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Goddess RAW novel - Chapter 62
62.
쿵-
“뭐야? 왜 그래?”
“배, 뱀이 있어요!!!”
모처럼 잔뜩 먹고 달게 자던 청아를 깨운 것은 찢어지는 듯한 비명과 이어진 둔탁한 충격이었다.
끼이-?
“으힉! 뱀, 뱀이다!”
“독 있는 거 아녀?”
언제나 자신에게 호의적인 사람들을 주로 봤던 청아였지만 저렇게 무서워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청아는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들이 지금껏 이린과 함께 있을 때 본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주, 죽여야 해!”
“카, 칼! 아니, 삽이든 뭐든 가져와!!”
끼이-
잘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분위기가 좋지 않았기에 청아는 상자를 빠져나와 도망쳤다.
“잡아-!”
좁은 길로 들어가면 누구도 청아를 잡을 수 없었다. 이린에게 혼날 때면 침상 밑이나 장식장 사이로 파고들곤 했던 청아는 그때의 경험을 살려 꾸물거리며 탈주했다.
청아의 본의 아닌 첫 가출이었다.
끼이-
그렇게 탈주한 청아는 가능한 사람들이 잘 오지 않는 곳, 시원한 곳을 찾아 움직였다.
본능적으로 작은 시냇물을 찾아 몸을 적신 청아는 뭐가 뭔지 혼란스러웠지만 늘 자신을 보살펴 주던 이린의 손길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고 큰 충격을 받았다.
끼이이-
끼이이-
길을 잃은 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장원에서도 비천산 동굴에서도 가끔 이린과 떨어져 혼자가 되어 울고 있으면 이린이 청아의 소리를 듣고 찾으러 오곤 했다.
하지만 아무리 울어 봐도 이린은 찾으러 오지 않았다.
결국 지친 청아가 시무룩해져서 고개를 숙이는 그때, 누군가가 청아에게 접근했다.
키이-!
그리고 경계하며 고개를 돌린 청아는 순간 멈칫했다.
“아, 배미다.”
이린보다 어려 보이는 허름한 차림의 작은 아이가 청아를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순간 자신과 자주 놀아 주던 서문민영이 떠올랐지만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청아는 긴장하고 아이와 대치했다.
끼이-!
[사람을 함부로 공격하면 안 돼! 특히 어린아이는, 알았지?]이린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말을 떠올린 청아가 망설이는 동안, 아이는 청아의 몸통을 잡고 즐거운 듯 흔들었다.
끼이이-
“와, 이뻐! 이뻐!”
“오월아. 너 또 뭐 잡았어? 이상한 거 주워 오면 큰언니한테 혼난다?”
“언니, 이거 바! 배미야, 이쁜 배미.”
“뭐라는……. 히익!!”
잠시 한눈판 사이 딴 데로 빠진 동생을 찾으러 온 아이는 어린 동생의 손에 들린 길쭉한 뱀을 보고 기겁을 했다.
“아, 어, 언니! 큰언니!!”
“뭐야, 왜 그래?”
“오월이가 뱀을 들고 있어요!”
“뭐?”
웅성거리는 아이들 무리에서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소녀가 비명을 지르는 아이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곤 아이의 손에 들린 청아를 보고 마찬가지로 안색이 하얗게 질려 다른 아이들을 뒤로 물렸다.
“너희들은 물러나 있어. 오월아, 그, 그 뱀을 가만……. 아니, 차라리 그대로 막 흔들어! 정신없게!”
“어? 왜? 왜?”
하지만 아이들이란 가만히 있으라고 하면 움직이고, 움직이라고 하면 멈추는 생물이었다. 움직이라고 하자 갑자기 쩡 굳어 버린 아이를 지켜보던 아이들만 속을 태울 뿐이었다.
“가, 가만히 있어!”
애가 말을 듣지 않고 멈추자 포기한 소녀는 막대기를 들고 다가갔다. 혹시라도 아이가 물릴까 뱀의 머리 부분에 조심스레 막대기를 가져다 댔다.
