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Goddess RAW novel - Chapter 242
242.
“그럼… 오빠가 나 때문에 지금 실종 상태란 뜻이잖아?”
“너 때문이 아니란다. 너를 노린 혈교 놈들과 애를 데려가 놓고 집에 연락도 안 한 놈들 때문이지.”
“이린이 있다고 눈에 뵈는 게 없나 보지?”
연적훈의 말에 곽선후가 도끼눈을 뜨자 이린이 미간을 찌푸리며 화를 냈다.
“아버지는 좀 가만히 있어 봐요!”
“…….”
딸에게 매몰차게 외면당한 곽선후는 서러워졌지만 위로해 주는 이조차 하나 없었다.
“지금 누님이 확인하러 갔으니 너무 걱정하진 말거라.”
“…검성이요?”
“그래, 네 친모.”
심란한 얼굴의 이린을 보며 연적훈이 애써 딸을 달랬다.
그리고 지금까지 일들을 설명하려 했으나 대화를 하다 보니 이린의 기억이 아직 뒤죽박죽인 듯해 잠시 쉬도록 했다.
“너무 애를 몰아붙이는 게 아닌가?”
“확실히… 좀 더 쉬는 게 좋겠구나.”
그렇게 말하며 두 사람은 뒤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낯선 얼굴의 청년, 변장한 곽천영이 서 있었는데 두 사람의 시선을 깨닫고 이린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자, 데려가. 너 없다고 난리였어.”
끼이―
이린이 두고 온 청아였다. 심신의 안정에 애완동물만큼 도움이 되는 존재도 많지 않았다.
“아아. 미안. 걱정했지?”
끼이이이이―
투정 부리듯 머리로 제 얼굴을 툭툭 치는 모습에 이린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오랜만에 청아를 보고 다른 한쪽을 떠올린 연적훈이 말을 꺼냈다.
“그러고 보니,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남궁 공자에게는 정체를 밝히는 게 어떻겠니. 오랫동안 너를 찾고 걱정해 왔는데.”
“네?”
그 말에 이린도 몸을 굳혔다.
“아, 으음. 아직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그래, 일단 좀 쉬려무나. 청아가 곁에 있으니 안심해도 되겠지.”
끼이―
연적훈의 말에 대답하듯 고개를 끄덕이는 청아를 보며 세 사람은 조용히 침대에서 멀어졌다. 그리고 이린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장지문 너머에 모여 심각한 얼굴로 들리지 않는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겨우 조용해지자 이린은 오랜만에 습관처럼 청아를 쓰다듬으며 침대에 풀썩 쓰러졌다.
‘…회귀 전후의 기억이 잘 분간이 안 가.’
이것도 독의 영향인가 싶어 이마를 짚으니 조금 뜨끈뜨끈한 것도 같았다.
‘어머니라.’
과연. 호남 출신이라던 검성 연화문이 연가장 출신이었구나.
그리고 내 친모였구나.
[그런데 그만 생각지도 못하게 결과물이 생겨 버렸지.]바로 얼마 전 본인에게 들은 말이 떠올라 이린은 머리를 긁적였다.
곽선후에게 들은 바가 있으니 예상 못한 일은 아니었다.
[그럼 그… 선배님의 결과물은 만나 본 적 있으세요?] [잘 지내고 있는 듯해서 딱히 만나 본 적은 없다.] […보러 간 적은 있군요?] […….]그날의 대화를 되짚어 보던 이린이 스르륵 몸을 일으켰다. 납득은 했지만 역시 한편으론 서운하기도 했다.
‘그럼, 잘 지내고 있지 않았던 그때는… 혹시 나와 만났던 건가.’
검성은 자신과 같은 검술을 익히고 있었다. 그 말인즉, 그 동굴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었을 거란 뜻이었고.
‘나에게 경공을 가르쳐 준 사람도…….’
얼굴도 보여 주지 않고, 무뚝뚝하지만 자신의 말을 묵묵히 들어주며…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된다고 했던 사람.
멍하니 생각하던 이린은 털어 내듯 고개를 저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머리만 아파 오는 것 같았다.
‘다른 생각을 하자. 으음. 아빠는 내 외숙부였으니 오빠랑 나는 사촌지간이었….’
의식의 흐름으로 객관적 사실을 늘어놓던 이린은 거기까지 생각이 흐르자 다시 눈을 번쩍 떴다.
‘오빠가, 실종 상태라는 거지?’
아직 정확하지는 않았다. 그저 혈교가 있는 곳을 탐색하다 실종되었다는 것뿐이었지만.
