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Martial God RAW novel - Chapter (562)
창천무신-562화(562/730)
짜르르르릉!
귓가를 울리는 방울 소리와 함께 암전이 찾아왔다.
갑자기 들이닥친 바람에 등롱불이 훅 하고 꺼지는 것처럼 시야가 시커멓게 차단되었다.
어둠에 먹힌 시야와 함께 온몸의 근육에 긴장이 감돈다.
고수 간의 싸움에서 감각에 방해가 온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아니, 차라리 절벽 아래로 밀어 버리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억겁과도 같은 찰나가 지나가고.
짜르르릉!
귓가로 아련하게 들려오는 방울 소리와 함께 어둠이 일렁였다.
남궁혁이 황급히 몸을 굴렸다.
콰아아아앙!
방금 그가 있던 자리가 찢겨 나가며 돌 파편이 비산했다.
남궁혁의 두 눈에 불똥이 튀었다.
‘귀왕령!’
사도련주, 이 새끼가 열심히 흔들어 재끼고 있구나!
남궁혁이 허공을 향해 미친 듯이 마검을 휘두르며 뒤로 후퇴했다.
차아악!
그럼에도 놈의 공세를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는지, 어깨에서 화끈한 불맛이 튀었다.
남궁혁의 표정이 슬며시 일그러졌다.
‘이거……’
귀기(鬼氣)를 다루는 신물이 바로 귀왕령이었다.
흔들기만 해도 환청과 환시를 본다고 들었는데, 듣던 것 이상으로 고약한 물건이지 않은가?
도대체 무슨 원리로 시야가 차단되고, 오감이 마비되는 효과가 나온단 말인가?
고수 간의 싸움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잡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물건이었다.
“시팔! 역시 장인은 장비 빨이라니까?!”
남궁혁이 창천명왕공을 극성으로 운용하며 외쳤다.
단전에서부터 맹렬한 회전을 시작한 창천명왕공이 전신을 순환했다.
한 호흡에 열두 번의 순환이 이루어지고, 남궁혁의 어깨 위로 뇌전이 꿈틀거렸다.
짙푸른 섬광에 휩싸인 마검이 어둠을 수평으로 가른다.
패왕혼 천살.
응집된 살기가 삼뢰검법을 통해 폭발했다.
콰드드드드드!
뇌전이 소용돌이치며 하늘 위로 솟구쳐 오르고, 공간을 찢으며 들어간 마검이 구양신의 유엽도와 부딪혔다.
쫘아아아악!
시야를 차단하던 어둠이 찢겨 나가며 모습을 감추고 있던 구양신이 드러났다.
구양신의 표정이 굳었다.
짜르르릉-!
귀왕령의 울림이 더욱 심해졌다.
더불어 단전에 깃든 내공도 흔들렸다.
어떻게 된 거지?
왜 이렇게 쉽게 풀려난 거지?
소림의 성승과는 느낌이 달랐다.
소림의 성승이 단단한 벽처럼 귀왕령의 공능을 아예 막아 버린 것과는 그 결이 달랐다.
거기다 이 기운은…….
짜르르릉!
귀왕령이 다시 한번 몸을 떨어 대기 시작했다.
놈과 부딪힐수록 울림이 더욱더 심해지는 것 같았다.
귀왕령이 포악한 짐승처럼 으르렁거렸다.
불쾌함이 올라간다.
소림의 성승을 상대할 때도 이러진 않았다.
그랬기에 눈앞에 저놈이 대체 어떤 놈인가 하는 의문과 함께 미지의 무언가에 대한 기묘한 감정이 끓어올랐다.
구양신은 그 감정을 누르며 도를 앞으로 세웠다.
단혼도법과 사황기가 한데 어우러지고, 정신이 그 위로 스며든다.
신도합일(身刀合一).
그의 존재가 유엽도와 하나가 되고, 유엽도 끝에 붉은 기운이 맺히며 점차 거대해진다.
이내 산악과도 같은 거대한 칼날이 모습을 드러내고, 그대로 남궁혁을 향해 휘둘러졌다.
남궁혁이 포악한 기세로 휘둘러져 오는 구양신의 유엽도를 마검으로 받아쳤다.
마검 위로 뇌전이 불길처럼 이글거렸다.
패왕혼 일도가 깃든 삼뢰검법의 일검이 유엽도와 맞부딪혔다.
검과 도가 뒤엉키며 불꽃이 튀고, 기파가 해일처럼 퍼져 나갔다.
콰아아아아아아아-!
남궁혁이 기파를 뚫고 계속해서 마검을 움직였다.
근육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충격이 연이어 가해졌음에도 그는 개의치 않았다.
창천명왕공의 호흡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삼뢰검법과 패왕혼이 마검을 통해 끝없이 펼쳐졌다.
짜르르르릉!
“이 새끼, 손모가지에 방울 달아 놨냐!”
