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Goddess RAW novel - Chapter 39
39.
“아저씨들은 일단 상단으로 돌아가세요.”
“하지만 아가씨.”
비명이 들려왔던 건물의 위치를 확인한 이린은 우선 호위들을 상단으로 돌려보냈다.
“우리 같은 어린애들이 호기심으로 주루 안을 돌아다니는 거랑 연가상단의 호위무사인 아저씨들이 탐색하고 돌아다니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예요. 찾기 어려울 거 같으면 도움을 요청할 테니 일단 두 분만 주루에 남아 주시고 나머지 두 분은 돌아가서 오빠에게 상황을 전해 주세요.”
가향루는 작은 주루가 아니었다. 별채와 창고도 따로 있어 규모가 꽤 큰 곳이었다. 말하자면 연가상단과 뭔가 문제가 생겨 좋을 게 없었다. 무사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으므로 이린의 말에 딱히 거역하지 못하고 눈치를 보며 물러났다.
“비명이 들려온 곳 근처를 우선적으로 찾아보죠.”
“응. 누구한테 들키면 둘이 탐험이라도 하고 있다고 할까.”
일단 사람이 적은 별채부터 확인하려고 두 사람 지붕 위에서 내려가려 할 때였다.
“야! 너희 둘!”
“?!”
“?!”
어디서 나타난 건지 모르겠지만 본 적 있는 얼굴의 소년이 두 사람에게 삿대질을 하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까 너희들 때문에 내가!”
“아, 너는 아까 그 미친… 이상한 애.”
“넌 왜 여기 있지?”
윤휘가 이린 앞을 막아서며 소년을 경계했다. 소년은 아까 제대로 겨뤄 보지 못한 윤휘가 앞에 나서자 재미있다는 듯 달려들었다.
“어디 제대로 붙어 보자!”
“아니, 그건 좀.”
지붕 위에서 달려들어 공방을 주고받는 두 사람의 모습은 마치 곡예를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문제는 덕분에 지붕의 기와가 와작와작 부서지며 깨지고 있다는 거였다.
챙그랑!
“뭐야, 누구냐!!”
결국 기왓장이 떨어져 깨지는 소리에 사람들이 몰려들자 이린이 소년의 뒤로 다가가 입을 막고 끌고 갔다. 물론 조용히 하라고 귓가에 속삭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본인도 사람들이 달려온 것에 놀란 건지 의외로 기습에 약한 건지는 몰라도 소년은 순순히 이린과 윤휘를 따라 숨었다.
곧 수런거리는 소란 끝에 낮은 중년 사내의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냐?”
“기와가 떨어져서 와 봤는데 아무래도 고양이가 한 짓이었나 봅니다.”
“고양이라. 그러고 보니 고양이가 허리 병에 좋다지? 잡았느냐?”
“송구합니다. 놓친 것 같습니다.”
“흐음. 그래? 아쉽구나. 다음에는 잡아서 주방으로 보내거라. 오늘 먹은 백사탕(白蛇湯)도 괜찮았는데 다음에는 고양이랑 같이 용호탕(龍虎湯)도 나쁘지 않겠지.”
“알겠습니다, 루주!”
아무래도 지금 나온 중년 사내가 가향루의 주인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대화 내용을 들은 이린의 얼굴은 창백해졌다.
“아, 어, 어떡해. 청아가…….”
“지, 진정해요.”
주변이 조용해지고 나서야 세 사람은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았다. 그중에서도 이린은 충격으로 멍하니 중얼거리고 있었다.
“내가, 데리고 오지 않았으면…….”
동굴에서 혼자라도 잘살고 있었을 텐데. 적어도 앞으로 20년은 무탈하게 살았을 텐데!
괜히 걱정된다고 관여하는 바람에!
“미안해요. 다 저 때문이에요.”
윤휘는 가방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고 자신의 책임이라며 망연자실해하는 이린을 달래었다. 한편 앞뒤 사정을 전혀 모르는 소년은 그저 분위기 파악을 하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
“저어기,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좀 말해 주면 안 될까…? 청아가 누군데?”
혹시 친한 사람이라도 잘못된 건가 조심스러워하던 소년은 이린이 키우고 있는 뱀이라는 대답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뭐야, 뱀이라고. 난 또.”
