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Goddess RAW novel - Chapter 37
37.
빠악!!
경쾌한 소리와 함께, 이번에는 아까 이린에게 맞은 반대 방향으로 발차기가 작렬했다.
이번에는 이린이 아니었다.
“괜찮아요?”
어느 샌가 나타난 윤휘였다. 소년을 걷어찬 윤휘는 이린의 앞을 가로막듯이 서서 소년을 노려보고 있었다.
‘역시 윤휘도 강하구나.’
어느 집안 딸일까? 이린이 기억하는 비슷한 또래의 여협들을 떠올려 보았지만 딱 맞아떨어지는 사람은 없었다.
“흐응. 이렇게 강한 여자애가 둘이라.”
“…머리가 돌로 되어 있나? 참 튼튼하군.”
시종 정중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사람을 대하던 윤휘의 입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나오자 이린은 깜짝 놀랐다. 하지만 소년은 별로 싫지 않은 모양이었다.
“여인을 취하는 것도 사내의 능력이지. 너희 둘 다….”
빠악-!
빠악!
“캑!”
그리고 이어진 소년의 헛소리에 이린과 윤휘 두 사람의 발차기가 동시에 작렬했다. 소년은 털썩 주저앉더니 그대로 쓰러졌다. 아마 한동안은 머리가 울려서 못 일어날 것이다.
“어이가 없네! 자, 어서 가요! 저런 놈과 엮여서 좋을 게 없어요!”
“아, 응!”
윤휘가 얼떨떨해하는 이린의 어깨를 감싸듯 끌어안더니 이린을 감싸듯 어깨를 끌어안은 윤휘가 얼떨떨해하는 이린을 데리고 인파를 뚫고 나갔다. 두 사람이 떠나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흩어지며 길을 만들었다.
‘면사 쓰고 있어 다행이다……!’
아무리 자주 올 곳은 아니라지만 얼굴 팔리고 싶진 않았다.
겨우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빠져나오자 윤휘가 이린을 살피며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괜찮아요? 다치진 않았어요?”
“응. 괜찮아. 아까 그 소매치기는?”
“그래도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던 모양인지 의식은 있었어요. 응급 처치만 해 주고 주변 사람들에게 적당히 맡기려고 했는데 안쪽 상황이 이상한 거 같아서……. 내가 괜한 참견을 한 게 아닌지 모르겠어요.”
“아니, 너무 어이없어서 굳어 있었을 뿐이야. 도와줘서 고마워.”
한층 자연스러워진 분위기로 두 사람은 마주 웃으며 천천히 걸었다.
그리고 뜻밖에도, 다음에 윤휘에게 비무를 청해 볼까 고민하는 이린의 손에 부드러운 온기가 느껴졌다.
“사람이 많으니까…….”
어딘지 부끄러워하는 듯한 윤희의 목소리를 들으며 이린 역시 부끄러워졌다.
‘앗, 아, 으아아.’
이린은 뭔가 간질간질한 기분을 느끼며 윤휘의 손을 잡고 걸었다. 면사 너머로 보이는 얼굴이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이렇게 예쁜 여자애가 웃으니까 설레기도 하는구나.’
뭔가 부끄러워서 이린은 윤휘를 보는 대신 정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이제는 습관처럼 가방을 더듬으려다 깨달았다. 가방이 보이지 않았다. 자신에게도, 윤휘에게도.
동시에 그 사실을 깨달은 이린과 윤휘가 마주 보며 외쳤다.
““청아!!””
“아오 X발 오늘 재수 X나 없네!!”
소매치기로 하루하루 벌어먹고 살고 있는 다순은 엉망이 된 자신의 얼굴을 문지르며 비틀비틀 걸었다.
“하, 미친 새끼 만나서 꼴이 이게 뭐야.”
엉망인 건 얼굴만이 아니었다. 사내새끼가 쓸데없이 반반하게 생겼다 했더니 실은 미친놈이었을 줄이야. 온몸을 아주 자근자근 다져 놔서 쑤시지 않는 곳이 없었다. 그렇게 맞고 뭐 얻은 거라도 있으면 모르겠는데 정작 수입은 하나도 없이 몸만 축났으니 죽을 맛이었다.
