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Goddess RAW novel - Chapter 95
95.
“얼마죠?”
“네?”
이린의 갑작스러운 말에 주인이 그제야 싸늘한 분위기를 파악한 듯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얼마냐고 물었어요. 그 아이가 깨트린 접시값이요.”
“아니, 그것이…….”
말을 흐리는 주인의 시선이 이린의 차림새를 훑고는 어느새 린의 뒤에 서 있는 이현과 그 일행들에게로 향했다. 한눈에 보아도 심기를 거슬러서 좋을 것 없는 무림인들 같았다.
“받아요.”
주인의 시선이 자신을 지나 뒤쪽을 향하고 있는 것을 확인한 이린은 주인을 향해 작은 은자를 던졌다.
“이걸로 부족하다고 하지는 않겠죠.”
“그, 그럼요. 충분합지요!”
“과한 값을 치렀으니 저 애들도 내가 데려가도록 하죠. 꽤나 맘에 안 드는 모양인데 상관없겠죠?”
“네?”
이린의 말이 뜻밖이었는지 은자를 보고 입꼬리가 올라가 있던 주인의 얼굴이 굳었다.
“아니. 당신 말대로 그리 쓸모없는 아이면 내가 도리어 돈을 받아야 할까요? 설마 이 아이들이 노비는 아닐 테고.”
“하, 하지만.”
뜻밖의 전개에 당황하는 주인을 무시하고 이린은 아이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네가 말해 보렴. 너는 이 집에서 일하는 노예이니? 아니면 돈을 받기 위해 일하는 점소이니?”
“저는…… 저랑 동생은 노예가 아니에요.”
동생을 감싼 채 얼떨떨한 얼굴로 주인과 이린을 번갈아 쳐다보던 소년은 이린의 질문에 다급하게 답했다.
“네가 나를 따르겠다면 이곳에서 벗어나게 해 줄게. 너와 네 동생 둘 다.”
“아, 저, 따르겠어요!”
저 얼굴도 모르는 아가씨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상당한 부잣집 아가씨라는 것만은 알고 있었던 소년은 허겁지겁 고개를 끄덕였다. 소년의 대답에 이린은 장사에 데려가려고 함께 온 아이들을 돌아보았다.
“좋아. 회연, 고운.”
“네, 아가씨.”
“이 아이들도 오늘부터 너희와 함께하게 될 테니 방을 알려 주렴.”
“네.”
이린의 부름에 일어난 회연과 고운이 대답과 함께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여운아.”
“네, 아가씨.”
“아이가 오늘까지 일한 몫은 주인과 잘 얘기해서 받아 내도록 하렴.”
“네. 말씀대로 따르겠습니다.”
“잠깐, 잠깐만요, 아가씨. 저 아이가 지금까지 깨트린 접시가 얼만데 품삯을……!”
“설마 아까 은자로 부족하다는 말씀은 아니시겠죠. 설마 저 아이가 깬 접시가 그렇게 값비싼 것이었나요?”
“그건 아닙니다만…….”
“그리고 소란을 피워 식사를 방해한 것도 보상해 주셨으면 하네요.”
“그런 억지가!”
“억지요. 정말 억지가 어떤 건지, 굳이 겪어 보시겠다면 저도 사양하지 않겠어요.”
면사 너머로도, 싱긋 웃는 얼굴이 보이는 듯한 이린의 뒤에는 차가운 얼굴의 청년들이 주인을 쏘아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그렇게 일행에 새 일꾼이 추가되었다.
* * *
“나 참. 저렇게 호구 짓을 하고 다니다간 끝이 나겠냐?”
“말이 심하군. 우리 린아가 원래 좀 착해.”
“그래. 네가 남 말 할 처지가 아니지.”
역시 우리 아가씨! 우리 소장주님! 하고 눈을 반짝이고 있는 장원 사람들과는 달리 백리한과 심여준은 떫은 얼굴로 마차에 합류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었다.
“남매라고 저런 것까지 닮을 줄이야.”
“경공이 조금 뛰어난 것 외에는 제 앞가림할 능력도 없어 보이는데 걱정이군.”
이린에 대한 평가가 박한 심여준과는 달리 의외로 백리한의 반응은 비교적 호의적이었다.
