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Goddess RAW novel - Chapter 56
56.
“우리 린아 착해서 제대로 때리지도 못했을걸. 여자아이에게 그런 더러운 말을 하는 놈들은 어디 한군데 부러져 봐야 정신을 차릴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 알았지?”
“어어…….”
남자애 급소를 차고 쓰러진 애들은 발로 밟고 그랬는데요, 라고는 차마 말할 수 없는 이린은 그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오빠도 나중에 강호 나가서 이상한 사람 만나면 불쌍해하지 말고 확 팔다리를 분질러 버려. 알았지? 괜히 봐주다가 다쳐서 오면 화낼 거야.”
“응응, 그럴게.”
뭔가 알콩달콩한 남매의 모습을 힐끔힐끔 쳐다보던 사린과 수연도 소곤소곤 귓속말을 하기 시작했다.
‘진짜 잘생겼어. 그치.’
‘와, 저런 남매도 있구나. 주변에 오빠여동생은 쓸어 담을 정도로 널렸는데 어떻게 저렇게 다르지?’
‘저런 얼굴의 오빠부터 없잖아.’
‘아, 하긴.’
자신들의 알콩달콩한 모습을 주변에서 어떻게 보고 있는지 관심도 없는 오누이는 오늘도 사이가 좋았다.
* * *
“성가시게 되었구나.”
“장로들이 손자라고 애지중지 버릇없게 키워 놨으니 당연한 일 아닙니까.”
원래도 그리 맘에 드는 아이들은 아니었건만 이번에 연이현 앞에서 그 아이들이 어린 여자아이를 희롱하기까지 했으니, 남궁청원은 심기가 불편했다.
“우릴 지지하던 장로의 손자들은 아니지만 처벌하게 되면 괜한 소릴 듣겠지.”
“어차피 아버님에게 숨길 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처결은 아버님께 넘기시지요. 연가장주에게도 사과하셔야 할 텐데.”
“흥. 지금 사이좋은 척하기도 배알이 꼴리실 텐데. 보나마나 우리한테 떠넘기실 거다.”
형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남궁청운은 의아한 듯 물었다.
“그런데 대체 아버님과 연가장주는 왜 그리 사이가 안 좋으신 겁니까?”
“……너는 몰라도 된다.”
“썩 듣기 좋은 얘기는 아니니까 그러려니 해라.”
“?”
약관(弱冠: 20세)을 넘긴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어린아이 취급하는 것에 발끈하기에는 오랜 시간 겪어 온 형들의 주먹이 무서운지라 청운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안 그래도 네 일로 신세를 져서 아버님이 못마땅해하고 있는데 기름까지 부었지.”
“하지만 그건,”
“운아가 다혈질인 건 너도 알고 있을 텐데 그쯤 해 둬라. 해남까지 내려가 있던 녀석이 어떻게 알고 쫓아 올라와서는.”
“제 나이가 몇인데 운아가 뭡니까, 큰형님. 청휘는 우리 동생이고, 아직 어린아이입니다. 그런데 꼭 그런 방법을 택해야 합니까?”
“나도 그리 내키지는 않는다. 하지만 황룡전장까지 등에 업은 청휘를 앞세운 제갈세가 그 교활한 것들이 우리를 가만둘 리가 있겠느냐. 안 그래도 어머니의 친정이나 다름없는 공동파가 혈교와 내통했다며 멸문 위기에 처해 있어 우릴 뒷받침해 줄 세력은 없고, 아버지조차 우리를 의심하고 있지. 어머니께서 살아 계셨으면 피를 토하셨을 거다.”
덕분에 남은 공동파의 세력들은 남궁 형제에게 기대고 있는 실정이었다. 청운은 이 방 안에도 있을 공동파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큰형님. 하지만 공동파의 숙부들은…….”
“그들이 기댈 수 있는 곳은 우리들뿐이다. 우리에게도 그들이 필요하고.”
“큰형님.”
