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Goddess RAW novel - Chapter 41
41.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낑낑거리며 일어난 루주는 눈을 가리고 있던 천을 푸르며 허리를 두들겼다.
“아이고, 대체 누구냐…….”
뱀의 원래 주인이 되찾으러 온 걸까? 아니면 제3자가 자신과 마찬가지로 그 뱀을 노린 걸까. 하지만 자신이 본 뱀의 원래 주인은 어린아이인 데다 면사까지 쓰고 있어 누군지도 모르니, 자신들을 이렇게 만든 상대가 누군지 알 수 없는 루주는 답답할 따름이었다.
“누군지는 몰라도 어쩌면 덕분에 산 거 아닙니까? 전 아까 지하실에서 그대로 얼어 죽는 줄 알았습니다.”
문이 얼어붙어 도망도 못 가는데 갑자기 열린 출구는 구명줄 같았다. 그 뒤로 갑자기 얻어맞고 의식을 잃었지만.
“에고에고. 그런데 이건 대체 무슨 소란인지.”
정신이 들고, 살았다고 생각하니 타는 냄새와 함께 주변의 소란이 충분히 느껴졌다. 그때 루주를 찾는 부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루주!!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무사하십니까?!”
“그래,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아까 말씀드린 그 낭인입니다! 자길 속였다고 난동을 피우는데 그 과정에서 불이 났습니다. 진정시켜 보려 했는데 루주도 없으니 저희들도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뭣?!”
불이 났다는 소리에 그제야 주변을 살핀 루주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 * *
“오늘 하루 파란만장했다.”
“빨리 돌아가 봐야 하지 않을까요. 다들 걱정하실 테니.”
“맞아. 오빠한테 연락했을 테니 걱정하고 있겠지.”
심지어 의도한 건 아니지만 불까지 났으니. 오빠 성격에 가만히 기다리고 있을 거 같진 않았다.
“그럼 나도 이제 가 볼게. 아무래도 빨리 가 봐야 할 거 같아서.”
“아, 맞아. 여러모로 고마웠어.”
분명 처음에는 시비 걸러 왔는데 어느 순간 동료가 되어 버린 소년에게 이린이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뭐어, 덕분에 재밌는 구경 많이 했다.”
소년의 시선이 제 품에 있는 청아에게 향해 있는 걸 보며 이린은 어색하게 웃었다.
“성가셔지니까 소문내진 말아 줘.”
“말해도 아무도 안 믿을걸. 그럼 나중에 또 보자! 뒤에 너도!”
“잘 가!”
“……고마웠어요. 잘 가요.”
손을 흔들며 뛰어가던 소년의 모습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쟤는 정체가 뭘까?”
“글쎄요. 저렇게 뛰어난 무재라면 소문이 났을 텐데 저도 짚이는 데가 전혀 없어요.”
사실 나이에 비해 뛰어난 무위라든가, 난폭한 성정이나 사상을 보면 생각나는 게 없지는 않았지만 그걸 굳이 확인하고 싶진 않았다.
윤휘와 이린은 아직도 화재를 진압 중인 주루를 바라보며 처음 들어왔던 담벼락에 올라 그대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이린은 그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현과 눈이 마주쳤다. 그 옆에서는 제갈윤위가 팔짱을 낀 채 어이없는 듯 웃으며 윤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어서 오렴. 이 사고뭉치들.”
웃는 얼굴로 화내고 있는 보호자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역시 아이들의 안전 확인이었다.
“다친 건 아니지?”
“응. 안 다쳤어.”
이린이 팔다리를 흔들어 보이며 필사적으로 괜찮다고 말했지만 이현은 듣지 않았다.
이린의 팔다리를 한 번씩 확인하고 빙글 돌려 등과 다리도 다쳤는지를 꼼꼼하게 확인하며 재차 확인했다.
“정말? 불난 데 가지 않았지?”
“안, 안 갔어.”
불이 붙은 건물에서 탈출하긴 했지만.
이린의 살짝 어색한 목소리를 알아채고도 모르는 척하는 건지 정말 모르는지 이현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뚝뚝 묻어나 곁에서 보고 있는 이들의 애간장을 녹였다.
“무슨 일 있을까 봐 걱정했잖아.”
“미안해.”
“린아한테 무슨 일이 있으면 오빠는……”
고운 얼굴을 찌푸린 이현의 눈가가 파르르 떨리더니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헉, 미, 미안해, 오빠! 잘못했어!! 응?? 울지 마!!”
