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Goddess RAW novel - Chapter 72
72.
“아가씨는 상단 일에 욕심이 있으신 겁니까?”
“아니요. 하지만 상단에도, 장원에도 조금은 약삭빠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싶어서요.”
“그건…… 저도 동감입니다만 그래도 사람을 주워 오는 건 위험 요소가 너무 크지 않습니까.”
평소 느끼는 바가 있었는지 바로 동의를 표한 지부장은 지극히 당연한 위험 요소에 대해 지적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이린이 가장 반박하기 어려운 말을 꺼냈으니까.
“아빠가 그러시더라고요. 눈에 들어온 걸 어쩌겠냐고.”
“…….”
한 명 정도는 좀 다르지 않을까 기대한 자신이 나빴다.
‘성격은 많이 달라 보였는데 이상한 데서 결국 비슷한 결론을 내려 버리니.’
결국 지부장은 출처 불명인 이린의 정보만 받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연가장 식구들의 저런 면이 싫지는 않았으니까.
“신원 불명인 애들이라 불안하실지 모르겠지만 잘 부탁드려요.”
“그건 뭐, 저도 주워진 몸이니 뭐라고 할 처지도 아니니 괜찮습니다.”
“네?”
뜻밖의 충격 고백에 이린이 눈을 동그랗게 뜨는 것을 본 지부장은 허허 웃으며 이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제가 연씨 성을 쓰는 것도 그래섭니다. 고아라 성이 없었거든요.”
“아. 그냥 우연인 줄 알았어요.”
“하하. 덕분에 연씨 집안사람들에게 사람 보는 눈이 있다고 하는 이들도 있었죠. 실제로 어떤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지부장의 살짝 포기한 거 같기도 한 묘하게 따뜻한 눈빛을 받으며 이린은 어색하게 웃었다.
‘지부장 아저씨, 아빠보다 나이 좀 많아 보이는데 선대 연가장주가 주워 온 걸까나. 나한테는 할아버지 할머니? 오빠도 조부모님에 대한 기억이 잘 없다고 들은 거 같은데.’
“그러니 너무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그런 아이들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는 잘 아니까요.”
싱긋 웃는 아저씨의 얼굴에서 어쩐지 한기가 느껴지는 것 같다면 착각일까.
“아직 어린 애들이니까 살살 부탁드려요.”
“이를 말씀이십니까.”
연사훈은 이린에게 손을 내밀었다. 처음에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하는 아가씨인가 했는데 놀랍게도 이린이 한 말들 중 몇 가지는 차근차근 사실로 드러나고 있었다.
어디서 알게 된 정보냐고 물어도 대답해 주지 않았지만 이린이 상단에 피해를 입힐 리가 없다는 건 분명했다.
이린의 작은 손을 잡고 악수를 나누며 연사훈은 자신이 기억하는 누군가와 어딘지 닮아 보이는 저 꼬마 아가씨가 앞으로 자라면 대체 무슨 일을 벌일지 살짝 기대됐다.
덕분에, 오래전 자신을 거둬 준 그 손의 주인을 오랜만에 떠올릴 수 있었다.
[나를 왜 거뒀어요?] [눈에 들어온 걸 어쩌겠니. 불만이면, 그 이유는 네가 만들어 보든가.]정말이지 핏줄이란 무서웠다.
하오문의 장사 분타주인 장소는 최근 심기가 불편했다.
“허, 이렇게 조직원 관리가 안 되다니, 내가 그렇게 우습나??!!”
“송구합니다.”
그날 뱀에 대해 찾던 중 연가상단에서 정식으로 들어온 요청에 쾌재를 외쳤던 장소였다.
그런데 정작 연가상단에서 요청한 정보가 자신에게 전해지기도 전에 제 사리사욕을 채우려던 놈들이 있었다. 그놈들이 그 정보로 아이들에게서 돈을 뺏으려다 연가상단의 무사들에게 들켰으니 장사 분타를 맡고 있는 입장에서는 크게 체면을 구긴 셈이었다.
“그놈들은 하오문과 연을 끊도록 하오문 산하의 모든 곳에 전해라. 분타주의 말을 무시한 것도 모자라 어디 부잣집 도둑질한 것도 아니고, 어린애들 코 묻은 돈 갈취하려다 걸려? 허!”
덕분에 울분에 차서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하는 것을 반복하고 있는 분타주 덕분에 부하들은 죽을 맛이었다.
