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Goddess RAW novel - Chapter 89
89.
‘다른 건 몰라도 실력 하나는 확실했지.’
개방이나 하오문에 의뢰를 넣어 볼까 고민하며 이린은 다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도록 발길을 재촉했다. 속이 복잡한 때는 몸을 움직이는 것이 가장 편했다.
그리고 그날 밤 이린은 사린에게 약혼을 축하한다는 서신을 적으며 곧 오빠와 함께 여행을 떠날 거라 답장을 보내도 받지 못할 테니 한동안 서신을 기다리지 말아 달라는 말을 덧붙였다. 여건이 되면 황룡전장에 찾아가 보겠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다음날, 서신을 부탁하고 집을 정리한 이린은 손님 맞을 준비를 했다.
안주인이 없는 연가장의 실질적 안주인은 장 총관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이현과 이린이 자라나며 자연히 집안 관리도 남매가 거들고 있었다. 그러니 자연히 두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 연적훈 다음으로 빈자리를 여실하게 느낄 사람도 장 총관이었다.
“소장주님과 아가씨가 함께 떠나시고 나면 장원이 텅 빈 느낌일 것 같군요.”
“아빠가 걱정이에요. 장 총관 아저씨가 잘 좀 챙겨 주세요,”
“제 말은 안 들으신단 말입니다. 아가씨가 계셔야 하는데.”
한숨을 쉬는 장 총관을 보며 이현과 이린이 키득키득 웃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함께한 시간이 긴 만큼 연적훈을 잘 챙겨 주는 사람이라 곁에 있어 준다면 안심이었다.
“그냥 제 친구들이 놀러 오는 거니 손님 준비도 거창하게 준비하실 건 없어요.”
“그건 오빠 생각이고. 게다가 오빠 생일이잖아?”
“맞습니다.”
이린의 말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인 장 총관은 잠시 움찔하더니 이현과 이린을 정원으로 내쫓았다.
“일은 제가 알아서 할 테니 두 분은 이런 데 계시지 마시고 느긋하게 시간 보내십시오.”
“하하하.”
“아니, 저는 왜요?”
“아가씨가 계시면 소장주님이 따라오십니다.”
부정할 수 없는 장 총관에 말에 결국 부엌에서 내쫓긴 두 사람은 겸사겸사 정원을 산책해야 했다.
“내가 요리해 주려고 그랬는데.”
“린아가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데.”
“하지만 모처럼 오빠 생일인걸.”
거대 붕어를 잡아 온 이후로 종종 요리를 하기 시작한 이린을 보며 이현이 복잡한 얼굴을 했다.
“그런데 린아. 요리는 대체 언제 배운 거야?”
“몰랐구나. 오빠 여동생은 천재라서 요리 정도는 안 배워도 잘해.”
“그렇구나.”
“믿지 마. 믿지 말라고.”
짐짓 진지한 목소리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이현의 팔을 토닥토닥 두드리며 이린이 입을 비죽였다. 그렇게 실속 없는 농담이 오가던 중 이현이 이린에게 물었다.
“린아, 전에 오빠가 데리고 왔던 친구들 기억해?”
“오빠가 3년 만에 귀가할 때 같이 왔던 사람들? 응, 다 기억해.”
얼굴은 잘생겼지만 자아도취 기질이 있고 성격이 썩 좋지 않은 옥소공자 백리한.
늘 찡그린 표정에다 얼굴에 작은 흉터가 있는 난폭하고 괴팍한 성정의 철비도 봉원우.
준수하게 생겼는데 예민하고 다소 잔혹한 손속의 천뢰검 심여준.
청수한 분위기에 유일하게 이현과 나란히 있어도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 분위기지만, 꽤 만사 귀찮아하는 곤륜파의 청운진인.
거기에 그날 같이 오지는 않았지만 투박하고 우락부락한 외모에 불같은 성격인 형산칠검 노악까지, 이현의 가장 친한 벗들이었다.
“린아 정말 기억력이 좋구나.”
“강호인들은 남들 신상 다 꿰고 다니는데 이 정도야 뭐.”
안 그래도 처음 봤을 때부터 이쪽에서는 일방적으로 구면인 사이라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음……. 오빠 친구들이 대체로 그렇게 평판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또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란다. 실력은 확실하고.”
