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Martial God RAW novel - Chapter (411)
창천무신-311화(411/730)
시커먼 재가 휘휘 날리고, 연기가 부옇게 일어나는 남궁세의 외원을 향해 무사들의 시선이 옮겨졌다.
무너진 담벼락, 자욱한 연기.
붉게 물든 바닥을 넘어 저 너머 합비의 거리로 사람들이 돌아섰다.
소리가 화마(火魔)에 집어삼켜진 듯, 사위에 침묵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시간이 정지한 것만 같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쩌그렁.
누군가 들고 있던 검을 떨어뜨렸다.
핏물이 묻고 이가 빠진 검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울리는 요란한 소리가 침묵을 깼다.
“살았다…….”
파문처럼 그 목소리가 퍼져 나간다.
“살았다.”
“살았다, 살았다-!”
“와아아아아!”
반복된 그 말들이 이내 함성이 되어 울려 퍼졌다.
“이겼다! 이겼어!”
“드디어 끝났다!”
“본가가 이겼다!”
멍하니 담벼락 너머로 보이는 합비 땅을 바라보던 무사들이 너도나도 소리를 지르며 포효했다.
물먹은 솜을 쥐어짜 내듯, 긴장이 풀어지며 온몸의 힘이 쭉 빠진다.
남궁장천이 검을 꾹 쥐었다.
절망적이라고 느낄 정도의 전력 차이였다.
강소성, 강서성, 절강성, 복건성의 유력한 사파 연합과의 전쟁을 이겨내고 이렇게 살아남은 것이다.
당랑거철(螳螂拒轍).
사마귀가 굴러가는 수레바퀴를 막아 버린 것 같은 기적이었다.
그들은 살아남았고, 안휘성을 지켜냈다.
남궁장천은 저들의 희열감과 안도, 그리고 표효를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최대한 감정을 억눌렀다.
“부상자를 의약당으로 옮기고, 총관부는 피해 상황을 파악한다. 주변 상황을 정리하고, 시신을 수습한다!”
남궁장천의 목소리가 포효하는 사람들의 귓가에 또렷이 울렸다.
그가 계속해서 명령을 전달하고, 사람들이 그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멈춰 있던 시간이 다시 흐른다.
사람들이 바쁘게 오갔다.
“가주님! 추격대가 귀환했습니다!”
“백강검문의 잔당들을 포로로 잡아 왔습니다.”
“현재 북쪽으로 도망친 흑수각을 천풍대가 쫓고 있습니다.”
재빠르게 보고되는 이야기를 들으며 남궁장천이 고개를 주억였다.
주변 상황과 적들의 잔당을 쫓는 추격대에 대한 보고가 쉼 없이 들어왔다.
한편에서는 금광모와 총관부의 사람들이 진땀을 빼며 사방을 돌아다녔다.
피해 상황을 파악하며 당장 세가에 필요한 것들을 확인하고, 기록한다.
그들은 의원들과 함께 가장 바쁘게 장내를 뛰어다녔다.
“약재가 부족하오!”
“의약당 꽉 찼으니 빈 전각으로 옮기게.”
“의원들은? 의원들은 아직 멀었나?”
“손을 좀 보태 주시오!”
“천강전은 무너졌으니 그 옆에 창고를 쓰거라!”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피신시켰던 사람들이 장내로 돌아와 일손을 거든다.
부산스러움이 느껴질 정도로 사람들이 정신없이 활보했다.
상황이 빠르게 정리되는 것을 보던 남궁장천의 눈이 침중해진다
멍석 위로 하나둘 눕혀지는 사체들과 들것에 옮겨지는 부상자들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무거웠다.
“가주.”
대장로 남궁위경이 팔에 붕대를 감은 채 다가왔다.
핏물이 진하게 배인 붕대가 그 역시 악전고투를 치렀음을 알려 주었다.
“우리가 가문을 지키고, 안휘를 지켜냈습니다. 표정을 푸시지요.”
“승리했다는 것에 마냥 좋아할 수가 없구려. 죽은 이들은 돌아오지 않는 법인데…….”
“흔들리시면 안 됩니다. 지금은 더욱 강하고 위엄있게 본가의 사람들을 이끌어 주셔야 합니다.”
남궁장천이 고개를 주억였다.
그는 피해로 슬픔에 젖는 것보다 가솔들을 다독이고, 중심을 잡아야 하는 위치였다.
남궁장천이 수뇌부들에게 명령을 내린 뒤 팽천위와 당의천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팽천위와 당의천이 그를 돌아본다.
순간, 세 가주들의 눈빛이 일렁이며 어떤 감정이 떠올랐다.
잠깐 그들을 마주 보던 남궁장천이 포권을 취하며 허리를 숙였다.
“본가를 돕기 위해 와 주어 정말 감사하오. 이 은혜를 본가는 절대 잊지 않겠소이다.”
