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Goddess RAW novel - Chapter 57
57.
“와아.”
“귀여워.”
길이는 이린의 팔보다 조금 길고 두께는 성인 여성 손가락 정도인 뱀들의 동글동글한 얼굴에 진사린과 제갈수원은 감탄하며 손을 뻗었다.
“비늘 색깔이 예뻐. 이런 종류의 뱀도 있구나.”
“뱀도 이런 소릴 내나?”
적극적으로 탐구 중인 두 사람과 달리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는 남궁수연을 보고 있으니 묘하게 아버지 연적훈이 떠올랐다.
‘무서워하는 쪽이 보통이겠지. 역시.’
그래도 눈도 안 마주치려고 하는 연적훈에 비해 남궁수연의 눈에는 호기심이 떠올라 있는 걸 보면 익숙해지면 괜찮을 것도 같았다.
“이건 무슨 뱀이야? 이렇게 얌전하고 예쁜 뱀이라면 돈 많은 귀족들은 키우고 싶어 할지도 몰라!”
“우와, 사린 누님 상인 정신.”
“무슨 소리야! 나는 엄연한 무인이라고.”
“어. 진 장주님의 의견은 좀 다르실걸요. 본인의 적성도 그렇고.”
제갈수원을 한 대 팰 기세인 사린을 달래며 이린은 먹이용으로 포장해 두었던 반건조 고기를 꺼내 두 사람에게 내밀었다.
“먹이 줘 볼래?”
“응!”
“네!”
낯선 사람은 무서운지 이린의 팔에 매달린 채로 청아와 홍아는 두 사람이 주는 고기를 넙죽넙죽 받아먹었다.
“오오. 신기해.”
“나도 이 뱀 한 마리만 얻을 수 없어?”
“나도 우연히 주운 거라서……. 게다가 키우는 데 좀 까다로운 아이라 힘들 거야. 응.”
부화 단계부터 범상치 않았는 데다 허물 벗을 때마다 고생했던 것을 떠올린 이린의 표정이 절로 초췌해졌는지 사린은 그 이상 조르지 않았다.
“청휘 형님도 같이 봤으면 좋았을 걸.”
제갈수원은 스스럼없이 자신이 주는 고기를 삼키고 있는 청아를 신기한 듯 관찰하며 중얼거렸다.
“걔가 뱀 좋아했어?”
“에헤헤. 예전에 제가 보고 싶다고 하니까 산에서 한 마리 잡아 줬거든요. 독사도 아니고 어린 뱀 같으니까 놓아주라고 해서 그대로 다시 풀어 줬지만.”
청휘의 이름에 괜히 깜짝 놀란 이린이 낯가림이 심한 홍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딴청을 부리는데 이린의 행동을 다르게 해석한 사린이 손뼉을 짝 치며 말했다.
“맞아, 린매는 청휘를 만난 적이 없지?”
“어? 응. 남궁세가 막내아들 남궁청휘를 말하는 거라면.”
사실 만난 적이야 있다. 만난 적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몇 년간 얼굴을 보고 지내기도 했고 몇 개월 동안 동굴에서 단둘이 생활하기도 했었다.
상대가 기억할 리가 없어서 그렇지.
“맞아, 그 남궁청휘. 모처럼 남궁세가까지 왔는데 얼굴은 보고 가야하지 않겠어? 남궁세가 공자들 얼굴들이 다들 준수한 편이지만 청휘도 꽤 잘생긴 편이거든. 그야 물론, 잘생긴 오라버니를 매일매일 보고 살았을 린매의 눈에 찰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살면서 한 번쯤은 봐 둘 만한 얼굴이야.”
“누님, 무슨 관광지 얘기하는 거 같아.”
옆에서 제갈수원이 딴지를 걸거나 말거나 사린은 개의치 않고 속삭였다.
“실은 청휘가 폐관수련하고 있다는 데가 어딘지 알 거 같거든. 나 거기 들어갈 수 있는 통로 알아.”
“네?”
“지금 남궁세가가 쓰고 있는 이 부지는 원래 우리 집 별장으로 쓰던 곳이야. 그전에는 다른 문파의 장원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그때 만든 수련장 건물들은 그대로 쓰고 있거든. 거기 지하수로 쪽에 만들어 놓은 수련장이 있어. 이 집에서 직계 도련님이 폐관수련씩이나 할 수 있는 곳은 거기 정도일 거야.”
사린의 추측에 조금 떨어진 곳에서 뱀들을 힐끔힐끔 보고 있던 남궁수연이 맞장구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사린 말이 맞을 거야. 나도 그런 말 들은 거 같아.”
