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Goddess RAW novel - Chapter 65
65.
“저기. 무슨 일이 있었나요?”
“아아. 아가씨가 키우던 뱀을 이 근방에서 잃어버렸거든.”
“뱀……이요?”
“그래. 조금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아가씨가 아끼는 아이란다. 흰 비늘에 푸른 광택이 도는 작은 뱀인데 너희들도 혹시 뭔가 알게 되면 말해 주렴. 사람을 공격하거나 하지는 않으니까……. 이런, 나도 가 봐야겠구나.”
서둘러 달려가는 이린과 이현을 보며, 진명현 역시 서둘러 달려가느라 뱀이라는 말에 안색이 달라진 아이들을 알아채지 못했다.
* * *
“이 방향으로 갔다면 시냇가잖아? 여기서 물길을 따라 떠내려갔으면 어쩌지…….”
“청아는 보통 뱀이 아니잖니. 어쩌면 아직 이 근방에 있을지도 몰라.”
냇가 근처는 잡초와 돌멩이가 많아 청아 정도의 작은 뱀이라면 숨기도 좋아 보였다.
“아직 이 근방에 숨어 있을지도 모르니까 나눠서 찾아보죠.”
“사람을 풀어서 찾는 게 좋지 않을까?”
“청아가 낯선 사람을 별로 안 좋아해서 오히려 더 멀리로 도망갈지도 몰라요. 어린아이면 몰라도…….”
장원에서도 자주 돌봐 주는 자영이나 민영 외의 어린아이들에게는 처음 볼지라도 가끔 장난을 거는 청아였지만 본 적 없는 장원의 무사들이 보이면 이린의 품속으로 숨는 편이었다.
연적훈은 뱀을 무서워하는 게 티가 나서인지 오히려 좀 깐족대는 편이지만.
“제가 상류 쪽으로 가 볼 테니 소장주와 아가씨는 하류로 내려가 보는 게 좋겠습니다.”
“부탁드려요.”
명현이 청아를 찾으며 상류로 올라가고 이린과 이현 역시 하류로 내려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청아를 불렀다.
“청아야!”
“청아~ 어디 있니!”
유속도 빠르지 않으니 물살에 휩쓸려 가진 않았겠지만 그렇다면 어디로 갔을까. 이현과 이린은 한참 내려간 끝에 지류와 만나 잠시 발을 멈췄다. 한쪽은 조금 으쓱한 숲으로 이어지고 다른 한쪽은 번화가로 흘렀다.
“여기서 갈라지는데 어쩌지?”
“저쪽이 번화가니 린아가 저쪽으로 가 보렴. 오빠가 이쪽으로 가 볼게. 호위도 붙어 있으니 괜찮겠지? 위험한 데로 가면 안 된다.”
“응. 알았어. 걱정하지 마.”
두 사람에게 붙어 있는 호위들도 다들 나름 눈에 띄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었지만 빤히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호위들도 당연히 두 무리로 갈라져 이현에게 2명, 이린에게 3명이 붙어 뒤를 따랐다. 청아가 무서워 도망갈까 봐 멀리서 주변만 감시하고 있으려니 그들도 편하진 않았다.
“청아야!”
비교적 얕은 시내였기에 이린이 물에 빠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호위들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이린을 호위했다. 덕분에 이린이 주위를 신경 쓰지 않고 청아를 찾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던 그때였다.
“아, 저기!”
멀리서 물살을 따라 움직이는 가늘고 흰 그림자를 발견한 이린이 뛰쳐나갔고 이린의 주위를 지키던 무사들은 순식간에 사라지는 이린을 따르지 못했다.
“청아!”
경사가 급해지며 물살이 빨라지는 구간이었기에 순식간에 사라지는 흰 그림자를 따라 달리던 이린은 다시 물살이 잔잔해진 것을 확인하고 안도했다. 그러나 아까 본 흰 그림자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청아가 물살에 휩쓸린 거라면 지금 눈에 보였어야 했다.
“없어…….”
잘못 본 걸까. 어디에도 청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문득 뒤를 돌아본 이린은 자신이 호위들을 두고 뛰쳐나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줄기를 따라 그대로 내려왔으니 금방 뒤따라오겠지만 다들 기겁하고 있을 걸 생각하니 좀 미안해졌다.
‘기다려야지.’
생각 없이 경공을 썼으니 아마 따라오려면 제법 시간이 걸릴 듯했다. 주변을 살피던 이린은 터덜터덜 걸어가 마침 옆에 보이는 바위 위에 오도카니 앉아 혹시라도 청아가 근처에 있지 않을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대로 못 찾으면 어쩌지.’
영약을 안 먹었대도 영물답게 타고나길 튼튼하긴 했지만 워낙에 집 안에서 곱게 키워 어리바리한 아이였다. 그런 애가 능력까지 범상치 않으니 신기하다고 어디 잡혀갔을지도 몰랐다.
이런 식으로 잃어버리게 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는데.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 어떡하지…….”
울적하게 중얼거리던 이린은 순간 누군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주위를 살폈다. 생각해 보면 이 근처는 아직 중심가라 사람이 적지 않으니 면사로 칭칭 감아 놓은 이린은 당연히 눈에 띌 터였다.