연씨 남매의 감동적인 눈물의 상봉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노기가 식어 버린 제갈윤위는 한숨을 푹 쉬며 자신 앞에 있는 윤휘를 내려다보았다.
-휘아, 네가 이렇게 사고 치는 건 처음 보는구나. 쪼끄만 어린애가 볼 때마다 세상 다 산 늙은이처럼 점잖더라니. 그래, 또래 아이랑 있으니 즐거웠니?
육성 대신 전음으로 전해지는 제갈윤위의 말에 움찔 떨었던 윤휘의 얼굴이 점점 새빨개지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송구합니다…….”
조카의 귀여운 반응에 내심 즐거워하면서도 제갈윤위가 한층 더 엄한 목소리로 타일렀다.
“네가 이린보다 연장자니까 동생을 잘 돌봤어야지.”
“죄송해요.”
어느새 눈물의 상봉이 끝나고 언제나처럼 오빠랑 알콩달콩하던 이린이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이는 윤휘를 보고는 깜짝 놀라 끼어들었다.
“아니에요! 제가 언니를 강제로 끌고 다닌 거예요! 애초에 모든 잘못은…….”
모두 이린이 모든 잘못은 저에게 있다고 말할 거라 생각했지만, 뜻밖에도 말을 흐린 이린은 아까부터 신경이 쓰이던, 오빠 이현 앞에 있는 낯익은 소년을 손가락질하며 외쳤다.
“저기 있는 소매치기범 때문이라고요!”
“주,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이린의 지당한 지적에 다순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몸을 움츠렸다.
소매치기범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누가 봐도 불쌍하다고 할 만큼, 현재 다순의 상태는 어디서 흠씬 두들겨 맞고 온 불쌍한 몰골이었다.
“린아, 아픈 사람이니까 너무 화내지 말고. 응?”
“쯧. 또 어디서 맞아서 꼴이 이 모양이 된 건지…….”
이린도 다순의 꼴이 불쌍해 보여 차마 더 뭐라 하지 못하고 한숨만 쉬던 중 갑자기 떠오른 사실에 몸을 일으켰다.
“아니, 그런데 쟤는 왜 여기 같이 있어?!”
“너희를 찾으러 오는 길에 다쳐 쓰러져 있어서… 저렇게 다친 사람을 그냥 두고 갈 수는 없잖아.”
이현의 변명에 이린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오빠는! 그렇게! 사람이 좋아서 문제야! 정말, 그렇게 착해서 어떻게 할 거야!”
“린아도, 저 아이를 도와주다가 가방을 잃어버렸다며. 우리 린아가 착한 건 알지만 그런 위험한 사람과 싸우다니, 아직 어린아이인데 크게 다치면 대체 어쩌려고……!”
맨정신으로 서로를 칭찬하며 화내는 아름다운 남매애를 보며 제갈윤위는 조용히 웃으려 노력했지만 결국 이히힉 소리와 함께 흐느끼며 부들부들 몸을 떨 수밖에 없었다.
“……원래 남매는 저런 거예요?”
난생처음 보는 생소한 광경을 멍하니 쳐다보다 소곤소곤 묻는 윤휘에게 제갈윤위는 눈을 초승달로 만들곤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마차 안이라 다행이지 웃다 쓰러질 뻔한 제갈윤위는 이현이 이린에게 그러했듯…… 까지는 아니지만 윤휘의 몸 상태를 세심하게 살피며 웃었다.
-하지만 저 집은 옛날에도 비교적 저랬단다. 글쎄 저것도 나름 가풍인가?
연씨 남매를 향해 어딘지 그리운 듯 다정한 눈빛을 보내는 제갈윤위를 보며 윤휘의 얼굴은 조금 어두워졌다.
‘저런 것도 가풍이라면 우리 집은 이미 바꿀 수 없겠지. 애초에 내가 노력해서 어떻게 될 문제도 아니고.’
남매의 알콩달콩 다정한 싸움이 드디어 진정되고, 이현이 반항하는 이린을 무릎에 앉혀 토닥거리자 윤휘는 아까 전부터 들고 있던 가방을 내밀었다.
“참, 이거 받아요.”
“어? 아! 내 가방!”
이린이 청아만 챙기느라 다른 건 안중에도 없어 윤휘가 챙긴 물건이었다. 사실 지하실 안에 서리가 워낙 심해서 뭐가 있는지 잘 안 보이기도 했고.