“아니, 하지만 그렇게까지는…….”
이린이 당황해서 말리려 했지만 이미 머릿속에 계획을 착착 세우고 있던 사린은 이린의 말도 듣지 않았다.
“그 통로가 작긴 하지만 아직 어린 수원이나 린매 정도면 충분히 들어갈 거야!”
“저기요? 거기로 들어가 본 적은 없는 거지?”
추측성 짙은 말투에 이린이 딴지를 걸어 보았지만 이미 기세가 오른 아이들은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저 가 볼래요. 청휘 형님도 보고 싶고.”
“하긴 벌써 폐관수련 들어간 지도 꽤 됐으니 거기서 혼자 지내는 것도 좀 외롭겠다.”
제갈수원이 손을 번쩍 들자 남궁수연이 거들었다.
“거기 경비 도는 시간 정도는 알아낼 수 있을 거 같은데.”
“어차피 어른들은 오늘 밤 늦게까지 술판 벌이고 놀걸. 우린 우리들끼리 놀자.”
“…….”
어른들 몰래 장난칠 생각으로 반짝이는 아이들의 눈빛을 보며 이린은 말리는 것을 포기하기로 했다.
‘들켜 봤자 아이들이 한 짓이니 그리 큰 처벌은 받지 않겠지. 다들 가볍게 볼 수 없는 집안 자제들이고.’
애초에 한 명은 남궁청휘의 약혼녀고, 두 명은 친척이니 보고 싶어 하는 게 이상하지도 않았다.
‘그냥 얼굴 한번 보는 정도는 괜찮겠지.’
이린은 청아와 홍아가 들어 있던 가방을 끌어안으며 기대인지 불안인지 모를 이유로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진사린은 저돌적인 성격만큼 추진력이 뛰어난 아이였다.
남궁수연이 순찰 시간을 알아 오자마자 계획을 세워서 저녁 식사 후 바로 실행에 옮겼다.
“여기 맞지?”
“맞아요.”
사린과 수연이 속닥거리는 말을 따라 건물을 확인한 이린은 돌아갈 길을 기억하며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나이에 애들하고 이래도 괜찮은 걸까.’
액면가와 마찬가지인 어린아이였다면 분명 모험하는 기분에 두근두근하며 동참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알맹이가 아이가 아니라는 건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제갈수원은 어린아이답지 않게 냉정한 말투로 마지막까지 당부했다.
“길은 이제 아시겠죠? 걸리면 모두 다른 방향으로 도망치는 거예요.”
“알았어.”
“린매. 이쪽으로 와.”
남궁세가의 부지가 얼마나 넓은지 아직 이주가 완료되지 않았는데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안에서도 사린은 익숙하게 길을 찾고 있었다.
‘이래서 끼리끼리 결혼을 하나.’
연가장의 장원도 제법 넓지 않나 생각했는데 여기에 비하면 참 소박한 곳이었다. 그런데 여기가 별장이었다니 대체 진사린의 본가는 어떤 곳일지 이린도 상상도 가질 않았다.
“여기 아래로 지하수가 흐르는데 호수랑 연결되어 있거든. 그래서 홍수 때는 출입 금지.”
속닥거리며 아이들은 몰래 밤길을 걸었다. 사린의 말대로였다. 어른들은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시비에게 우리끼리 놀다 잘 거라고 어른들이 오시면 말씀 전해 달라며 방의 불을 끄고 나온 아이들은 거침이 없었다.
“여기, 이 통로야.”
“정말 작은데.”
넝쿨에 가려져 있는 작은 구멍을 본 이린이 난감한 표정을 짓는 것과 대조적으로 제갈수원은 사린이 준 야명주를 들고 거침없이 안으로 뛰어들었다.
“재밌겠다.”
“아, 안 돼. 혼자 가면.”
사린이 뒤따르려 했지만 열두 살인 사린에게는 너무 비좁은 통로였다. 체구가 비슷한 남궁수연이 불안한 듯 사림을 붙잡았다.
“넌 위험하니까 하지 마.”
“린매는 가능하지 않을까?”
두 사람의 시선이 제갈수원과 사린의 중간 정도 체구인 이린에게 모였지만 이린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본 적도 없는 사람인데 역시 내가 들어가는 건 이상하지 않겠어?”
“으음. 그것도 그렇지만. 수원이 이미 들어갔으니 괜찮을 거 같은데. 이 기회에 통성명도 좀 하고.”
“……누님, 나 좀 잡아 줘.”
“어?”