그리고 그런 부하들을 가엾게 여긴 것인지 뜻밖에 구원의 손길이 내려왔다.
“루주!!”
“무슨 일이냐!”
안 그래도 심기가 불편한지라 소리 지르며 달려오는 부하에게 성질을 부리려던 장소는 부하의 손에 들려 있는 서찰을 빼앗듯이 가져갔다.
“뭔데 그……. 헉!”
서찰에 찍혀 있는 희미한 비늘 자국에 표정이 굳은 장소는 측근들만 남긴 후 서신을 열었다. 하오문과 개방에서 은밀히 사문(蛇文)이라 불리는 그것이 틀림없었다.
“가을, 감숙성(甘肃省) 신원문(新元門).”
영문을 알 수 없는 갑작스런 사고나 습격에 대해 적혀 있는 서찰의 내용은 언제나 간결했고, 전혀 뜬금없는 지역 분타에 도착하는 경우가 많았다. 시기와 위치만 적혀 있을 뿐 정확한 정보가 있지는 않았지만 이것이 도착하면 언제나 무언가가 일어났다.
처음에는 단순한 사고나 우연이라 생각했던 이들도 반복되는 서찰과 이어지듯 일어나는 사고에 그것이 결코 단순한 사고가 아님을 깨닫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감숙 분타와 개방, 그리고 무림맹에 연락해라.”
치정 싸움에 의한 살인 사건, 혹은 지반 붕괴로 인한 대형 참사 등 종류는 다양했지만 그 서찰의 내용은 언제나 가볍지 않았다.
“홍아야. 이리 와 봐.”
이린은 꾸물꾸물 책상 위를 기어 다니다가 제 목소리에 도망치려던 홍아를 얼른 낚아챘다. 그리고 도망치려고 버둥거리는 몸을 붙잡고 비늘에 묻어 있는 먹 자국을 물수건으로 벅벅 닦아 내기 시작했다.
끼이이- 끼이이이이-
“가만 좀 있어. 그러게 누가 먹물 묻히고 다니래? 네가 여기저기 먹물 다 묻히고 다니잖아.”
하오문에 보내기 위한 서찰의 연습용으로 사용했던 종이를 태우다 말고 눈에 들어온 홍아의 비늘을 닦으며 잔소리를 시작했다.
하오문에 서신을 보낼 때면 필체를 숨기기 위해 왼손으로 이상한 서체를 만들어 쓰다 보니 짧은 글을 쓰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때마다 청아, 홍아가 옆에서 장난치다 몸에 먹물을 묻히고는 종이에 비늘로 도장을 찍으며 놀곤 했다. 무늬가 남는 것이 재밌었는지 종이 위에 제법 깔끔하게 남기고 있었다. 처음에는 하지 말라고 잔소리하고 주의를 줬지만 말을 듣지 않아 이제는 반쯤 포기했다.
다 써 놓은 서찰에도 희미한 비늘 자국을 찍어 놓아 기함했지만 다시 쓰자니 번거롭고 그냥 동일 인물이 계속 보내는 표식으로 여기겠거니 낙관하는 중이었다.
평범하게 서신을 쓸 때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으니 자국이 남을 일도 없고.
‘이건 어탁(魚拓)도 아니고 뭐람……. 사탁(蛇拓)인가?’
덕분에 본인이 보낸 서찰이 뭐라고 불리고 있는지도 모르는 이린은 번쩍거리는 광택의 비늘에 먹물 껴 있는 게 썩 보기 좋지 않아 눈에 들어올 때마다 거칠게 닦아 내고 있었다. 물론 진짜 문제는 애들이 이걸 여기저기 묻히고 다니는 데 있었지만.
요 녀석들 말썽 때문에 먹물 자국 남은 옷도 한두 벌이 아니었다. 산속을 뛰어다니고, 나무를 오르내리고, 동굴을 탐방해도 멀쩡한 옷들인데, 뱀들 장난 때문에 새로 맞춰야 했다. 검은 옷을 입으면 되지 않겠나 싶지만 서신을 쓸 때마다 검은 옷을 입을 수도 없었다.
‘우리 집이 형편이 넉넉한 것과 별개로 낭비야.’
안 그래도 식비도 만만치 않은 아이들인데.
끼이이-
“안 돼. 닦아야 해. 포기해. 그렇게 싫으면 먹물을 묻히지 말았어야지.”