이미 시작했으니 멈출 수 없었다. 청휘가 태어난 이후로 자신들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음을 확연히 느끼고 있는 남궁청원은 나이 차 나는 막내로 자라 세상물정에 어두운 동생을 보며 한탄했다.
“아쉽구나. 연가장의 첫째가 아들이 아닌 여식이었다면 너와 혼사를 추진했을 텐데. 정작 그 집 딸은 아직 너무 어려서 나이가 맞질 않으니”
“그 집 딸이면 아직 꼬맹인데 그건 범죄죠. 청휘에게 붙여 주면 모를까.”
뜻밖에 의표를 찌르는 말에 남궁청수가 눈썹을 찌푸렸다.
“…….”
“……그 아이가 폐관수련 중인 게 다행일지도 모르겠구나. 황룡전장과 약혼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차에, 연가장과 연이라도 맺는다면 그건 그것대로 더 성가셔질 테니”
“아버지가 싫어하시지 않을까요?”
“글쎄? 좋아하실지도 모르지. 사내란 미련 많은 동물이니. 하지만 내가 연장주라면 귀한 딸을 여기로 시집보내지는 않을 거다.”
“하긴 찜찜하죠.”
둘이 나란히 고개를 끄덕이는데 영문을 알 수 없는 청운만 속이 답답했다.
“저기, 저도 좀 아는 얘기를 해 주시면 안 됩니까?”
“넌 가서 연이현이나 잘 꼬셔 봐라.”
“이젠 보낼 것도 없고 할 말도 없어요. 아 진짜 민망한데!”
“생명의 은인에게 말본새가 그게 뭐야, 이놈이. 우리가 널 그렇게 가르쳤냐?”
“연이현의 환심을 살 방법이나 알아보거라.”
“남궁세가만큼은 아니어도 부유한 집인 데다 딱히 물욕도 없고, 그냥 여동생 팔불출이라는 것밖에는…….”
본의 아니게 서신을 교환하며 친분을 다졌지만 대충 겪어 본 이현은 그다지 욕심이 없었다. 하다못해 영약이나 명검으로 꼬셔 봐도 별 관심을 보이질 않았고. 그래서 그 여동생은 어떨까 했는데 남매가 비슷하게 물욕은 없고 취미가 좀 특이하다는 소문만 있었다.
“군자검이 괜히 군자검이 아니구나. 자식들마저 그러하니.”
게다가 한눈에 보아도 아이들에게 애정이 넘치는 다정다감한 아버지였다.
“아이들에게 정이 많아 보이는 것이 정략결혼이 아니어서 그런 건가 타고난 건가.”
“아버님도 어머님도 딱히 그런 성격은 아니셔서 모르겠군요.”
삐딱한 동생의 말에 청원도 딱히 아니라고 할 마음도 들지 않아 한숨만 내쉬었다.
“운아, 넌 이만 가 봐라.”
“쳇. 나 빼놓고 또 무슨 모의를 하려고요!”
“장로들의 되바라진 손자들 처벌에 대해 논의할 생각이다만.”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후다닥 사라지는 셋째를 보며 청원은 뒤쪽에 시립 중이던 완영을 불렀다.
“제갈 부인은 어떠냐.”
“주군께서 아들을 해칠 것을 염려하고 계십니다. 가주 자리에는 뜻이 없다고.”
“지금은 그럴지 몰라도 제갈가에서 보내온 여자입니다. 방심하시면 안 됩니다, 대공자.”
부하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반대편에 시립해 있는 주서에게 물었다.
“청휘가 있는 수련관은?”
“샅샅이 뒤져 봤지만 접근할 수 없습니다. 강아지나 어린아이가 들어갈 정도의 구멍은 하나 발견했습니다만 거기로 들어가는 것은 무리입니다. 게다가,”
“게다가?”
