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Goddess RAW novel - Chapter 61
61.
인사와 함께 마차에 오른 이린의 옆에 마찬가지로 지인들과 인사를 마친 이현이 뒤따라 마차 안으로 모습을 감추자 여기저기서 안타까운 한숨 소리가 터져 나왔다. 적어도 며칠 더 머무르실 줄 알았는데- 하는 아쉬운 속삭임들도 함께 들려왔다.
‘……설마 이 소리가 오빠 때문인 건가.’
남궁가주가 이린을 괴롭힌 아이들에게 무슨 벌을 내릴진 몰라도 그 아이들의 생활이 앞으로 썩 평탄치는 않을 것 같은 예감에 이린은 약간 기분이 좋아졌다.
“왜 그래? 무슨 좋은 일 있어?”
“아니, 오빠가 좋아서.”
우리 오빠, 얼굴이 무기구나.
“오빠도 린아가 좋아.”
화사하게 웃는 잘생긴 얼굴을 보니 마음이 훈훈해지는 것을 느끼며 이린은 청아와 홍아가 들어 있는 가방을 끌어안았다. 가방을 열어 아이들이 잘 있는 것을 확인한 이린은 가벼워진 가방의 무게를 느끼며 한숨을 내쉬었다.
‘언젠가 사린을 다시 만나게 되는 날에는 남궁청휘도 함께 만날지 모르겠네.’
그래도 얼굴 정도는 봐 둘 걸 그랬나, 살짝 후회하며 이현에게 머리를 기댔다.
“근데 우리 어디로 가? 이대로 집에 가?”
“모처럼 나왔으니 장사에 들러서 상단을 둘러보신대. 일정보다 빨리 나왔으니 시간도 남았겠다. 가서 린아 옷도 사고 맛있는 것도 먹고.”
“정말? 좋아! 그럼 마련야장의 대장간에도 가 볼 수 있겠네?”
윤휘 언니 소식도 들을 수 있을까?
그런 이린의 속내를 읽은 듯 이현이 먼저 말을 꺼냈다.
“또 윤휘 소식 물어보게?”
“응. 안 될까?”
“벌써 2년이나 됐는데 소식이 없다는 건 어디 멀리로 떠난 걸지도 모르니 너무 캐묻지 말렴. 사실 하북이나 감숙 정도만 돼도 여기선 꽤 머니까.”
“으응.”
당시에 집에 문제가 많은 것 같아 걱정이었는데 잘 지낼까. 또 위험한 일을 겪고 있지 않을까 내내 신경 쓰였다. 아무래도 홍아를 볼 때마다 생각이 안 날 수가 없다 보니 이린은 시무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키이-?
끼이-
어제부터 영 상태가 좋지 않은 이린의 속내를 알기라도 하는지 청아와 홍아는 이리저리 장난을 치며 애교를 부렸다.
그리고 애완동물의 애교에 조금 웃기 시작한 이린을 보는 이현의 속은 조금 복잡했다.
‘당시에 무슨 용무였는지 앞뒤 안 가리고 다급하게 장사로 올라오던 청운공자. 의문의 사내들로부터 목숨을 위협받아 여장하고 도망 다니던 남자아이. 검황의 부인인 제갈윤정의 사촌 자매인 제갈윤위 부부의 친척에, 어린 나이에 벌써 무공을 익힌 아이라.’
어제 술자리에서 얼핏 듣기로, 2년 전 진행되던 남궁청휘와 진사린의 약혼 얘기가 계속 보류 중이라고 했다. 다들 대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누군가에게 목숨을 위협받은 막내공자가 약혼을 거부해서 지금 폐관수련 중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윤휘가 남자아이라서 내가 너무 예민하게 생각하는 거였으면 좋겠는데.’
마침 이름도 하필 ‘윤휘’라서 찜찜했다. 제갈윤위와 제갈윤정, 남궁청휘의 이름에서 적당히 섞은 이름 같고.
‘만약 내 추측이 사실이라면 윤휘와 연락이 안 되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데.’