평소에는 서문제우에게 부탁해서 표행 나간 지역이나 지나는 지역 하오문 분타에 몰래 보내곤 했는데, 이번에는 이린이 모처럼 장사까지 내려와 있어 이곳에서 써서 직접 전했다.
사실 직접은 아니고, 시험 삼아 ‘어떤 사람이 이거 저기에 전해 달라고 했는데 나는 좀 무서워서 너희가 대신 해 줄래?’ 하고 아이들에게 돈을 주며 부탁해 봤는데 모르는 아저씨가 전해 달랬다고 천연덕스럽게 가향루에 전해 줬다.
‘어떻게 보면 애들이 너무 뻔뻔한 것도 재미가 없지만.’
자라 온 환경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었다. 뻔뻔해야 먹고살 수 있었으니까. 덕분에 이런 일을 시키기도 나쁘지 않고.
‘객잔이나 상단에서 일할 때는 장점이 될까, 단점이 될까.’
아이들은 이린이 자신들을 거둔다는 사실에 어리둥절해하면서 이제 배곯을 일 없다는 말에 솔직하게 환호했다.
유일하게 얼굴이 어두운 건 마선 정도였지만. 그건 그 아이가 이린이 자신에게 거는 기대를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제가 그런 능력이 있다고 믿으세요? 아가씨를 배신하지 않을 거라고?”
“네가 할 수 없다면 내 눈이 틀렸을 뿐이야. 나는 내 가족과 장원, 이 상단을 지켜 줄 사람이 하나라도 더 필요하거든. 너는 지금껏 네 품 안에 있는 아이들을 지켰지만 그보다 큰 규모는 무리일지도 모르고.”
기대한다, 믿는다, 이런 번지르르한 말을 늘어놓는 대신 이린은 냉정하고 담담하게 말했다.
“너희들이 평범하게 상단 일꾼 노릇만 해도 나는 딱히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야. 장사 지부장같이 밑바닥에서 위까지 올라올 수 있는 인물이 흔한 건 아니니까. 그걸 너희에게 요구하는 건 너무 무리한 요구지. 안 그래?”
이린의 말에 마선은 실망한 듯 울컥한 듯 복잡한 얼굴을 했다.
“그게, 아가씨가 말씀하신 ‘몸으로 갚아’입니까?”
“그래.”
이린은 어딘지 우울해 보이는 마선의 머리를 달래듯 쓰다듬었다. 누군가에게 다정하게 머리를 쓰다듬어지는 일이 낯설어서인지 마선의 얼굴과 목덜미까지 벌겋게 달아올랐다. 덕분에 붉어진 마선의 얼굴과 목 여기저기에 남은 흉터가 이린의 눈에 들어왔다. 마선이 나이가 차도록 납치당하는 일 없이 아이들을 지킬 수 있었던 건 아마 이 흉터들 덕분이었으리라.
“나는 이 상단에 이상한 놈들이 들어와 내 가족을 해하는 걸 바라지 않거든. 누군가가 이 안에서 내 눈이 되어 주길 바라.”
“그게 아가씨께서 원하시는 겁니까?”
“뭐 덕분에 우연히 상단이 번성하면 더 좋고.”
이린의 장난 같은 목소리에 마선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가씨께선 저희를 용서하고 받아 주셨죠. 이번 겨울을 걱정해야 했던 아이들은 이제 이번 겨울부터 동사(凍死)를 걱정하지 않고 잠들 수 있을 겁니다.”
“돈 많은 집 고명딸의 취미 활동이지.”
살짝 빈정거리는 이린의 대답에도 마선의 태도는 변치 않았다.
“취미 활동이든 장난이든. 아이들에게는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라는 점은 변함없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마선은 이린 앞에 무릎을 꿇고 바닥에 머리를 조아렸다.
“잊지 않을 겁니다.”
“……그래.”
무릎 꿇은 마선을 일으켜 세운 이린은 진지하다 못해 비장해 보이기까지 하는 마선의 얼굴에서 이 아이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는지 엿볼 수 있었다.
‘아직 이렇게 어린아이인데 당연히 힘들었겠지.’
자신이라면 할 수 있었을까.
스무 살의 이린도 갑자기 연가장을 책임지게 되었을 때는 무서웠다. 많은 사람들의 앞날이 자신에게 달려 있었다. 자신을 도와줄 이도, 지켜 줄 이도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