그는 진심이었다.
안휘성, 남궁세가의 위기를 외면치 않고 수천 리 길을 달려온 그들이었다.
그간의 관계가 어땠든 그는 진심으로 이들에게 고마웠다.
‘강호란 알다가도 모르겠구나.’
한편으론 남궁세가의 위기를 돕기 위해 나타난 것이 이 두 가문이라는 것에 감회가 새로웠다.
평소에는 경쟁하고, 대립하던 가문들이 위기 상황이 되니 수천 리 길을 달려와 돕다니.
팽천위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인사치레는 모든 일이 마무리되면 합시다. 수습이 먼저 아니겠소?”
당의천이 고개를 끄덕인다.
“당가는 은혜를 잊지 않소. 이건 당연한 일이었소.”
굳이 어떤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그들이었다.
대수롭지 않게 얘기하지만, 그들은 오대세가의 수장들이었다.
말 한마디에 무게가 실리고, 그들이 행하는 모든 것에는 의미가 있다.
‘……이들 또한 둘째 놈과의 인연으로 뭉치게 됐구나.’
남궁장천은 묘한 느낌이 들었다.
두 세력의 수장들이 이 자리에 있게 된 이유는 중간에 남궁혁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북팽가주가 남궁세가와 협력하게 된 것도 남궁혁 때문이고, 당가에게 은인 소리를 듣게 된 것도 남궁혁 덕분이다.
더불어 개방과 합비십문이 본가를 도와 남은 것 역시 남궁혁의 공이 있었으니…….
‘이 전쟁도 둘째 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는 마치 남궁혁이 판을 그린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둘째 녀석을 중심으로 뭉친 세력들이라니…….
남궁세가의 인물 중 이런 일을 가능케 했던 사람이 있었던가?
찌르르, 등골을 타고 무언가 올라오는 기분이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남궁장천의 시선이 외원으로 들어오는 남궁혁과 마주쳤다.
남궁혁과 함께 뇌룡대가 등장하자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이공자!”
“남궁혁 공자!”
“이공자님이 돌아왔다!”
“뇌룡대가 돌아왔어!”
분주하게 움직이던 사람들이 남궁혁과 뇌룡대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이 전쟁에서 가장 큰 활약을 한 것이 남궁혁을 비롯한 뇌룡대임을 그들도 알았다.
별동대로서의 활약과 마지막 외원에서 남궁혁이 벌인 사투는 그들의 머릿속에 강렬하게 남아 있었다.
그들은 남궁혁의 무위와 그 집념 이상의 무언가를 봤다.
전장을 지휘하고, 적장을 죽이고, 별동대를 이끌어 적진을 무너뜨리고…….
일일이 열거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벅찰 정도였다.
결정적으로 이번 원군이 참여한 가장 큰 이유가 남궁혁이 중심에 있기 때문이란 것도 그들은 어렴풋이 알았다.
하북팽가와 사천당가의 무인들이 남궁혁을 돌아봤다.
팽천위가 헛웃음을 흘렸다.
“괜찮으냐?”
남궁혁이 얼굴에 묻은 피를 슥슥 문지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멀쩡한데요?”
“곧 죽을 것 같다만.”
“못 죽죠. 받아야 할 게 태산인데.”
“허, 농담하는 것을 보니 살 만한 것 같구나.”
“농담 아닌데.”
“…….”
팽천위는 나직이 중얼거리는 남궁혁의 마지막 말을 무시한 채 헛기침을 했다.
저 사악한 표정을 봐라.
괜히 티 냈다가는 물릴 것 같았다.
남궁혁이 웃음기를 지우고 팽천위를 바라봤다.
“은혜는 확실히 갚을 겁니다.”
“으음!”
“저는 받은 건 반드시 갚습니다.”
천 개의 재물보다 말 한마디로 신뢰감을 주는 사람이 있다.
팽천위가 보는 남궁혁은 한없이 가볍고, 능글맞아도 행동하는 놈이었다.
행동하는 자는 어떻게든 결과를 만든다.
“그래. 그건 차차 얘기하지. 본 가주는 구체적인 게 좋아서 말이네.”
“아무렴요.”
“허허!”
팽천위가 가볍게 웃는다.
남궁세가의 사람들이 크게 놀랐다.
‘하북 팽가의 가주와 저리 격식 없이 대화할 수 있다니.’
‘팽 가주가 저런 사람이었던가?’
‘이공자가 대체 강호행을 어찌했길래…….’
남궁세가의 이공자와 하북팽가 가주의 관계가 허물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천하의 누가 하북팽가의 가주와 저리 편히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하북팽가의 무사들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철혈도(鐵血刀)라 불렸을 정도로 그 냉철함과 차가움을 가진 팽천위였다.
