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Martial God RAW novel - Chapter (542)
창천무신-542화(542/730)
태청전 안에서 청성파의 도사들이 검을 세운 채 핏발 선 눈으로 밖을 바라봤다.
꼴깍꼴깍!
목울대가 울리는 소리가 태청전 안을 울릴 정도로 사위는 고요했다.
하지만 태청전 아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귀지옥일 것이다.
사방에는 시신이 널브러져 있을 것이고, 비명과 절규가 가득할 터였다.
그들도 이미 보고, 듣고, 경험한 게 있었기에 청성산이 사도련의 악한들에게 유린당하는 것을 충분히 알았다.
청백 도장이 조용히 물었다.
“……얼마나 지났느냐?”
“반나절이 다 되어 갑니다.”
“으음!”
장문 사형과 일대제자들이 태청전을 벗어난 지 벌써 반나절이 되어 가고 있었다.
청성산이 아무리 깊고 첩첩한 곳이라고 해도 소식이 안 전해지니 답답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었다.
사도련이 청성산에 오르며 혈겁을 자행하고 있는데 어찌 제대로 연락을 취할 수 있겠는가?
반대로 그들이 연락을 취하려 태청전을 벗어날 수도 없었다.
어디서 어떻게 도사리고 있을지 모를 사도련과 마주칠 수도 있었다.
연전연패.
청성산의 전산에서부터 이곳 태청전까지 몰려 도망친 게 지금 그들의 신세였다.
적하십명진이 적들의 발을 묶어 두지 않았다면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됐을지 불을 보듯 뻔했다.
청성파 도사들에게는 어느새 사도련이란 괴물이 커다란 공포심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사, 사부님…….”
“걱정하지 말아라. 장문인께서 승전보를 가져오실 것이다.”
“그전에 적들이 태청전으로 오면 어, 어찌합니까?”
청백 진인은 어린 제자를 크게 꾸짖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겁을 먹은 아이를 혼낸다고 해서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다독이고 안심을 시켜 줘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청백 진인이 뜨거운 숨을 낮게 뱉으며 말했다.
“적하십명진은 천고의 절진이다. 적들도 함부로 이곳을 넘볼 수 없으니 걱정하지 말거라.”
청성파 최후의 방어진법이었다.
무림 역사상 손에 꼽히는 혈겁이었던 마도혈겁에서도 청성파를 지켜 낸 절진이었다.
이 절진을 두고 버텼기에 무림의 영웅들과 함께 마도를 몰아낼 수 있었다.
철옹성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는 청성파의 절진.
그에 대한 자부심과 믿음이 청백 진인은 물론, 다른 청성파의 제자들에게도 있었다.
적하십명진은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것이란 자부심 말이다.
“적하십명진에 안에 누가 접근합니다!”
보초를 서고 있던 청성파 도인의 목소리에 모두가 귀를 쫑긋 세웠다.
노을을 받은 듯 붉은빛으로 물든 안개 사이로 그림자가 보였다.
“장문인인가?”
“사형이 돌아왔습니까?”
“오오오!”
적하십명진이 흔들리는 것을 보며 청성의 도사들이 낮게 탄성을 흔들렸다.
이곳 태청전까지 길을 잃지 않고 왔다는 것은 당연히 청검 진인 일행일 것이란 생각이었다.
청검 진인이 어떤 희소식을 가져왔을지 어린 제자들이 술렁였다.
청백 진인도 기대감을 숨기지 못하고 태청전 너머로 시선을 던졌다.
“음?”
“사부님, 장문인께서 생존자들을 구출해 내셨을까요?”
“잠시.”
청백 진인이 말을 멈췄다.
적하십명진이 만들어 내는 안개가 넘실거리며 안쪽의 그림자가 짙어졌다.
“청백 장로님, 왜 그러십니까?”
“물러나라.”
“예?”
“물러나!”
청백 진인이 다급하게 외쳤다. 태청전의 정문을 지키고 있던 도사들이 고개를 눈을 끔뻑이며 얼을 빼는 순간이었다.
콰아아아앙!
태청전 정문이 박살 나며 앞에 있던 도사들이 충격파에 휩쓸렸다.
“크아아아아악!”
“커어어억!”
“무, 무슨!”
“적, 적입니다-!”
단말마와 함께 보초를 서고 있던 도사들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거대한 태청전의 정문이 종잇장처럼 찢겨 나가고, 담벼락이 무너졌다.
그리고 그 앞으로 희뿌연 연기와 함께 붉은 피풍의를 걸친 중년인이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청백 진인과 청성파의 도사들은 본능적으로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단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해지고, 머리털이 쭈뼛 서는 서늘함을 가진 중년인.
