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Goddess RAW novel - Chapter 246
246.
5년 만에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검성 연화문이 혈교의 본거지를 찾았다는 소식을 보내자 처음 무림맹은 당혹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5년 전에 비해 주요 문파의 사기가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혈기 왕성한 젊은 소협들이라면 모를까. 실질적 결정권을 쥐고 있는 늙은 너구리들은 쉬이 움직이려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그곳에 직접 숨어들어 진위를 확인했다는 연화문이 꺼내 든 서책 몇 권에 각 문파의 대리인들은 손바닥 뒤집듯이 태도를 바꿨다.
정확히는 서책을 확인한 소림의 장로가 그중 하나를 소림의 비급이라고 인정한 순간부터.
‘그렇다면 정말 검성이 찾아낸 곳이 혈교의 본거지인가?!’
‘설마 20여 년 전 빼앗긴 본문의 비급도?’
전대 혈교 교주에게 문파의 비급을 빼앗긴 적이 있는 이들은 조용히 눈을 부릅떴고, 금시초문인 이들은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혈교에 정파의 비급이 있다니, 우리가 먼저 찾아낸다면 명문정파의 비급을 훔쳐 낼 수도 있다!’
훔친 비급을 쓸 수 있냐고?
전대 혈교 교주가 죽은 지도 20년이 넘었으니 비급이 사라진 것은 그보다 이전의 일이었다.
당연히 그 비급을 익히고 있던 이들 대부분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된 지 오래일 터. 익히고 있는 이들도 기억하고 있는 이들도 많지 않을 것이다. 10년, 20년, 조금만 기다렸다 자신들이 만든 것이다, 기연을 만난 것이다 우기면 사람들이 어찌 알 수 있을까.
욕망으로 번들거리는 눈으로 그곳에 모인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혈교의 악행이 적지 않은데 이를 토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어찌 놓치겠습니까.”
“본문 역시 앞장설 것입니다.”
“소림에서 필두에 서시겠지요?”
먹이를 던져 주니 예상과 별다를 바 없이 행동하는 이들을 보며 연화문은 환멸과 동시에 안도했다.
아무래도 섬서까지 모이는 데 시간이 걸리기에 행동은 은밀히 이루어졌다.
전서구는 중간에 분실되거나 유출될 위험성이 있어 검성과 이린을 비롯해 경공이 뛰어난 이들은 중간에서 바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한가한 건 마교인들뿐이었다. 마교에 연락책으로 보낸 이들 외에는 할 일이 없었다.
‘아, 그러고 보니 좀 걸리는 게 있는데.’
회귀 전 천영의 수족들 중에는 연가장 화재 당시 모습을 보이지 않아 배신자인지 확실하지 않은 이들이 있었다. 당연히 이린이 그들에 대해서는 그리 배신감을 느끼지 않았으므로 지금도 천영의 호위로 있었는데, 그들이 정말 배신자가 아닐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여기서 움직이지 않았고 감시가 삼엄하니 간자가 있더라도 아직 정보가 유출되진 않았겠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이린은 최근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천영을 불러냈다.
“곽 사형, 잠깐만.”
“…지금 그 호칭을 쓰면 안 될 텐데?”
“아.”
전령으로 다녀온 이린은 그날 이후로 제 본래 모습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어쨌든 잠깐만.”
“왜.”
이린이 잡아당기자 곽천영은 싫지 않은지 질질 끌려갔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각자 자신의 세가에 다녀온 남궁청휘와 당자혜의 눈에 그 모습이 들어왔다.
“둘이 많이 친밀해 보이네요.”
“…5년이나 함께했다고 하니까요.”
기운 없이 축 늘어진 남궁청휘를 보며 당자혜가 한숨을 내쉬었다.
“호오. 그래서 이대로 물러나시겠다?”
“그건…….”
이린이 곽천영을 택했다고 하면 자신이 어찌할 수 있을까.
낙담한 남궁청휘와는 달리 당자혜의 눈에는 그리 상황이 비관적으로 보이진 않았다.
‘5년이나 함께 있었는데 이린이 좋다고 했으면 벌써 혼인이라도 했겠지.’
아직까지 호칭이 사형인 걸 보아하니 두 사람은 별 관계가 아니었다.
‘남궁 공자 꽤 소심하네.’
5년이나 찾아다녀 놓고는 새삼스럽게?