이번에 제갈윤위를 만나서 확인해 보는 방법도 있었지만 역시 말해 줄 것 같진 않았다.
그렇다고 이린이에게 말해 주기에는 너무 끼워 맞추기 추측 같고.
윤휘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게 아닐까 걱정하는 이린을 보는 이현의 마음도 편치는 않았다.
“그런데 오빠.”
“응? 왜?”
살짝 석연치 않은 생각을 하던 이현은 동생의 부름에 태연한 척 고개를 돌렸다.
“청아랑 홍아 말인데.”
끼?
끼이?
자신들의 이름이 나오자 고개를 드는 뱀들의 배를 살살 쓰다듬으며 이린이 심각한 얼굴로 진지하게 말했다.
“얘네 좀 살찐 거 같지 않아?”
“…….”
어제도 생각했는데 손에 잡히는 감각이 묘하게 포동포동했다.
“뱀도 살이…… 찌나?”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유독 배가 튀어나온 거 같고. 먹을 건 계속 달라고 조르는데.”
끼이-!!
끼이이이!!
이린의 말에 반박이라도 하듯 손에 감겨 있던 뱀들이 빽빽 소리를 지르고 꼬리를 찰싹찰싹 흔들며 이린의 팔을 때렸다.
이린의 말대로 살이 찐 뱀들의 꼬리는 제법 중량감이 있어 보였다. 이현은 뱀들의 꼬리를 붙잡고 그 뱃살(?)을 쳐다보았다.
“내가 너무 가방에 넣어 다닌 게 아닌가 싶어서.”
“확실히…… 특히 요 며칠은 마차 타고 다니느라 기껏해야 마차 안에서 돌아다니는 정도였고.”
“청아야. 홍아야. 너희 좀 운동 부족이 아닐까?”
끼이이…….
“게다가 너희 그동안 만날 사람이 주는 고기만 받아먹었는데. 이래서야 나중에 야생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어제 청아, 홍아가 먹으려고 했던 독사는 이린이 거의 숨통을 끊어 놓은 사냥감이었으니 직접 사냥해서 먹은 건 아니었다.
끼이-
끼이이-
뭐라고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뭔가 항의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 동생의 애완동물들을 보며 이현은 작은 의문을 제기했다
“청아랑 홍아는 이미 애완 뱀인데 야생 생활이 가능할까?”
“하지만 얘네 평범한 뱀도 아니니 엄청 오래 살 텐데? 우리 집에서 대대손손 고기를 갖다 바쳐야 하다니 민폐잖아.”
“으음.”
본인이 결혼 안 하고 아빠랑 오빠랑 살겠다고 한 이상 묘한 사고의 흐름으로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이린은 진지하게 고민에 들어갔다.
‘우리 장원의 수호 영물 같은 걸로 삼을까.’
생각해 보면 영물을 이렇게 애완동물로 키우는 게 괜찮은 걸까.
나름 심각하던 오누이의 고민은 전문가의 한 마디로 종결됐다.
“그냥 대충 키워.”
“넹.”
“영물들은 원래 좀 튼튼하거든. 게다가 이러니저러니 해도 잘 키우고 있구먼, 뭘.”
이린이 꺼낸 청아와 홍아를 살피며 제갈윤위는 피식 웃었다. 영양 상태도 좋고 비늘도 윤기가 난다. 어떻게 보면 너무 애지중지 키우는 게 아닌가 싶겠지만.
“얘네 아직 어려서 할 줄 아는 게 없을지 몰라도 명색이 영물이니 좀 크면 뭐 좀 쓸모 있지 않겠어? 몸을 안 움직이면 일이라도 시켜.”
“아.”
생각해 보니 하나는 불을 쏘고 다른 하나는 얼음도 얼리는데 꽤 능력 있는 거 아닌가……?
“먹는 만큼 노동을 해야지, 노동. 연가장이 워낙 부잣집이라 뭐 필요 없어서 그렇지, 활용하려고 하면 활용 방법이 있지 않겠어?”
끼이-!
끼이이이-!