그가 사도련주 광사 구양신이 아니라면 누구겠는가?
청백 진인이 신음을 흘렸다.
“사도련주…….”
온갖 의문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아니, 충격이 파도를 치며 머릿속을 뒤집었다고 해야 옳았다.
마도혈겁 때 마인들조차 막아 냈던 적하십명진이 파훼됐다는 것.
그리고 사도련주가 직접 등장했다는 것.
마치 귀신처럼 소리소문없이 사도련주가 태청전에 나타났다는 것이 청백 진인의 머리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온갖 의문들은 해소되지 않은 채, 사도련주라는 재앙은 코앞에 닥쳐 있었다.
청백 진인이 외쳤다.
“청운검진을 펼쳐라!”
“사, 사숙?”
“자, 장로님?”
이미 공포로 몸이 굳어 버린 청성파의 제자들을 청백 진인도 이해했다.
그 역시 단지 사도련주를 마주 보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살아남기 위해선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을 차려야 했다.
“사파의 악귀들에게 굴복할 것이냐! 청운검진을 펼쳐라!”
“예!”
“으으으!”
청성파 도사들이 검을 세운 채 담을 넘어오는 적들을 겨누었다.
“사문의 원수들이다! 끝까지 맞서 싸워 사문의 복수를 하자!”
“와아아아아아!”
기합을 터뜨리며 청성파 도사들이 기세를 끌어올렸다.
청백 진인이 검을 세웠다.
“개진!”
“하압!”
청성파의 도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청운검진을 운용했다.
카카카카캉! 쩌저저정!
그들이 두려움을 물리치고 사도련의 정예들과 부딪혔다.
그와 거의 동시에 청백 진인이 천지일기공을 끌어올렸다.
단전에 솟구치는 기운과 함께 청백 진인이 구양신을 향해 뛰어들었다.
“타합!”
우렁찬 기합과 청운적하검이 움직였다.
운무가 피어오르고, 그 사이로 붉은 노을이 떠올랐다.
극성에 이른 청운적하검에 맺힌 노을이 더욱 강렬한 빛을 만들어 냈다.
노을을 닮은 검강이 구양신을 향해 뿜어졌다.
콰아앙!
“크으음!”
청백 진인이 답답한 신음을 흘렸다.
구양신이 손으로 그의 검을 잡은 채 빤히 이쪽을 보고 있었다.
‘이 무슨……!’
검강을 맨손으로 잡다니!
아무리 손에 강기를 두르고 있다고 해도, 보통의 격차로는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었다.
검강은 그 자체로 천하에서 가장 파괴적인 기운이었다.
검강에 실린 뜨거운 열양의 기운은 강철조차 녹여 버릴 수 있는 힘의 집약체였다.
그런 검강을 사도련주 구양신은 아무렇지도 않게 잡아챈 것이다.
심지어 마치 나뭇가지를 붙잡은 듯이 여유로웠다.
청백 진인은 구양신과 자신의 격차가 하늘과 땅 그 이상임을 절실히 깨달았다.
“장문인은 어딨느냐?”
“크으으!”
“말하지 않으면 모두 죽을 것이다. 그냥 죽이지 않을 게다. 최대한 고통스럽게 찢어 죽일 것이다.”
“청성은…….”
청백 진인의 팔뚝이 부들부들 떨렸다.
“사마외도 따위에 굴하지 않을 것이다!”
일갈과 함께 청백진인이 모든 기력을 쏟아부었다.
검 끝에서 뜨겁게 타오르던 검강이 석 자를 뻗쳐 나왔다.
화염이 뿜어지듯 솟구치는 검강을 피해 구양신이 한발 물러났다.
청백 진인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구양신을 향해 뛰어들었다.
그는 사도련주에게 승산이 없음을 알았다.
하지만 적어도 비굴해지고 싶진 않았다.
그리고 청검 진인이 반드시 오늘의 복수를 해 주리라 믿었다.
‘내 몸을 불사르더라도 팔 하나는 취할 것이다!’
청백 진인이 온몸의 선천지기를 쥐어짜 냈다.
푸하악!
역류하는 기운이 기맥을 찢으며, 입에서 핏물이 뿜어졌다.
하지만 그의 청운적하검은 일생 그 어느 때보다 찬연하게 빛났다.
운무 사이로 그 모습을 드러내는 붉은 노을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보지 못할 만큼 아름답고 경이로운 모습이었다.
퍼어어억!
“끄…… 으으!”