“오빠 친구들에게 너무 냉정한 평가 같은데.”
“그야, 이번에 린아와 함께 여행을 해야 하는데 아무리 친구 간이라 해도 객관적으로 봐야지.”
조금 난처한 듯 민망해하는 얼굴과는 달리 단호한 말에 이린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객관적 평가는 중요하지.’
“다들 이미 린아와 함께 떠나는 걸 알고 수락해 주었거든. 린아도 그 친구들이 조금 곤란한 행동을 하더라도 너무 신경 쓰지 않았으면 좋겠어.”
“걱정 마. 오빠 친구들인데 뭐.”
예전에는 장원에 눌러앉아 술과 식량만 축내다 가는 한량들 같아 못마땅해했던 적도 있었지만……. 이현과 마지막까지 함께한 벗들이었다. 싫어할 수가 없었다.
‘사실 당시에도 연가장에서는 딱히 정도에 벗어난 행동을 했던 적은 없었지.’
오빠랑 어떻게 벗이 된 건지가 의심스럽긴 했어도.
“그것보다 내 생각엔 오빠 친구들이 나 때문에 놀랄 일이 좀 있을 거 같은데.”
연가장에서 누군가의 생일이라고 요란한 잔치를 하는 일은 별로 없었지만 이번에는 모처럼 손님이 온다고 조금 더 장원 안팎과 음식에 공을 들이느라 평소보다 조금 더 분주했다.
그리고 그 손님들은 그리 늦지 않게 도착했다.
“연장주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오랜만이군. 어서들 오게.”
연이현의 벗들은 아래에서 미리 만나서 왔는지 셋이 함께 장원을 찾았다.
‘백리한, 심여준, 청운진인인가.’
세 사람이 연적훈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물러나는 것을 보며 이린도 뒤를 따랐다. 성격이야 어쨌든 친구 아버지에게는 다들 공손했다.
“예전에 왔을 때 한 번 봤었지? 내 동생 연이린. 서신에 보낸 대로 이번에 우리랑 동행하게 될 거야.”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려요.”
이린이 인사를 하자 세 사람은 신기한 듯 잠시 이린을 응시했다.
지난번 연이현의 귀환과 함께 연가장을 찾았을 때도 본 적이 있기 때문에 새삼 이린의 용모에 놀란 것은 아니었다.
“우리도 잘 부탁합니다.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곤륜의 청운진인. 이 두 사람은 백리한과 심여준이라고 합니다.”
정중한 목소리의 청운진인이 대표로 이린에게 자신들을 소개했지만 다른 두 사람의 신경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이거 진짜 뱀이야??”
“신기하게 생겼는데.”
백리한, 심여준은 이린의 어깨에서 경계하듯 쉭쉭거리고 있는 청아, 홍아에게 시선이 못 박힌 채 동공이 흔들리는 중이었다.
“백리한, 손대지 말게. 물려도 책임 안 질 거니까.”
“이현 자네도 꽤 매정한 소릴 하는군.”
지나치게 빤히 쳐다보는 친구들에게서 이린을 떼어 내며 꼭 끌어안은 이현이 고개를 저었다.
“귀여운 동생과 자네 중에 우선순위를 말하라면 당연하지 않은가.”
“아니, 동생도 아니고 동생의 애완동물보다 아래 같은데?”
충격적 현실을 지적하자 청운이 웃으며 중재했다.
“사람이 인사를 하는데 남의 애완동물만 빤히 쳐다보고 있던 사람들에게 대접이 박해도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저도 이 뱀들에게는 흥미가 있는데 자세히 봐도 될까요?”
“아, 네.”
곤륜의 도사라서인지 아니면 말투가 정중해서인지 몰라도 어쩐지 경계심이 잘 들지 않는 청운에게 이린은 순순히 청아와 홍아를 건넸다.
“괜찮아. 안 무서운 사람이야. 물면 안 된다?”
끼-
고개를 끄덕이는 뱀들을 보며 청운은 조심스레 손을 뻗었다.
“신기하군요.”
청운은 청아, 홍아와 눈을 마주치며 아까 이린에게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고, 그런 청운을 백리한과 심여준은 어이없다는 눈으로 보고 있었다.
‘특이한 사람이네. 어쨌든 아빠만큼 뱀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아 다행이다.’