“그래도 아침마다 뛰어다니는 걸 보면 경공은 확실히 뛰어나 보이던데? 어차피 저렇게 어린 여아를 데리고 그리 위험한 데로 다니진 않을 테니 그렇게 걱정할 것까진 없잖나.”
“허, 속편한 소리.”
안 그래도 연이현을 만나 함께하게 된 이후로 여기저기 참견하며 호구질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봐 왔건만, 동생까지 저럴 줄은 몰랐던지라 아이들을 챙기는 이린을 보며 심여준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뒤통수를 때리는 그 시선을 일찌감치 눈치챈 이린은 차후의 원만한 여행을 위한 대화의 필요성을 느꼈다.
“저한테 할 말이 있으신가요?”
“그래 보이나?”
“네.”
이린의 당돌함은 싫지 않은지 심여준도 이 기회에 빼지 않고 할 말을 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연이현도 그 모양인데 아가씨까지 호구 짓하는 걸 보는 게 그리 달갑지는 않군. 이현 저 친구는 제 앞가림은 충분히 할 수 있지만 아가씨는 아니지 않나? 나중에 오라비 발목이나 잡지 않을까 심히 걱정되지 않을 수가 없어.”
“남의 집안일에 지나친 관심이에요. 새언니 되실 분이라면 모를까. 제가 제 앞가림을 하는지 어떤지도 알지 못하시면서 실례라는 건 아시죠?”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건 알지.”
성격 안 좋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적당히 추억 보정으로 넘어가려 했던 자신의 안일함을 깨달은 이린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이린의 반응을 할 말이 없어 이러는 것이라 잘못 해석한 심여준의 빈정거림은 계속되었다.
“알량한 경공 실력 하나 믿고 자신감이 넘치니 이현도 걱정이 많겠어.”
“알량한지 어떤지 확인해 보시겠어요?”
괜히 질질 끌어 봤자 좋을 게 없겠다 싶어 이린도 빠른 결착을 희망했다.
그런 두 사람의 대치를 백리한을 통해 전해 들은 청운진인은 어이없어하며 한 마디 했다.
“나잇값은?”
그리고 그렇게 말하면서도 두 사람을 말릴 생각은 없는지 부탁받은 대로 이현에게는 아무 말도 전하지 않았다.
출발 지점은 일행이 쉬어 가기로 한 상담(湘潭).
아침에 동시에 출발해 장사(長沙)에 먼저 도착하는 쪽이 이기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마차로는 하루가 걸리지 않는 거리였으니 두 사람 다 자신의 경공이 말보다 빠르다는 자신이 있다는 뜻이었다.
지쳐서 도착할 테니 도착 지점은 안전한 곳이어야 한다는 점에서도 의견이 일치했다.
“오빠가 걱정하면 곤란하죠.”
“그래.”
지도를 펼쳐 놓고 사이좋게 진로를 확인하고 있는 두 사람을 보며 청운진인이 항의했다.
“그래서, 제가 두 분을 뒤따라가야 하는 이유는 뭔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심판이요.”
“보호자.”
실은 둘이 벌써 친해진 거 아닙니까?
물어보고 싶었지만 괜한 말을 꺼내 긁어 부스럼 만들 생각은 없는 청운진인은 그저 침묵했다. 백리한처럼 그냥 이현 옆에 붙어서 편하게 가고 싶은데 이 두 사람이 놔줄 거 같지가 않았다.
“경공이 뛰어나시다면서요?”
“백리한 그 거북이가 쫓아올 수 있을 리도 없고.”
“끄응.”
아주 아주 귀찮지만, 귀찮다고 무시하기에는 확실히 이린이 걱정인 것도 사실이라 청운진인은 할 수 없이 두 사람의 부탁인지 강압인지에 넘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두 사람 다 내가 위험하니 멈추라고 하면 반드시 멈춰야 합니다. 알겠습니까?”
“알았다.”
“감사합니다!”
대조적인 두 사람의 반응을 보며 청운은 심여준을 향해 눈을 흘겼다.
“내일 아침 출발해야 하니 전 이만 가 볼게요.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
“네. 푹 쉬시길.”
웃으며 객잔으로 쏙 들어가는 이린의 모습을 확인한 청운진인은 방심하고 있는 심여준의 등짝을 가격했다.