하지만 당시 이린의 소극적인 태도를 생각하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닌 듯도 했다.
“아, 두 사람도 돌아왔어요?”
“연 소저.”
“이린.”
어느새 볼일은 끝났는지 두 사람을 발견하고 미소 짓는 이린의 곁에 곽천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무탈하셨습니까.”
“네. 아, 검성께서도 도착하셨다고 해서요. 같이 가실래요?”
“저희가 같이 가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아, 단둘이 있는 건 아직 어색해서요.”
“그런 이유라면 동행하죠.”
이린의 복잡한 출생의 비밀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두 사람은 기꺼이 이린과 동행했다. 간단하게 근황에 대한 대화를 나누던 이린은 문득 5년 전 남궁청휘와 헤어지기 전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그때 분명 할 말이 있다고 했었는데…. 하긴 지금은 그런 걸 물어볼 때가 아닌가.’
지금 마교가 정파와의 연대에 별 의견을 내고 있지 않은 건 자신 때문이었다. 잘못해서 무림맹이나 다른 정파인들이 곽선후의 심기를 거스르면 성가셔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린은 가능한 아버지 옆에서 비위를 맞춰 주고 있었다.
그러다 지치면 조용히 어머니 곁으로 갔다. 세상 두려울 것 없는 천마는 묘하게 검성에게만은 종종 어색해했는데, 검성 쪽은 그와 같이 있는 것을 귀찮아하는 듯 보였다. 이린과 함께하는 게 아니면 한자리에 동석하는 일도 좀처럼 없었다.
분명 피를 나눈 친부모일 텐데. 이린에게는 그저 어색했다.
혈교를 치러 가기 위해 섬서로 향할 때까지도 그러했다. 그래서일까, 아직까지도 어머니라는 말은 잘 나오지 않았다.
* * *
‘이럴 수가.’
우득.
주세하는 분노로 떨리는 몸을 붙잡기 위해 손을 들었다.
얼마 전 연이현을 찾기 위해 혈교의 금지 구역에 들어왔을 때 수상한 곳을 발견했기에 기회를 봐서 다시 찾은 참이었다. 세하는 그곳에서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내가 왜 이것을 예상하지 못했지?’
그것은 5년 전 이린이 강서의 은가장 지하에서 본 것과 같았다.
그리고 그것보다 충격적인 사실은 따로 있었다.
‘신교의 교인들이…!’
세하는 그간 황실을 통해 혈교에서 사람들을 사지 못하도록 인신매매를 막는 데 힘써 왔다. 게다가 무림맹이 경계하기 시작한 이후로 사람을 납치하는 것도 어려워졌을 터였다. 그런 상황이니 어느 정도 포기하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건만, 혈교는 외부인을 찾는 대신 자신들에게 투신한 힘없는 신교인들을 강시로 만드는 실험에 이용한 모양이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교주가 사람 목숨을 가벼이 여긴다는 건 알고 있었다. 신교인들만이 아니라 혈교인들 역시 대부분 소모품쯤으로 여긴다는 것도.
이런 것을 예상하지 못한 자신의 불찰이었다.
‘이미 늦었구나….’
자신이 다가가자 알아보기는커녕 공격하려 할 뿐이었다. 분명 자신을 따를 때는 활발하게 웃으며 제 생각을 말하던 여인들이 맹수처럼 으르렁거렸다. 더욱 끔찍한 것은 그 중간 중간에 멍하니 앉아 있는 아이들이었다.
그들이 무슨 일을 당했는지 이제 와 안다 한들 자신이 어찌해야 할까.
세하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도망치듯 그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찾아간 곳은, 우습지만 연이현이 있는 곳이었다. 경비의 눈을 피해 그가 머물고 있는 거처에 들어선 세하를 연이현이 반겼다.
“무슨 일이 있으셨던 겁니까. 안색이 좋지 않습니다.”
세하는 그동안 몇 번인가 이현을 찾았다. 정말 신기한 일이지만, 위지선은 정말 연이현을 치료해 주고 있었다. 덕분에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의식이 없었다는 연이현은 지금 많이 회복해 조금씩이지만 운신도 가능해진 상태였다.
위지선에 의해 영문도 모르고 이곳에 갇혀 지내던 연이현은 불청객인 세하의 방문을 언제나 반겼다.
그 온화하다 못해 태평한 얼굴을 본 세하는 순간 감정이 북받쳐 속내를 내뱉었다.