그가 남궁혁을 대하는 태도와 평소 보이는 모습이 평소와 큰 차이가 있음을 그들도 깨달은 것이다.
남궁혁이 고개를 돌려 당의천을 바라봤다.
그가 포권을 취했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격식 차릴 것 없네. 당연히 왔어야 하는 일이네. 조만간 연락할지도 모른다는 것이 이런 일이었다는 게 유감이네만, 본가도 이번 일로 면이 조금 서는군.”
“안 왔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큰일이라…….”
당의천이 말끝을 가볍게 흐렸다.
그는 남궁혁이 사파와의 전쟁을 예견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사천당가를 떠나기 전 그런 말을 남긴 것이겠지.
‘도대체 몇 수 앞을 내다본 것인가?’
당의천이 속으로 탄성을 흘리며 말했다.
“며칠 내로 본가에서 보낸 의원들이 남궁세가에 도착할 것이네. 본가의 의술은 천하제일을 다투니, 조금 더 도움이 되겠군. 중독 환자가 없어 조금 아쉽지만.”
자부심을 드러내는 가벼운 농이었다.
물론,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농이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다시 한번 술렁인다.
사천당가가 남궁혁의 안배로 남궁세가에 왔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더불어 사천당가의 가주마저 남궁혁을 대하는 태도가 확연히 다름을 그들은 느꼈다.
오대세가의 가주 두 명.
그것도 오대세가의 수좌를 다툰다는 하북팽가와 사천당가의 가주들이 남궁혁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현장을 수습하는 와중에도 저런 관계가 보일 정도라니.
남궁세가와 무사들은 뿌듯함과 경탄이 터져 나왔다.
가슴이 뛰는 일이었다.
반대로 합비십문과 다른 중소문파들은 그 존재감에 숨이 막힐 것 같았다.
‘후기지수의 영향력이 이 정도일 수 있단 말인가?’
‘……이공자의 행보가 범상치 않다더니, 대체 어떻게 구워삶은 거지?’
‘으음! 남궁세가는 날개를 다는구나.’
‘오대세가의 세 곳이 저 청년 하나 때문에 뭉치다니.’
전투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는 몰랐으나, 이 세 개의 가문이 나란히 있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 존재감이 어마어마했다.
그들 역시 전쟁의 피해로 고통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이 계산을 해야 했다.
관계적인 부분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더 강한 힘 앞에 자연스럽게 모이는 것은 무림인들의 생리였다.
그렇게 복잡한 이해관계에 대해 생각하며 수습을 계속하던 와중이었다.
중천에 올랐던 해가 땅에 떨어질 정도로 바쁘게 움직이던 그때.
저벅저벅저벅.
파편을 치우고 있던 외원 무사의 눈에 합비 대로를 걸어오는 일단의 무리가 들어왔다.
“뭐야……?”
또 누가 오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던 무사의 눈이 경련을 일으켰다.
흑마를 타고 있는 위맹한 기세의 사내와 등 뒤에서 펄럭거리는 ‘맹(盟)’이라는 글자가 들어왔다.
당금 강호에서 기치에 맹이란 글자를 새길 수 있는 단체는 단 한 곳뿐이다.
“저, 정천맹…… 정천맹이다!”
무사의 목소리에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굳어 버렸다.
그들의 시선이 합비를 걸어 남궁세가의 외원으로 들어서는 무사들을 향했다.
남궁장천과 팽천위, 당의천의 얼굴이 슬며시 굳어졌다.
그들의 시선이 흑마 위에 올라서 있는 참마대주 건필상을 향했다.
건필상이 표정 없는 눈으로 세 가주와 돌처럼 굳어 있는 무사들을 말없이 바라보다 흑마에서 내렸다.
탓.
그리고 포권을 취하며 남궁장천을 향해 깊이 읍했다.
“맹의 명으로 참마대가 남궁세가를 지원하기 위해 달려왔습니다.”
참마대주 건필상의 목소리에 모두의 표정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남궁장천이 침중한 눈으로 건필상을 바라봤다.
“와 준 것은 감사하나 이미 상황이 끝나 버렸구려.”
“죄송합니다, 가주님. 합비로 오는 중에 이런 일이 있어서.”
건필상이 더욱 깊이 읍한 뒤에 뒤를 슬쩍 쳐다봤다. 그의 수하가 달려와 그에게 붉은 천에 감긴 물건을 건넨다.
그가 안에 들어 있는 수급을 남궁장천의 앞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사파의 잔당들을 처리하느라 길이 지체되었습니다. 마음은 급했으나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가주님!”
남궁장천과 팽천위, 당의천의 표정이 사라진다.
전장에 참여했던 각 문파의 고수들이 외원에 들어서 있는 참마대와 정천맹의 깃발을 번갈아 바라봤다.
묘한 긴장감이 장내에 감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