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Goddess RAW novel - Chapter 260
외전 10화
아까 검성은 나름 기운을 조절하고 있었지만 저자는 아니었다.
‘아니…… 저 사람은 또 뭐야.’
오늘은 대체 무슨 날이기에 이렇게 범상치 않은 인물들만 만난단 말인가!
검성 연화문도 과연 명불허전이었지만 저 사내 역시 보통 기운이 아니었다.
‘저렇게 흉험한 기세라니, 마치 마교도 같…… 어?’
의식의 흐름으로 떠오른 가설이 매우 설득력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남궁청운이 숨을 삼켰다.
“헉?!”
“왜 그러십니까?”
“저기 저 사람은…….”
“아.”
굳어 있는 남궁청운을 본 청운진인과 연이현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이 사람, 이린의 출생의 비밀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안 그래도 세상 사람 대부분이 모르는 일인데 그간 실종 상태였던 인물이 알 리가 있나.
‘이걸 말해 주기도 그렇고.’
따지고 보면 비교적 단순하지만 납득시키기가 어려운 진실을 일일이 설명해 주기도 귀찮아진 연이현이 간결하게 설명했다.
“뭐…… 고모님과 아는 사이십니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네.”
“혹시 막 여기 검성도 있겠다, 사실 저분은 천마입니다. 뭐 그런 소릴 할 건 아니지?”
“…….”
“…….”
“…….”
왜 거기서 침묵해? 불안하게?!
다들 남궁청운의 시선을 피하며 침묵하는 가운데, 사내는 한눈에 보아도 심기가 불편한 얼굴로 일행에게 다가왔다.
그런 그의 손에는 이린이 붙잡혀 있었다.
“저기 붙잡혀 있는 거 네 여동생 아냐?”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린이 위험한 건 아니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진짜지?”
흉험한 기세를 뿜어 대는 사내의 뒤에는 어디서 나타난 건지 낯익은 청년이 따르고 있었는데, 남궁청운도 아는 얼굴이었다.
‘저기 있는 거 혹시 곽천영 아냐?’
예전에 연이린이 실종될 적에 함께 사라졌던 그 수수께끼의 인물.
이렇게 되니 뭔가 연이린의 실종에 대한 실마리가 잡히는 느낌이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굳어 있는 남궁청운의 존재는 가볍게 무시하고, 이린의 손목을 붙잡은 채 일행에게 다가온 사내는 다짜고짜 연화문에게 따졌다.
“애를 잘 봐야지! 어떻게 혼자 흉악한 놈들을 상대하게 만들어!”
“…….”
“애 아니에요! 그리고 누가 혼자예요?! 남궁 공자도 같이 있었잖아요!”
그리고 대답한 것은 어처구니없어 말문이 막힌 연화문이 아니라 이린이었다. 사내는 이린의 말에 콧방귀를 뀌며 혀를 찼다.
“그런 애송이 하나 있으나 마나다.”
“그 애송이보다 강한 사람이 강호에는 손꼽히는데요?!”
“나보단 약하다.”
“……아버지하곤 말이 안 통해요! 따라오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몰래 뒤따라오기까지!”
말도 안 되는 억지에 이린은 기가 찬다는 듯 매몰차게 외쳤다. 그러고는 사내의 손을 뿌리치고 달려가 버렸다.
“어, 리, 린아!”
그런 이린의 차가운 태도에 방금 전까지의 흉험하던 기세는 어디 갔는지 사내는 당황하며 이린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그 뒤를 질렸다는 표정의 곽천영과 어디서 나타난 건지 모를 유영이 따랐다.
그리고 본의 아니게 존재감이 흐려져 있던 남궁청운은…….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자신이 방금 들은, 몹시 흔해 빠진 단순한 단어에 대해 고찰하기 시작했다.
“……아버지? 누가? 누구의?”
“아.”
“이런.”
옆에 있던 연이현과 청운진인이 짧게 탄식했다.
물론 그리 심각한 얼굴은 아니었다.
사실 저쪽도 어디 소문내고 다닐 처지는 못 되는 게 뻔하니 걱정도 되지 않았다.
‘집안 건실한 거 믿고 자연스러운 만남을 가장한 맞선을 주선했는데 실은 복잡한 가정사가 있었다니.’
애초에 상대 집안과 제대로 조율되지 않은 맞선이었으니 누굴 원망하랴.
하지만 연이린이 연가장주 연적훈의 딸이 아니라는 건, 아니 마교 교주의 딸이라는 건 큰 문제.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그럼 이린의 친어머니는 누구냐고 묻기 위해 연이현을 붙잡는데 또다시 누군가가 슬그머니 나타났다.
“왜 여기 모여 계십니까? 연 소저는 어디…… 형님?”
“아.”
그래도 혈육은 혈육이라 단번에 셋째 형을 알아본 청휘가 멈칫한 사이, 연이현과 청운진인이 각각 두 사람을 붙들고 자리를 피했다.