찰나 동안 보였던 청운적하검의 노을이 흩어지고, 청백 진인은 자신의 심장에 주먹만 한 구멍이 뚫렸음을 깨달았다.
구양신이 쯧, 혀를 찼다.
“귀찮게 하는구나.”
귀찮다…….
평생을 뛰어넘는 깨달음이 겨우 그에게는 귀찮은 정도였구나.
묘한 허탈감을 느끼며 청백 진인이 허물어졌다.
저 멀리 무너지고 있는 청성의 제자들이 보였다.
노을이 지고, 운무가 흩어지며 비명이 울리고 있었다.
아아…….
청성이여…….
그는 스러져가는 와중에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훤히 뚫린 가슴에서 기묘한 기운이 느껴진다.
사파의 사특한 기운인가?
아니 그보다 더 짙고, 음험한데…….
‘사형…… 도망치십시오…….’
청백 진인의 허무한 눈동자가 허공 어딘가를 응시하며 꺼져 갔다.
추아아아악!
“끄아아아악!”
“커어어억!”
“사, 살려 줘!”
청성파 제자들이 비명을 질렀다.
청운검진은 순식간에 와해되었다.
그들의 실력으로는 은린철갑대의 갑옷을 뚫을 수가 없었고, 사황대의 도법을 당해 낼 수 없었다.
은린철갑대와 사황대는 마치 군대처럼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단순하지만 교묘하게 위치를 바꾸며 수많은 변화를 일으켰다.
그들은 순식간에 청성파 도사들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청성파의 정예와 장로들 대부분이 빠져나간 태청전에서 그들을 당해 낼 수는 없었다.
이대제자 현악이 검을 세운 채 망연한 표정을 지었다.
“아, 아아…….”
사형과 사제들이 스러지고, 사숙이 처절하게 난도질당해 죽어 갔다.
불타는 태청전 위로 자욱한 피 보라가 일어났다.
청정도량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오직 지옥도만이 이곳에 있었다.
현악의 시선이 저 한편에 쓰러져 있는 청백 진인과 눈이 마주쳤다.
공허한 그 눈동자를 보는 순간, 현악은 울컥하는 무언가가 일어났다.
청성은 비겁하게 숨지 않는다.
사마외도에게 굴하지 않을 것이다.
현악이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켰다.
그가 눈을 뒤집으며 은린철갑대를 향해 뛰어들었다.
“흐아아아아!”
퍼걱!
“큭, 미친놈.”
은린철갑대가 조소하며 현악의 몸을 양단했다.
핏물이 자욱하게 허공에 휘날리며 현악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현악이 그럼에도 꿈틀거리며 달라붙자 은린철갑대원의 미간이 좁혀졌다.
“이 새끼가?”
퍼어억!
그가 인상을 쓰며 현악의 머리통을 짓밟아 으깨 버렸다.
불쾌한 듯 발을 털어 내며 그가 다음 적을 찾아 쫓았다.
서걱!
마지막 청성파 제자의 목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싸움이 종결되었다.
구양신이 볼을 슥슥 문지르며 태청전을 둘러봤다.
시산혈해를 이룬 태청전의 모습.
가만히 그걸 보던 구양신이 사황대주에게 말했다.
“제단을 쌓아라. 오장육부는 따로 빼내어 단에 넣고.”
“…….”
사황대주의 동공이 가볍게 흔들렸다가 돌아왔다.
그가 이윽고 몸을 돌려 수하들에게 명령을 하달했다.
“움직여라!”
그 모습을 지켜보며 구양신이 말했다.
“청성은 아직 멸문하지 않았다. 현판을 불태우고 장문의 목을 걸 것이다!”
그의 살기와 집념 가득한 목소리에 사도련의 정예들이 낮게 심음을 흘렸다.
그때, 사황대주가 말했다.
“……산 아래에서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산 아래?”
“예. 백검맹이 청성에 당도했다고 합니다.”
“백검맹이라.”
구양신의 입가에 알 듯 말 듯한 야릇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가 볼을 가볍게 쓸었다.
구양신의 눈빛이 더없이 낮게 가라앉으며, 분위기가 가볍게 일변했다.
그리고 고조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남궁세가도 그 아래 있겠군.”
“……예.”
“그곳으로 간다.”
“청성은……?”
“도망치려 한다면 어차피 하산해야 할 것이니 상관없지 않으냐?”
구양신의 말에 사황대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겠습니다.”
“제단을 쌓을 이들을 남겨 두고, 나머지는 나와 함께 밑으로 갈 것이다.”
“음!”
구양신이 냉랭한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제단을 쌓기 위해 시신을 나르던 사도련의 고수들이 그를 따라 태청전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