오히려 싫어하는 건 청아, 홍아 쪽이랄까. 사람을 가리는지 청운의 손에서는 얌전했는데 백리한과 심여준이 건드리자 못마땅해하는 것이 보였다.
끼이-
끼이이-
이린이 함부로 사람을 공격하면 안 된다고 단단히 못을 박아 둔 덕분에 경계는 해도 공격하진 않았지만.
“뱀이 이상한 소릴 내는데.”
애타게 자신을 찾는 청아, 홍아를 계속 못 본 척할 수 없어서 이린은 손을 뻗었다.
“청아, 홍아, 이리 와.”
“호오.”
이린이 손을 뻗자 기다렸다는 듯 제 주인에게 안겨 드는 뱀들을 보고 하나같이 감탄했다. 그 모습에 이린도 웃음이 새어 나왔다.
“깜짝 놀랐네. 뱀이 사람을 따르다니.”
“아니, 저거 보통 뱀 아니잖아?”
수군수군 이린의 어깨 위에 올라 있는 뱀들을 관찰하는 눈빛에 흥미로움이 가득하자 이현이 웃으며 이린을 뒤로 물렸다.
“다들 뱀은 괜찮은 거지?”
“괜찮아.”
이구동성으로 나오는 대답에 이린은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럼 잘 부탁드릴게요.”
“애 보기는 적성에 안 맞지만 어쩔 수 없지.”
“백리한, 어린애같이 굴지 말게.”
아까부터 티격태격하는 백리한과 심여준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이린에게 청운진인이 느긋한 얼굴로 설명했다.
“저 둘은 늘 저런 식이나 그리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아, 네.”
“원우 그 친구도 아마 그리 뱀을 싫어하진 않을 테지만, 음……. 한 명쯤 싫어해도 괜찮겠지요.”
“그, 그런가요.”
“네.”
연가장까지 찾아온 사람은 이현의 벗은 3명, 다른 2명은 도중에 합류하기로 했다고 들었기에 이린은 조금 안도했다.
‘너무 인원수가 많은 것도 부담스러워.’
이현도 사실 누군가 한두 명은 거절하겠거니 하고 서신을 보냈는데 하나같이 좋다는 답이 와서 고맙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한 묘한 상황이었다.
“오느라 피곤했을 테니 우선 객실로 안내하지.”
“편히 쉬세요.”
식사 후 이현이 친구들을 이끌고 가는 것을 보며 이린도 연무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까칠해 보이는 다른 두 명이 청운진인의 독단에도 별 토를 달지 않는 것을 보니 세 사람의 관계는 여전해 보였다.
‘오빠랑은 어땠더라.’
진여운과는 그리 사이가 좋진 않았던 거 같기도 하고.
‘추종자나 부하를 대할 때의 태도와 친구를 대할 때의 태도가 아무래도 다른 법이니까.’
연무장에 들어서자 이린을 발견한 수련생들 몇몇이 다가왔다. 진여운을 비롯해 이린과 함께 장사로 떠나기로 한 아이들이었다.
“너희도 같이 떠날 거니까 준비는 하고 있지?”
“네. 그런데 저희는 장사까지만 함께하는 겁니까?”
“응. 이후에 나랑 오빠는 다른 곳으로 떠날 거야. 너희는 슬슬 경험 쌓아서 다른 지부에도 파견될 모양이더라.”
장원 소유의 상단에는 호위 인력이 필요한 법이고 그걸 육성하는 건 연가장의 몫이었다.
진여운 정도면 나중에 장원에 남겠지만 슬슬 다른 지역에 보내며 경험을 키울 모양이었다.
‘장사까지 가는 동안에는 꽤 인원이 있어 북적북적하겠는걸.’
이린이 없는 동안에는 이린을 따르는 시비들도 할 일이 별로 없었다. 덕분에 장원 살림에서 손을 뗄 수 없는 자영과 아직 어린 오월이를 제외한 다른 아이들은 이린이 장사에 갈 때 함께 데리고 가서 오랜만에 고향 친구들 좀 만나게 해 줄 생각이었다.
“그렇군요.”
역시 이현과 동행하고 싶었던 건지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여운의 목소리에, 여운의 사각에 있는 이들은 모두 그럼 그렇지 하고 소리 죽여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순간 뭔가 느낀 듯 진여운이 홱 고개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