퍼억!
“억……!”
찰싹이나 짜악, 하는 귀여운 효과음 대신 묵직한 타격음과 함께 심여준의 몸이 거꾸로 휘었다. 썩 보기 좋은 꼴은 아니었다.
“나이가 몇 살인데 철딱서니 없이 저렇게 어린 소저에게 시비나 걸고. 창피한 줄이나 아십시오.”
내일 대결에 지장을 주면 안 되니 청운진인 나름으론 살살 때리긴 했지만 고통까지 없는 건 아닌지라 심여준은 신음과 함께 몸을 비틀면서도 끝까지 제 의견을 관철했다.
“내 말이 틀렸나?”
“당신 의견이 옳다고 생각해서 하는 일이었습니까? 이현한테 하다 안 통하니까 연 소저한테까지 그러는 거 아닙니까. 왜 그렇게까지 발작하는지 남의 과거사에까진 흥미 없으니 민폐 좀 끼치지 마시지요.”
“폭력 말코도사 같으니…….”
반성의 기미 따위는 티끌만큼도 보이지 않는 심여준의 중얼거림에 청운진인은 조용히 품에서 꺼낸 접선(摺扇)을 펼쳤다.
촤악!
얼핏 보면 평범한 접선처럼 보이지만 저 부채에 잘못 맞으면 세상을 하직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심여준은 사색이 되어 손을 내저었다.
“잠깐, 잠깐! 뭘 꺼내는 거냐!”
“정말 말로는 답이 없으니 교육적 지도라도 좀 할까 해서요.”
탁!
무표정하게 다시 부채를 접는 청운진인의 얼굴이 달빛을 받아 서늘하게 빛났다.
* * *
다음날 아침. 기분 좋게 일어나 떠날 채비를 마치고 식당으로 내려온 이린과 이현은 갑자기 얼굴에 면사를 쓰고 나타난 심여준을 발견하고 나란히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옷이랑 체격 때문에 금방 알아보긴 했지만 왜 갑자기?
“자네 무슨 일 있나?”
“아무것도 아닐세.”
“왜 갑자기 얼굴을 가렸어요?”
“아무것도 아니다.”
안 그래도 이린과 이현이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데 거기에 심여준까지 추가로 면사를 감고 있으니 일행이 한층 더 수상쩍어 보이는 효과를 낳았다.
이현은 이린을 슬쩍 제 뒤로 감추며 여준을 멀리했다.
“수상해 보이니 너무 가까이 오진 말게.”
“야.”
“농담이니 너무 정색하지 말고.”
그렇게 말하면서도 이현은 여전히 이린을 뒤로 감춘 채 탁자에 자리를 잡았다.
곧이어 내려온 다른 일행들도 마찬가지로 이현의 맞은편에 앉아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심여준을 힐끔힐끔 쳐다보았지만 감히 무슨 일이냐고 묻는 이는 없었다.
“이현이 얼굴 가리고 있으니까 갑자기 너도 가려야 될 거 같은 쓸데없는 자의식 과잉이라도 생겼어? 누가 네 얼굴을 뭘 그렇게 본다고 가렸어?”
“죽고 싶나.”
“셋이나 그러고 있으니 좀 수상한 집단 같군요.”
물론 심여준의 옆에 앉은 백리한과 청운진인의 반응은 과연 조금 남달랐지만.
“누구 탓인데…….”
“청운 도장 때문이에요?”
뭔가 있어 보이는 대화에 이린이 묻자 곧바로 부정의 답이 돌아왔다.
“아니다.”
“아니라는군요.”
“??”
결국 제대로 된 답은 듣지 못했지만 곧 주문해 둔 음식이 나오자 여준의 면사에 대해서는 다들 금방 잊어버리고 눈앞에 펼쳐진 음식들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모처럼 음식이 맛있기로 유명한 주루에 숙소를 잡았으니 낭비할 시간이 아까웠다.
“아침부터 너무 많이 주문했나.”
“모처럼 왔는데 뭐 어떤가.”
이현은 다른 일행들에게도 똑같은 음식을 주문해 주었기에 다들 새로운 음식을 즐기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정말 린아랑 셋이 경공으로 갈 건가?”
한창 식사 중 먼저 말을 꺼낸 건 이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