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Goddess RAW novel - Chapter 55
55.
말을 걸어왔다는 건 지나치게 온건한 표현으로 사실은 꽤나 시비조의 말투였다. 이린은 떨떠름하게 고개를 돌렸다.
“너 누구 허락을 받고 여기 들어왔어?”
“히익, 괴물인가 봐! 눈이 파래!”
아까 제갈윤정이 다른 문파의 아이들이나 남궁세가의 아이들도 온다고 했었는데 아무래도 이쪽 길은 남궁세가의 방계 혈족들이 사는 구역과 이어져 있는 모양이었다.
‘하긴 이 반응이 평범하지.’
이린은 자신의 용모에 질색하는 아이들을 보며 역시 진사린이나 제갈수원이 특이한 거였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이상하게 생겼어,”
“괴물 아냐?”
“무슨 병에 걸린 거 아냐?”
“아무리 아이들이라지만 할 말과 못 할 말 정도는 구분해야지?”
이린이 차갑게 일갈하자 잠시 움찔했던 아이들은 곧 혼자인 이린과 다섯이나 되는 자신들을 확인하고 기세를 올렸다.
“흥! 여기가 어딘 줄 알고 큰소리야! 여긴 대(大) 남궁세가고! 우린 그 남궁세가의 자제들이라고!”
“맞아! 건방 떨지 마, 괴물 주제에!”
“하, 하지만 여자애한테 너무 심한 게 아닐까.”
“흥! 괴물인데 여자앤지 뭔지 알 게 뭐야, 벗겨서 확인해 볼까?”
킥킥거리며 저열한 말들을 지껄이는 아이들을 이린은 서늘한 눈으로 지켜볼 뿐이었다. 어차피 이런 소릴 하는 놈들은 말로 끝나지 않는다.
‘기분도 안 좋은데 마침 잘도 나타나 주네.’
이린이 장주로서 남편을 구할 때도 저열한 소릴 하는 놈들은 많았다. 밤에 몰래 처소에 숨어들어 강제로 덮치려 하는 이들도 있었고, 이 상황에서는 참 역설적이게도 그때 이린을 보호한 것은 남궁세가의 무인들이었다.
이린의 입가에 저도 모르게 허탈한 미소가 떠올랐다.
“확인할 수 있으면 해 보렴. 꼬마.”
“뭐…!!”
딱히 누굴 지칭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름 평소 느끼는 바가 있었는지 막말을 열심히 내뱉던 아담한 체구의 소년이 먼저 이린에게 달려들었다.
‘마침 주변에는 아무도 없고.’
숨어 있는 아이들은 아직 이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을 테니 상황을 알려면 시간이 걸리겠지.
달려들고 있는 아이는 나름 무공을 배운 모양이었지만 연가장의 아이들보다도 형편없었다. 물론 장원의 아이들은 이린에게 반쯤 맞아 가며 배우고 있는 진여운에게 맞아 가며 제법 빡세게 단련당하고 있었으니 비교하는 건 미안할 일이었다.
빠악!
“컥!”
‘얼굴보단 머리가 맞았을 때 티가 잘 안 나지.’
이린의 주먹이 아이의 머리를 강타했다. 기절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대로 반대쪽으로 쓰러진 친구를 본 아이들이 머리에 열이 올라 달려들었다.
“이 계집애가!”
퍼억!
“악!!”
‘그 외에는 남 보여 주기도 남사스러운 부분, 엉덩이라든가?’
이린의 발길질에 엉덩이가 차인 아이가 앞으로 고꾸라지고, 남은 세 아이들 중 가장 키가 크고 입이 더럽던 소년이 슬쩍 눈치를 보다 자신보다 확연히 작은 체구인 이린을 보고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다.
“이야아, 이 괴물!!!”
퍼억.
“끄억!”
‘입이 더러운데 입을 패면 너무 티가 나니까, 다른 곳으로.’
“끄아악!!”
이린의 정확한 발차기에 남자의 급소를 맞아 몸부림을 치던 소년은 바닥을 기며 괴로워하다 이린의 발에 밟혀 비명을 질렀다. 일부러 탁한 색감인 허리띠 부분만 내공을 담아 지그시 밟는 치밀함을 보인 이린은 쓰러져 있는 아이들의 허리를 공평하게 자근자근 밟아 주었다. 이린이 몸부림치는 소년들을 무덤덤한 눈으로 밟는 동안 비교적 소극적이던 아이 둘은 행여나도 이린과 눈이 마주칠까 황급히 시선을 피하며 소심하게 입을 열었다.