“괜찮아요?”
부드러운 여인의 목소리에 이린은 그제야 여인의 존재를 알았다는 듯 고개를 들었다.
“아…….”
“?”
말을 걸어온 상대 역시 이린과 마찬가지로 죽립에 걸린 면사로 상반신 전체를 가리다시피한 여인이었다.
‘순간 윤휘 언니인가 했네.’
면사 너머로 보기에도 윤휘보다는 연상으로 추정되는 여인이었다. 아무래도 이런 곳에 혼자 앉아 있는 어린아이가 신경 쓰였던 모양이었다.
“혹시 어디 몸이라도 불편한가요?”
“아, 아니 괜찮아요.”
“목소리만 들어도 지쳐 보여요. 급한 일이 아니라면 조금 쉬는 게 어때요? 이것도 인연이니 제가 차를 대접할게요.”
“아니 저기. 일행을 기다리고 있거든요.”
이린의 거절에 여인은 자신의 뒤를 따라온,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조금 나이 들어 보이는 사내를 힐끗 보며 말했다. 연적훈과 비슷하거나 조금 더 연상일까? 연적훈이 조금 동안이라, 아니 무공을 익히는 사람들은 대체로 본래 나이보다 젊어 보이니 겉모습만으로 나이를 추측하는 것은 어려웠다.
이린과 여인의 시선을 받은 사내는 뭔가 커다란 망태기 같은 것을 메고 못마땅해 보이는 표정으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일행분에게는 저기 있는 손 아저씨가 기다렸다 말을 전해 주도록 일러두지요. 실은 같이 오기로 한 벗들이 사정이 생겨 혼자가 된 참이었거든요. 저 아저씨는 재미도 없고. 조금 말 상대를 해 주시지 않겠어요? 혼자 마시는 차는 맛이 없답니다.”
낯선 사람이 맛있는 거 사 준다고 따라가면 안 된다?
언젠가 들었던 이현의 말이 갑자기 이린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걱정 가득한 목소리의 여인이 가리키는 곳은 하천을 내려다볼 수 있게 지어진 제법 규모 있는 다루(茶樓)로, 연가상단의 소유였다.
‘저기 주인이 나는 몰라도 오빠는 알겠지.’
예전에 이현에게 받았던 옥패가 아직 품 안에 있는 것을 떠올리며 이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조금 지쳐 있기도 했고.
아무래도 자신이 청아를 찾는 데 정신이 팔려서 너무 멀리 내려온 모양이었다. 자신의 경공이 평범하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이린은 반성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경계를 풀지 않고 여인과 함께 다점에 들어간 이린은 옥패를 내밀고 가장 눈에 잘 띄는 창가에 먼저 자리 잡고 앉았다.
“어, 어서 오십시오. 아가씨!”
“안녕하세요. 갑자기 찾아와서 죄송해요.”
“아이고, 아닙니다요. 오랜만에 장사에 오셨다는 소식은 저희도 들었습니다. 마침 좋은 찻잎이 들어왔는데 어떠십니까.”
옥패에 대해 들은 다점의 주인이 곧 후다닥 내려와 이린에게 인사를 건네며 직접 주문을 받았기에 다점에 있던 이들의 시선은 자연히 면사의 여인과 이린에게 집중되었다.
이린은 주인이 권해 주는 찻잎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맞은편에 앉은 여인에게 말했다.
“모처럼 권해 주셨지만 차는 제가 살게요. 어떤 차를 좋아하세요?”
“어머, 내가 뜻밖에 횡재를 했네요. 모처럼이니 점주가 직접 권해 주는 차를 마셔 봐도 될까요?”
“좋아요.”
살풋 웃는 모습을 보면 어딘가의 규수 같기도 하고 중심 잡힌 걸음걸이나 호흡을 보면 무공을 익힌 사람 같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에게 너무나 친근하게 대하는 태도 때문에 이린은 어딘지 얼떨떨했다.
‘뭐지. 이 사람도 실은 나를 아는 사람인가.’
다점의 주인이 직접 나와 인사를 하는 걸 보고도 그다지 놀라는 기색이 없는 걸 보면 제갈윤위처럼 이린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아버지 연적훈이 군자검이라는 별호대로 별로 원한을 사고 다닌 편은 아니라고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옳은 일을 하며 산다고 해도 원한을 사지 않는 강호인이 과연 얼마나 될까? 옳은 일을 하면 하는 대로 원한은 쌓이게 되어 있었다.
늘 면사를 쓰고 다니는 이린이 할 말은 아니지만 애초에 무공을 익힌 사람들 중에 저렇게 철저하게 면사로 가리고 다니는 사람은 워낙에 드물어서 더 의심이 갔다.
“향이 참 좋네요.”
주문한 차가 나오자 여인은 차를 마시기 위해 면사를 살짝 걷었다. 이린은 상대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던 터라 창밖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흔들린 면사 사이로, 여인의 얼굴이 슬쩍 드러나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
붉은 눈에 새하얀 머리카락과 속눈썹. 피부조차 희고 투명해서 눈밭에 있는 흰 토끼를 보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지금껏 살면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독특한 용모에 이린은 그저 눈을 깜빡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