이린이 벌떡 일어나자 팔에 감겨 있는 청아가 걱정스러운 듯 고개를 들었다.
“아, 미안.”
청아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준 이린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한가하게 기억을 되짚을 때가 아니었다.
“왜 일어났어?”
“아니,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그러니까, 지금 오빠가 어떻게 됐다고요?”
“…….”
이린은 자신이 마교에 있는 동안 있었던 일에 대한 간결한 설명을 들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특히 이현이 제 벗들과 함께 무림맹의 의뢰를 받는 형식으로 혈교가 있을 만한 곳들을 탐색하고 다녔다는 말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위험한 일에 이현이 굳이 자청해서 나선 것은 당연히 이린 때문일 터였다.
“무림맹에서도 그렇고 현재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구나.”
“그럼 오빠가 마지막으로 연락이 닿은 곳이 어디죠?”
“이미 누님이 찾으러 갔으니 네가 그렇게 안달할 거 없다.”
“만약 혈교에 붙잡히거나, 그런 거면요!”
창백한 이린의 안색을 보고 연적훈과 곽선후가 양쪽에서 손을 붙잡고 이린을 안심시켰다.
“그러면 가서 찾아와야지.”
“네가 원하면 어떻게든 데려올 테니 걱정 마라.”
“일단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정말 혈교에 연루된 것인지부터 확인하는 게 급선무고, 그 과정에선 네가 관여하지 않아도 충분해.”
“아빠.”
“조금만 기다려 보렴. 그리고 네 몸이 제대로 회복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겠니.”
“혈교가 연이현을 어찌했다면 오히려 혈교의 위치를 특정하기는 좋아지니 남은 건 그 주변을 샅샅이 훑는 것뿐이다.”
“하지만 갈수록 정파 사람들이 혈교에 대적하는 데 미적지근한 곳이 많다고 하셨잖아요?”
“오대세가나 구파일방의 삼분지 일 정도는 관여할 가능성이 높으니 그리 걱정할 거 없다.”
“…….”
삼분지 일 정도는 관여할 가능성이 높다니, 이렇게 못 미더울 수가.
이린은 문득 이전에 소림승들이 비급에 목숨 걸던 것을 떠올리고 물었다.
“예전에 혈교 교주가 문파의 비급들을 가져갔다면서요. 혈교를 치면 그걸 찾을 수 있을 테니 협조하지 않을까요?”
“어?”
“호오?”
아빠와 아버지의 반응을 본 이린은 아차 했지만 이미 늦었다.
‘두 분 다 몰랐구나.’
하긴 원래 혈교의 교주였다는 위지운은 마교에서 쫓겨난 처지이니 주선하도 마교의 비급을 얻겠다고 천마에게 가는 무모한 짓을 하지는 않았을 테고. 연가장의 비급을 뺏겠다고 찾아왔을 리도 없으니 연적훈 역시 알 리가 없었다.
소림승들이 비밀이라고 했는데 아직 기억이 오락가락한 탓에 그만 급하게 말이 튀어나왔다.
‘지금 말 함부로 하면 안 되겠네.’
하지만 동시에 떠오른 것이 있었다. 자신이 비급을 찾은 그 동굴.
분명 검성과 자신이 익힌 무공의 비급도, 다른 문파의 비급들도 함께 있었으니 이상한 일이었다.
“아버지.”
“응?”
“아빠랑 둘이 할 얘기가 있어요.”
“…그냥 하면 안 돼?”
“안 돼요.”
딸의 단호한 목소리에 곽선후는 힘없이 일어나 자리를 비켰다. 뒤에 서 있던 곽천영은 버티고 있다 스승에게 끌려 나갔다.
연적훈은 그 모습을 신기한 듯 보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천마가 정말 너를 많이 아끼는 모양이구나.”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아빠 입장에서는 중요하단다.”
그리 말하며 이린의 머리를 쓰다듬는 연적훈의 두 눈에는 애정이 가득했으나 물어볼 건 물어봐야 했다.
“연가장과 신교는 무슨 관계예요?”
“응?”
“솔직하게 말씀해 주세요. 저도 알아야 할 거 아니에요.”
머릿속에서 기억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생각해 보면 예전에 오빠와 여행할 때 개방거지들의 반응도 어딘가 이상했다. 만약 연가장이 신교와 관계가 있다면 이것도 납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관계가 있는 거죠?”
“…….”
어디서 알게 된 건지 단호하게 묻는 이린에게, 연적훈도 더는 숨길 수가 없었다.