“어째서, 어째서 우리들만 이런 일을 당해야 해…?”
이렇게 양지에서 살며 모두에게 사랑받는 이도 있는데!
울컥해서 고통을 쏟아 내는 세하의 말을 연이현은 가만히 들어주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자신보다 어린 사내에게, 심지어 위지선에게 잡혀 온 포로에게 쓸데없는 감정을 쏟아 버린다는 것이 너무나도 자신답지 않았다.
답답한 것을 쏟아 낸 후 어느 정도 이성이 돌아온 세하는 이현에게 사과했다. 검성에게 자신이 주선하의 친자가 아닐 거라는 말을 들은 이후부터일까, 근래의 자신은 점점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당신에게 할 말이 아니었는데, 미안합니다.”
“다른 한쪽 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연이현이 말하는 다른 한쪽은 위지선을 뜻했다.
“그놈과 비교당할 정도라니 정말 갈 데까지 갔군.”
세하의 말에 연이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없는 모양이라 세하도 웃음이 나왔다.
“두 분 다 마음 편히 쏟아 낼 수 있는 상대가 없는 탓일 겁니다.”
“속 편한 소릴 하는군. 믿는 구석이 있어서인가?”
“…그리 속 편한 상황은 아닙니다. 다만 아직 몸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라 어쩔 수 없을 뿐이지요. 정말 대협께서 저를 내보내 줄 생각이 있는 건지는 아직 알 수 없는 일이고요.”
운신이 가능해진 후에야 자신이 갇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연이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세하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연이현은 위지선이 자신을 구해 주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5년 전 항주에서 이현이 그를 구해 준 이후 두 사람은 몇 번인가 마주친 적이 있었다. 이린을 찾기 위해 이현은 혈교에 관한 소문이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달려갔고, 몇 번인가 위지선과 마주쳤다.
이현이 그를 알아보고 먼저 말을 걸었고, 이름은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함께 술을 마신 적도 있었다.
이현에게 보은이라도 바라는 것이냐며 까칠하게 굴던 위지선은 연이현이 위험할 때는 구해 준 적도 있었기에 이현은 그를 의심하기 어려웠다. 혈교를 추격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기에 그와 가끔 마주치는 것도 그리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대협이라니 어처구니없이 과분한 호칭이군요.”
“…정말 이곳이 혈교이고 그자가 혈교의 부교주라면 왜 저를 살려 준 걸까요.”
“제 말을 들어줄 이라도 필요했나 보지요.”
혈교의 본거지가 이곳에 있으리라 기대하고 온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곳에 있던 함정에 걸렸고, 정체 모를 이들에게 습격당했다. 필사적으로 도망치려 했으나 자신이 먼저 심각한 부상을 입었고 노악과 심여준이 어떻게든 자신을 살리려다…….
“제 벗들이 무사한지라도 알 수 없을까요.”
“곧 알게 될 겁니다.”
“네?”
검성에게서 연락이 왔다.
곧 무림맹에서 이곳을 덮칠 것이고, 연이현은 그의 대단하신 고모님이 구하러 올 것이다.
‘부럽구나.’
이토록 양지에서 사는 이도 있을 수 있다니.
검성조차 이리 부럽지 않았는데, 연이현과 연이린은 부러웠다.
하지만 그런 자신의 생각이 부끄러워 세하는 이를 악물고 눈물을 참았다.
―곧 당신을 구하러 사람들이 올 겁니다. 그리고 이곳은 무림맹의 습격을 받겠죠.
세하의 전음에 연이현이 놀란 듯 눈을 부릅떴다. 이런 소식을 알려 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소란이 일면, 탈출할 준비라도 하고 계세요
―당신은요?
연이현의 걱정 어린 표정을 보며 세하는 엷게 웃었다.
속없는 사내 같으니.
―내 걱정은 필요 없으니 당신 걱정이나 하시죠.
세하는 이현에게 인사를 남기고 그대로 거처를 빠져나왔다.
이미 신교인들 중 힘이 없는 일반인들은 대부분 몰래 빼돌렸다. 덕분에 지금 서월각은 텅 빈 상태였다. 일부 심복들만이 남아 세하의 일을 도우며, 대모를 지키고 있을 뿐.
이제 그들 역시 조용히 내보내야 했다.
‘언제 무림맹이 습격해 올지 알 수 없는 일….’
어쩌면, 오늘 당장이라도 쳐들어올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