이린과 청휘가 또 어떤 일에 끼어든 건지는 몰라도 여기 계속 있어 좋을 게 없었다.
* * *
“살아 계셨으면 연락을 하셨어야죠!”
“아, 짱알짱알 시끄럽게 굴지 마.”
안타깝게도 형제간의 상봉은 그리 감동적이지 않았다.
“어머님께는 말씀드렸거든? 집에 들어가질 않는 네가 문제지.”
“제가 뭐가 좋아서 집에 있겠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말이야. 후계자 너밖에 없는데 집에도 안 돌아가고, 어?”
“후계자가 왜 저밖에 없습니까? 세가에 널리고 깔린 게 남궁씨인데.”
당연히 건실한 동생 하나 믿고 탈주한 남궁청운은 뜻밖의 반응에 말문이 막혔다.
“그, 그럼 누가?”
“수연이 할 겁니다. 혈연적으로도 가깝고, 맹주의 딸이기도 하고, 무공 실력도 떨어지지 않고, 인망도 있고, 사람을 부릴 줄 아니 저보다 나을 겁니다.”
거침없는 동생의 말에 어쩐지 기세가 꺾인 남궁청운이 소심하게 이의를 제기했다.
“어, 아니 그래도 직계여야…….”
“직계가 아니면 분란이 일어나기 쉬운 게 문제인데, 아버님과 제가 지지하고 있으면 상관없지 않습니다. 어차피 무공에만 집중해 온 저보다는 수연이 세가의 일에도 물정에도 더 밝고요.”
듣고 보니 틀린 말은 아니어서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주가 세가 내 고수들 중 최강자라면 더 권위가 지켜지겠지만 반드시 가장 강한 이가 가주가 되라는 법은 없었다.
다만 묘하게 기분은 씁쓸했다.
“네 아버지가 괜찮다고 하시더냐?”
“뭘 남의 아버지 얘기하듯이…….”
그리 닮지 않아 보이는 두 사람이었지만 아버지에 대해 말할 때 미간을 찌푸리는 모습은 영락없는 형제였다.
“마음에 걸리시면 형님이 돌아가시면 됩니다.”
“크윽.”
피차 돌아가기 싫은 걸 서로에게 미루던 형제의 대화는 결국 무승부로 흐지부지 끝났다.
“그래서 이렇게 놀러 다니는 거냐?”
“조용히 노는 것이 막내의 미덕이죠.”
“그런 건 누구한테 배운 거냐.”
“죽은 척하고 놀러 다니고 계신 어느 형님이 아닐까요.”
저놈이 머리 좀 굵어졌다고 형에게 한 마디도 지질 않는다.
한숨과 함께 남궁청운은 동생에게 술잔을 내밀었다.
객잔 하나를 통째로 빌린 어느 분 덕분에 텅 빈 2층에서 따로 묵은 얘기를 마친 남궁세가의 불효자식들은 오랜만에 함께 술잔을 기울였다.
“그래서 너는 거기 뭐냐, 어떻게 되고 있는 건데.”
“…….”
형님의 물음에 남궁청휘의 눈이 1층에서 까르르 웃고 있는 이린과 이린의 곁에 함께 있는 곽천영에게 향했다.
“방해꾼이 좀 있을 뿐이죠.”
“흐음.”
함께한 시간이 길었기 때문일까 이린과 천영의 사이는 퍽 편안해 보였다. 그런 두 사람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울컥하는 동생을 보며 남궁청운은 내심 피식 웃었다.
‘남녀 사이가 편한 게 꼭 좋은 건 아닌데 말이지.’
“형님은 이제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너야말로 어쩔 생각인데?”
“저는 이대로 연 소저와 함께 신장에 가 볼 생각입니다.”
“거긴 왜?”
“모처럼 천마와 동행했으니까요.”
“뭐? 아니, 잠깐만.”
그 말인즉슨, 설마 천마신교에 가겠다고? 십만대산에?
경악으로 굳어 있는 형님을 보며 남궁청휘가 싱긋 웃었다.
“형님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정파인이 쉬이 발을 들일 수 없는 곳.
천마신교에 마두들이 살고 있다는 십만대산에, 천마와 그 딸과 함께?
“죽진…… 않겠지?”
“검성께서 함께 가시니 이번 기회가 아니면 살아서 드나들 일은 요원하다고 볼 수 있겠죠.”
위험하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설득력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걸리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런데 천마가 너를 살려 두겠느냐?”
“연약한 사내를 하나뿐인 딸의 곁에 둘 수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이미 각오하고 있다는 듯 남궁청휘는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런 동생을 보며 남궁청운은 한숨과 함께 내뱉었다.
“미친놈.”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습니다.”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청휘는 형을 홀로 남겨 둔 채 1층으로 향했다.
“저 몹쓸 동생 놈 같으니…….”