온갖 소음 속에서도 귓가에 선명하게 울려 퍼지는 귀왕령의 방울 소리에 남궁혁이 인상을 팍 썼다.
창천명왕공의 기운은 불순한 모든 기운을 집어삼키고, 불태운다.
천하에서 가장 깨끗하고, 탐욕스러운 내공이 바로 창천명왕공이었다.
갑작스러운 귀왕령의 방울 소리에 제대로 된 반응을 보이지 않던 창천명왕공이 슬며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귀왕령의 사술에서 자유로울 순 없었다.
과거의 수많은 실전과 경험을 기억하고 반응하지 않았다면 벌써 모가지가 날아갔을 것이다.
짜르르르릉!
‘거 참 어떻게 된 방울인지 빌어먹게 귀찮게 하네?! 확 부숴…… 아니, 내 거지.’
남궁혁이 마음을 다스렸다.
한 번씩 찾아오는 암전과 귓구멍으로 파고드는 귀곡성에 정신이 아찔해진다.
그의 정신이 남들보다 몇 배는 강하고, 경험이 백 년 이상 앞서지 않았다면 벌써 관짝을 짰을 터였다.
‘저 망할 방울부터 조용히 시켜야 해.’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단순히 창천명왕공 하나만 의지했다가는 두들겨 맞다가 끝날 것 같았다.
아니, 이미 그렇게 되고 있었다.
맞불을 놓듯 싸우고 있었으나, 조금씩 밀리고 있다.
몸에 상처가 하나둘 늘고 있다.
압도적인 내공의 상성을 생각한다면, 구양신이 유리하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는 귀왕령이 얼마나 귀찮은 물건인지 새삼 깨우쳤다.
과거에 어떻게 삼류잡배가 저 물건 하나 들었다고 천하를 휘젓는 공적이 되었는지 말이다.
창천명왕공이 경지에 든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었기에 남궁혁 역시 제법 곤혹스러웠다.
‘내가 쫄렸던 적이 한두 번이냐?’
불리했던 순간, 생사의 고비를 넘긴 순간을 통틀면 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때마다 꿋꿋하게 살아남았고, 끝끝내 마지막까지 남았다.
그러니까 저 새끼 목을 자르는 것도 나고, 귀왕령을 먹는 것도 나다.
“하아아아압!”
꽈아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남궁혁이 구양신에게 달라붙었다.
짜르르르릉!
전장을 뒤흔드는 굉음과 방울 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졌다.
* * *
팽천위가 신음을 흘리며 폭음과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먼지구름 안에서 일어나는 격전을 쳐다봤다.
‘……사도련주와 대등하다.’
혈사자와 구대문파의 검수들을 혈수로 만들고, 그를 사경으로 몰아넣은 괴물과 당당히 맞서 싸우고 있었다.
남궁혁의 경지가 높은 줄은 알았으나, 이번에도 그의 예상을 뛰어넘은 성장을 이룬 게 분명했다.
‘단순히 경지의 높고 낮음 문제가 아니다.’
남궁혁의 움직임은 그조차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살검(殺劒)이다. 아니, 투검(鬪劒)이다.’
보통의 고수가 전개하는 초식과 휘두르는 일검에 의지를 실을 수 있다면, 남궁혁의 검에는 오직 투기와 살의만이 가득했다.
정파의 검 같기도 하고, 사파의 검 같기도 하다.
그러다가도 그것과는 전혀 별개의 무언가를 보여 준다.
‘으음!’
팽천위가 옆구리에서 느껴지는 격통에 신음을 참았다.
급하게 지혈을 했으나 상처가 워낙 커 핏물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전장 한복판이었다.
언제까지 멍청하게 서 있을 순 없었다.
저 두 사람의 격전으로 인해 주변에 적들이 함부로 접근하지 못할 뿐, 이곳이 안전한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거대한 덩치의 팽중혁이 전장으로 달려왔다.
“길 열어라!”
“뚫어!”
“후아아압!”
뇌룡대 삼인방이 귀곡연환진을 펼친 채 전방을 가로질러 왔다.
뒤집고, 썰고, 베고, 두들긴다.
촤아아악!
“다 부숴!”
“비켜라-!”
“우아아아아악!”
요란한 외침이 함성으로 둔갑했다.
팽중혁이 적들을 베어 넘기며 앞으로 뛰어가다 한쪽에서 옆구리를 부여잡고 있는 팽천위를 발견하고 눈이 돌아갔다.
혈사자들의 사체와 사경을 헤매고 있는 십팔도객의 상황이 그의 분노를 더욱 불태웠다.
어린 시절부터 숙부와 형으로 지내던 혈육들이 핏물에 누워 있는 것을 보니 피가 거꾸로 치솟는 느낌이었다.
팽중혁의 노기 어린 혼원신도가 적들을 베어 넘겼다.
“으아아아아!”