그리고 그런 태도에 이린은 저도 모르게 소년의 멱살을 붙잡았다. 거친 행동에 죽립과 면사가 떨어지는 것도 모르고 이린은 소년에게 화를 냈다.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네가 거기서 행패 부리고 있지만 않았어도!”
“어? 아니, 그게 왜 나 때문…….”
뭔가 억울한 기분에 논리적으로 따지려던 소년은 이린의 파란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보곤 그대로 굳어 버렸다.
“아, 아니 그게…….”
“당신이 행패 부리는 걸 말리느라 가방을 떼어 놓은 사이 없어졌거든요.”
저런 난봉꾼과 붙어 있으면 안 돼요, 윤휘는 이린을 소년에게서 떼어 내고는 달래며 차분하게 설명했다. 생각지도 못한 이린의 눈물에 당황하며 뭔가 변명을 찾던 소년은 그때 상황을 떠올리며 횡설수설 말했다.
“아니, 그게, 그건, 그 소매치기가 나쁜 거잖아! 그 녀석이 내 전낭을 노리지만 않았어도…. 그런데 그때 네가 가지고 있던 가방에 뱀이 들어 있었다고? 그렇게 큰 가방이었어?”
“크지는 않았……. 아앗!!”
대답하려다 뭔가 깨달은 이린이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자 윤휘와 소년이 동시에 이린의 입을 막았다.
“쉿, 쉿.”
“숨어 있는 거 아니었냐, 지금?”
“아, 미안. 하지만 덕분에 생각난 게 있어. 어쩌면 아까 그 백사……가 청아 얘기가 아닐지도.”
“?”
“?”
이린의 가방은 아직 8세인 이린에게는 조금 클지 몰라도 결코 큰 가방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작은 가방 안에 영약과 간단한 소지품, 그리고 청아까지 들어 있었다. 청아는 기껏해야 어린 이린의 팔이나 칭칭 감을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어린 뱀이었다.
“청아는 누가 봐도 희귀하고 특이한 뱀이지만 아직 알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된 새끼야. 몸보신으로 먹는다 해도 보통 더 키워서 먹지, 굳이 아깝게 그렇게 어린 뱀을 바로 잡아먹지는 않을 거야.”
“하긴. 종류도 모르는 뱀을 위험하게 그냥 먹지는 않을 테고, 아는 뱀이라면 보통은 더 키워서 먹겠죠.”
청아가 잡아먹혔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동요해서 굴러가지 않던 머리가 그제야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린이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났다.
“가자. 아까 그 루주가 뭔가 알고 있을 수도 있어.”
마선은 청아를 노린 것이 높은 어르신이라고 했고, 가향루를 꼭 찍어 말했다. 마선이 말한 사람은 루주일 가능성이 높았다.
청아가 살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면 한시라도 빨리 구해야 했다. 그렇게 세 사람은 주루를 살금살금 누볐다.
“그런데 너는 왜 따라와?”
“아니, 그 뭐냐. 내 탓이라고 하니까……. 도와줄게.”
“…아니, 꼭 네 탓이라고만 하기는 좀 그런데. 아까는 미안했어.”
이린이 이성을 잃고 소년을 탓했던 걸 떠올리며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자 소년은 괜찮다며 손을 내저었다.
“아무튼 내 책임이 없는 것도, 아니고. 어어, 좀 재밌어 보이기도 하고.”
“?”
“쉿, 조용히.”
소년이 어느새 다시 얼굴을 가리고 있는 이린의 면사에 손을 대려 하자 윤휘가 철썩 쳐내며 이린을 자신 쪽으로 이끌었다. 소곤거리고 있다곤 해도 무공을 익힌 사람이 있다면 알아챌 수도 있었다.
물론 객잔을 겸하고 있는 주루라 아이들 키득거리는 소리에 별 신경 안 쓸지도 모르지만. 마룻바닥에 숨어든 아이들은 조용히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아까 들은 루주의 목소리였다
“그자는 어찌하고 있나?”
“약속했던 대로 검성의 소재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흠. 역시 수상쩍군. 일개 낭인이 왜 검성을 찾아다니지? 적당히 속여서 쫓아내게. 검성과 아는 사이라면 우리 하오문(下午門)이 아니라 다른 곳에 갔을 걸세. 여기는 호남이 아닌가.”
“알겠습니다.”
머리 위에서 오가는 대화에 소년의 눈이 동그랗게 떠지며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이린과 윤휘는 이곳이 하오문이라는 사실에 놀랐지만 소년이 놀란 것은 전혀 다른 이유였다. 하지만 다른 두 사람이 그걸 알 리가 없었다.