“으……. 그 백사녀(白蛇女)를 만난 것부터 불길한 징조였어.”
“그거 안됐네.”
“그렇……. 으아아아악!!!!”
갑작스레 나타난 면사로 얼굴을 가린 소녀의 모습에 다순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자빠졌다. 덕분에 안 그래도 여기저기 쑤시던 몸이 삐거덕거렸지만 그걸 느낄 겨를도 없었다.
“히익, 사, 사사사사살려,”
“누가 죽인대? 나 참 맞아 죽을까봐 살려 줬더니 불길하단 소리나 듣고.”
아까 보았던 뱀의 주인이자 자신을 개 패듯 패던 소년과 무서운 주먹다짐을 했다던 여자아이가 눈앞에 나타나자 다순은 저도 모르게 몸이 덜덜 떨리는 것을 느끼며 다소곳하게 무릎을 꿇었다. 뒷골목에서 살다 보니 몸에 밴 생존 본능이었다.
“저, 제가 뭘, 또, 잘못했습니까?”
“이 언니 기억하지?”
“옙. 물론입죠.”
다순은 이린의 옆에 있는 윤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널 개 패듯 패던 그놈이랑 싸울 때 언니가 내 가방을 가지고 있었는데 소란한 틈새에 감쪽같이 없어졌단 말이지.”
“저기, 그, 뱀……이 들어 있던 그 바구니 같은 가방 말씀하시는 거죠?”
“그래.”
이린의 말에 다순은 기억을 더듬어 보았지만 당시에 자신도 워낙 경황이 없어 주변을 살필 틈도 없었기에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도망칠 때 발에 채는 것도 없었고.
“저, 저는 모르겠습니다. 당시에 일단 자리를 뜨는 게 우선이었고요. 무엇보다 그 안에 뱀이 들어 있다는 걸 아는데 건드릴 리가 없지 않습니까! 게다가 은공의 물건에 손을 댈 정도로 염치없지는 않습니다!”
다순의 새삼스런 저자세에 이린이 빈정거렸다.
“헤에. 백사녀라며?”
“실언입니다!”
저 어린 소녀가 자신을 팬 소년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두들길 수 있는 무력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다순은 필사적으로 변명하며 자신의 입을 찰싹찰싹 때리기 시작했다.
“아이고! 아이고, 이놈의 주둥이가 실언을!”
“어, 됐으니까 의심 가는 놈 인적 사항 좀 불러 봐.”
“……네?”
“구역 겹치는 애들 있을 거 아냐. 목격자 증언하고 겹치는 애를 찾아야지.”
싱긋 웃는 이린의 얼굴을 마주하며 다순은 살기 위해 재빨리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청아가 없어진 것을 깨달은 이린과 윤휘는 우선 아까 싸움이 벌어졌던 현장으로 되돌아갔지만 쓰러져 있던 소년은 물론 가방의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린은 우선 자신들을 뒤따르던 연가상단의 호위무사들에게 다가가 먼저 물었다.
“아저씨. 혹시 제가 들고 있던 가방이 어디로 갔는지 못 보셨나요?”
“……저희가 따르는 걸 알고 있었습니까?”
“아까 잠깐 놓치신 것도요.”
이린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장사가 아무리 넓고 시장이 크다 해도 이린과 윤휘같이 눈에 띄는 면사 쓴 꼬마 아가씨 2인조를 찾는 건 쉬운 일이었다.
애초에 그리 멀리까지 간 것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아까 그 살짝 미친 소년과의 개싸움, 아니 비무로 한참 시선을 끌었는데 아직까지 두 사람을 못 찾고 있어서야 곤란했다.
‘그 정도도 못 잡을 정도면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대비가 불가능한 거나 마찬가지다만.’
어쨌든 두 사람의 행적은 쉽게 찾았을 테니 무언가 본 게 있을지도 몰랐다.
“송구합니다. 저희는 두 분만 쫓느라…….”
다시 잃어버릴까 봐 두 눈 부릅뜨고 다니느라 다른 데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어쩔 수 없네. 근처에 있던 상인들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탐문해 보는 수밖에.”
“알겠습니다.”