끼이?
하지만 자신을 건드리는 막대기를 보며, 뱀은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뭐, 뭐지. 이건?”
끼이이-
뱀이 쉿쉿거리는 소리 외에 다른 소릴 낼 수 있는 거였나? 몇 번인가 뱀을 본 적이 있는 아이들이 당황하는 사이 청아는 소녀가 내민 막대기 위로 옮겨 갔다. 아이에게 잡혀 흔들리다 보니 확실히 어지러웠다.
“일단 머리가 삼각형이 아닌 걸 보면 독사가 아닐지도 모르겠는데……. 아니, 하지만 머리가 둥글어도 독사일 수도…….”
청아가 막대기를 통해 자신에게 다가오자 그대로 나무 막대기를 내팽개친 아이는 바닥에 떨어진 청아의 머리를 힘껏 잡았다.
키이이-
“자, 잡았다.”
“역시 언니, 대단해……!!”
“오월이 뱀한테 물렸나 잘 봐봐.”
“안 물렸어, 안 물렸어. 물렸으면 아프다고 난리 난리 피우며 울었을걸.”
숨죽이고 지켜보던 아이들이 존경의 눈빛을 보내는 것을 보며 소녀, 마선은 우선 아이의 안부를 살폈다. 그리고 걱정이 무색하게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멀쩡하게 걸어 다니는 아이를 보며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딴 짓 하지 말고, 얼른 돌아가자.”
“응.”
아이들을 이끌고 가면서 마선은 손에 들린 뱀을 보며 고뇌했다.
“그나저나 이거 어쩌지?”
“가향루 장 대인에게 갖다 팔면 좋아하지 않을까? 전부터 좋아했잖아.”
“야, 가향루 주루 뱀 공포증 걸린 거 모르냐? 벌써 2년이나 됐는데. 하여간 멍청하긴.”
“씨X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 아저씬 만날 뱀 잡아먹더니 언제 돌변했대? 어쩐지 근방에 뱀이 잘 보이더라니 그 아저씨가 안 팔아 줘서 땅꾼들이 안 잡고 있나 보구먼?”
아이들이 저들끼리 웅성거리고 있었지만 정작 뱀을 잡은 마선은 묘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끼이이-
‘뭐야, 왜 이렇게 불쌍해 보여.’
뱀이 감정을 느낀다는 말은 못 들어 왔는데 지금 손에 잡혀 있는 뱀은 마치 예전에 산에서 잡은 아기 토끼처럼 애처로운 눈빛으로 마선을 쳐다보고 있었다.
“언니, 얘 불쌍해.”
그리고 그렇게 느끼는 게 마선만은 아니었는지 뱀 주변에 모여든 아이들이 불쌍해 보인다며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위험하니까, 얼굴 가까이로 오지 마.”
실수로 손에 힘이라도 빠져 공격하면 큰일이었다.
“그나저나 장 대인에게 팔면 딱 좋은데 아쉽게 됐네.”
뱀 좋아하기로 유명하던 가향루 루주 장 대인이 뱀을 딱 끊은 건, 마선이 장 대인에게 가져다준 그 가방의 주인을 만난 그날 이후부터였다.
물론 그날 가향루에 큰 불도 났으니 꼭 그 어린 소녀와 관련되었으리란 법은 없지만 어쨌든 마선은 그날 일이 좀 신경 쓰였다. 장 대인이 정신이 없어 자신에게 뭔가 추궁하는 일은 없었지만 어쨌든 장 대인의 범죄 사실을 발설한 셈이었으니……. 설령 장 대인이 아직 뱀을 수집하고 있다고는 해도 뱀을 가져다 파는 시도를 해 보기엔 좀 찔리는 구석이 있었다.
“……생긴 게 제법 고급스럽게 생겼는데, 가죽은 벗겨서 팔고 고기는 먹을까?”