그나마 저것도 청아가 있던 방 한 가운데에 있던 물건이라 윤휘가 발견할 수 있었다.
오늘 이린이 그 가방에 비싼 것이 들어 있다고 했을 때 뭐가 들어 있을지 대충 알 것 같은 윤휘는 이린의 털털한 반응에 그저 웃을 뿐이었다.
“안에 귀한 물건이 들어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응. 까먹고 있었어. 고마워.”
윤휘가 에둘러 표현했지만, 마찬가지로 이린의 가방 안에 뭐가 들었는지 알고 있는 이현은 한숨을 쉬며 웃었다. 아마 다른 사람들이 그 가방에 영약이 들어 있다는 걸 알았다면 웃어넘기지는 못했을 것이다.
“의외로 많이 안 망가졌네……?”
가방은 의외로 건드린 데 없이 멀쩡해 보였다. 서리를 맞아서 좀 눅눅하긴 했지만 어디 상한 구석도 없고 물건도 무사했다. 하다못해 청아를 위해 깔아 놓은 이불까지 무사했다. 청아가 만든 냉기 덕분에 푹 젖어 있었지만.
“청아, 여기로 다시 들어갈래?”
끼이이-
“히익!”
아까 이린의 품 안으로 들어간 후론 나오질 않던 청아가 그 말에 고개만 내밀고는 싫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 순간 우연히 청아와 눈이 마주친 다순이 기겁하며 몸을 더욱 구석으로 구겨 넣고 떨었다.
저렇게 얼굴을 가리고 있으면 언제 다가와 물지 모르니 더 무섭지 않을까. 아니, 청아는 이유 없이 물지 않겠지만 어쨌든.
“음, 없어진 건…… 없는 거 같아.”
이린은 안에 영약이 무사히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청아가 먹어 버리지 않았을까 했는데.’
전에 몰래 먹은 것을 보면 청아도 영약이 몸에 좋은 것이라는 것 정도는 아는 눈치였다. 심지어 먹고 난 후에는 한동안 밥도 제대로 먹지 않을 정도였고.
낯선 사람에게 잡혀가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라면 차라리 청아가 먹는 게 나았다. 그래서 아까 본 그 얼음 창고 같은 지하실과 서늘하던 냉기도 영약을 주워 먹은 청아의 짓인가 싶어서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았는데.
“혹시 아까 그건 청아가 가방을 지키고 있었던 게 아닐까요?”
“그런가 봐. 우리 착한 청아. 전에 몰래 먹어서 혼난 거 기억하고 있었구나?”
키이-
그 말에 긍정하기라도 하듯 이린의 손에 얼굴을 비비는 청아를 보며, 제갈윤위의 눈이 반짝였다.
“그 애, 잠깐 봐도 될까?”
“아, 지금은 좀 놀란 거 같아서요.”
원래 보여 주고 이것저것 좀 물어보려 했지만 지금 청아는 아직 겁먹고 있는 것 같아 이린은 제갈윤위의 청을 거절했다. 대신 이린은 아까 다시 품에 넣어 둔 알을 꺼냈다. 차디찬 상태인 청아 옆에 두는 게 좋지 않긴 한데, 청아가 품에서 나가질 않아 어쩔 수가 없었다.
이린이 웅크리고 있는 뱀이 훤히 보이는 작은 알을 꺼내자 제갈윤위도 윤휘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린이 품에 넣고 다녀도 잘 모를 만큼 작은 알 속에서 자그마한 뱀이 조금씩 꿈틀꿈틀 움직이고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범상한 물건이 아니라 윤휘가 조심스레 물었다.
“저기, 여기서 꺼내도 괜찮은 건가요?”
“원래 보여 드리고 조언을 얻을 수 있을까 해서 가져온 거니까요. 여쭤 볼 틈이 없어서 말씀을 못 드린 것뿐이고.”
제갈윤위는 만나자마자 윤휘를 끌고 가기 바빴고, 오늘도 바쁘다고 아이들은 나가 놀라고 내보냈으니 맞는 말이었다.
제갈윤위는 이린이 건네준 알을 찬찬히 살펴보며 물었다.
“이런 걸 어디서 구한 거니?”
“뒷산에서 주웠어요.”
“……전부터 생각했지만 너네 뒷산 좀 이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