제갈윤위의 손에 잡힌 뱀들은 뭐가 그리 무서운지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이린이 손을 뻗어 받자 서둘러 이린에게로 돌아온 뱀들은 빽빽거리며 익숙한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러네요. 안 그래도 얘네 허물 벗을 때마다 아주 난리도 아닌데. 아, 마침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요.”
“뭔데?”
“홍아가 가끔 불을 뿜는데, 혹시 대장간에서도 쓸 수 있는 화력인가 싶어서요.”
“오, 확인해 보자.”
그렇게 눈을 반짝이며 사라지는 두 사람을 이현과 진명현이 따스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린아가 요즘 조금 기운이 없어 걱정했는데 마련야장님과 함께 있으니 기운이 넘치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저는 다시 아버지께 돌아가 봐야 하니 린아를 잘 부탁드립니다.”
“소장주는 참으로 좋은 오라버니 같습니다.”
“하하. 노력하고 있답니다. 그러고 보니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만.”
“말씀하시지요.”
“예전에 이린이 만난 진윤휘란 아이는 실제로 존재하는 여자아이입니까?”
“……글쎄요.”
덤덤한 얼굴의 진명현은 그저 제갈윤위의 뒤를 따를 뿐이었다.
“소장주께서 짚이는 곳이 있다면 그게 답일지도 모릅니다.”
속을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부인의 뒤를 따르는 명현의 모습에, 이현도 별수 없이 발길을 돌렸다. 지금은 일단 이린이 기운을 차려 주기만 하면 그걸로 족했다.
“홍아 한번 해 볼래?”
끼이-
화덕 위에 올라앉은 홍아가 이린의 얼굴을 한 번 쳐다보고 이린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더니 시키는 대로 힘껏 불을 뿜었다.
화르르-!!
“오, 화력이 제법인데? 이거 제법 쓸모 있을지도?”
“다른 것도 시험해 볼까요?”
홍아의 능력이 다른 일에 쓸모 있다는 사실에 들뜬 이린은 대장간의 열기에 몸서리치던 청아가 혼자 대장간 밖으로 나간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대장간의 열기가 질색인 청아는 혼자 꾸물꾸물 빠져나가 시원한 곳을 찾았다. 마침 나무 그늘 아래가 서늘해서 청아는 그곳에서 똬리를 틀었다.
끼이-
최근의 이린은 영 기운이 없었다.
안 그래도 홍아가 알에서 깬 이후로 늘 사고만 치는 홍아한테 신경을 쓰느라 청아를 잘 챙겨 주지도 않았다.
그래도 참았는데, 얼마 전에는 심지어 살이 쪘다는 소리까지 하고.
거기다 오늘은 청아는 신경도 쓰지 않고, 뜨거운 열기가 가득한 대장간에서 홍아만 칭찬해 주고.
끼이이-
심통이 나서 이리저리 기웃거리던 청아는 마침 건어물이 잔뜩 들어 있는 상자를 발견하고 그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늘 밑에 있어 시원한 데다 먹을 것까지 있다니 최적의 장소였다.
키이-
건어물을 삼키던 청아는 문득 이러다 이린에게 들키면 혼나지 않을까 싶어 잠시 고민하다, 이내 상자 안으로 깊이 파고들었다. 덕분에 상자 앞을 지나던 일꾼들은 청아를 발견하지 못했다.
“여기 물건 이제 옮기면 됩니까?”
“어, 장부 확인 끝났으니까 그대로 상자 뚜껑 닫고 옮기게.”
탁-
상자 뚜껑이 닫힌 것을 깨닫지 못한 청아는 그대로 그 안에서 잠이 들었다. 언제나 이린이 매고 다니는 깜깜한 가방 안에서 잠드는 것이 익숙했기에 상자가 흔들리는 것도 그다지 거슬리지 않았다.
쿵-
“출발하겠습니다.”
“어어, 수고하게.”
그렇게 청아는 흔적도 남기지 않고 연가상단을 빠져나갔다. 본의 아니게.
“꺄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