끼이이-
마치 말을 알아듣는 듯 하얀 뱀은 버둥대며 불쌍한 소리를 냈다.
“어떡해, 불쌍해.”
“언니, 우리 얘 놔주면 안 돼?”
“안 돼. 놔줬다 공격하면 어떡해.”
잠시 마음이 약해졌지만 자신은 이 아이들을 책임지는 맏언니였다. 무슨 사고라도 나서 아이들에게 큰일이라도 생겼다간 그때는 돌이킬 수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작은데…….”
“일단 돌아가서 생각하자.”
“응!”
애처로운 눈빛 덕분에 목숨을 건진 청아는 아이들의 거처에서 잡아 놓은 동물을 모아 놓는 나무통 속에 갇혔다.
끼이이- 끼이이-
“어쩌지, 계속 우는데.”
“아니, 무슨 어미 잃은 강아지도 아니고 뱀이 저런 소리를 내.”
배운 건 없어도 아는 게 없는 건 아닌 마선은 저 요상한 하얀 뱀이 보통 뱀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래서 어쩔 거야.’
어디 높으신 분에게 물어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오문 소속인 소매치기를 통해서 뭔가 좀 알아볼까? 하지만 하오문이라고 딱히 견문이 넓은 건 아니고 정말 뭔가 가치 있는 뱀이라면 그냥 뺏길 뿐이겠지.’
마선이 고민하거나 말거나 거처로 모인 아이들에게 뱀은 신선한 오락거리였다.
“누님, 이거 그냥 먹자.”
“독 있으면 어쩌게?”
“일단 삶아 보면 되지 않을까?”
마침 오늘의 수확물로 어찌어찌 먹을 것을 구해 온 덕분에 죽이라도 끓여 먹자고 더운 날씨에 물을 펄펄 끓이고 있던 아이들은 좀 더 두고 보자와 일단 먹고 보자로 나뉘어 신경전을 벌이는 중이었다.
‘그래. 애들이 한동안 고기를 못 먹긴 했어.’
한창 성장기의 아이들에게는 비린 음식이 필요했다. 마침 먹을 수 있는 동물이 있고, 물도 끓고 있고. 마선은 결단을 내렸다. 좀 작아서 먹을 것도 없어 보이긴 하지만 고깃국물이라도 좀 먹어야지.
“그래, 일단 한번 삶자.”
“으앙, 안 대. 언니!”
“야, 빨리 가져와!”
아이들은 나무통을 가져와 그대로 뒤집어 뱀이 물속에 빠지도록 뚜껑을 열고 흔들었다.
“……어?”
“어어어…….”
“와아…….”
그리고 고기 삶는 냄새를 기대했던 아이들은 상상도 못한 광경에 하나같이 입을 벌리고 넋을 잃었다.
키이이-
방금 전까지 끓고 있던 물은 흔적도 없이, 냄비채로 꽁꽁 얼어 시원한 냉기를 뿜고 있었다.
“으앙! 주그면 안 대! 안 주겄지?!”
아직 어려서 상황 파악이 안 되는 오월이만이 통을 치우고 뱀을 찾았다.
키이-
얼음 위에서 시원하다는 듯 꼬리를 살랑이던 뱀은 자길 계속 구하려 했던 오월이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고 품에 안겨 애교를 부렸다.
이 모습을 보던 마선은 두 눈을 의심하며 감탄했다.
“와. 이거, 보통 물건이 아니네?”
“저기 큰누님. 그럼 이제 어떡하죠?”
“어떡하긴 뭘 어떡해! 야, 너희는 가서 각진 나무통을 좀 빌려 오고, 너희는 물을 떠 와!”
“네??”
“나무통은 왜요?”
“물은 또 왜요? 다시 삶아 보게요?”
마선은 얼빠진 질문을 하는 아이들을 한심한 듯 바라보며 혀를 찼다.
“됐으니까 시키는 대로 해!”
“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