결국 근처에 있는 상인들에게 확인한 결과 미친놈에게 맞고 쓰러진 아이가 아닌, 시장에서 자주 보이는 다른 소매치기범이 들고 갔다는 사실을 금방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시장의 상인들은 이런 아이들의 거처까지 알고 있지는 못했다.
일이 길어질 것 같자 상단의 호위무사들은 그냥 가방을 포기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의미로 이린을 설득해 보려 했다.
“아가씨. 가방을 꼭 찾으셔야 합니까? 그런 녀석들은 물건을 함부로 굴려 대서 되찾으신다 해도 상태가 썩 좋지 않을 겁니다. 가방 안에 뭐 중요한 물건이 있던 게 아니시면…….”
“그럴 수는 없어요! 그 안에는….”
초조한 얼굴로 가방에 들어 있을 청아를 떠올리던 이린은 문득 그 가방 안에 아직 멀쩡한 영약이 하나 더 남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엄청 비싼 물건이 들어 있어요! 아마도 여러분들 1년 치 봉급 이상……?”
“당장 찾아보죠.”
이린의 말에 어린아이의 짐이니 적당히 넘어가려던 상단 호위무사들의 태도가 돌변했다.
사실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영약을 돈 주고 구할 수만 있다면 돈은 얼마든지 내겠다는 사람들은 널렸으니까.
“그럼 가방은 저희가 나눠서 찾을 테니 두 분은 다른 곳에서 쉬고 계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맞습니다. 아까 이상한 소년과 싸우기까지 하시고 지치셨을 텐데.”
호위들은 이번에는 정말 호의로 자신들이 가방을 찾아오는 것을 기다려 달라 말했지만 이린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 가방 안에 제가 키우는 동물도 들어 있어요.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아이라 모르는 사람이 가방을 열면 사람을 물 수도 있어요.”
단호한 이린의 말에 이미 아이들을 놓친 전적이 있는 상단의 무사들은 거역할 수가 없었다.
“뒷골목 아이들끼리는 나름 연계가 있을지 모르니 일단 안면이 있는 사람부터 통해 보죠.”
“그 말씀은…… 아까 그 소년에게 흠씬 두들겨 맞은 소매치기를 찾자는 말씀이신 거죠?”
“그렇게 얼굴이 부은 아이라면 눈에 띌 테니 찾기도 쉽겠죠.”
이린의 말대로였다. 얼굴이 퉁퉁 부은 소년이 어디로 갔는지 아느냐는 질문에 뜻밖에도 많은 이들이 방향을 기억하고 있어 다순을 찾는 것은 생각보다 쉬웠다.
그리고 그렇게 찾아낸 얼굴이 팅팅 부어 있는 다순은 의외로 금방 상인들이 말한 아이에 대해 진술했다.
“방금 말한 사람 이름이, 마선이라고?”
“마선이요? 네. 소매치기 잘하고 눈치 빠른…… 그 아이를 찾으시는 거라면 제가 어디 있는지 압니다.”
“정말?”
대충 눈치로 보아 자신에게 해를 입힐 거 같진 않자. 다순은 빠르게 태세 전환하고 안내역을 자청했다.
“그 애들이 거처로 사용하는 곳이 어딘지 알거든요.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그래, 뭐…….”
너무 적극적으로 알려 주려고 하니 도리어 불안하긴 했지만 일단 단서는 이 아이뿐이었고, 다른 방법을 찾기에는 이미 꽤 시간을 지체한 상태였다.
결국 짐작 가는 곳이 있다는 다순의 말에 함께 따라나서며 윤휘가 이린에게 말을 걸었다.
“청아를 많이 아끼시네요.”
“그야, 내가 주워서 책임지기로 한 아이인걸. 한번 구한 생명이니 무책임하게 못 본 척할 수는 없잖아.”
“…그렇군요.”
도무지 어린아이 같지 않은 말에 윤휘는 신기한 듯 이린을 바라보며 사죄했다.
“미안해요. 이린이 저에게 맡긴 건데. 제가 제대로 지키지 못해서.”
“워낙에 경황이 없었으니까요. 그 미친…… 아이 때문에 정신이 없기도 했고요. 그때 발로 걷어차 줘서 고마웠어요.”
“도움이 됐다면 기뻐요. 공연한 참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어차피 윤휘가 차지 않아도 자신이 찼겠지.
“저, 저쪽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