“그래. 새로 데려온 뱀은?”
“그게, 보통 영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아직도 접근할 수가 없나?”
“무리입니다. 어찌된 영문인지 사굴(蛇窟)의 문이 열리질 않고 주변이 싸늘하기만 합니다.”
“호오. 첫눈에 보통 뱀이 아닌 것은 알아봤지만 그 정도 영물일 줄이야. 혹시 말로만 듣던 청린사(靑鱗蛇)인가?”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귀한 영물이 어린 계집애의 가방 속에 있었다니, 허참.”
얘기를 듣고 있는 이린의 눈이 가늘어졌다. 청아는 아마 무사한 모양이지만, 아무래도 저 아저씨는 처음부터 이린이 청아를 데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가방을 빼돌린 모양이었다. 이린은 상단에서도 다른 사람 앞에서 청아를 꺼낸 적이 없으니 저 아저씨가 청아를 알아봤다면 짚이는 곳은 하나였다.
‘역시 원흉은 그 소매치기범인가.’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이린과 눈을 마주친 윤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좀 패 줘야겠다!’
자신을 빼고 뭔가 일치단결하고 있는 두 사람을 보며 소년이 소외감을 느끼고 있는 사이 루주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내가 직접 가서 확인해 봐야겠다.”
“위험할 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아무리 용을 써 봐도 쪼끄만 새끼 뱀이다. 지금은 저항하느라 온 힘을 다 쓰고 있겠지만 곧 포기할걸? 탈진해서 잘못되기라도 하면 큰일이니 돌봐 줘야지.”
그렇게 말하며 루주는 청아가 걱정된다는 듯 질 좋은 생고기들을 가져오게 하며 자신의 집무실을 떠나 다른 전각으로 이동했다.
눈짓으로 대충 뜻을 맞춘 세 아이들도 거리를 두고 살금살금 뒤를 쫓았다. 루주가 간 곳은 주루의 끝에 있는 독채로 문에 몇 겹이나 되는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고, 경비병들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았다면 중요한 손님이라도 머물고 있으리라 여겼을 정도였다.
“아무도 들여보내지 마라.”
“예, 루주.”
2명의 경비병은 두꺼운 옷을 입고도 덜덜 떨며 고개를 숙였다.
들키지 않을 정도의 거리에서 지켜보던 세 사람도 건물에서 느껴지는 한기에 당황하며 팔을 쓸었다. 아직 날은 더웠으니 이런 한기는 정상적인 것은 아니었다.
“저기, 청아가 있는 거 같아.”
이린은 언제나 한기가 돌던 청아를 떠올리며 확신했다. 20년 후의 청아에게는 저런 능력이 없었지만.
‘어쩌면…….’
이린은 청아가 얼마 전 홀랑 삼켜 버린 영약을 떠올렸다. 사람에게도 독과 병을 물리치고 내공까지 증진시켜 준다는 영약을 영물이 먹으면 어떻게 될까?
“경비병들을 유인하고 안으로 들어갈까요?”
“그냥 해치우고 들어가지?”
“도중에 돌아오거나 정신 차리면 성가신데 어쩌지.”
지금 건물 안으로 들어간 건 루주와 그 수하로 보이는 사내, 호위병인 듯 검을 든 두 명의 사내까지 4명이었다. 지금 밖을 지키고 있는 경비병까지 합치면 6명.
아무리 셋 다 무공을 익힌 몸이라 해도 어린아이였다. 만약 다치기라도 한다면 도망치기도 어려웠다. 누군가 불러오자니 그사이 루주가 나와 자물쇠를 채우면 열쇠를 찾거나 문을 부수고 들어가는 극단적인 일까지 해야 했다.
“불이라도 지를까?”
“뭐?”
“네 뱀이 저기 있다며? 게다가 건물은 저렇게 냉기가 풀풀 날리니 불 좀 질러도 큰일은 안 날 거 같은데?”
“아니, 불이 나면 그것만으로도 큰일이지…….”
미쳤니? 차마 본인 앞에서 할 수 없는 말이 입안을 맴돌았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사고방식에 이린과 윤휘가 어이없어하는 그때였다.
“불이야!!!”
근처에 있던 별채 중 하나에 불이 붙어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
“…….”
“뭐, 왜, 왜 날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