“자, 잘못했습니다! 살려 주세요…….”
“야! 니들 나중에 죽는다!!”
가장 체구가 큰 소년이 허리를 붙들고 일어나 소리를 지르자 움찔 떤 소년들이 갈팡질팡 고민하기 시작했다. 눈앞의 소녀도 무섭지만 언제나 자신들을 괴롭히던 소년도 무서웠다.
“고작 이 정도 실력으로 남궁세가라는 이름을 입에 올릴 줄이야. 너희 같은 애들이 커서 가문 이름 등에 없고 힘없는 사람들 삥 뜯는 삼류 깡패 짓이나 하고 다니겠지. 어디 가서 정파라고 거들먹거리지나 말렴.”
“이, 이, 너, 가만 안 둬!”
간신히 몸을 추스르고 일어난 소년이 이를 갈며 상황을 살폈다. 희한하게 생긴 계집애가 제법 하는 모양이었지만 이쪽은 다섯 명이고 저쪽은 한 명이었다. 다섯이 한꺼번에 덤비면 아무리 용을 써도 어쩌지 못하리라.
‘붙잡아서 치욕을 갚아 주마!’
“야! 한꺼번에 덮쳐!”
험악한 목소리에 움찔거리던 아이들도 슬금슬금 이린을 향해 다가갔다.
“흐음.”
심드렁한 얼굴로 아이들이 다가오는 것을 보던 이린은 잠시 멈칫하더니 곧 태도를 바꿨다.
이번에는 정말 겁이라도 먹었는지 아까처럼 공격하지 않고 소극적으로 몸을 피하는 소녀를 보며 소년들은 눈을 번뜩였다. 용케 잘 피하고 있었지만 오래갈 리 없었다. 이대로라면 분명 자신들의 승리였다.
마침 허술하게 빈틈을 보이는 소녀의 팔목을 낚아채자 소녀의 입에서 가녀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꺄악, 하지 마!”
‘그래!! 이거지!!!’
괴로워하는 목소리에 희열을 느끼며 아까의 복수를 하기 위해 막 손을 치켜 올린 그때였다.
“뭐 하는 짓들이냐!!!”
“린아!”
뒤쪽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그곳에 있던 소년들의 몸이 얼어붙듯 굳었다.
처음 들려온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공포로 얼어붙어 숨도 못 쉬고 뒤를 돌아본 소년들은 자신들의 예상이 틀리기를 간절히 빌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소년들의 기대와는 달리 그들이 예상하고 있던 인물이 어느 잘생긴 청년과 함께 서 있었다.
“대, 대공자님……!”
부들부들 떨기 시작한 소년들 사이를 헤치고 들어온 이현은 소년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이린을 끌어안고 싸늘한 표정의 남궁청원의 곁으로 돌아왔다.
“린아, 괜찮니?”
“오빠아.”
부러 겁먹은 목소리로 이현의 품에 매달리며 이린은 보이지 않게 싱긋 웃었다.
‘계획대로.’
“이게 뭐 하는 짓들이냐고 물었다!”
“아, 아, 아닙니다. 대공자님……!”
“가주께서 초대한 손님께 이 무슨 짓을! 심지어 너희보다 어린 여자애를 사내아이 다섯 명이서 괴롭히다니!!”
대공자가 다가갈수록 아이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가는 것을 보며 이린은 느긋하게 오빠 품에 머리를 기댔다. 아까 제갈 부인에게 안겼을 때도 좋았지만 역시 오빠가 제일이었다.
‘그런데 오빠랑 대공자가 왜 같이 있지.’
누군가 무공을 익힌 사람이 다가오고 있기에 일부러 맞는 척을 하긴 했는데 설마 이 두 사람일 줄이야.
‘좀 일이 커질까?’
사실 이린이 그냥 남궁세가 애들을 패 놨어도 5 대 1이라는 상황만으로도 남궁세가에서 뭐라고 할 입장이 아니긴 했다. 하지만 그랬다면 두 가문 사이가 더 어색해질 뿐이니 바람직하진 않았다. 그렇지만 반대로 남궁세가 아이들이 일방적으로 이린을 괴롭히고 있었다면 얘기는 전혀 달라졌다.
‘자존심 때문에 덮으려 하는 애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런 거 별로 신경 쓸 필요도 없고. 뭐, 어린 여자애를 여럿이서 괴롭힌 못된 놈들이란 꼬리표는 좀 세지.’