어느새 다시 나온 제갈수원이 손을 내밀고 있는 것을 본 사린과 수연은 한쪽씩 잡아서 끌어 올렸다. 작은 체구의 제갈수원이 구멍에서 쑥 빠져나왔다.
“누님~ 안에 수로가 가로막고 있어서 안쪽으론 들어갈 수 없잖아. 어두운데 물속에 들어갔다 빠지면 큰일 난다고.”
“아, 그랬나.”
실제로 들어가 본 적이 없다고 했으니 잘 모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기껏 여기까지 왔지만 위험한 일을 강행할 정도로 진사린은 무모한 성격이 아니었다.
“이제 돌아가자. 슬슬 경비 돌 시간도 된 거 같고…….”
사린이 돌아가자는 말을 꺼냈을 때였다. 이쪽으로 다가오는 누군가가 아이들의 기척을 발견한 듯 큰 소리로 외쳤다.
“거기 누구냐!”
“헉!! 흩어져!”
들켰다는 생각에 아이들은 처음 약속했던 대로 각기 다른 방향으로 뛰어갔지만 이린은 도망치는 척하다 슬쩍 근처에 있는 나무 위로 올라갔다.
“뭐야, 어린애들인가.”
“구멍이 있어서 장난이라도 치려고 했나 본데.”
“우리도 어서 볼일 보고 뜨자고. 자, 어서 들어갔다 와.”
사내들의 대화를 듣던 이린은 뭔가 이상해서 빤히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말하는 걸 보니 경비가 아닌데?’
사내들은 뭔가 들고 있는 어린아이 하나를 제갈수원이 들어갔다 나온 통로로 밀어 넣고 있었다. 그리고 덜덜 떨면서 들어간 아이는 잠시 후 후다닥 뛰쳐나왔다.
“시키신 대로 했어요. 이, 이러면 장로님께 오늘 일 잘 말씀드려 주시는 거죠?”
“그래. 이 일은 잊어버려라.”
전형적인 악당과 하수인의 대화를 들으며 이린은 어두운 가운데서도 수상쩍은 이들의 얼굴을 확인하려 애썼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얼굴 같은데.’
아까 이린에게 시비를 걸던 아이들 중 가장 체구가 작은 아이였다.
사내들은 역시 경비가 아니었는지 아이를 데리고 자신들이 왔던 길로 그대로 돌아갔다.
‘쫓고 싶긴 하지만……. 안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가 더 신경 쓰여.’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이린은 나무 위에서 내려와 아까 본 통로 쪽으로 다가갔다.
어설프지만 주변의 큰 돌로 통로를 막아 놓은 것이 보였다.
‘역시 들어가 볼까.’
여길 굳이 막아 놓은 것도 그렇고. 아무래도 신경이 쓰였다.
이린은 가방을 열어 검은색 천으로 감싼 야명주를 꺼냈다.
아이들과 노느라 지쳤는지 안에서 쉬고 있던 청아와 홍아도 이린의 팔을 타고 매달렸다.
“나한테서 떨어지면 안 된다?”
키이-
키이-
이린은 입술을 깨물고 가방 안에 있던 물건들을 품에 넣은 뒤 가방을 근처 나뭇가지 위에 적당히 던져 놓은 후 적당한 길이의 나뭇가지 하나를 검 대용으로 들고 안으로 들어섰다.
‘목검을 가져왔어도 들고 다니진 못했겠지.’
빈손인 것이 좀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린은 주변을 둘러보고 가볍게 심호흡을 한 후 구멍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생각보다 좁고 구불구불했지만 제갈수원이 금방 들어갔다 나왔던 만큼 그리 길지는 않았다. 뭐가 있을지 몰라 집중하며 내려가다 보니 조금 더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와, 진짜 수로가 있네.’
이 구멍의 원래 용도는 아무래도 배수로였던 게 아닐까. 안쪽은 어두웠지만 앞에 수로가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생각보다 제법 거리가 있는데. 확실히 헤엄쳐서 가는 건 무리고.’
남은 수단은 경공일까.
아직 수상비(水上飛)는 해 본 적이 없지만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잠시 생각에 잠겼던 이린은 자신의 짧은 팔다리를 한번 확인한 후 한숨을 내쉬었다.
‘변체역용술을 쓰자.’
사실 뼈에 무리 가는 것 말고도 우득우득거리는 감각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경공을 쓸 거면 역시 어린아이 몸보다는 나았다.
쉬익-
쉿-
그리고 이린이 몸을 풀고 있는 그 순간, 청아와 홍아의 것이 아닌 낯선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