은 별로 없었지만 서문민영은 이상하게도 도망갈 마음은 들지 않았다.
‘이자들이, 어릴 적부터 나랑 아빠를 이용하려 했고 이린 언니까지 죽이려 했던 건가.’
이미 어릴 적 몇 번이고 죽을 고비를 넘겼던 몸이었다. 그날 우연히 이린을 만나지 않았다면, 이린이 자신에게 영약을 구해 주지 않았다면 지금 이곳에 서 있지도 못했겠지.
‘처음부터 무모한 일이라는 건 알았지만.’
섬서에서부터 혈교가 자신들을 추격해 오는 모습을 수많은 사람들이 보았다. 도와주는 이는 별로 없었지만 적어도, 이린이 혈교 사람이라는 누명은 벗을 수 있을 터였다.
나이를 먹고 세상을 겪을수록 알게 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이린을 만나 목숨을 구원받은 것이 결코 쉬운 일도 흔한 일도 아니었다는 사실을.
카가강―!
“악!!”
“조심해!”
이어지는 흑의인들의 공격으로 서문민영에게 붙어 있던 몇 명이 비명과 함께 떨어져 나가자 민영의 바로 옆에서 함께 달리던 진여운이 외쳤다.
쾅!!
콰쾅!!
뒤쪽에서 폭음이 들려왔다. 아마 몰려드는 추격자들을 막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밀려드는 적들을 감당하기에는 아무래도 수가 부족했다.
헐떡이며 달리던 서문민영이 멈춰 서며 외쳤다.
“멈춰!!”
주의가 자신에게 집중되자 서문민영은 품에서 서책 하나를 꺼냈다.
“너희들이 찾는 건 이거겠지?”
“!”
그리고 서문민영이 서책을 꺼내자 기다렸다는 듯 옆에 있던 오월이 화섭자를 꺼내 불을 피웠다.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책을 빼앗을 기세였던 흑의인들이 긴장해 멈춰 섰다.
“아, 안 돼!!”
자신들을 쫓던 혈교인이 멈춰 서자 서문민영은 겨우 숨을 고르며 주위를 살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무언가가 서문민영을 향해 날아들었다.
“영아!”
카앙―
서문민영을 향해 날아들던 비도를 간신히 검으로 쳐 낸 진여운이 바닥에 쓰러졌다. 동시에 오월이 서책에 재빠르게 불을 붙였다.
“히익!!”
“저 미친!!”
미리 기름에 담가 두기라도 했는지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아래쪽만 순식간에 불이 붙은 서책을 서문민영은 힘껏 던졌다.
“갖고 싶으면 잡아 봐!!”
어린 시절 병약했기에 더 몸에 좋은 것만 챙겨 먹으며 매일같이 단련해 온 서문민영이었다. 불타고 있는 서책은 커다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고, 동시에 이를 악문 흑의인들 몇몇이 금방이라도 웃음을 터트릴 것처럼 환하게 웃고 있는 서문민영에게 달려들었다.
아무리 잠잠해졌다고는 하지만, 지금은 이린이 살아 있다 해도 마음 편히 나타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혈교는 노리지, 여전히 사람들은 욕하지. 그렇다면 차라리 이렇게 엿이라도 먹여 주고 싶었다.
‘언니….’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칼을 피하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은 순간이었다.
카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