이미 자신의 친모가 누구인지도 알게 되었으니 검성 연화문과 혈교의 교주 주선하의 관계에 대해서도 알아 두는 것이 나을지도 몰랐다.
‘누님이 직접 설명하는 것은 무리일 테니.’
결국 연적훈은 그동안 이린에게 말해 주지 않은 연가장의 과거사에 대해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미리 말씀 좀 해 주시죠.”
“아무래도 어린아이에게 설명하기에는 복잡한 얘기이기도 하고. 네 친모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니 쉽게 말을 꺼낼 수가 없더구나.”
“하지만 오빠는 다 알고 있던 거죠?”
“걔는… 제 고모, 그러니까 네 친모가 너를 낳은 날도 기억하고 있는 데다 숨겨 봤자 캐묻는 아이라. 게다가 명색이 소장주이니 알아야 할 것 아니냐.”
반면에 이린은 막내인 데다 어렸으니 그런 무거운 이야기를 굳이 할 이유가 없었다.
“계속 숨기실 생각이셨어요?”
“계속 평화로웠다면 굳이 그 얘기를 꺼낼 이유가 있었겠느냐.”
“부모님에 대해서도요?”
“네 친부모가 누구든 내 딸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데. 굳이 밝혀서 널 괴롭게 하고 싶지는 않았단다.”
무엇보다 친모가 만나러 오지 않는데 친자식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 봤자 스스로 버림받은 아이라 여기게 될 뿐이었다.
게다가 이린은 친부모인 연화문과 곽선후, 누구도 바라지 않은 아이였다. 출생과 부모에 대해 말하자면 그 사실을 숨기기 어려운데 어린아이에게 그런 걸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심지어 마교 교주라고 하면 피에 미친 인간 말종 미친놈인 것이 세간의 인식인데.’
아무리 연가장을 벗어나지 않는 아이라도 그런 사람을 부모라고 알려 줄 순 없었다.
“네가 성인이 되고, 언젠가… 누님이 연가장으로 돌아오면 그때 제대로 얘기를 나눠 볼 생각이었지.”
“…….”
아마 연적훈의 말에 거짓은 없으리라. 이린이 회귀하기 전에는 20세 때 연적훈과 연이현이 둘 다 죽었으니 설명해 줄 사람이 없던 셈…은 아니었다.
“장 총관 아저씨도 아세요?”
“응? 으응. 알지.”
“으음.”
아마 마찬가지였겠지. 연화문이 돌아온다면 모를까, 장 총관이 멋대로 이린에게 출생의 비밀을 밝힐 수는 없었을 테니.
‘하지만, 그럼 왜… 검성은 연가장으로 돌아오지 않았을까.’
이린이 혼자 남아 위태롭게 장원을 지키고 있었는데도.
하지만 연화문이 지금 눈앞에 있다 해도 그 의문에 답해 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것은 이미 없었던 일이 되어 버렸으니까.
문득 이린은 눈앞에 앉아 있는 연적훈을 다시 보았다.
본래라면, 벌써 3년 전에 죽었을 연적훈이 살아 있었다.
‘이거면 충분해.’
이제 연이현만 무사하다면 이린은 더 바랄 것이 없었다.
“뭔가 더 물어보고 싶은 게 많은 것 같은데… 당장 생각이 안 나요.”
“이젠 급할 것도 없지 않느냐. 일단 좀 쉬는 게 좋겠구나.”
“아, 아. 그 폭발에서 어떻게 다들 무사한 거죠?”
“곽선후, 아니 네 아버지가 너를 구하기 위해 달려들었단다. 겸사겸사 다른 사람들도 구했고.”
그렇게 겸사겸사 구해진 연적훈이 이린의 검은 머리를 토닥였다.
“이리 보니 조금 낯설지만 지금은 일단 이대로인 게 나을지도 모르겠구나. 일단 쉬렴.”
“아.”
그제야 자신이 아직도 역용술로 바꾼 얼굴 그대로라는 걸 깨달은 이린이 작게 탄성을 흘렸다. 피식 웃은 연적훈을 보며 이린이 물었다.
“아빠는 제가 연이린이라는 걸 알아봤어요?”
“그래.”
“어떻게요?”
“글쎄. 나도 모르겠다. 네가 신수린이라는 이름을 대서 그럴지도 모르고.”
걸음걸이, 말씨, 자잘한 버릇, 모든 것이 이린을 떠오르게 했다. 그리고 이 아이가 위험에 처하자 저도 모르게 몸이 움직여 버렸다.
“내 딸이잖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