“안쪽에 지하수로가 흐르도록 되어 있어 막내 공자께 접근할 수 없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됐다. 아버님께서 그래도 아들을 보호할 의사는 있으신가 보군.”
자식들에게 애정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아비가 막내아들에게라도 애정이 있다면 차라리 다행이라 느끼는 건 자신들이 비뚤어졌기 때문일까.
‘어쩌면 그곳이 가장 안전한 장소일지도 모르지.’
청휘가 약혼을 거부한 건 장사에서 위험을 겪고 난 이후의 일이니 그 어린아이도 뭔가 느끼는 바가 있었던 걸지도 몰랐다.
“청휘가 혼인을 거부하는 동안은 이쪽도 딱히 손대서 일을 만들진 않도록. 물러가 보아라.”
“예.”
“하지만 대공자. 다른 방법이…….”
“물러나라 했다.”
순순히 사라지는 완영과 달리 다소 강경파인 주서는 마지막까지 물고 늘어졌지만 청원은 단호했다.
“형님은 오늘 일이 많아 피곤하시니 더는 귀찮게 하지 말게.”
“하지만, 구멍에 독사를 푸는 방법도 있습니다.”
“수로가 있다며. 괜히 실패해서 이상한 데서 독사가 나와 사고라도 나면 성가셔질 뿐이네. 자네도 청휘 말고 다른 일에 더 신경 쓰게.”
“……예.”
순순히 고개를 숙이면서도 주서의 눈빛은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놀랐을 이린을 위해서인지 남궁세가에서는 귀빈용 독채에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을 쌓아 주고 융숭하게 대접했다. 사실 별로 놀라지 않은 이린은 이현의 걱정 어린 시선을 의식하며 아이들과 빈둥거리며 놀아야 했다.
“그러고 보니 린매 계속 들고 다니는 가방에는 뭐가 들어 있어?”
생각보다 이린의 상태가 나쁘지 않은 것을 확인한 이현은 저녁 식사 자리에 참석해 주지 않겠냐는 정중한 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불려갔다. 이현의 얼굴을 보느라 종종 반쯤 넋을 놓고 있던 아이들은 이현이 사라진 덕분에 마음 편히 뒹굴뒹굴하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아, 너무 한참 안 꺼내 줬네.”
“?”
사린의 질문에 그제야 자신이 여기에 와서 아직 한 번도 가방을 열어 주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이린은 황급히 가방을 열려다 잠시 머뭇거렸다.
‘역시 좀 놀라겠지.’
그래도 앞으로 한동안은 계속 이 아이들과 있겠구나 싶어진 이린은 가방을 안고 주저하며 말을 꺼냈다.
“실은 가방 안에 내가 키우고 있는 동물이 있는데…….”
“어? 정말? 뭔데? 보고 싶어, 꺼내 봐.”
이린의 말에 아이들은 호기심에 눈을 반짝였다.
“그게, 뱀이거든.”
“……뱀?”
“뱀을 키우는 거야?”
보통 동물을 키운다고 하면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지 않을까 싶지만 너무 작은 가방이라 의문이었던 아이들은 뜻밖의 이름이 나오자 움찔 떨었다.
“응. 역시 뱀은 좀 무서우려나?”
“물어?”
“얘들은 안 물어.”
“나 뱀 한 번도 본 적 없어.”
뒤로 슬슬 거리를 두고 물러나는 남궁수연과 달리 진사린과 제갈수원이 두근거리는 얼굴로 가방 앞으로 다가왔다.
“집에 뱀 허물이랑 가죽은 많은데 실물을 보는 건 처음이야.”
“저기, 열어도 괜찮을까?”
“괘, 괜찮아.”
뒤쪽에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남궁수연과 앞에서 눈을 반짝이는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린이 조심스럽게 가방을 열었다.
“청아, 홍아. 나와도 괜찮아. 답답했지?”
끼이-
키이-
대답이라도 하듯 소리를 내며 가방에서 빠져나온 뱀 두 마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이린의 팔을 타고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