괴력을 보이며 앞으로 나가는 팽중혁과 남궁룡이 보조를 맞췄다.
그는 말없이 적들을 쓰러뜨렸다.
제왕군림보에 이은 제왕검형이 불길을 뿜었다.
콰아앙!
굉음이 울리며 그들의 앞을 막는 적들이 단숨에 쓰러졌다.
모용수도 따라붙었다.
북명무상검이 적들의 사혈을 거침없이 쑤셔 댔다.
사도련의 고수들이 당황하며 뇌룡대 앞을 가로막았다.
“이, 이것들 뭐야!”
“커억!”
“놈들이 무장했다! 칼이 안 막혀!”
운남과 광서성 어딘가에 있다는 무소가 저럴까 싶었다.
정면에서 우직하게 돌진해 오는데 막을 수가 없다.
독기가 바짝 오른 뇌룡대가 정천맹과 드잡이질하고 있던 사도련의 무사들을 쓸어버리기 시작했다.
팽중혁과 남궁룡, 모용수가 적진을 뚫고 들어간다.
“지원해!”
“다, 당가다!”
“허, 허억!”
후방에서 틈을 노리던 당의천이 무시무시한 살광을 뿌리며 적들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그의 독수에 닿은 자들이 새카매진 안색으로 비명을 지르며 자지러진다.
“커, 커어어억!”
“끄아아아아악!”
“뭐야아아악!”
시커멓게 변한 그들이 칠공에서 피를 토하며 비명을 질렀다.
절강당가의 천열(千裂)에 중독된 이들이 고통에 몸부림쳤다.
바닥을 뒹굴며 바닥을 긁다 손톱이 뽑혀 나간다.
그들이 겪는 끔찍한 고통이 피부로 와닿는 것 같았다.
당가의 무사들이 사도련 고수들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사천당가를 불태우고, 혈육을 죽인 원수들을 본 그들의 독심은 다른 이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못하지 않았다.
당가에서도 가장 끔찍한 암기들이라 불리는 천뢰구와 규악심(叫惡心)을 주저 없이 사용했다.
콰아앙!
천뢰구가 터져 나가며 수백 발의 비침이 사방으로 날아가고, 그 안에 발려진 천열이 적들에게 아득한 격통을 준다.
당명진이 손에 든 비수를 적의 심장에 박아 넣었다.
퍼억!
철컥!
“어, 어억?!”
비수 안의 기관이 움직이고, 그 안에서 혈심충(血心蟲)이 튀어나와 적의 심장에 기생했다.
한 호흡이면 심장을 파고들어 기생하는 혈심충은 기생과 동시에 숙주에게 몸 안의 혈관이 모두 뜯겨 나가는 듯한 극통을 주는 고독이었다.
“끄아아아아아악!”
모골이 송연해지는 비명이 전장에 울렸다.
당명진이 비수를 뽑으며 다음 적을 향해 몸을 던졌다.
전방에는 뇌룡대, 측면에는 후기지수, 그리고 그 뒤에는 당가가 끼어들며 전장에 끔찍한 바람을 일으켰다.
사도련 고수들은 당황했다.
백검맹과 적어도 열흘 이상은 차이 날 정도로 따돌렸고, 사천 구석으로 몰아넣었다고 생각했는데 고작 한나절도 안 되어 쫓아왔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들의 무위가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고강하고, 더욱 치열했기에 다시 한번 당황했다.
퍼어어억!
사황대가 자랑하던 중장갑이 폭뢰침에 단숨에 뚫렸다.
“이, 이 벌레 같은……!”
벌집이 되어 쓰러지는 사황대를 밟으며 백검맹 고수들이 내달렸다.
악전고투를 거듭하던 정천맹 무사들의 얼굴에 전율이 감돌았다.
“와아아아!”
“버텨라! 백검맹이 후미를 잡았다!”
“밀리지 마라! 파고들어!”
정천맹 무사들이 무기를 고쳐잡고 투지를 끌어올렸다.
절벽 끝까지 내몰린 상황이었다.
구양신에게 정천맹 최고수들이 패퇴하고, 사도련의 정예들이 정천맹을 밀어붙이던 상황.
그 절망적인 상황이 한순간에 반전된 것이다.
악에 받친 백검맹의 고수들이 사도련 병력을 찢고, 밀어붙인다.
오대세가의 가주들이 용맹무쌍하게 사도련의 고수들을 쓰러뜨리고 있다.
천군만마와 다름없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들을 전율케 하는 것은 전장의 후미.
그곳에서 모두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구양신을 남궁혁이 홀로 상대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흙먼지 속에서 연이어 울려 퍼지는 굉음과 간간히 들려오는 남궁혁의 외침이 아군의 사기를 드높였다.
전장이 다시 혼전으로 빠져들었다.
하지만 그 양상은 점점, 그러나 필연적으로 백검맹과 정천맹 쪽으로 기울어 가고 있었다.