동생을 욕하며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마침 청운진인과 연이현이 객잔 안으로 들어섰다.
검성과 이린에게 각각 뭐라 말을 전한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남궁청운이 있는 자리로 올라왔다.
“그러고 보니 니들은 뭐 하고 온 거냐?”
“대협의 동생과 제 동생이 벌인 일의 뒤처리를 좀.”
“아까 그 주루? 이제 불길은 좀 잡혔나?”
남궁청운의 물음에 답한 것은 청운진인이었다.
“불길은 잡혔는데…… 납치해 온 양인 여성들을 가둬 두었던 것이 화재 덕분에 발각되어 발칵 뒤집혔다고 하더군요.”
“허어.”
남궁청운은 문득 아까 호숫가에서 이린에게 다가가던 건달들을 떠올렸다. 아무래도 그 잠깐 사이에 생겨날 연결 고리라고는 그것밖에 없었다.
‘죽이든 살리든 알아서 했겠지.’
기껏해야 조무래기 건달들에게 밀릴 정도로 약하게 키우진 않았다.
“건물이 반만 탄 덕분에 갇혀 있던 사람들도 무사하고, 이후 일은 관(官)의 영역이지요.”
건물이 왜 한쪽만 타고 불이 더 이상 번지지 않았는지 대충 짐작이 가는 이현이 뱀들에게도 술을 먹이고 있는 누이동생을 보며 슬쩍 미간을 찌푸렸다.
“눈에 들어온 일은 그냥 넘기질 않으니 어딜 가든 여정이 순탄하지는 않겠군.”
“제 벗들도 늘 그리 말했었지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이현의 벗들은 늘 그를 거들어 주곤 했다. 지금은 각자 제 사문에 돌아가 요양 중이겠지만.
“저도 걱정을 덜었으니 마음 편하게 동생 뒤나 따라다녀 보려고 합니다. 이번에 갔다 오면 벗들에게도 다시 한번 인사하러 들러야지요.”
“……너도 신장에 가게?”
“네. 아마 죽이지는 않을 겁니다. 절 죽이려 할 정도면 이린을 맡길 수도 없고요.”
“맡긴다고?”
“이린에게는 친부인데 아예 가지 말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허어…….”
남궁청운은 바보가 아니었다.
다년간 놀러 다닌 만큼, 남녀 관계에 대해서는 그럭저럭 눈치가 있다고 자부하는 편이었다.
여기서 검성과 천마를 관찰한바, 두 사람의 관계가 범상치 않다는 것도 대강 눈치챘다.
그런데 천마가 이린의 친부고, 검성의 동생인 군자검 연적훈의 딸로 자랐다?
‘단서가 이만큼 주어졌는데 눈치 못 채면 바보지.’
아버지가 천마를 싫어하긴 했지만 의외로 객관적인 평가가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아까 보니 이린을 필요 이상으로 아끼는 것도 사실인 듯했고. 다들 이리 풀어지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남궁청운 입장에서야 본 것이 얼마 되지 않으니 믿기 어려웠지만.
“참, 대협께서는 이후에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
“남궁 대협도 함께 가면 좋을 텐데요.”
“……나도 간다.”
동생이 사지로 걸어 들어가는 걸지도 모르는데 모르는 척할 수는 없지.
게다가 거기는 죄다 곽천영 편일 게 아닌가.
‘십만대산…… 솔직히 좀 궁금하기도 하고.’
남궁청운의 그런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연이현은 그 단정한 얼굴로 활짝 웃으며 그의 뜻을 반겼다.
“일행이 한 명 더 늘어나겠군요.”
“어, 뭐. 잘 부탁한다.”
“저야말로요.”
세 사람은 허허 웃으며 가볍게 술잔을 나눴다.
오랜만에 누군가와 마시는 술은 확실히 혼자일 때보다 달고, 따스했다.
두 사람과 함께 술을 마시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화기애애한 술자리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남궁청휘가 이린을 사이에 두고 곽천영과 으르렁대다 천마에게 붙잡히고, 그사이 당자혜와 유영이 이린을 빼돌려 여인들끼리 즐겁게 술잔을 들고, 검성을 포함한 여인들의 탁자에 감히 끼어들지 못한 사내놈들이 우울하게 술을 추가로 주문하고, 그런 모습을 보며 여인들은 까르르 웃고…….
‘좋을 때다.’
위에서 보니 훤히 눈에 들어오는 이린의 시선을 확인한 남궁청운은 씩 웃으며 마찬가지로 점소이를 불러 술을 추가 주문했다.
혼자 하는 여행도 물론 즐거웠지만 사실 조금, 아주 쪼오금은 이런 것이 그리웠다.
인생은 길고 앞날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지금은 즐겁고, 앞으로도 즐거울 예정이었다.
[연재] 비천신녀(飛天神女)지은이 월면
발행일 2020년 5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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