덕분에 대공자는 상대가 아이들이라는 사실조차 잊었는지 무시무시한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린매! 괜찮아?”
“대공자님?”
그리고 그 덕분인지 아니면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나서인지 숨어 있던 수연과 사린이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싶어 이린을 찾으러 나왔다 현장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언니.”
조금 경계하는 듯하던 이현도 이린이 친근하게 아이들을 부르자 품에 안고 있던 이린을 놓아주었다. 이린은 자신을 보고 있는 시선들을 느끼며 작은 목소리로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저 애들이…….”
이린의 시선을 따라간 두 사람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아무래도 전적이 있는 모양이었다.
“저 계집애가 우릴 때렸다고요!”
“저흰 억울합니다!”
맞기는 일방적으로 맞고, 혼나기는 또 자기들만 혼나는 것이 억울한 소년들이 항변하자 이린이 가련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보고 괴물 같다고, 정말 여자애인지 확인한다고 벗겨 보자고 막…….”
“!!”
이린의 입에서 나온 충격적인 발언에 일동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막 달려들어서 저항했는데 그때 내가 조금 때렸을지도…….”
“린매, 잘했어! 저런 놈들은 패 줘야 해!”
사린의 과격한 발언에 이의를 표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부정하지도 않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대공자의 눈은 북풍한설보다 서늘했다.
“아, 하지만 저기 두 사람은 나쁜 말도 안 했고, 저 괴롭히지도 않았어요.”
어설프게 길을 막고 있긴 했지만 어쩔 줄 몰라 하며 오히려 소년들을 방해하던 걸 기억하는 이린은 작은 변명을 남겨 주었다.
“!!”
자신의 말을 들은 두 아이의 얼굴에 감격이 차오르는 것을 확인한 이린은 처연한 얼굴을 유지한 채 고개를 돌렸다.
“미안. 나 때문에 놀랐지? 수원이 아직 혼자 숨어 있는 것 같으니까 찾으러 가자.”
“괜찮아? 무서웠지? 놀랐지?”
사린은 걱정스러운 듯 이린을 끌어안고 달랬다. 이렇게 자신을 걱정해 주는 걸 보니 뭔가 이것저것 찔려서 이린은 속이 편치가 않았다.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다니 면목이 없습니다. 반드시 후일 다시 제대로 사죄드리겠습니다. 동생분이 많이 놀랐을 테니 우선 안으로 드시지요. 미안합니다.”
대공자는 마지막에 이린과 눈을 맞추며 사과하고 사고 친 아이들을 끌고 사라졌다.
“린매, 들어가자. 아, 그런데…….”
이린의 손을 잡고 고개를 든 사린은 그제야 이린을 안고 있던 이현의 얼굴을 똑바로 보고 멍하니 입을 벌렸다.
“세상에…….”
“…? 참, 린아. 이 아이는?”
“아, 여기서 만난 친구야. 진사린 언니랑 남궁수연 언니.”
이린은 멍한 얼굴의 사린과 남궁수연을 보며 내심 감탄했다.
‘오빠 대단해.’
아까부터 이린을 감싸던 아이들이 여동생이 오늘 사귄 친구라고 하자 이현은 이린에게 좋은 친구가 생긴 것 같아 진심으로 기뻐서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린아 친구구나? 나는 린아 오빠인 연이현이라고 해. 잘 부탁한다.”
“네, 네!”
“저, 저희가 안내할게요. 린매가 놀랐을 텐데 쉬어야죠!”
그리고 태어나 처음 보는 압도적인 미소년의 화사한 미소에 잠시 넋이 나갔던 소녀들은 양 볼을 붉힌 채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일어났다.
“가자. 많이 놀랐지?”
“으응.”
뭔가 오빠를 속인 거 같은 기분에 떨떠름한 이린은 남궁세가 사람들이 주변에 없는 걸 확인하고 이현에 품에 안겨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근데 나 사실 걔네 많이 때렸어. 걱정하지 마.”
이린의 깜찍한 고백에 눈을 몇 번 깜빡인 이현이 잔잔하게 웃으며 속삭였다.
“다음엔 어디 하나 부러트려도 돼.”
“응?”
뜻밖의 과격한 발언에 이린이 눈을 동그랗게 뜨자 이현이 이린의 등을 토닥이며 앞에 가는 아이들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의 목소리로 속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